[한경 머니 = 이동찬 기자]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는 브라질리언 왁싱. 남성의 털과 관련된 행위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인 한국에서 브라질리언 왁싱이야말로 털끝까지 짜릿한 일탈 행위가 아닐까. 과감한 일탈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직접 왁싱숍을 찾아갔다.
일탈과 털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펌 또는 염색을 하거나 과감하게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행위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반항’의 의미가 더해지긴 하지만, 눈썹을 밀거나 삭발을 하는 것 역시 일탈로 간주된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털이 잘려 나가거나 색이 변하거나 모양이 바뀌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 털과 관련된 일탈 행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적 지위와 체면치레가 중요한 중년 남성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래서 결국, 보이지 않는 곳의 털을 건드린다. 바로 브라질리언 왁싱이다. 성기와 항문 주변의 털을 제거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은 1980년대 브라질 여성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왁싱숍을 차린 것에서 유래했다. 브라질에서는 노출이 많은 카니발 의상이나 비키니를 착용하기 위해 왁싱이 발달했던 것. 미관상의 이유가 가장 컸지만 위생과 청결을 위해 브라질리언 왁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할리우드의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브라질리언 왁싱 시술 후 자신의 삶이 변했다고 표현했으며,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등 서구 문화에서는 점점 보편화됐다.
이는 성별을 넘어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수영 선수나 보디빌더 등 노출이 과한 의상을 입는 운동선수들이 시작했고, 이어 패션과 뷰티에 관심이 많은 그루밍족에까지 퍼져 나갔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정윤 무무왁싱 스투디오 대표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시술받는 남성들이 매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3년 사이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남성 고객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 이전에는 가슴이나 다리 등 보디 왁싱을 선호하는 편이었어요. 젊은 층들은 성기부터 항문까지 모든 털을 왁싱하는 올 누드 단계를 선호하며, 중년층의 경우 항문 쪽 시술이 위주인 중급 단계를 가장 많이 찾고 있습니다.”
털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한 몫을 했다. 과거, 수북한 털은 남성성의 상징이었고, 털이 없거나 빈약한 남성에게는 이방이나 내시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접목됐다. 하지만 개성이 중시되고, 성에 대한 구별이 점차 사라지면서 세련되고 깔끔한 외관의 남성이 더 능력 있고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TV에 등장하는 남자 아이돌은 수염 자국이 하나도 없는 말끔한 외모를 자랑하고, 중년의 개그맨은 자신의 브라질리언 왁싱 체험기를 호기롭게 늘어놓지 않는가.
브라질리언 왁싱, 직접 체험하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몸소 경험해보지 않고 일탈을 논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와 같다고 판단, 결국 왁싱숍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왁싱숍을 고를 때,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장 대표는 질 좋은 제품을 쓰는지, 검증된 기술력을 지닌 왁서가 있는지, 환경이 청결한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왁싱은 모근에서 털을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이때 모근이 손상되고 표피는 자극을 받아 예민해지는데 위생적이지 못한 도구를 사용하면 모낭염과 같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어요. 또한 저가의 제품이나 기술력이 받쳐주지 못할 경우, 왁싱 시술 후 제품으로 인한 화상이나 인그로운 헤어 등 다양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후기들과 블로그, 그리고 혐오와 근사함 그 중간쯤에 있는 왁싱 전후 사진을 뒤져본 후 조건들에 부합하는 왁싱숍을 방문했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올 누드 왁싱을 추천한다는 소리에 현혹돼 거침없이 올 누드를 선택했다. 사근사근하게 맞이하는 남성 왁서를 따라 들어간 개별 룸은 난생 처음 보는 것들로 어색함 그 자체였다. 샤워젤이 아닌 여성청결제만 덩그러니 놓인 샤워실은 당혹스러웠고,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실키한 핑크색 가운도 생소했다. 심지어 옷을 다 벗고 가운을 입어야 하는지도, 상의는 입고 가운을 입어야 하는지도 망설여졌다. 