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출판 전문 기업 ‘미래엔’이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장수기업’에 선정됐다. 명문장수기업은 바람직한 성장 과정은 물론 법률 준수, 조세 납부, 사회적 기여, 대내외 평판 등 여러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에 한해 정부가 인증해주는 제도다. 선대 회장의 창립 정신인 ‘교육입국(敎育立國)’ 실현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김영진 대표를 직접 만나봤다.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미래엔은 대한민국 교육·출판사의 산증인이다. 옛 대한교과서 시절인 1948년 국내 최초로 교과서를 발행했고, 1951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교과서를 발행하며 교육 기업으로서 소명을 다했다. ‘최고의 교과서가 미래의 인재를 키운다’는 김기오 선생(창업자)의 굳은 신념이 일궈낸 역사다.
이후 1955년에 창간한 <현대문학>은 한국의 대표 문인들의 등용문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2003년에는 교과서 박물관을 개관해 일제강점기 이후 교과서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미래엔은 2008년 변경된 사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과거의 영광과 전통에만 안주하지는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보통신기술(ICT)을 토대로 한 스마트 교육에도 앞장서고 있고, 교육·출판 사업을 넘어 다양한 웹 콘텐츠 개발 및 유통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여기에 통일 한반도 시대를 대비한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가칭)’ 개발에도 일찍부터 착수하며 초등교육 산파(産婆)로서 책임도 다하고 있다. 다음은 김영진 미래엔 대표와의 일문일답.
대한민국 대표 ‘명문장수기업’에 선정됐는데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감 부탁드립니다.
“우선 미래엔이 걸어온 70년 역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창업주부터 4대째 이어져 온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소명과 긴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미래엔 직원들의 긍지를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감개무량합니다. 선대 어르신들은 물론 주주들, 그리고 미래엔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기업 경영에 임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엔’에 대해 교육 및 출판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에너지 사업은 물론 레저, 투자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요.
“미래엔이 에너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82년 전북도시가스 설립부터인데, 전주를 사업 지역으로 하는 도시가스 사업을 시작한 것은 사실 전략적 측면에서의 투자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석탄 중심의 에너지를 도시가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마땅한 투자 기업이 없는 상황이었고, 고(故) 김광수 명예회장께서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2003년 한보에너지를 인수해 서해도시가스(현 미래엔서해에너지)를 설립한 것은 에너지 사업을 그룹 성장의 또 다른 축으로 삼고 전략적으로 투자한 결과였죠. 제가 경영을 맡고 나서 지역난방 사업 인수, 오션스위츠 인수, 엔베스터 설립 등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미래엔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교육과 에너지는 미래엔 사업의 양대 축이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는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새로운 시도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각 계열사의 경우 전문경영인들이 핵심 사업을 좀 더 강화하면서 지속 성장을 위한 책임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합니다.”
올해로 취임 8년 차를 맞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룹을 이끌어 오면서 느꼈던 소회를 밝혀준다면. 또 자신만의 경영철학이 무엇인가요.
“창업주께서는 ‘교육만이 민족의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교육입국, 출판보국, 실업교육이라는 3대 창업이념 아래 1948년 ‘대한교과서주식회사’를 설립하셨죠. 이후 피난지 부산에서 전시 교과서를 발행하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 실업 교과서 발행에도 앞장서셨습니다. 교육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신념과 소명 의식 때문이었죠. 명예회장께서도 이런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셨는데, 평소에도 ‘교육은 인재를 만들고, 인재는 미래를 만든다’고 강조하곤 하셨죠. 창업주와 명예회장님의 가장 큰 가르침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사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장학재단을 만들고, 국내 첫 순수 문예지인 <현대문학>을 창간해 적자를 무릅쓰고서라도 결호 없이 발행해 온 것도 두 분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비영리 교과서 박물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두 분의 뜻을 잇기 위해 노력해 왔고, 미래엔의 가치 체계를 정의한 ‘Better Content, Better Life’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더 좋은 콘텐츠로 더 나은 삶에 복무한다는 뜻으로, 선대 어르신의 뜻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 경구는 단순히 과거부터 해 오던 것, 이를테면 교과서 사업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회사의 미래 설계에서도 주요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경영수업을 받아 온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기업설명회(IR)부터 전략, 재무, 기획은 물론 여러 계열사에서의 경험도 갖고 있는데 미래엔의 승계 문화로 봐도 무방한가요. 기억에 남는 경험담을 소개해준다면.
