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그리고 인문학 ①문화로 다시 읽는 타로의 세계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서양에서 온 타로가 가볍게 보는 점(占)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린다. 사주, 궁합, 관상, 토정비결 등이 음양오행과 육십갑자를 비롯한 동양적 자연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타로는 점성학과 연금술 등 서구의 오컬트적 전통과 맞닿아 있다.

어두침침한 분위기의 방 안에서 수정 구슬을 매만지는 점성술사의 모습. 대중매체에서 타로는 많은 경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의 ‘예언’에 초점이 맞춰졌다. 카드를 뽑아 미래를 맞춘다는 타로점은 2000년대 초반 국내 TV 드라마와 예능에서 다뤄진 이후 꾸준히 번지기 시작해 오늘날 젊은이들의 ‘인생 솔루션’을 제시하는 ‘운세 비즈니스’로 자리매김했다.

하루의 아침을 ‘오늘의 운세’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신년 운세, 띠별 운세, 별자리 운세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련 애플리케이션도 급증했다. 국내 역술인과 무당의 수가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점 보는 사회’는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 10~30대 10명 중 9명은 운세를 본 경험이 있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16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10대와 20대는 연애운을, 30대는 재물운을 주로 봤다. 서양에서 건너와 세련된 이미지를 입고 최근 몇 년 사이 특수를 누리는 운세의 영역이 바로 타로다.

타로 보는 사람들, 왜?
젊음의 거리 홍대 인근에 가면 ‘타로 거리’가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찾은 홍대 주변 어울마당로에는 한 골목에만 다닥다닥 20여 개가 밀집해 있었다. 골목 초입에 있는 한 소규모 매장은 대낮에도 대기 좌석까지 꽉 차 있다. 약 5분 동안 한 셔플(카드를 새로 섞는 단위)이 끝났다. 홍대 이외에도 건대입구역, 이대역 인근 대학가와 강남역 일대에 타로 거리가 형성돼 있다. 공통점은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대로변에 주로 모여 있다는 것이다.

‘점=미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는 가운데, 타로가 양지의 땅으로 성큼 걸어 나와 젊은 세대에게 소비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여의도 증권가에서 근무하는 곽재민(가명, 38) 씨는 “4월부터 연애운이 쏟아진다고 했는데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뽑을 때의 우연성이 필연으로 둔갑되는 느낌이라 다음 날 보면 결과가 바뀔 것 같다는 점에서 진지한 믿음보다는 ‘위로’와 ‘재미’의 차원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막연한 호기심’(42.7%)과 ‘불안한 미래’(22.9%)가 운세를 보는 주된 이유였다.

‘가볍게 보는 점’이라는 인식이 국내에서 타로가 빠르게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 이대 인근에 위치한 소소스토리 예담 사주타로 관계자는 “진짜 심각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겐 저도 전통적인 점집을 가시라고 권한다. 대부분은 가벼운 마음에서 점이라기보다 힐링이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것 같다”며 “타로는 3~6개월 정도의 짧은 미래에 대해 질문을 통해 정보를 모으고, 인생의 경험이 축적된 카드에 기초해 해석을 더하면서 어느 정도 내담자의 패턴, 마음과 상태를 읽어주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점술’과 ‘게임’의 중간 즈음에서 점집의 구식 이미지를 벗어버린 것도 주효했다. 요즘 대학교 축제에서 타로 카페는 인기 아이템 중 하나에 해당한다. 타로 카드의 영력을 믿는 일부 사람들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얘깃거리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문현선 인문연구모임 문이원 연구원은 “한국에서 점집의 이미지는 음산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해 타로는 다양한 카드를 활용하기에 마치 게임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며 “실제 14세기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타로는 주로 귀족들의 카드놀이로 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타로가 점으로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 이탈리아에서부터로, 그 이전에는 하나의 영적 성장이나 삶의 이치를 이해하는 도구였다.” (김수정 한국타로상담협회장)

타로는 서양에서 왔지만 동양의 전통과도 통하며 심리치료, 게임, 영적 수련, 소통 매개 등 다기능으로 활용됐다는 설명이다.

