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창조경영, 녹색경영, 샐러리맨의 신화. 이들 몇 개의 단어만으로 이승한 N&P그룹 회장의 발자취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국내 유통사(史)에 전무후무한 족적을 뒤로 하고 이제는 차세대 경영리더를 양성하는 데 전념하고 있는 이 회장을 직접 만났다.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70대에 스타트업을 한다는 게 좀 무모해 보이나요?”(웃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어느 외진 골목에서 만난 이승한 N&P그룹 회장은 70대 초반(1946년생)의 나이대에도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지난 1970년 공채(11기)로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은 뒤 삼성물산 사장을 거쳐 홈플러스의 최고경영자(CEO)로만 무려 17년을 지낸 유통업계 최장수 CEO다. 당시 매출 하위권이었던 홈플러스 삼성테스코를 유통업계 톱 브랜드로 키워내면서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지난 2014년 홈플러스 회장 퇴임 이후에는 기업경영 멘토링 사업을 영위하는 N&P(Next & Partners)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N&P그룹은 경영 연구를 전담하는 EoM경영연구원과 가족 멘토링 사업을 맡는 UFCi연합가족상담연구소,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오픈한 북쌔즈(Booksays)·북앤빈(Book&Bean)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이들 회사는 이 회장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이 후퇴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며 차세대 경영리더 교육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이번 북쌔즈·북앤빈 사업 추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경영연구 및 경영리더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이런 목적에서 출범시킨 법인이 N&P죠. 그런데 막상 관련 사업을 진행하려다 보니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지역사회에 공헌도 할 수 있으면서 경영리더 교육에 부합하는 사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복합문화공간 ‘북쌔즈’입니다. 충분히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단순한 ‘동네 책방’ 형태를 고민하기도 했는데, 어떤 사업이든 지속 가능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허구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게 사회공헌 사업이라도 일정 수준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죠.”
그렇다면 북쌔즈·북앤빈 운영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북쌔즈는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뒷받침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체험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고객이 직접 정보를 찾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게 기존 패러다임이었다면 북쌔즈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공연장을 가져오는 형태죠. 유럽 주요국에서는 지역별로 그런 형태의 공연장이 많지만 국내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북쌔즈가 들어선 이곳 역시 인근 직장인만 4만여 명에 달하지만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죠. 인근 직장인들을 위해 클래식 공연 등 작은 음악회도 개최할 예정인데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음악 토크쇼 형태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북쌔즈와 같은 형태의 장소가 전국적으로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회사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할 생각입니다.”
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서구 유럽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가까운 중국인과 비교해도 3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정보통신의 발달이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사실 인터넷 정보는 탐색, 관찰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창의력, 사고력을 키워주지는 않죠.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오히려 독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인간이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집단적 사고이기 때문이죠.”
기존 대형 서점과 다른 북쌔즈 모델만의 강점이 있다면.
“사실 기존 대형 서점도 음반, 문구, 카페 등의 사업과 연계해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서적 판매 외에 카페나 문구 등은 단순 임대사업일 뿐이죠. 책만 팔아서는 서점 운영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서적 판매 수익보다 임대료 수입이 낫다는 얘기까지 나오죠. 북쌔즈는 직장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게 주된 목표입니다. 문화예술 활동에 책은 하나의 섹터에 불과한 거죠. 콘서트홀에나 있을 법한 대형 음향시설을 갖춘 것도 일반 서점과는 다른 점으로 그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다양한 행사를 원활히 진행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커뮤니티가 필요할 것 같은데 마케팅 계획은 있나요.
“물론 커뮤니티는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초반에 여러 홍보행사를 하게 되면 당장은 회원 모집이 수월하겠죠. 하지만 소위 ‘뜨내기’ 회원이 많아지면 사업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오픈 초기인 만큼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은 차근차근 채워 나갈 예정입니다. 정말 괜찮은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커뮤니티는 자연스레 형성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습니다. 북쌔즈의 오픈 장소를 번화가가 아닌 골목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문화는 골목에서 피어난다’는 말이 있죠. ‘골목 문화’야말로 북쌔즈의 지향점입니다.”