“사실 ‘언제부터’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선친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셨고, 그때부터 할아버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미래엔만의 승계 문화라기보다는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배울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열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겸손’이라는 덕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갖는 무게감, 그리고 각 사업의 핵심 성공 요인 등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도 직접 일러주셨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7년 말이 아닐까 하네요. 당시 국정교과서 발행권 획득 실패로 회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였었죠. 당시 교재(참고서) 사업을 맡고 있었는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참고서 라인업을 상당 부분 폐간해야 했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많았지만 제가 부딪쳤던 첫 시련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것들을 배운 시기이도 했죠.(웃음)”
최근 교육·출판업계 역시 변화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미래엔이 콘텐츠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상이 궁금합니다.
“그렇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 인재상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당연히 교육 목표도 바뀌어야 하고, 교실 수업이나 사교육 시장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여기에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는 입시제도와 취업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융·복합 기술 발전으로 업(業)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교수자와 학습자의 역할도 뒤섞이고, 심지어 전통적인 과목 구분도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미래엔이 콘텐츠와 플랫폼을 새로운 기술로 묶어내는 시도에 나선 것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의혁신 교육에 대응하고 자기주도학습 지향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학습자 개인별로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은 교육 기업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죠. 이를 위해 외부 문호를 개방하는 ‘열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뿐 아니라 외부 역량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도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관련 사업모델을 내부적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아동 시장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미래엔의 콘텐츠는 유아부터 성인까지 그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는 없지만 아동을 위한 콘텐츠 비중을 더욱 늘려 갈 계획입니다. 꾸준한 변화와 혁신만이 70년 기업을 넘어 100년 기업을 담보해주지 않을까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통일시대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미래엔은 수년 전부터 ‘통일 초등 국어교과서’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발 배경과 진행 상황에 대해 소개 바랍니다.
“저희는 일찍부터 남북한의 언어 이질화로 인한 문화 단절의 심각성에 공감했습니다. 남북한 초등 국어 교육용 공통 교과서 개발 계획을 세운 것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발행사로서의 사회적 책무 차원이었죠. 그동안 총 3개 연구 분야 16개 과제를 설정해 통일 교과서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했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 개발 기초 연구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학계 및 교육계와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였죠. 올해 9월 중에는 저학년용 교과서 개발 및 발행을 완료하고 발간 기념 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교과서는 국내 및 연변 한국국제학교 등 해외 초등학교의 현장 실험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이후 2020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추가 개발 및 보완 작업을 거쳐 학년별 학생과 교사가 활용할 수 있는 학습책, 활동책, 문법책 등의 유형별 교과서 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향후 조국 통일 시 남북한 학생을 비롯해 연변 조선족, 해외 교포, 새터민 대상으로 언어 적응 교육에도 활용될 예정입니다. 사실 남북 협력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력은 2000년경 시작됐습니다. 유네스코를 통해 교과서 인쇄기 및 인쇄용지에 대해 요청을 해 왔던 북한에 2004년 윤전기를 기증하고, 원활한 기계 가동을 위해 세종 공장 기술진이 직접 북한으로 파견돼 윤전기 조립과 시험 가동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미래엔은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롤모델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2의 미래엔을 꿈꾸는 기업들에 명문장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저보다 훌륭한 기업인들이 많고 지금의 성과가 선배 경영자들이 이뤄 온 공로라는 점에서 무척 조심스럽지만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두 가지만 강조하고 싶네요. 첫째는 핵심(core)을 명확히 세우는 것입니다. 가장 잘하는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보통 중소·중견기업은 사업 영역이 그렇게 넓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명확한 것 같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핵심 사업에서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 또는 기업의 미션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창업자 세대에 명확했던 것이 세대가 바뀌면서 불분명해지거나 다음 세대에게 낡고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시대 변화에 발맞춰 핵심 가치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핵심 가치는 기업의 존폐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하죠. 둘째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입니다.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미래엔의 역사가 평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1948년 회사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사운을 건 변화와 혁신이 이뤄져 왔습니다. 70년 역사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죠. 지난 1974년에 성남공장을 준공할 때도, 국정교과서주식회사를 인수할 때도, 2007~2008년 사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시기에서도 상황에 끌려가기보다 먼저 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만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의 영속성을 담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더 많은 명문장수기업들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명문장수기업은 내용적으로 ‘명문기업’과 ‘장수기업’이 포함돼 있는 말이죠. 사실 명문기업은 기업의 개별적 노력이 중요한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업의 핵심 가치를 명확히 정의하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장수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회사의 창업정신과 경영권이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수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명문장수기업 선정 제도도 보다 유의미해지기 위해서는 선정된 기업의 창업정신, 경영이념 등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하는 긴 호흡의 정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책당국과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좀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요.”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미래엔은 대한민국 교육·출판사의 산증인이다. 옛 대한교과서 시절인 1948년 국내 최초로 교과서를 발행했고, 1951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교과서를 발행하며 교육 기업으로서 소명을 다했다. ‘최고의 교과서가 미래의 인재를 키운다’는 김기오 선생(창업자)의 굳은 신념이 일궈낸 역사다.