결국 모두 탈의하고 가운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호출벨을 눌렀다. 왁서는 진정시키려는 듯 더 친절한 말투로 편하게 다리를 벌리고 누우면 된다며 시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털을 가위로 잘라내는 것이었다. 민감한 부위에 닿는 손길이 낯설었는지 조그마한 터치에도 움찔거리자 왁서는 다독이듯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긴장하면 역시 말이 많아지는바 그 방은 왁싱이 끝날 때까지 남자 둘의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는 남자 고객들의 방문에 관한 것.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왔다가 오히려 자신이 브라질리언 왁싱 마니아가 됐다는 고객부터 여성 왁서에게 시술 받기를 원했다가 직원들의 회유로 남성 왁서에게 시술을 받았다는 한 남성 고객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왁서는 이어 방문 전날 3명의 남성이 시술을 받았으며, 50~60대 남성의 방문도 심심치 않다고 밝혔다. 동지가 생긴 듯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모든 털을 왁싱하기 좋은 길이로 잘라내면, 따뜻한 왁스가 살갗에 떨어지고 모슬린 천으로 털이 뽑혀 나가는 생경한 고통이 시작된다. 왁싱을 받고 며칠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왁싱숍 중에는 침대 위에 인형을 준비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인형을 꼭 끌어안거나, 혹은 쥐어뜯으며 고통을 감내하라는 의미다. 아쉽게도 그 왁싱숍에는 인형이 없었다. 인형이나 하다못해 쿠션이라도 준비돼 있었다면, 기자의 손에는 무수한 손톱자국 상처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할 때 모든 부위가 아픈 것은 아니다. ‘악’ 소리를 지를 정도로 아픈 부위가 있고, 참을 만한 부위가 따로 있었다. 굉장히 아픈 부위를 왁싱할 때, 왁서가 유달리 말이 많아지는데 알고 보니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신경을 일부러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그 뒤로는 왁서가 말이 많아졌다 싶으면 ‘아픈 부위의 털을 뽑아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앞부분의 털을 어느 정도 왁싱하면 이제 뒷부분의 털을 뽑아낼 차례다. 엎드려 절하는 자세를 취할 줄 알았건만, 올바로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굽혀 올리고 손으로 무릎을 잡아 고정하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치욕스러운 자세 때문인지, 아니면 항문의 감각이 다른 쪽보다 둔해서인지 모르지만 통증은 훨씬 덜했다.
왁스로 털이 대부분 뽑히긴 하지만, 기어이 살아남은 털들은 족집게로 하나씩 뽑혀 나갔다. 여기서 왁서라는 직업이 참 고된 직업임을, 브라질리언 왁싱 가격이 결코 비싼 것이 아님을 느꼈다. 정성스럽게 털을 하나씩 뽑아내면,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진정하고 보습 효과를 줄 수 있는 팩을 잠시 올려놓는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끝난 것이다. 팩을 하는 동안 왁싱 후 관리 방법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라고 주는데, 사실 헐벗고 누워 있는 상태에서 글귀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나중에 관련 정보들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왁서는 당일 성관계와 음주 및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최대 5일까지는 사우나나 수영장, 태닝 등 피부에 해를 가할 수 있는 행위들을 자제하라고 당부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며 방을 떠났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털이 말끔하게 없어진 그곳은 참으로 낯설었다. 동시에 약간의 쾌감도 느껴졌다. 마치 10대 때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차디찬 에어컨 바람이 그곳으로 들어올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브라질리언 왁싱 전도사가 된 마냥 지인들의 물밀듯이 밀려오는 후기 요청에 ‘꼭 받아라’, ‘신세계다’, ‘후회하지 않을 거다’라는 교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애프터케어
시술 당일에는 가볍게 물로 샤워한 후 숍에서 구입한 인그로운 헤어스프레이로 관리했다. 인그로운 헤어는 털이 각질층을 뚫고 나오지 못해 안으로 자라는 것을 뜻한다.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세심하게 마사지한 후 10분 정도 건조한 뒤, 보습 및 진정 효과가 뛰어난 알로에 젤을 발라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다독였다. 시술 다음 날은 속옷이 직접적으로 달라붙는 느낌과 습기가 피부에 바로 닿는 느낌이 어색했지만, 곧 수일 내에 적응했다. 한동안은 통풍을 위해 달라붙는 옷이나 청바지는 피했고 다리를 꼬고 앉는 등 자극을 가할 수 있는 행동들은 자제했다. 피부가 약한 편이기 때문에 발진처럼 보이는 붉은 기운은 일주일 정도 지나 수그러들었고 혹여나 인그로운 헤어가 생길까 봐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스프레이와 알로에 젤을 사용했다.