과거 삼성물산과 홈플러스 회장을 지낸 뒤에도 UNGC(UN Global Compact)와 숙명여대 이사장 등 산학을 오가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에너지의 원천이 궁금하네요.
“70대 나이에 스타트업을 한다는 게 무모해 보일 수도 있겠죠. 과거 삼성물산, 홈플러스 재직 시절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스타트업 대표로서 소위 ‘알바’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자재 나르는 일을 하다 보면 저러다 다치지나 않을까 직원들이 오히려 불안해하죠. (웃음) 일부에서는 대기업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품위에 맞느냐는 얘기도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원들과 일을 하면서 예전보다 오히려 에너지가 넘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북쌔즈에 더욱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되고 제 나름의 혼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일할 수 있는 거죠. 삼성물산 시절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CEO까지 올랐던 경험이 이런 인식의 밑바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경영을 예술처럼’이라는 문구가 경영철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은데.
“경영자 시절에 경영건축학개론을 고안해낸 적이 있습니다. 기업(企業)을 한자로 풀어내면 ‘사람(人)이 머물러(止) 일(業)을 행하다’로 풀이할 수 있겠죠. 결국 기업도 사람이 중심인데 각자가 예술가처럼 열정과 에너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는 의미로 고안한 경영철학이었습니다. 기업 경영도 예술처럼 완벽한 결과물은 없지만 예술가의 혼을 담아내듯 경영을 해야 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 아닐까 싶네요. 경영과 예술의 차이점이라면 경영은 과학적 영역이 결합돼야 하는데, 그래서 아티언스(art+science)라는 개념도 생각해봤죠.(웃음)”
끝으로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와 맞물려 기업가 정신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선배 경영자로서 조언을 한다면.
“다소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기업가 정신의 ‘상실시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삼성그룹의 경우 고(故) 이병철 전 회장 시절에는 기업가 정신이 대단했죠.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이 특별한 게 아닙니다. 리스크 테이킹, 즉 재무적 위험 등을 무릅쓰고 과감한 투자를 하는 거죠. 과거 1983년에 이 전 회장이 반도체 사업 추진을 발표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당시 국책연구기관까지 반대했었죠. ‘일본도 위험하다고 나서지 않는데 우리가 할 수 있겠냐’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반도체에 대해 기간(期間)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 반도체가 우리 경제의 기간산업(基幹産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죠. 이후 국내외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하고 불량률까지 획기적으로 잡아내면서 지금의 반도체산업의 기틀을 잡았습니다다. 만약 이 전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지금의 ‘반도체·통신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되는 지금이야말로 그런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죠. 그런데 오히려 정치권과 정부는 적폐청산을 내세워 기업가들의 의욕을 꺾고 있습니다. 마치 기업가는 모두 범법자인냥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 기업가 정신이 싹틀 수 없습니다. 기업가들이 존경받는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업가 정신 함양’이 정부의 새로운 국정과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 오너 일가의 잇단 갑질 논란 등 기업가들 역시 부정적 여론을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지 않나요. 기업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렇습니다. 과거의 창업자 세대들은 소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의가 넘쳤죠. 그런데 지금의 후계자들은 타성에 빠져서 리스크가 동반되는 사업에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창업자 세대가 물려준 유산을 지키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는 거죠. 제가 N&P를 통해 경영연구 및 경영리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였죠. 정부 역시 기업들의 도전 의욕을 꺾는 다양한 규제를 완화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 탓도 있습니다. 과거 MB 정부 시절 한국 경제를 ‘겉과 속이 다른 수박’에 빗댄 적이 있었는데 이러다 ‘씨 없는 수박’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 사진 이승재 기자] “70대에 스타트업을 한다는 게 좀 무모해 보이나요?”(웃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어느 외진 골목에서 만난 이승한 N&P그룹 회장은 70대 초반(1946년생)의 나이대에도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지난 1970년 공채(11기)로 삼성그룹과 인연을 맺은 뒤 삼성물산 사장을 거쳐 홈플러스의 최고경영자(CEO)로만 무려 17년을 지낸 유통업계 최장수 CEO다. 당시 매출 하위권이었던 홈플러스 삼성테스코를 유통업계 톱 브랜드로 키워내면서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라는 수식어도 따라붙었다.
