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이석원 여행전문기자]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Mondschein)’의 배경은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이다. 하지만 정작 베토벤 자신은 평생 루체른에 가본 적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정갈한 이미지의 스위스 도시답게 깔끔하게 정돈되고 관리되는 루체른 시내]
강 위로 뜬 달이 살포시 빛을 내리면 단선율의 낮은 피아노가 시작된다. 이내 반복되는 중저음의 선율을 살짝 잡고 어우러지는 피아노의 흐름은 강 위의 달을 흐트러뜨리고, 강물의 흐름을 어지럽게 한다. 달을 품어서일까? 낮고 느리게 흐르는 아르페지오는 유난히 우수에 차 있다. 좀처럼 격해지지도 않고, 강 위에 비친 달빛을 살짝 스치는 바람인 양 무겁지가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격렬해진 건반의 두드림은 강 위 달빛을 심하게 흔든다. 화라도 난 걸까? 물살이 빨라지는 것도 아닌데, 달빛이 저 멀리로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달빛이 흘러간다. 마냥 거기 있을 것 같던 그 모양이 아니다. 그래. 결국은 가쁜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로 달려가나 보다. 거절당할 자신의 운명을 일찍 결정짓기라도 하려는 듯.
오래된 나무다리 위에 서 있는 이가 베토벤일까? 낮게 드리운 어둠에 흐릿한 실루엣이 더 흐리다. 하긴 루체른 로이스강을 가로지른 카펠교에는 베토벤이 있을 리 없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이곳에 온 적이 없으니. 그러면 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작품 번호 27의 2번)은 어떻게 된 것일까? 카펠교 위에서 로이스강 위에 뜬 달빛을 봤던 것은 베토벤이 아니라 독일의 시인이자 음악평론가인 루드비히 렐슈타프다. 그는 1802년 베토벤의 14번 피아노 소나타가 빈에서 발표됐을 때 1악장을 들으며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의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라고 평했다. 그 후로 ‘월광’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루체른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가 카펠교 위에서 흐르는 이유다.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 튈르리 궁전을 지키다가 전사한 스위스 용병들인 라이슬로이퍼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 덴마크의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센이 설계하고 루카스 아호른이 조각했다.]
[1333년에 놓인 200m 길이의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인 카펠교. 지붕 아래 들보에는 스위스와 관련한 중요한 사건과 스위스의 수호성인의 이야기가 판화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예수회 성당(Jesuitenkirche)은 칼뱅과 츠빙글리 등 종교개혁 시기 신교의 세력이 팽창하던 루체른에 가톨릭의 자존심을 지켜주던 유일한 성당이다. 로이스 강변에 위치한 이 성당은 지금은 루체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건물로 유명하다.]
◆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은 루체른
루체른(Luzern). 필라투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여기서부터 로이스강이라고 불리며 흐른다. 그 로이스강 위에 놓인 1300년 경 세워진 현존하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다리 카펠교. 다리 위에 지붕이 있는 독특한 구조여서일까? 로이스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알프스의 작은 도시 루체른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베토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그가 가르치다가 사랑에 빠진 헝가리 출신 귀족 브룬스빅의 조카딸 줄리에타 귀차르디에게 바쳐진 곡이다. 평생 적잖은 여인들과 사랑에 빠졌던 베토벤이지만 줄리에타는 좀 더 특별했던 모양이다.
둘은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기에는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사회적 분위기는 녹록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혁명 분위기가 가장 고조됐던 곳이 빈이었으니까.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줄리에타는 다른 귀족과 결혼해 이탈리아 나폴리로 떠났고, 실의에 찬 베토벤은 귓병이 도져 거의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베토벤에게 줄리에타나 피아노 소나타 14번이 특별할 수밖에.
베토벤이 루체른에 와본 적이 없음에도 이 곡의 이름이 ‘월광’으로 붙여진 덕에 사람들은 루체른과 로이스강과 카펠교를 마치 베토벤의 사랑이 깊게 서린 그런 공간처럼 여기고 있다. 그리고 루체른을 감싸고 있는 또 한 편의 아름다운 음악 이야기.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1870년 크리스마스 아침, 루체른 근교 트리프셴의 한 저택에서 아름다운 관현악곡 하나가 초연된다. 당시 그곳에 살던 바그너가 아내 코지마에게 생일을 맞아 선물한 곡이다.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목가적 분위기와 어우러져 바그너 음악 중 가장 ‘사랑스러운’ 곡으로 평가받는 ‘지그프리트 목가(Siegfried Idyll)’다. 1938년 당대 최고의 지휘자인 토스카니니는 나치의 눈을 피해 루체른 인근의 작은 마을 트리프셴으로 유럽의 내로라는 연주가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바그너의 숨결이 간직된 그 집에서 ‘지그프리트 목가’를 연주한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도. 작은 갈라 콘서트로 시작한 루체른 여름 음악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루체른 호수를 따라 조금만 시내에서 벗어나면 필라투스 산기슭의 마을들이 스위스 자연을 그대로 품고 펼쳐진다.]
[필라투스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 까마득한 절벽과 계곡을 오르면서 보는 알프스의 장관은 쉽게 잊히지 않는 경험이다.]
봄이 무르익을 무렵인 부활절 2주 전에 시작하는 루체른 부활절 페스티벌, 8·9월 열리는 루체른 여름 페스티벌, 그리고 11월에 루체른을 더욱 낭만 속으로 밀어 넣는 루체른 피아노 페스티벌. 이 세 가지 음악 축제를 통칭해서 루체른 페스티벌이라고 부른다. 1년 내내 향기로운 음악의 향연이 흘러넘치는 것이다.