단언컨대 브라질리언 왁싱의 핵심은 애프터케어다. 아무리 숙련된 왁서에게 시술을 받았다고 한들,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브라질리언 왁싱의 만족을 온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인그로운 헤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모낭염의 원인이 된다”며 “각질을 연화하는 인그로운 헤어 전용 제품을 사용하고, 주 2~3회 정도 스크럽을 통해 묵은 각질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한다. 또한 유분보다는 수분 함량이 높은 보습제를 발라야 부드러운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왁싱 5일 후부터 털이 샤프심처럼 눈에 띄게 올라왔지만 이전보다 가늘게 나기 때문에 생각보다 따가움이나 불편함은 없었다. 왁싱을 받을수록 털은 더 가늘게 자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느낀 브라질리언 왁싱의 가장 큰 장점은 청결함이다. 그동안 털에 가려졌던, 은밀한 부위의 피부 상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용변 후 깔끔한 뒤처리가 가능했다. 다리를 자주 꼬고 앉는 버릇 때문에 여름에는 사타구니에 땀띠가 생기곤 했는데 그런 현상도 많이 개선됐다. 또한 화장실이나 방에 지저분하게 떨어진 털을 마주할 일이 없어 무엇보다 좋았다. 공중목욕탕이나 피트니스센터를 갈 때 약간의 민망함만 감수할 수 있다면 브라질리언 왁싱은 추천하고 싶은, 매혹적인 일탈 행위이자 미용 시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4주 정도 지나 기로에 선다고 한다. 다시 왁싱숍을 방문할 것인가. 아니면 털을 기를 것인가. 역시 그 기로에 섰지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재방문을 선택할 것이다. 장 대표는 실제로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재방문율은 모두 높은 편이라고 설명하며 조언을 덧붙였다.
“다시 브라질리언 왁싱을 고려할 경우,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방문할 것을 추천합니다. 왁싱 시 털뿐만 아니라 묵은 각질과 피지 또한 함께 제거되기 때문에 각질 생성 주기도 생각해야 해요. 보통 28일이 걸리는데, 그 이전에 왁싱 시술을 자주 받게 되면 피부가 예민해지는 원인이 됩니다.”
사진 각 사 제공 | 일러스트 박지애
도움말 장정윤 무무왁싱 스투디오 대표
참고 도서 <라이프 트렌드 2018>(김용섭 지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
일탈과 털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펌 또는 염색을 하거나 과감하게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행위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반항’의 의미가 더해지긴 하지만, 눈썹을 밀거나 삭발을 하는 것 역시 일탈로 간주된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털이 잘려 나가거나 색이 변하거나 모양이 바뀌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있어 털과 관련된 일탈 행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적 지위와 체면치레가 중요한 중년 남성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래서 결국, 보이지 않는 곳의 털을 건드린다. 바로 브라질리언 왁싱이다. 성기와 항문 주변의 털을 제거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은 1980년대 브라질 여성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왁싱숍을 차린 것에서 유래했다. 브라질에서는 노출이 많은 카니발 의상이나 비키니를 착용하기 위해 왁싱이 발달했던 것. 미관상의 이유가 가장 컸지만 위생과 청결을 위해 브라질리언 왁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다. 할리우드의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브라질리언 왁싱 시술 후 자신의 삶이 변했다고 표현했으며,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는 에피소드가 나오는 등 서구 문화에서는 점점 보편화됐다.
이는 성별을 넘어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수영 선수나 보디빌더 등 노출이 과한 의상을 입는 운동선수들이 시작했고, 이어 패션과 뷰티에 관심이 많은 그루밍족에까지 퍼져 나갔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정윤 무무왁싱 스투디오 대표는 브라질리언 왁싱을 시술받는 남성들이 매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3년 사이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남성 고객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 이전에는 가슴이나 다리 등 보디 왁싱을 선호하는 편이었어요. 젊은 층들은 성기부터 항문까지 모든 털을 왁싱하는 올 누드 단계를 선호하며, 중년층의 경우 항문 쪽 시술이 위주인 중급 단계를 가장 많이 찾고 있습니다.”
털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한 몫을 했다. 과거, 수북한 털은 남성성의 상징이었고, 털이 없거나 빈약한 남성에게는 이방이나 내시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접목됐다. 하지만 개성이 중시되고, 성에 대한 구별이 점차 사라지면서 세련되고 깔끔한 외관의 남성이 더 능력 있고 고급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TV에 등장하는 남자 아이돌은 수염 자국이 하나도 없는 말끔한 외모를 자랑하고, 중년의 개그맨은 자신의 브라질리언 왁싱 체험기를 호기롭게 늘어놓지 않는가.