지난 2014년 홈플러스 회장 퇴임 이후에는 기업경영 멘토링 사업을 영위하는 N&P(Next & Partners)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N&P그룹은 경영 연구를 전담하는 EoM경영연구원과 가족 멘토링 사업을 맡는 UFCi연합가족상담연구소,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오픈한 북쌔즈(Booksays)·북앤빈(Book&Bean)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이들 회사는 이 회장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기업가 정신이 후퇴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며 차세대 경영리더 교육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회장과의 일문일답.
이번 북쌔즈·북앤빈 사업 추진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경영연구 및 경영리더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이런 목적에서 출범시킨 법인이 N&P죠. 그런데 막상 관련 사업을 진행하려다 보니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지역사회에 공헌도 할 수 있으면서 경영리더 교육에 부합하는 사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복합문화공간 ‘북쌔즈’입니다. 충분히 상호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단순한 ‘동네 책방’ 형태를 고민하기도 했는데, 어떤 사업이든 지속 가능성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허구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게 사회공헌 사업이라도 일정 수준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죠.”
그렇다면 북쌔즈·북앤빈 운영의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북쌔즈는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뒷받침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체험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고객이 직접 정보를 찾고 공연장을 찾아가는 게 기존 패러다임이었다면 북쌔즈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공연장을 가져오는 형태죠. 유럽 주요국에서는 지역별로 그런 형태의 공연장이 많지만 국내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북쌔즈가 들어선 이곳 역시 인근 직장인만 4만여 명에 달하지만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죠. 인근 직장인들을 위해 클래식 공연 등 작은 음악회도 개최할 예정인데 단순한 음악회가 아닌 음악 토크쇼 형태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북쌔즈와 같은 형태의 장소가 전국적으로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회사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할 생각입니다.”
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서구 유럽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가까운 중국인과 비교해도 3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정보통신의 발달이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사실 인터넷 정보는 탐색, 관찰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창의력, 사고력을 키워주지는 않죠.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오히려 독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인간이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AI)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집단적 사고이기 때문이죠.”
기존 대형 서점과 다른 북쌔즈 모델만의 강점이 있다면.
“사실 기존 대형 서점도 음반, 문구, 카페 등의 사업과 연계해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서적 판매 외에 카페나 문구 등은 단순 임대사업일 뿐이죠. 책만 팔아서는 서점 운영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서적 판매 수익보다 임대료 수입이 낫다는 얘기까지 나오죠. 북쌔즈는 직장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게 주된 목표입니다. 문화예술 활동에 책은 하나의 섹터에 불과한 거죠. 콘서트홀에나 있을 법한 대형 음향시설을 갖춘 것도 일반 서점과는 다른 점으로 그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다양한 행사를 원활히 진행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커뮤니티가 필요할 것 같은데 마케팅 계획은 있나요.
“물론 커뮤니티는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초반에 여러 홍보행사를 하게 되면 당장은 회원 모집이 수월하겠죠. 하지만 소위 ‘뜨내기’ 회원이 많아지면 사업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오픈 초기인 만큼 고객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은 차근차근 채워 나갈 예정입니다. 정말 괜찮은 프로그램이 많아지면 커뮤니티는 자연스레 형성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습니다. 북쌔즈의 오픈 장소를 번화가가 아닌 골목을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문화는 골목에서 피어난다’는 말이 있죠. ‘골목 문화’야말로 북쌔즈의 지향점입니다.”