도시의 관문인 중앙역 부근 제법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버스 노선들을 무시하고 천천히 도시를 걷는다. 누가 스위스 사람들 아니랄까 봐 깨끗하게 단장된 거리는 맑고 평안하다. 알프스를 닮은 크지 않은 건물들이 도시의 미관에 아무런 생채기도 내지 않는다.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이 많이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스럽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깨끗한 느낌이다. 사람들도, 건물들도, 자동차와 지나다니는 강아지조차 편안하게 깨끗하다.
루체른 호수 선착장 주변을 천천히 유영하는 백조들은 바쁜 게 전혀 없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배우 이순재가 저 백조들에게 빵을 주던 장면이 떠오른다. 저 중에 그때 그 녀석도 있을까? 객쩍은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필라투스(Pilatus)산으로 향하는 배에서 펼쳐지는 스위스 호수의 아름다운 파노라마가 <꽃할배>를 잊게 한다.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아름다운 색깔로 이어지는 호숫가 풍광이다.
◆ 세 개의 이름을 가진 마테호른
필라투스산은 ‘악마의 산’으로도 일컬어진다. 저 아름다운 산에 왜 이런 험한 이름이? 필라투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한 로마의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 그 자다. 나중에 그의 영혼이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이 산에 갇혔다고 한다. 2132m 높이의 산에는 필라투스의 유령 때문에 기상 변화가 극심하고, 등산객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필라투스산을 오르내리는 길에 보이는 스위스의 전통적인 목가 분위기는 평화롭다. 필라투스의 저주 따위는 아랑곳없이 극단의 안정과 고요함만이 가득하다. 기왕 알프스를 본 김에 ‘알프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마테호른(Matterhorn)을 갔다. 할리우드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상징으로 더 유명한, 알프스에 속한 아름다운 봉우리들 중 으뜸이라는 그곳 마테호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걸쳐 있다. 멀지 않은 곳에 프랑스 국경도 있어서 사실상 세 개 나라가 공유하는 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산 이름도 독일어 마테호른 외에 이탈리아에서는 몬테체르비노(Monte Cervino), 프랑스에서는 몽세르뱅(Mont Cervin)이라고 불린다.
[체르마트에서 등산열차를 타고 마테호른을 오르는 길에 만나는 풍경들은 스위스의 전통적인 목가풍이다.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모습에서 알프스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된다.]
[마테호른을 조망할 수 있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는 마테호른 아래로 흐르는 알프스의 빙하를 볼 수 있다.]
마테호른에 가기 위해서는 그 아래 작은 마을 체르마트(Zermatt)로 가야 한다. 루체른에서 체르마트로 가는 길이 짧지는 않다. 기차를 타고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Bern)까지 가서 기차를 바꿔 탄다. 베른에서 탄 기차는 비스프(Visp)라는 곳에서 내려 세계에서 가장 천천히 달리는 특급 열차를 탄다. 3시간 15분 거리다.
체르마트로 가는 길은 마테호른의 장관을 보는 것보다 더 멋진 기차 밖 풍경이 있다.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들은 신비한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호수 주변의 마을들은 조금 전에 TV 속에서 튀어나온 듯 현실감이 없다. 체르마트 알프스 영역에 들어서면 창밖으로는 깎아 지르는 절벽을 타고 쏟아지는 빙하 물 폭포가 신비롭다. 당나라 시인 이백이 이 풍광을 봤어도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외쳤으리라.
체르마트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일체의 교통수단이 다닐 수 없다. 오직 전기자동차만이 다닌다. 신이 만들어 놓은 자연을 지키고 살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가상하다. 만약 인간의 이기심만으로 이곳이 살아간다면, 또는 자연만으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간다면, 체르마트든 마테호른이든 지금의 아름다움보다는 적은 감흥이 남아 있을 것이다.
체르마트에서 마테호른의 고르너그라트(Gornergrat)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또다시 등산열차를 타야 한다. 제 마음대로 방목돼 한가하게 풀을 뜯는 양들과 질서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지어진 집들에 모여 사는 스위스 사람들은 참 많이 닮았다. 그들에게는 삶이 예술이고, 생활이 문화다. ‘알프스의 여왕’ 마테호른의 앞마당에서 평화로운 그들이야말로 ‘별유천지비인간’에서 사는 게 아니면 무얼까?
마침내 도착한 해발 3100m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발아래 흐르는 수만 년의 세월을 품은 빙하, 고개를 들면 보이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라미드 모양으로 섬세하게 서 있는 마테호른 봉우리. 그 영겁의 시간이 만들어낸 신의 위대한 예술품 앞에 인간의 자만심은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위대한 예술품조차 초라하게 만드는 이 거룩한 자연.
줄리에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월광’ 소나타를 바친 베토벤, 코지마를 위해 ‘지그프리트 목가’를 만든 바그너. 인간이 만들어낸 최상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아름다운 음악을 품은 루체른이 선사하는 또 다른 위대한 예술품 앞에 그저 묵상으로 고요할 뿐이다.
[알프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마테호른. 아이거, 융프라우, 몽블랑 등 알프스 4000m 이상 고봉들 중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힌다. 1865년 7월 14일 영국의 탐험가 겸 산악인인 에드워드 휨퍼(Edward Whymper)가 이끄는 등반대원 7명이 처음 정상에 올랐으나 등정 과정에서 7명 가운데 4명이 사망하며 알프스에서 가장 위험한 봉우리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