브라질리언 왁싱, 직접 체험하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몸소 경험해보지 않고 일탈을 논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와 같다고 판단, 결국 왁싱숍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왁싱숍을 고를 때,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장 대표는 질 좋은 제품을 쓰는지, 검증된 기술력을 지닌 왁서가 있는지, 환경이 청결한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왁싱은 모근에서 털을 제거하는 행위입니다. 이때 모근이 손상되고 표피는 자극을 받아 예민해지는데 위생적이지 못한 도구를 사용하면 모낭염과 같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어요. 또한 저가의 제품이나 기술력이 받쳐주지 못할 경우, 왁싱 시술 후 제품으로 인한 화상이나 인그로운 헤어 등 다양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후기들과 블로그, 그리고 혐오와 근사함 그 중간쯤에 있는 왁싱 전후 사진을 뒤져본 후 조건들에 부합하는 왁싱숍을 방문했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는 올 누드 왁싱을 추천한다는 소리에 현혹돼 거침없이 올 누드를 선택했다. 사근사근하게 맞이하는 남성 왁서를 따라 들어간 개별 룸은 난생 처음 보는 것들로 어색함 그 자체였다. 샤워젤이 아닌 여성청결제만 덩그러니 놓인 샤워실은 당혹스러웠고,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실키한 핑크색 가운도 생소했다. 심지어 옷을 다 벗고 가운을 입어야 하는지도, 상의는 입고 가운을 입어야 하는지도 망설여졌다. 결국 모두 탈의하고 가운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호출벨을 눌렀다. 왁서는 진정시키려는 듯 더 친절한 말투로 편하게 다리를 벌리고 누우면 된다며 시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털을 가위로 잘라내는 것이었다. 민감한 부위에 닿는 손길이 낯설었는지 조그마한 터치에도 움찔거리자 왁서는 다독이듯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다. 긴장하면 역시 말이 많아지는바 그 방은 왁싱이 끝날 때까지 남자 둘의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는 남자 고객들의 방문에 관한 것. 여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왔다가 오히려 자신이 브라질리언 왁싱 마니아가 됐다는 고객부터 여성 왁서에게 시술 받기를 원했다가 직원들의 회유로 남성 왁서에게 시술을 받았다는 한 남성 고객까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왁서는 이어 방문 전날 3명의 남성이 시술을 받았으며, 50~60대 남성의 방문도 심심치 않다고 밝혔다. 동지가 생긴 듯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모든 털을 왁싱하기 좋은 길이로 잘라내면, 따뜻한 왁스가 살갗에 떨어지고 모슬린 천으로 털이 뽑혀 나가는 생경한 고통이 시작된다. 왁싱을 받고 며칠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왁싱숍 중에는 침대 위에 인형을 준비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인형을 꼭 끌어안거나, 혹은 쥐어뜯으며 고통을 감내하라는 의미다. 아쉽게도 그 왁싱숍에는 인형이 없었다. 인형이나 하다못해 쿠션이라도 준비돼 있었다면, 기자의 손에는 무수한 손톱자국 상처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할 때 모든 부위가 아픈 것은 아니다. ‘악’ 소리를 지를 정도로 아픈 부위가 있고, 참을 만한 부위가 따로 있었다. 굉장히 아픈 부위를 왁싱할 때, 왁서가 유달리 말이 많아지는데 알고 보니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신경을 일부러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그 뒤로는 왁서가 말이 많아졌다 싶으면 ‘아픈 부위의 털을 뽑아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앞부분의 털을 어느 정도 왁싱하면 이제 뒷부분의 털을 뽑아낼 차례다. 엎드려 절하는 자세를 취할 줄 알았건만, 올바로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굽혀 올리고 손으로 무릎을 잡아 고정하는 자세를 취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치욕스러운 자세 때문인지, 아니면 항문의 감각이 다른 쪽보다 둔해서인지 모르지만 통증은 훨씬 덜했다.
