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전(자개)은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의 예술작품이자, 옻칠 문화의 정점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고려나전 이외에도 백제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옻칠 기술과 나전의 예술성은 최고의 품격을 드러냈다.
이난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지구상에서 옻칠을 유용하게 사용한 생명체는 사람이 아니라 벌이라고 한다. 벌은 옻나무에서 스며 나오는 옻칠을 빨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점액과 섞어 벌집 밑동의 기초 재료로 사용했다. 단단한 기초공사 덕분에 벌은 수천 마리 이상의 알을 낳고도 점점 크게 벌집을 키우고 보강할 수 있었다. 이후 이것을 관찰한 사람들이 옻칠을 접착제나 항균제로 일상생활에 적용하게 됐다.옻나무는 아시아에서 주로 서식하고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스며 나오는 수액 즉, 옻칠은 상온에서 딱딱하게 돼 접착 및 도막 효과를 낸다.
옻칠의 주성분은 우루시올(urushiol) 속에 물이 포함된 구조(w/o, water in oil)다. 동아시아 옻칠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이 중 가장 좋은 성분으로 알려진 것이 우루시올로 한국, 중국, 일본의 옻칠이다. 둘째는 라콜(laccol)로 타이완과 베트남의 옻칠이다. 셋째는 티치올(thitsiol)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및 태국의 옻칠이다.
한국산 옻칠은 생옻칠에서 세계 최고의 품질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은 주요 성분인 옻산(urushiol)의 구성 비율이 커 효소의 활성이 아주 좋고 옻 도막이 건조되는 시간이 매우 짧고 경도도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옻나무는 활엽수로 전국에 분포하며 성장하면 2m에 달한다. 옻나무에서 채취된 옻은 유백색의 액체로 공기와 접촉되면서 점점 갈색으로 변하며 굳어진다.
1910년에 발행된 <조선의 물산(朝鮮의 物産)>에 의하면 한국에서 옻나무 재배가 성행된 지역으로 평안북도 태천(泰川), 강원도 원주, 경상남도 함양, 함경남도 신흥 등이 거명됐고 특히 북한 태천의 옻칠을 우수한 품질로 평가하고 육성할 필요를 지적했다. 고려 나전이 천년 이상의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태천과 같은 최고의 옻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옻칠의 예는 1만2600년경 일본 후쿠이켄 죠몽시대 도리하마패총(鳥浜貝塚)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석기시대에 유적에서 석촉(석제의 화살촉)과 화살대를 고정하기 위해 접착제로 옻칠을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옻칠의 예는 기원전 3세기경 충남 아산 남성리 석관묘 유적에서 청동기와 더불어 출토된 파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후 기원전 108년~서기 313년경의 평양 정백리 고분에서 출토된 흑칠의 칼집 등이 발견되고 있다. 앞으로 고고학 및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발굴 유적에서 출토된 옻칠 유물에 대해 많은 주목을 한다면 한민족이 옻칠을 사용한 최초의 시기는 좀 더 소급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옻칠 문화는 선사에서 고대까지 수천 년 이상 오랫동안 생활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다. 삼국시대 옻칠 공예품은 옻칠 바탕에 색칠로 문양을 그리는 기법이 주로 사용됐고, 이후 옻칠을 접착도료로써 사용해 금, 은, 나전, 호박(amber), 청옥, 대모(玳瑁) 등 여러 가지 화려한 보석 재료로 장식하는 기법으로 변화한다.
지금까지 잊혔던 백제의 뛰어난 옻칠 기술은 645년 명문이 있는 공주 공산성 출토 옻칠 갑옷 파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갑옷은 가죽은 다 썩어서 사라졌지만, 10여 겹 이상 바른 튼튼한 옻칠은 14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채를 발하고 있다.
옻칠 문화와 함께 한국의 나전은 1200년 전부터 현재까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나전은 전복과 소라류 등의 패각(貝殼)인 자개를 사용해 문양을 만든 후 그 위에 옻칠을 바른 것이다.
한국 나전은 동아시아 최고 조형 작품
한국의 나전은 통일신라시대(676~936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고려시대(918~1392년)에는 최고 수준의 기법에 이르게 됐다. 고려시대에는 나전이 정점을 이루었고 고도의 제작 기법으로 경함 및 향함 등이 정교하게 제작됐다.
조선 말기와 근대기에 외국 방문객이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우리 미술품이 바로 나전이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조형 문화로 평가받고 있는 고려나전경함은 미국, 영국, 네덜란드, 일본 등 주요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대부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근대기에 일본을 통해 서방으로 건너간 것들이다.
고려나전의 유례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중요문화재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모리가전래 ‘고려나전경함(高麗螺鈿經函)’이 있다. 세련된 도안과 입체적인 의장은 고려나전 중에서도 최고의 품격을 지니고 있고, 문양의 세부는 정세하면서 자연스런 생명감을 띠고 있다.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고려나전의 배경에는 양질의 옻칠과 나전 및 이러한 것을 튼튼하게 받쳐준 견고한 밑칠 공정을 토대로 두고 있다.
조선시대의 나전은 고려의 섬세한 당초문에서 간명한 당초문으로 변화하고, 회화적인 문양과 서민적인 민화풍의 문양이 나타난다. 나전 문양이 저변화되면서 우리 민족의 염원과 지조의 아름다움이 샘솟았고 참다운 조선의 맛을 보여주게 된다.
한국의 옻칠은 현재 자연환경에 가장 우수한 도료로써 세계적으로 우수성은 인정받고 있지만, 칠 생산은 중국산에 거의 의존되고 옻칠 정제 기술 역시 일본에 뒤지고 있다. 현재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는 친환경의 최고 도료로써 동양의 옻칠 연구에 주목하고 여러모로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최고의 옻칠 문화를 자랑했던 우리는 지금 옻칠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 품질의 옻칠 산지인 한국은 옻나무의 재배와 육성 및 정제 기술 등에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국의 고려 및 조선의 나전은 최고의 기술로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나전은 일제강점기에서 왜색으로 변형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의 근대기에 비롯된 일본식 나전 기술은 지나치게 도안적이며 기교적으로 많은 양의 상품을 양산하는 데 이용됐다. 결국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조선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작품인 나전을 일본 취향으로 상품화시키기 위해 주력했던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의 전통적으로 자연스러우며 생명감 넘쳤던 나전의 미와 모습이 사라지게 되고 현대 나전에서 국적 불명의 작품을 낳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나전의 전통 기술과 정신을 되찾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잊히고 사라진 일제강점기 이전 한국 고유의 나전의 전통을 되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적·과학적·학문적으로 개선시켜 현대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이 샘솟는 대표적 옻칠 문화와 예술로 가치를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전통의 옻칠 문화와 나전 기술을 되살리는 일은 그 자체로 세계적인 명성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난희 학예연구사는?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의 고려나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연구하기 위해 도쿄국립예술대 대학원 문화재보존수복(칠예) 전공 및 문화재학 석사·박사학위(2001년)를 취득했다. 일본 유학 중 도쿄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1995~1996년)을, 이후 도쿄국립예술대 칠예연구실에서 객원연구원(2009~2010년)을 지내고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동양미술부 객원연구원(2011년)을 역임했다. <正倉院의 칠공(漆工) 기법>, <암스테르담국립박물관(Rijksmuseum) 소장 고려나전경함의 기법과 제작 시기의 연구(Manufacture and Date of a Goryeo dynasty Sutra Box with Mother-of-pearl Inlaid Decoration at the Rijksmuseum, Amsterdam)>, <고려시대의 나전향상연구(A Goryeo Dynasty Incense Box with Mother of Pearl Inlay)> 외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