이후 1955년에 창간한 <현대문학>은 한국의 대표 문인들의 등용문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2003년에는 교과서 박물관을 개관해 일제강점기 이후 교과서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미래엔은 2008년 변경된 사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과거의 영광과 전통에만 안주하지는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보통신기술(ICT)을 토대로 한 스마트 교육에도 앞장서고 있고, 교육·출판 사업을 넘어 다양한 웹 콘텐츠 개발 및 유통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여기에 통일 한반도 시대를 대비한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가칭)’ 개발에도 일찍부터 착수하며 초등교육 산파(産婆)로서 책임도 다하고 있다. 다음은 김영진 미래엔 대표와의 일문일답.
대한민국 대표 ‘명문장수기업’에 선정됐는데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소감 부탁드립니다.
“우선 미래엔이 걸어온 70년 역사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창업주부터 4대째 이어져 온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소명과 긴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미래엔 직원들의 긍지를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감개무량합니다. 선대 어르신들은 물론 주주들, 그리고 미래엔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기업 경영에 임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엔’에 대해 교육 및 출판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에너지 사업은 물론 레저, 투자 등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요.
“미래엔이 에너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82년 전북도시가스 설립부터인데, 전주를 사업 지역으로 하는 도시가스 사업을 시작한 것은 사실 전략적 측면에서의 투자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석탄 중심의 에너지를 도시가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마땅한 투자 기업이 없는 상황이었고, 고(故) 김광수 명예회장께서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2003년 한보에너지를 인수해 서해도시가스(현 미래엔서해에너지)를 설립한 것은 에너지 사업을 그룹 성장의 또 다른 축으로 삼고 전략적으로 투자한 결과였죠. 제가 경영을 맡고 나서 지역난방 사업 인수, 오션스위츠 인수, 엔베스터 설립 등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미래엔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교육과 에너지는 미래엔 사업의 양대 축이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는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새로운 시도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각 계열사의 경우 전문경영인들이 핵심 사업을 좀 더 강화하면서 지속 성장을 위한 책임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려 합니다.”
올해로 취임 8년 차를 맞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룹을 이끌어 오면서 느꼈던 소회를 밝혀준다면. 또 자신만의 경영철학이 무엇인가요.
“창업주께서는 ‘교육만이 민족의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교육입국, 출판보국, 실업교육이라는 3대 창업이념 아래 1948년 ‘대한교과서주식회사’를 설립하셨죠. 이후 피난지 부산에서 전시 교과서를 발행하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 실업 교과서 발행에도 앞장서셨습니다. 교육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신념과 소명 의식 때문이었죠. 명예회장께서도 이런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셨는데, 평소에도 ‘교육은 인재를 만들고, 인재는 미래를 만든다’고 강조하곤 하셨죠. 창업주와 명예회장님의 가장 큰 가르침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사업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장학재단을 만들고, 국내 첫 순수 문예지인 <현대문학>을 창간해 적자를 무릅쓰고서라도 결호 없이 발행해 온 것도 두 분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비영리 교과서 박물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두 분의 뜻을 잇기 위해 노력해 왔고, 미래엔의 가치 체계를 정의한 ‘Better Content, Better Life’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더 좋은 콘텐츠로 더 나은 삶에 복무한다는 뜻으로, 선대 어르신의 뜻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 경구는 단순히 과거부터 해 오던 것, 이를테면 교과서 사업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를 넘어 회사의 미래 설계에서도 주요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경영수업을 받아 온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기업설명회(IR)부터 전략, 재무, 기획은 물론 여러 계열사에서의 경험도 갖고 있는데 미래엔의 승계 문화로 봐도 무방한가요. 기억에 남는 경험담을 소개해준다면.
“사실 ‘언제부터’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선친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셨고, 그때부터 할아버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미래엔만의 승계 문화라기보다는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배울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열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겸손’이라는 덕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갖는 무게감, 그리고 각 사업의 핵심 성공 요인 등에 대한 다양한 노하우도 직접 일러주셨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7년 말이 아닐까 하네요. 당시 국정교과서 발행권 획득 실패로 회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였었죠. 당시 교재(참고서) 사업을 맡고 있었는데, 수익을 내지 못하는 참고서 라인업을 상당 부분 폐간해야 했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어려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많았지만 제가 부딪쳤던 첫 시련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것들을 배운 시기이도 했죠.(웃음)”
최근 교육·출판업계 역시 변화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미래엔이 콘텐츠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상이 궁금합니다.