타로의 영역은 실용주의부터 신비주의까지 꽤 넓은 편이다. 타로의 배경 지식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어느 줄기와 연결되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이어진다. 타로 카드 자체가 어떤 영력을 가지고 있는 물신 숭배의 대상이거나 전생과 후생까지 볼 수 있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자기 개발의 도구일 뿐 미래 예언이나 계시까지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점술일 수도 있고, 점술이 아니라 해도 타로는 ‘인생을 이해하는 통로’라는 주장이 교집합으로 모인다.

대표적으로 타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점성학의 경우 두 갈래(astrology, horoscope)의 경향이 다르다. 또 수비학, 색채학, 심리학, 유대교 카발라 등과 만나기도 한다. 특이하게는 조형이나 도상학(iconography)을 공부하다가 타로의 세계로 진입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미국이나 유럽에서 타로를 접한 유학파들을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가 그룹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타로의 저변 확대를 이끈 배경이다.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타로 비즈니스는 진화를 거듭한다.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주, 타로’ 공간은 서양의 타로가 동양의 사주와 만나며 빚어진 ‘장르 이동’ 혹은 ‘장르 융합’의 형태다. 기존의 사주명리학 전문가들이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타로를 배우거나 타로에 먼저 입문한 후 좀 더 넓은 인생 지도를 읽기 위해 동양 철학을 공부하면서 두 영역이 결합한 한국형 운세 비즈니스로 탈바꿈했다. 이 밖에 ‘최면’이나 ‘명상’과 접목해 색다른 경험을 선보이는 타로리스트들도 있다.

타로를 배우는 사람도 늘면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된 민간 자격증만 해도 74개에 달한다. 김수정 한국타로상담협회장은 “최근 3년 사이에 대학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 강의를 할 때 정원이 꽉 차 있고, 우리 협회에 개설된 초보반에도 약 25% 정도 일반인 비중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타로상담협회, 한국타로학회 등의 단체를 중심으로 신비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타로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최근 타로에서 ‘상담’의 영역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볼 만한 특징이다. 타로와 심리학의 조우는 칼 융(C. G. Jung)의 분석심리학을 중심으로 계보를 잇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회 전반적으로 늘어난 심리치료에 대한 관심에서 ‘타로 심리학’의 진화가 시작됐다. 미술 치료, 독서 치료, 애니어그램, 별자리, 타로 등은 모두 인간의 성향을 통해 사람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와 도구들이다.

타로는 점이 아닌 상담?
문현선 연구원은 “자녀를 둔 엄마들이 처음엔 ‘우리 아이가 왜 저럴까’ 하면서 자녀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 공부를 시작하고 왜 자녀가 이상하게 보일까를 묻다 보니 자녀가 아니라 부모 자신과 그 부모와의 관계가 문제였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며 “그 과정에서 애니어그램을 보다가 별자리(astrology)로 넘어가고, 또 타로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타로를 보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호소하는 인간관계의 난제들은 사회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오랜 기간 어머니는 희생하고 자녀는 보상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형성됐고, 다양한 모자 관계가 서로 붙어 얽히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과거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원칙을 따라주는 방식으로 일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면, 지금 사회에선 그 방식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적인 문제로 불거지기 마련이다. 타로와 심리의 만남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타로가 미래 예측이 가능한 이유가 타로 카드가 현재 나의 에너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미래는 결국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면 알 수 있는 것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결돼 있는 것이다. 심리 상담의 정보를 얻는 데는 카드의 앞면을 보고 뽑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김수정 협회장)

“점술이라는 것이 일종의 ‘자기암시’ 효과가 있고 기대효과에 의한 자기 향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자기 향상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점술이 계시나 예언이라고 한다면 타로가 거기까지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타로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문현선 문이원 연구원)

타로의 핵심은 ‘해석’을 통한 마음 읽기와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점에서 타로 마니아들은 ‘점’보다 ‘상담’이라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아라우네 국내 1세대 타로리스트는 “타로는 리딩을 한다고 표현하는데, A와 B의 선택의 기로에서 10장을 뽑고 A인지 B인지 선택하는 것과 10장의 카드를 해석하며 A로 가면 어떠하며 B의 경우는 어떠한지 리딩하는 것 중 후자가 더 어렵고, 실제로 해석이 안 돼서 고민하는 타로리스트들도 있다”고 말했다.