과거 삼성물산과 홈플러스 회장을 지낸 뒤에도 UNGC(UN Global Compact)와 숙명여대 이사장 등 산학을 오가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에너지의 원천이 궁금하네요.
“70대 나이에 스타트업을 한다는 게 무모해 보일 수도 있겠죠. 과거 삼성물산, 홈플러스 재직 시절을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스타트업 대표로서 소위 ‘알바’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자재 나르는 일을 하다 보면 저러다 다치지나 않을까 직원들이 오히려 불안해하죠. (웃음) 일부에서는 대기업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품위에 맞느냐는 얘기도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원들과 일을 하면서 예전보다 오히려 에너지가 넘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북쌔즈에 더욱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되고 제 나름의 혼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일할 수 있는 거죠. 삼성물산 시절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CEO까지 올랐던 경험이 이런 인식의 밑바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경영을 예술처럼’이라는 문구가 경영철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은데.
“경영자 시절에 경영건축학개론을 고안해낸 적이 있습니다. 기업(企業)을 한자로 풀어내면 ‘사람(人)이 머물러(止) 일(業)을 행하다’로 풀이할 수 있겠죠. 결국 기업도 사람이 중심인데 각자가 예술가처럼 열정과 에너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는 의미로 고안한 경영철학이었습니다. 기업 경영도 예술처럼 완벽한 결과물은 없지만 예술가의 혼을 담아내듯 경영을 해야 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 아닐까 싶네요. 경영과 예술의 차이점이라면 경영은 과학적 영역이 결합돼야 하는데, 그래서 아티언스(art+science)라는 개념도 생각해봤죠.(웃음)”
끝으로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와 맞물려 기업가 정신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선배 경영자로서 조언을 한다면.
“다소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기업가 정신의 ‘상실시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삼성그룹의 경우 고(故) 이병철 전 회장 시절에는 기업가 정신이 대단했죠. 기업가 정신이라는 것이 특별한 게 아닙니다. 리스크 테이킹, 즉 재무적 위험 등을 무릅쓰고 과감한 투자를 하는 거죠. 과거 1983년에 이 전 회장이 반도체 사업 추진을 발표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당시 국책연구기관까지 반대했었죠. ‘일본도 위험하다고 나서지 않는데 우리가 할 수 있겠냐’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반도체에 대해 기간(期間)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 반도체가 우리 경제의 기간산업(基幹産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죠. 이후 국내외 기술자들을 대거 영입하고 불량률까지 획기적으로 잡아내면서 지금의 반도체산업의 기틀을 잡았습니다다. 만약 이 전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지금의 ‘반도체·통신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되는 지금이야말로 그런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죠. 그런데 오히려 정치권과 정부는 적폐청산을 내세워 기업가들의 의욕을 꺾고 있습니다. 마치 기업가는 모두 범법자인냥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절대 기업가 정신이 싹틀 수 없습니다. 기업가들이 존경받는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업가 정신 함양’이 정부의 새로운 국정과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기업 오너 일가의 잇단 갑질 논란 등 기업가들 역시 부정적 여론을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지 않나요. 기업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렇습니다. 과거의 창업자 세대들은 소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의가 넘쳤죠. 그런데 지금의 후계자들은 타성에 빠져서 리스크가 동반되는 사업에는 전혀 투자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창업자 세대가 물려준 유산을 지키는 데만 초점을 두고 있는 거죠. 제가 N&P를 통해 경영연구 및 경영리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기업가 정신을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였죠. 정부 역시 기업들의 도전 의욕을 꺾는 다양한 규제를 완화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 탓도 있습니다. 과거 MB 정부 시절 한국 경제를 ‘겉과 속이 다른 수박’에 빗댄 적이 있었는데 이러다 ‘씨 없는 수박’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