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재생, ‘사람의 스토리’가 다시 쓰인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도시 재생이 화두다. 도시 재생의 많은 논의들 가운데 ‘역사’, ‘문화’, ‘정체성’이라는 핵심 단어들은 도시에도 사람과 같이 나름의 얼굴과 표정이 필요하다는 가치를 역설한다. 재개발에 없지만 재생에는 있는 것, 바로 스토리다. 뻔하지 않은 도시가 인기를 얻는다. 그 스토리를 길어내는 원천이 사람과 마을에 있다.최근 종영한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의 인기 요인에는 가라치코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스페인 남부의 아담한 섬마을에서 눈길을 잡아 끈 건 한식당과 연예인뿐만이 아니었다. 카메라의 초점은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의 대화에 비중 있게 맞춰진다.
나영석 PD의 전작 <삼시세끼>가 계절의 변화에 공들였다면, <윤식당>의 영상미는 따뜻한 색감의 집들과 움직이는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미니어처 타임랩스(긴 시간 촬영한 내용을 빠르게 감는) 기법으로 양지바른 광장, 아기자기한 골목과 집들, 마을에서 함께 나고 자란 이웃들을 비춘다. 인사와 미소가 있는 그들의 일상에서 일탈적 경험을 하는 이들은 높은 시청률로 화답했다.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까. ‘2016 서울 통계 연보’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는 6년째 감소 중이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나.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도시와 동네를 선택하는 데는 복잡한 요소가 반영되고 또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며 “사람들의 마음 한쪽에는 높은 집값, 피로사회, 꽉 막힌 도로, 좋지 않은 공기, 각박한 관계에서 벗어나 전원 속 작은 마을에서 적당히 벌고 느리게 살고 싶은 새로운 갈증과 갈망이 있다”고 말했다.
도시 개발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재생, 로컬, 회복이 뜬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열풍에 발맞춰, 최근 작지만 특색 있는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행도 ‘소도시 탐방’이 트렌드다. 2년 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이민정(35, 가명) 씨는 “머지않은 시기에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국내의 오지 마을로 옮길 계획”이라며 “우리 가족이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도시의 규모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낡은 것에서 힙(hip)한 것으로 탈바꿈하는 오지의 재발견을 강조했다.
바로 ‘쓸모없음’이 ‘쓸모 있음’이 되는 게 (도시) 재생의 마법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일어난 도시 재생 흐름의 공통점이 쇠락하고 버려진 것을 새롭게 살려 내는 재생(reuse, revitalize) 본연의 기능에 있다. 파리 프롬나드 플랑테, 런던 테이트 모던, 뉴욕 하이라인, 토론토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동양으로 건너와 중국의 베이징 789, 나오시마 예술섬 등이 모두 그렇다.
최근 도시 재생이 주목받는 배경은 문화적으론 젊은 세대의 변화하는 가치를 반영하면서, 경제적으론 ‘고령화’, ‘인구절벽’으로 향하는 인구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성장 방식을 고민한 결과로 보인다. 구자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도시는 혁신의 플랫폼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하는 도시들이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일을 찾아 인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찾아 인재가 모이고, 인재를 찾아 창조 산업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도시는 재개발과 뉴타운의 큰 흐름을 거쳐 재생이라는 화두를 만났다. 정석 교수는 “도시 재생은 트렌드가 아닌 거대한 담론이며, 도시의 패러다임 변화”라며 “크게 보면 도시 개발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도시 재생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진정한 재생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할지 사실상 더 강도 높은 개발을 할지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했다.
정부의 역점 사업인 도시재생 뉴딜정책은 2000년대 이후 곳곳에서 시도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전국구 확장판이다. 과거 재생의 성격을 띤 프로젝트 중 하나가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이었다. 이 밖에 전면 철거 및 개발이 아닌 보전과 전승이 강조되면서 부산의 감천마을, 전주 한옥마을,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 등 크고 작은 실험은 지속돼 왔다.
도시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향후 5년간 도시재생사업에 50조 원의 정부 재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각 도시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구체적인 방법론이 분분하다. 성공 모델 없이 곧바로 확산 모델로 향하는 현재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나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건축은 지금 우리 시대에 누리자는 방식이라면 재생은 개발 의지를 향후 남기는 것”이라며 “진정한 재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동의 목표와 방향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큰 맥락에서 사람 중심의 도시 재생이라는 방향성에 이견은 없다. 또 재생의 마중물로서 마을의 역할이 강조된다. 그래서 ‘사람과 마을, 도시 재생’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도시 재생의 길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