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마니아 정기범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관련 장비를 마치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디오 마니아 정기범(39) 분당연세보청기 원장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장비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음악과 사람들과의 교감을 더 사랑한다고 했다. 사진 이승재 기자나만의 공간을 갈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케렌시아(querencia) 현상이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일상에서 지친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이런 흐름에 따라 요즘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 전문 오디오 매장이나 청음 숍, 만화방, 수면 카페 등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 점에서 정기범 분당연세보청기 원장은 이른바 ‘케렌시아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있었다. 음악과 오디오 마니아인 그는 단순히 집에서 청음이나 영화감상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직무 공간에 자신만의 오디오 우주 공간을 구축했다.
일과 취미 활동이 동시에 가능한 공간에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인터뷰 내내 서글서글한 미소가 유독 돋보였던 정 원장의 남다른 음악 사랑과 하이파이(Hi-Fi) 오디오 장비 구매 노하우도 두루 엿들어봤다.
직업부터 취미까지 ‘소리’와 깊숙이 연결돼 있는데 특별히 소리에 예민한가요.
“네, 소리에 좀 예민한 편이긴 해요. 특히, 고주파 소리에 예민한 편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별로 불편하지 않은 소리도 저한테는 들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나타나요. 가령, 침실에 자려고 누웠는데 거실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신경이 쓰여서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아예 건전지를 빼고 자죠.”
좋은 소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소리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음악이겠죠. 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좋아했어요.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기도 했는데, 예전에는 그냥 일반 홈시어터 장비나 간단한 스피커를 통해서만 청음을 즐기다가 지난해 초부터 지금처럼 직무 공간에 하이파이 시스템을 갖췄어요. 어떻게 보면 행운인 것이 제 업종 특성상 하루 종일 손님이 방문하는 건 아니거든요. 제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비어 있는 시간마다 제 직무 공간에서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고 있어요.”
오디오 감상은 일종의 마니아 영역으로 느껴지는데 소위 ‘막귀’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오디오 감상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요.
“그럼요. 비단, 사람마다 소리의 변화를 감지하는 폭은 다 다르죠. 하지만 일단, 하이파이 음질을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다 ‘아, 정말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어요. 일반적인 스피커랑 분명 차이가 나거든요. 물론, 지금 당장 하이파이 오디오 장비를 하나 바꿔서 세밀한 소리의 변화를 알기는 쉽지 않아요. 꾸준히 음악을 들으면서 소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자신만의 소리 취향을 찾아가는 게 중요해요.”
장비 구매는 어떻게 하나요.
“예전 오디오 마니아들은 주로 전문 오디오숍을 많이 이용했다고 해요. 단골 숍을 통해 장비를 사고 새것이 오면 교체하고 하는 패턴이죠. 하지만 요즘은 소리샵 등 전문 오프라인 공간 외에도 인터넷 동호회나 개인 간 온라인 거래가 활발해서 자신이 관심 있는 장비가 있으면 직접 중고로 구입하는 추세예요. 그러다 보니 과거에 비해 요즘 오디오 마니아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장비를 바꾸는 경향이 있어요. 유통 경로가 자유로워진 만큼 다양한 가격에 중고 장비들을 교체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리를 찾는 거죠. 저도 1년 반 사이에 스피커랑 앰프를 각각 10개 이상씩 바꿨으니까요.”
동호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오디오 동호회는 그야말로 소통과 정보의 공간이죠. 사실 아직 국내에서는 오디오 마니아 인구가 굉장히 적어서 ‘마니아틱’한 취미 영역으로 남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동호회를 통해 만나는 분들과는 정말 교류할 것들이 많죠. 가령, 서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음향 장비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한 번씩 돌아가면서 각자의 집에 초대해 서로의 오디오 장비들을 즐겨보기도 해요. 친해지면 서로 장비를 빌려줄 때도 있고요. 갖고 싶은 오디오 장비들을 다 살 순 없으니 이렇게 동호회 분들과 장비를 나누면서 대리만족도 하고, 새로운 음을 경험해서 정말 좋죠. 그 과정에서 당연히 친분도 쌓이죠.”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네트워크 플레이어, 컨버터, 앰프, AV리시버, 스피커]
의 분신처럼 생각하나요.