“그렇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 인재상에서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당연히 교육 목표도 바뀌어야 하고, 교실 수업이나 사교육 시장도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여기에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는 입시제도와 취업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고, 융·복합 기술 발전으로 업(業)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교수자와 학습자의 역할도 뒤섞이고, 심지어 전통적인 과목 구분도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미래엔이 콘텐츠와 플랫폼을 새로운 기술로 묶어내는 시도에 나선 것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의혁신 교육에 대응하고 자기주도학습 지향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학습자 개인별로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은 교육 기업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죠. 이를 위해 외부 문호를 개방하는 ‘열린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뿐 아니라 외부 역량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도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관련 사업모델을 내부적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아동 시장에도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미래엔의 콘텐츠는 유아부터 성인까지 그 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는 없지만 아동을 위한 콘텐츠 비중을 더욱 늘려 갈 계획입니다. 꾸준한 변화와 혁신만이 70년 기업을 넘어 100년 기업을 담보해주지 않을까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통일시대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미래엔은 수년 전부터 ‘통일 초등 국어교과서’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개발 배경과 진행 상황에 대해 소개 바랍니다.
“저희는 일찍부터 남북한의 언어 이질화로 인한 문화 단절의 심각성에 공감했습니다. 남북한 초등 국어 교육용 공통 교과서 개발 계획을 세운 것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발행사로서의 사회적 책무 차원이었죠. 그동안 총 3개 연구 분야 16개 과제를 설정해 통일 교과서에 대한 기초연구를 진행했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 개발 기초 연구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 학계 및 교육계와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였죠. 올해 9월 중에는 저학년용 교과서 개발 및 발행을 완료하고 발간 기념 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교과서는 국내 및 연변 한국국제학교 등 해외 초등학교의 현장 실험에 활용될 예정입니다. 이후 2020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추가 개발 및 보완 작업을 거쳐 학년별 학생과 교사가 활용할 수 있는 학습책, 활동책, 문법책 등의 유형별 교과서 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향후 조국 통일 시 남북한 학생을 비롯해 연변 조선족, 해외 교포, 새터민 대상으로 언어 적응 교육에도 활용될 예정입니다. 사실 남북 협력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력은 2000년경 시작됐습니다. 유네스코를 통해 교과서 인쇄기 및 인쇄용지에 대해 요청을 해 왔던 북한에 2004년 윤전기를 기증하고, 원활한 기계 가동을 위해 세종 공장 기술진이 직접 북한으로 파견돼 윤전기 조립과 시험 가동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미래엔은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롤모델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2의 미래엔을 꿈꾸는 기업들에 명문장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저보다 훌륭한 기업인들이 많고 지금의 성과가 선배 경영자들이 이뤄 온 공로라는 점에서 무척 조심스럽지만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두 가지만 강조하고 싶네요. 첫째는 핵심(core)을 명확히 세우는 것입니다. 가장 잘하는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보통 중소·중견기업은 사업 영역이 그렇게 넓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오히려 명확한 것 같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핵심 사업에서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 또는 기업의 미션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창업자 세대에 명확했던 것이 세대가 바뀌면서 불분명해지거나 다음 세대에게 낡고 고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시대 변화에 발맞춰 핵심 가치를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핵심 가치는 기업의 존폐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하죠. 둘째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입니다.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미래엔의 역사가 평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1948년 회사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사운을 건 변화와 혁신이 이뤄져 왔습니다. 70년 역사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죠. 지난 1974년에 성남공장을 준공할 때도, 국정교과서주식회사를 인수할 때도, 2007~2008년 사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시기에서도 상황에 끌려가기보다 먼저 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만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의 영속성을 담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더 많은 명문장수기업들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명문장수기업은 내용적으로 ‘명문기업’과 ‘장수기업’이 포함돼 있는 말이죠. 사실 명문기업은 기업의 개별적 노력이 중요한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업의 핵심 가치를 명확히 정의하고 끊임없이 혁신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장수기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회사의 창업정신과 경영권이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수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명문장수기업 선정 제도도 보다 유의미해지기 위해서는 선정된 기업의 창업정신, 경영이념 등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할 수 있도록 하는 긴 호흡의 정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정책당국과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좀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