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성과 감성 사이, 그리고 이태곤

데뷔 13주년 맞은 배우 이태곤

[한경 머니 = 양정원·김수정 기자] 인터뷰 내내 가식도, 돌려 말하는 법도 없었다. 인생의 대부분도 본능에 충실했다고 한다. 하지만 만 13년 차 배우로서 그의 모습은 그저 직관과 감성만을 앞세우지 않는 듯했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인생을 배워 간다는 이태곤의 이야기를 머니 창간 13주년에 맞춰 엿들어봤다.


벌써 배우 데뷔 13주년인데 연기를 한다는 건 여전히 매력적인가요.
“배우를 시작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스물여덟 살쯤 한창 광고모델로 활동하면서 재미를 느끼던 찰나에 연기자 데뷔 기회가 왔거든요.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꼭 연기를 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은 안 했죠. 그랬던 것이 벌써 만 13년이 됐네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재밌지만, 정말 어려워요.”

어떤 면이 어려운가요.
“가령 이런 거죠. 수학공부를 하다가 새로운 공식을 알게 되면 ‘아, 이 부분만큼은 정복(완전히 이해)했다’ 하잖아요.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다양한 감정연기를 하나씩 배워 가면서 ‘이 연기는 이제 확실히 잘할 수 있겠다’ 싶어지죠.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더라고요. 같은 감정신이라도 새로운 캐릭터와 상황을 만나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싶거든요. 그래서 연기자는 끊임없이 연구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결과물을 접했을 때 쓰라림을 맛볼 수밖에 없거든요.”

실제로 결과물이 아쉬웠던 작품이 있었나.
“있었죠. 첫 사극 <연개소문>이요. 일단, 사극 대사에 적응하는 게 어렵기도 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했죠.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어린 마음에 반항심이 있던 것 같아요. 배우들 중에는 감독의 연출을 최대한 따라가는 연기자들이 있는 반면에 자아가 강해서 간혹 연출진과 부딪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후자에 가까운 편인데 당시 제가 생각하는 톤이나 연기가 감독님의 관점과 다르다 보니 스트레스가 됐어요.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저도 모르게 연기를 좀 놨다고 할까요. 지금 생각하면 ‘아,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럴 때일수록 더 치열하게 파고들 걸’ 싶어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에요.”

반대로 ‘인생 캐릭터’로 꼽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TV 드라마 <황금물고기>, <광개토대왕>을 꼽고 싶어요. 사실, <황금물고기>는 시작하기 전에 회사 분들이 조금 만류하기도 했어요. 바로 직전에 방영됐던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저조했기 때문에 후속작으로 부담이 적잖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이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역할이었어요. 마치 저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요. 작가, 감독과의 호흡도 좋았고요. 배우, 감독, 작가의 삼박자가 잘 맞는 작품들은 제 경험상 100% 성공하더라고요. 연기도 훨씬 수월하게 펼치게 되고요. 제 데뷔작인 <하늘이시여>의 대박도 그런 연유가 컸어요. 임성한 작가님이 스태프들에게 그러셨대요. ‘이태곤은 생각하고 있는 자기만의 구왕모(당시 배역) 캐릭터가 있을 테니 그걸 하도록 둬라. 오히려 주변에서 너무 간섭하거나 조언하면 쟨 어긋난다’고요. 작가님이 절 말 잘 파악해주신 덕에 연기하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호흡이 좋았던 상대배우가 있다면요.
“지금까지 함께 한 배우들 모두 다 편했어요. 한 명을 꼽자면 윤정희 씨가 생각나요. 그 친구는 실제 성격도 참 섬세하고 내성적인데 함께 했던 드라마 속 캐릭터에 딱 맞았죠. 그 덕에 저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윤정희 씨 연기가 진실해보이니) 진짜 챙겨주고 싶고, 정말 가엾게 보였어요. 눈물이 자연스럽게 났다니까요(웃음). 사실 예전엔 눈물 연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살면서 드라마 속 주인공이 겪을 법한 경험을 한 적도 없었고, 제 성격상 여자 때문에 운다는 건 더 이해가 되지 않았었죠. 그런데 이제는 연기를 계속 하고, 배우다 보니 ‘아, 여기서는 울만 하네’ 하고 점점 공감하게 돼요.”

데뷔 이후 항상 탄탄한 몸을 유지하는데 비결은 무엇인가요.
“저도 종종 살이 찌기도 하는데 억지로 다이어트를 해본 적은 없어요. 물론 작품에 들어갈 때는 5kg 정도 감량은 하지만 막 굶거나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지양하죠. 순간적으로 살을 뺄 수는 있지만 반복되면 노화가 촉진되거든요. 특히, 저처럼 40대에 접어들면 여자나 남자 모두 근육량이 줄어들기 시작해요. 20대처럼 똑같이 운동을 하면 근육이 다칠 수 있어요. 웨이트를 하실 때도 중량을 높이지 마시고, 횟수를 늘려야 좋아요. 그리고 음식은 가급적 다 드시되, 전날 좀 과식을 했다고 생각이 되면 반드시 아침에 유산소 운동을 2시간 정도 하시라고 권해드려요.”