“대체로 그런 편이죠. 이건 꼭 오디오만의 영역은 아닌 것 같아요. 취미 활동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관련 장비를 본인과 동일시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단, 사람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있어요. 어떤 분들은 정말 한 대에 억대 이상의 장비를 구입하세요. 장비의 질이나 가격이 높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지는 분들이 있는 반면, 그런 건 전혀 상관없고, 단지 자신이 듣기에 얼마나 좋으냐에 집중하는 분들도 많아요. 제 경우는 굳이 따지자면 반반 정도네요(웃음). 사실 저란 사람 자체는 도구나 장비에 대한 애착은 없는 편이거든요. 도구는 도구일 뿐인 거죠.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음악, 게임, 영화를 더 감동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디오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왜 사람들은 장비(취미)에 열광할까요.
“남자들은 대개 기계에 대한 로망이 있는 듯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것 외에는 별로 할 게 없어서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오디오 감상을 추천하고 싶어요. 일단 오디오는 굉장히 건전한 취미이자,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여럿이서도 할 수 있어요. 날씨나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즐길 수도 있죠. 음악이라는 것이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고, 보듬어주기도 하는데 매번 직접 공연을 볼 순 없잖아요. 최대한 그런 현장의 감동을 더 몰입해서 느끼고자 한다면 오디오 취미가 제격이죠.”
가족들과도 취미 활동을 공유하나요.
“물론이죠. 특히, 아이랑 영화 볼 때 좋아요. 사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궁금증이 많아요. 장면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말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극장에서는 만류하기 바쁘죠. 그래서 저는 정말 보고 싶은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보다는 블루레이 DVD를 추후에 구매해서 아이랑 와이프랑 같이 봐요. 최근 영화 <인터스텔라>를 같이 본 적이 있는데 역시나 딸이 끊임없이 질문거리를 쏟더라고요. 그러면 잠깐 장면을 멈추고 아이에게 장면 설명도 해주며 대화를 하죠. 이런 식으로 편안하게 영화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아이와 교감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현재 직무실 오디오 시스템 장비 금액은 어느 정도인가요.
“비용이 사실 오르락내리락해요. 그만큼 제가 자주 사고팔았거든요. 가장 돈을 많이 들였을 때는 장비로만 3000만 원 정도 들여놨는데 지금은 좀 줄였습니다.”
어떤 장비들을 구비했나요.
“오디오 시스템에서 중요한 게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뉘어요. 하나는 소스부인데, 쉽게 말해 음원을 어떻게 재생하는지를 관여하는 장치예요. 예전에는 LP나 CD플레이였다면, 요즘엔 스트리밍 음원도 많죠. 저는 LP 턴테이블과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레이어, 그리고 디지털 파일을 사람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날로그 파일로 바꿔주는 DAC(Digi-tal to Analog Conversion)를 소스부로 구입한 상태예요. 다음으로 소리를 증폭시켜 스피커로 보내는 앰프가 있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스피커죠. 이 세 가지가 가장 기본적인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이죠. 물론 케이블선도 필수고요.
가격은 천차만별이에요. 저는 앰프랑 스피커는 주로 중고로 사요.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전에 굉장히 좋은 제품들이 가격이 많이 떨어져서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죠.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스피커를 신형으로 살 경우 1200만 원 정도까지 하는데 중고가로는 300만~400만 원 선이죠. 그렇다고 중고품이 무조건 싼 것도 아니에요. 단종된 모델은 부르는 게 값일 때도 있죠. 다만, 저는 소스부에 디지털 개념이 들어가다 보니 최신품을 사용하는 편이에요. 디지털 기술은 계속 발전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오디오는 원장님에게 무엇인가요.
“음악, 게임, 만화, 책 몇 가지는 인생에 있어서 평생 동안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오디오는 음악에서 좀 더 나를 풍성하게 해주는, 활력을 주는 친구가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