왁스로 털이 대부분 뽑히긴 하지만, 기어이 살아남은 털들은 족집게로 하나씩 뽑혀 나갔다. 여기서 왁서라는 직업이 참 고된 직업임을, 브라질리언 왁싱 가격이 결코 비싼 것이 아님을 느꼈다. 정성스럽게 털을 하나씩 뽑아내면,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진정하고 보습 효과를 줄 수 있는 팩을 잠시 올려놓는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끝난 것이다. 팩을 하는 동안 왁싱 후 관리 방법에 대한 자료를 읽어보라고 주는데, 사실 헐벗고 누워 있는 상태에서 글귀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나중에 관련 정보들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왁서는 당일 성관계와 음주 및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은 피해야 하며, 최대 5일까지는 사우나나 수영장, 태닝 등 피부에 해를 가할 수 있는 행위들을 자제하라고 당부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며 방을 떠났다.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한, 털이 말끔하게 없어진 그곳은 참으로 낯설었다. 동시에 약간의 쾌감도 느껴졌다. 마치 10대 때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차디찬 에어컨 바람이 그곳으로 들어올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브라질리언 왁싱 전도사가 된 마냥 지인들의 물밀듯이 밀려오는 후기 요청에 ‘꼭 받아라’, ‘신세계다’, ‘후회하지 않을 거다’라는 교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애프터케어
시술 당일에는 가볍게 물로 샤워한 후 숍에서 구입한 인그로운 헤어스프레이로 관리했다. 인그로운 헤어는 털이 각질층을 뚫고 나오지 못해 안으로 자라는 것을 뜻한다.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세심하게 마사지한 후 10분 정도 건조한 뒤, 보습 및 진정 효과가 뛰어난 알로에 젤을 발라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다독였다. 시술 다음 날은 속옷이 직접적으로 달라붙는 느낌과 습기가 피부에 바로 닿는 느낌이 어색했지만, 곧 수일 내에 적응했다. 한동안은 통풍을 위해 달라붙는 옷이나 청바지는 피했고 다리를 꼬고 앉는 등 자극을 가할 수 있는 행동들은 자제했다. 피부가 약한 편이기 때문에 발진처럼 보이는 붉은 기운은 일주일 정도 지나 수그러들었고 혹여나 인그로운 헤어가 생길까 봐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스프레이와 알로에 젤을 사용했다.
단언컨대 브라질리언 왁싱의 핵심은 애프터케어다. 아무리 숙련된 왁서에게 시술을 받았다고 한들,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브라질리언 왁싱의 만족을 온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인그로운 헤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모낭염의 원인이 된다”며 “각질을 연화하는 인그로운 헤어 전용 제품을 사용하고, 주 2~3회 정도 스크럽을 통해 묵은 각질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한다. 또한 유분보다는 수분 함량이 높은 보습제를 발라야 부드러운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왁싱 5일 후부터 털이 샤프심처럼 눈에 띄게 올라왔지만 이전보다 가늘게 나기 때문에 생각보다 따가움이나 불편함은 없었다. 왁싱을 받을수록 털은 더 가늘게 자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느낀 브라질리언 왁싱의 가장 큰 장점은 청결함이다. 그동안 털에 가려졌던, 은밀한 부위의 피부 상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용변 후 깔끔한 뒤처리가 가능했다. 다리를 자주 꼬고 앉는 버릇 때문에 여름에는 사타구니에 땀띠가 생기곤 했는데 그런 현상도 많이 개선됐다. 또한 화장실이나 방에 지저분하게 떨어진 털을 마주할 일이 없어 무엇보다 좋았다. 공중목욕탕이나 피트니스센터를 갈 때 약간의 민망함만 감수할 수 있다면 브라질리언 왁싱은 추천하고 싶은, 매혹적인 일탈 행위이자 미용 시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4주 정도 지나 기로에 선다고 한다. 다시 왁싱숍을 방문할 것인가. 아니면 털을 기를 것인가. 역시 그 기로에 섰지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재방문을 선택할 것이다. 장 대표는 실제로 남성과 여성을 막론하고 재방문율은 모두 높은 편이라고 설명하며 조언을 덧붙였다.
“다시 브라질리언 왁싱을 고려할 경우, 한 달에 한 번 주기로 방문할 것을 추천합니다. 왁싱 시 털뿐만 아니라 묵은 각질과 피지 또한 함께 제거되기 때문에 각질 생성 주기도 생각해야 해요. 보통 28일이 걸리는데, 그 이전에 왁싱 시술을 자주 받게 되면 피부가 예민해지는 원인이 됩니다.”
사진 각 사 제공 | 일러스트 박지애
도움말 장정윤 무무왁싱 스투디오 대표
참고 도서 <라이프 트렌드 2018>(김용섭 지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