예능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데, 재미를 느끼나요.
“예능도 재밌더라고요. 과거와 달리 요즘 예능은 리얼리티가 대세잖아요. 그 점이 저랑 잘 맞았어요. 저는 카메라가 켜져 있거나 꺼져 있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엔 제작진이 불안해하더라고요. 제가 그랬거든요. ‘연출진의 그날 주제와 하고 싶은 방향만 알려주시고, 해당 장소에 데려다주시면 그 이후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다’고요. 그 이후부터는 100% 제 모습을 보여드렸죠. 그러다 보니 곁에서 제작진들이 재밌어하면서 웃더라고요. 저도 그런 과정이 재밌어요. 아마 가식적으로 저를 숨겨야 했다면 못했을 거예요. 저는 아직도 갑자기 술 한 잔 마시고 싶으면 거리낌 없이 아무 포장마차나 들어가서 술도 마시고 그래요. 주변의 손님들이 알아봐주시고, 술도 권해주시면 마다하지 않고 감사하다고 받고요. 물론, 이런 제 모습에 저희 스태프 친구들은 불안해하기도 해요. ‘아, 왜 또 저래~’ 이런 식으로요(웃음). 순리대로 사는 게 제 삶의 방식이죠.”

강아지를 꽤 좋아하는 것 같은데 강아지들의 매력을 꼽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강아지들의 말똥말똥하고 순수한 눈동자가 정말 좋아요. 아이들이 그 눈으로 저를 바라보면서 제 말을 알아듣고, 교감할 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고요. 두 녀석 다 이제 11개월 된 비글인데요, 흔히 생각하는 비글과는 달라요. 아이들이 조용하고, 진중해요. 저희 어머님도 ‘쟤들 비글 정말 맞니’라고 하실 정도니까요. 기회가 되면 나중에 비글대회에도 한번 출전시켜볼까 생각 중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과 롤모델이 있다면요.
“하고 싶은 역은 정말 많죠. 가령, 의리 있고, 멋진 깡패 역할도 한번 해보고 싶고, 능청스러운 코믹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시트콤도 좋고요. 그런데 그런 역할들은 쉽게 안 들어와요. 배우 이태곤으로서 자리 잡은 이미지, 선입견이 있나 봐요. 좀 아쉬운 부분인데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배우는 알파치노요. 우연히 영화 <대부>를 보고서 그의 연기에 반해 20번 이상을 돌려봤죠. 어떻게 연기를 하면, 저렇게 별 표정도 안 짓고, 감정의 큰 변화 없이 기가 막히게 배역을 소화하는지. 더구나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이 아직도 새 배역에 들어가기 전마다 연기지도를 받는다는 게 존경스러웠어요. 국내 배우들 중에는 박근형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고 싶어요. 대사 톤이나 연기하는 스타일 모두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님이세요.”

몇 해 전 사고를 당했는데 그 사건은 이태곤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당황스러운 사건이었죠. 제 주변 사람들도 황당하다고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다만, 이런 생각은 늘 해요. 만약 동일한 사건이 제가 좀 더 어렸을 때 벌어졌다면 정말 큰일이 났을 거예요. 어린 시절 전 정말 다혈질에, 한번 화가 나면 좀처럼 참을 수 없던 사람이었어요. 오죽했으면 제가 처음 연예인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 만류했겠어요. 그런데 이 일을 하게 됐고, 좋아하게 되면서 매사 참는 연습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들이 쌓이면서 막상 이런 일을 당하니, (본래) 감정적이던 제가 신기하게도 이성적으로 처리하자는 판단이 앞서더라고요. 절대로 내가 이런 일로 불명예스럽게 은퇴할 수는 없다고 말이죠. 그래서 참았고, 그런 제 마음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는지 응원과 위로를 해주셨죠.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도 제 스스로 그때 그 순간을 그렇게 넘긴 것에 대해서는 대견하게 생각해요. 지금은 법의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뭐, 법의 판단이니 제 기준에서 다소 결과가 아쉽게 나와도 크게 신경은 안 쓰고 받아들일 것 같아요. 이제는 다시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과 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사실 그 사건이 아니면 벌써 여러 작품을 했었을 텐데 휘말리게 되면서 전면 중단 됐어요. 현재 계획 중인 영화가 한 편 정도 있는데 아직 더 조율 중이에요. 연기는 당연히 계속할 겁니다. 가능하면 올해 안에 새 작품으로 찾아뵀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캐릭터를 지닌 배우보다는 저만의 색깔과 캐릭터를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팔색조가 아니더라도 ‘아, 이태곤 하면 이것’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예능도 기회가 되면 계속할 생각이에요. 재밌기도 하고, 대중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좋더라고요. 단, 저도 일정한 ‘선’이라는 건 있어요. 가식 없이 보여주되, 제 모든 사생활을 다 공개하진 않을 것 같아요.”


사진 신채영 | 스타일리스트 최원정 | 헤어 강수인(쌤시크) | 메이크업 권성정(쌤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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