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면 연금은 어떻게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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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

황혼이혼이 해마다 늘고 있다. 혼인 기간이 긴 만큼 부부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이혼 과정에서 자연스레 재산분할을 두고 갈등이 불거지기 쉽다. 이때 이미 형성된 재산뿐만 아니라 미래에 받을 연금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것도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황혼이혼이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통상 20년 이상 혼인관계를 유지한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두고 황혼이혼이라고 한다. 요즘 들어 ‘졸혼(卒婚)’이나 ‘휴혼(休婚)’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황혼이혼이라는 표현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차이가 난다. 졸혼은 ‘결혼에서 졸업한다’는 뜻으로, 부부가 혼인관계는 유지하면서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결혼을 쉬어간다’는 뜻을 가진 휴혼 역시 혼인관계는 유지한 채 6개월이나 1년 정도 일정한 기간을 정해 두고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것을 말한다. 졸혼과 휴혼이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인 데 반해 황혼이혼은 법적으로도 혼인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이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
우리나라에 황혼이혼이 처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1998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칠순을 맞은 이시형 할머니는 아흔인 남편을 상대로 낸 재산분할 및 위자료청구 이혼소송을 냈다. 가부장적인 남편이 결혼생활 내내 할머니의 경제권을 박탈한 데다, 급기야 할머니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오랜 결혼생활과 노령이라는 점을 이유로 할머니의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할머니는 “평생 억눌려 살아온 여성 노인들이 여생이나마 남편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 소망을 거부하는 판결은 여성 노인들의 인간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며 “내일 죽더라도 오늘 이혼하고 싶다”고 대법원에 항소했고, 결국 남편에게 재산의 3분의 1과 위자료 5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물꼬를 튼 황혼이혼은 이후 해마다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 10만6000건 가운데 2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3만3100건으로 31.2%를 차지했다. 혼인 기간이 3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도 1만1600건으로 전체의 10.9%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 황혼이혼과 연금 분할 이슈는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황혼이혼이라는 말은 2007년 무렵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2007년은 베이비붐세대라 할 수 있는 일본의 ‘단카이(團塊)세대(1947~ 1949년생)’가 본격적으로 정년(60세)을 맞아 은퇴하기 시작한 때다.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끌어 왔던 단카이세대의 가정은 대부분 샐러리맨 남편과 전업주부 아내로 이뤄져 있었다. 따라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후생연금에서 여성들이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 당시 퇴직한 남편은 이혼 뒤 후생연금을 독차지해 월평균 20만 엔을 받은 반면, 아내는 기초연금 5만~6만 엔밖에 받지 못했다. 이혼하면 제대로 된 노후 대책이 없는 아내들은 불만이 있더라도 참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한 일본 정부는 여성들의 노후 보장을 위해 2007년 4월에 ‘후생연금 분할제도’를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부부가 이혼할 경우 남편이 후생연금을 100% 수령했지만, 이후부터는 후생연금을 분할해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2008년 3월까지는 부부가 협의에 의해 연금액을 분할 수 있게 했고, 2008년 4월 이후에는 강제적으로 부부가 50%씩 분할수령 하도록 했다. 그러자 이혼을 생각하고 있던 전업주부 중 상당수가 2008년 4월 이후로 이혼을 미루는 현상이 일어났다. 은퇴를 앞둔 가정의 이혼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면서 이때부터 황혼이혼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 이혼하면 국민연금도 나눠 받는다

이혼한 부부가 연금을 나눠 갖는 ‘분할연금’제도가 국내 국민연금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88년이다. 가사와 육아 때문에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이혼한 여성의 노후 보장을 위해서다. 제도 도입 초기만 하더라도 분할연금 신청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고령화가 진전되고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04년 연말만 하더라도 342명에 불과했던 분할연금 수령자가 2017년 연말에는 2만5302명까지 늘어났다. 특히 분할연금 수령자 중 여성이 90%에 육박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분할연금을 신청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할까. 분할연금이란 이혼한 자가 과거 배우자였던 자의 ‘노령연금’ 중에서 혼인 기간에 형성된 연금액을 나누어 받는 제도다. 따라서 분할연금에 대해 살펴보려면 노령연금 수급 자격부터 알아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0년 이상 되는 사람은 60세 이후부터 사망할 때까지 ‘노령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노령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출생연도에 따라 다른데, 1952년 이전 출생자는 60세, 1953~1956년생은 61세, 1957~1960년생은 62세, 1961~1964년생은 63세, 1965~1968년생은 64세,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 노령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분할연금 신청 자격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이혼한 상태여야 한다. 그리고 이혼한 배우자의 노령연금을 나눠달라고 신청하려면 혼인 기간 중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기간이 5년 이상 돼야 한다. 이혼한 배우자가 노령연금의 수급권을 취득해야 하고, 본인도 노령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을 갖추었으면 5년 이내에 분할연금을 청구할 수 있다. 5년이 지나면 청구권이 소멸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혼을 하고 한참이 지난 다음 이 같은 조건을 일일이 따지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칫하다가는 청구 기간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분할연금 선청구제도다. 2016년 12월 30일부터는 이혼한 배우자와 혼인 기간 중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5년 이상인 경우 이혼일로부터 3년 이내에 분할연금을 미리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 별거나 가출 기간은 분할대상에 제외

분할연금은 원칙적으로 혼인 기간 중 가입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을 균분해 수령한다. 예를 들어 이혼한 배우자가 매달 노령연금으로 150만 원을 받고 있던 중에 본인이 노령연금 수급연령에 도달해 분할연금을 청구했다고 치자. 이혼한 배우자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30년이고, 이 중 혼인 기간과 겹치는 기간이 20년이다. 이 경우 분할대상이 되는 연금은 150만 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00만 원이고, 별다른 사유가 없으면 이 중 절반에 해당하는 50만 원을 분할해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을 무조건 반반씩 나눠 수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12월 30일에 분할연금 수급권을 취득한 사람부터는 당사자 간 협의가 있거나 법원의 판결이 있으면 분할 비율을 별도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혼인 기간을 어떻게 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법률상 혼인 기간을 그대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실제로 같이 살지 않은 기간은 분할대상 기간에서 빼야 할까.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2016년 12월 30일에 별거나 가출 등으로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던 기간을 일률적으로 혼인 기간에 넣도록 한 ‘국민연금법’ 규정을 ‘부부 협력으로 형성한 공동재산 분배’라는 분할연금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정부는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이혼한 부부가 노령연금 나눌 때 같이 살지 않은 기간은 혼인 기간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실종 기간과 거주불명으로 등록된 기간은 분할연금 산정에서 제외된다. 또한 이혼 당사자 간에 따로 살았다고 합의한 기간이나 법원재판 등으로 혼인관계가 없었다고 인정되는 기간도 제외된다.

졸혼이나 휴혼 기간을 거친 다음 황혼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분할연금을 신청할 때 졸혼이나 휴혼 기간을 분할대상 기간에 포함하느냐를 두고 다툼이 있을 수 있다. 이혼한 부부간에 합의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재판까지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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