타로, 무엇을 뽑아도 인생의 교훈 얻어
심리학적 도구로서의 타로뿐만 아니라 오컬트적 문화로서 타로의 세계도 진화를 거듭해 왔다. 특히 오컬트 문화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업계에서 새로운 소재로 관심이 많은 분야다. 타로와 문화와의 연결 고리는 ‘서사’의 힘에 있다.

‘그림’과 ‘상징’으로 이뤄진 점은 타로가 가진 차별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타로 카드인 유니버설 타로의 경우 메이저 아르카나 카드 22장, 마이너 아르카나 카드 56장 등 총 78장으로 구성돼 있다. 여사제, 여황, 황제, 교황 등 서구 문화권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별, 달, 해와 같은 우주의 신비를 다루기도 하고, 운명의 수레바퀴와 모험, 선택과 시련의 서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림이 갖고 있는 심리적인 울림이 있는 데다 타로는 구체적이고 이해가 쉽다. 부적과 비교할 때 부적은 신비한 느낌만을 받는 데 그친다면 타로는 죽음, 풍요, 왕, 여왕 등 구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예술적이면서도 재밌게 느껴질 수 있다.” (이나미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즉, 타로는 ‘그림이 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마치 옛 기사나 영웅들의 모험담처럼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놓고 카드를 뽑고 서사를 풀어 가면서 몰입감을 높이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기호와 통하는 면이 있다.

타로를 볼 때 ‘리딩’을 한다고 표현한다. 타로의 기호와 상징을 읽어내는 힘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들이 앞서 언급한 점성학, 색채학, 기호학, 마법, 그리고 연금술 등이다.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씨줄, 날줄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

타로의 기원에는 다양한 설들이 존재한다. 타로에 사용되는 기본 상징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인류 문명에서 사용되던 것들이다. 이집트, 유대, 인도, 중국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유입된 신화 상징들도 있다. 문현선 연구원은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신화 상징이 포괄돼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데, 이 상징들 대부분은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공인되지 않은 지식들이었다”며 “가톨릭이 공인하는 지식의 여집합인 셈이다”라고 했다. 예를 들어 고대 오리엔트의 신화나 유대 카발라의 비의가 대표적이다.

또 천문을 읽는 점성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발전한 학문이었다. 대부분의 고대 왕국에서 중요하게 활용됐으며, 천체의 운행에 기초하고 있기에 해석의 차이가 있을 뿐 동서양 모두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식이 타로와 직결되는 연금술의 신화와 연결된다. 연금술 신화의 물질적 기초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에서 출발한다. 대표적인 게 4원소설이다.

재밌는 점은 과거에도 타로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오늘날과 같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 있다. 오래전 유럽에서 종교가 득세하던 시기에, 주류에서 비켜나 있는 변방의 자리에서 싹튼 문화가 오컬트적 전통으로 압축돼 있다. 새로운 혁명이 된 종교개혁의 시대에서도 비합리적이라 여겨지는 점성술 등이 영향력을 끼쳤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맥을 잇고 있는 점은 타로 자체의 마력이라기보다 ‘상징’과 ‘이미지’의 힘이다.

‘타로 보는 사회’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람들의 자신감 결여와 직결돼 있는 만큼,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스스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역경이 와도 굳이 다른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타로에 대한 의존성을 전문가들은 경계한다.

“재미로 보는 점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타로에 너무 기댄다거나 일종의 ‘타로 투어’를 하면서 상술에 현혹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수정 협회장)

이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기댈 만한 리더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때 예전에는 집안 어른이나 선생님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은 물어볼 어른이 없다. 그래서 점을 본다. 이미지들을 상징적으로 이해해서 내적인 성장이나 자기반성에 활용하는 게 아니라 맹신하거나 결정론적 생각에 빠질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나미 교수)

그렇다면 사람들이 타로를 보며 실제로 위안을 얻는 순간은 언제일까. 소소스토리 예담 사주타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오고 큰 고민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잘될 거야’, ‘잘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오는 것 같다”며 “어떤 분들은 타로를 보러 오면 녹음 버튼을 누르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괜찮아, 너 앞으로 잘될 거야’와 같은 위로를 반복해서 듣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은 거창한 청사진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라고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면서 동시에 그 누군가에겐 간절히 필요한 말 한 마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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