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가족·친구와의 여가 휘게적 삶의 핵심이죠”

워라밸을 실천하는 사람들 ①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워라밸(work & life balance)의 핵심은 전적으로 일과 개인의 삶을 ‘균형’있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는 대다수 덴마크인들의 ‘휘게 라이프(hygge life)’와도 맞닿아 있다. 토마스 리만(Thomas Lehmann, 52) 주한 덴마크 대사가 말하는 덴마크식 워라밸 노하우를 들어봤다.

흔히 덴마크 하면 안데르센이나 레고, 우유, 혹은 복지 수준이 높은 북유럽 국가 정도로만 인식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데르센이 덴마크 사람인지는 몰라도 덴마크를 소개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휘게(hygge)다. 휘게는 안락함을 뜻하는 덴마크어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어둡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북유럽인들이 따뜻한 실내에서 쉬면서 힘을 얻는다는 개념에서 유래했다. 주로 덴마크인들의 여유로운 삶의 방식을 의미하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부는 워라밸의 이상향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만난 이 사람. 한국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토마스 리만 주한 덴마크 대사의 삶이 궁금했다. 정신없이 바쁜 한국 사회에서도 그만은 뭔가 특별하고 여유로운 휘게 라이프를 즐기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공개한 그의 삶은 기자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그의 캘린더는 빽빽한 일정으로 가득했다. 직업 특성상 야근과 주말근무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매사 휘게적 삶을 실천하고 산다고 자부했다. 리만 대사가 말하는 덴마크의 휘게적 삶과 한국의 워라밸 실현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에 오신 계기와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국제 정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국제 경제와 무역정책 등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외교부에 들어가게 됐죠. 아시아 지역 발령은 한국이 처음인데요, 주한 덴마크 대사직 제안을 받고 거절할 수 없는 좋은 기회다 싶어 2014년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이후 지난 4년 한국에서의 생활은 제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간들 중 하나였어요.”

주한 덴마크 대사로서 하루 일과가 어떠신가요.
“대개 평일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는 업무를 마무리하는 편입니다. 다만, 외교부는 세계 정세를 관여하는 부서이다 보니 언제, 어디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늘 주시해야 하는 만큼 변수는 있죠. 외교 대사로서 책임져야 할 일도 많고요.

한국과 덴마크 간 협력관계를 더 증대하기 위해 양국 기업들의 파트너십 구축을 돕기도 하고, 연구나 기술혁신 부분에서도 협력하도록 도모하고 있습니다. 공동 연구 프로젝트, 교환학생 프로그램 외에도 북한 문제 등 정치 이슈에도 관여하죠. 때때로 대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요. 그 밖에 문화 교류 일정이나 주말에도 일과 관련된 행사, 발표 등이 있을 때도 있죠. 양국 간 시차도 있기 때문에 퇴근해서도 덴마크로부터 업무와 관련해 문자나 이메일이 오기 시작해서 확인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반적인 덴마크인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요.
“제가 일반적인 덴마크인들과 비교해 근무시간이 긴 것은 사실이지만 저 역시 여가시간에는 최대한 가족이나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그것이 휘게적 삶의 핵심이죠.”

대사님이 보시는 휘게란 무엇인가요.
“제가 정의하는 휘게는 사회적 모임(social gathering) 즉, 친목모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따뜻하고,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고, 그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갖는 거죠. 가족이나 친구, 그 어떤 사람과도 양초를 켜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휘게의 모습이에요.

실제로 덴마크인들은 전 세계에서 양초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이고, 은은하고 따뜻한 조명으로 조성되는 분위기를 선호합니다. 일부 사무 공간을 제외하면 일반 가정에서는 결코 천장에 형광등을 달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죠. 덴마크인들은 양초를 켜는 그 순간 형성되는 분위기를 좋아하고, 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안정과 행복감을 느끼죠. 가족과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제겐 중요한 휘게 일상이고요. 한국에서도 누구든 할 수 있죠.”

한국도 과거에 비해 삶을 바라보는 인식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개념이 ‘워라밸’이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인들은 불안해하죠. 덴마크인들에게 휘게적 삶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우선 기본적으로 강력한 복지제도가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근심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요소입니다. 가령, 덴마크는 육아, 의료, 실업, 노인 문제 등 이 모든 것에 대해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돼 있죠.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근심 대신 행복하게 휘게를 즐길 수 있는 기본적인 심리 상태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또한 근무시간이 한국에 비해 짧죠. 제 생각에 덜 일한다는 것이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덴마크에서 중요시하는 경쟁력은 ‘효율성’입니다. 일하는 시간을 사용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죠. 근무할 때는 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집중해서 일을 합니다.

그 외 시간에는 충분히 여가시간을 갖는 것이죠. 저는 이게 일종의 선순환 구조라고 봅니다. 워라밸의 개념도 이런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근무시간이 짧으면 직원들의 삶은 여유로운 휘게적 삶으로 이어지죠. 직원들이 행복하면 일을 더 집중해서 하게 돼요. 실제로 덴마크의 이런 노동 문화가 생산성을 더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꽤 많이 보고됐습니다. 그래서 덴마크인들은 어느 직종에 있든 자신에게 주어진 휴가는 모두 할애합니다.”

결국, 덴마크의 휘게 라이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복지 시스템이 큰 영향을 미치는 셈인데요, 높은 세율에 대한 반발은 없나요.
“네, 없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대체로 높은 세금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많은 세금을 내지만 그만큼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혜택과 보호망이 더 크다는 인식이 견고하기 때문이죠. 물론, 저희 복지 시스템이 100% 완성형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때때로 세금에 대한 토론도 진행하죠. 단, 세율을 낮추자는 논의는 아닙니다.

가령, 강력한 복지제도가 있다 보면 그 복지제도에만 기대서 일을 하지 않고, 혜택만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죠. 그런 사례를 줄이고,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자극이 되도록 인센티브가 되는 세금제도를 마련하자는 토론은 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 그만큼 더 혜택을 받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데 세금이 역할을 하자는 사회적 논의가 있는 거죠.”

한국에서 휘게적 삶이 가능하려면 어떤 점들이 필요해 보이시나요.
“문재인 정부가 덴마크의 사회적 모델, 복지제도, 사회 구성에 대해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 정부의 복지 예산이 증가한 점을 꼽고 싶습니다.

그중 육아분야 등 가족 지향적 복지정책의 방향은 휘게적 삶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사람들에게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을 늘리고, 부모들이 교육비, 병원비의 부담을 줄여 출산율 증대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덴마크에는 남성들을 위한 출산 휴가나 부모를 위한 육아 휴가 등 다양한 육아 복지 시스템이 구축돼 있고, 이 부분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 한국과 적극 공유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요.
“2019년 한국·덴마크 수교 60주년 및 문화 교류의 해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 행사가 잘 치러지도록 준비하고, 앞으로도 한국과 덴마크 양국 간의 관계 증진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일하려고 합니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이승재 기자

[프로필]토마스 리만 대사는…
학위
1992년 코펜하겐대, 경제학 석사
주요 경력
2014년~현재 주한 덴마크 대사(신임장 제정일 2014년 9월 12일)
2010~2014년 덴마크 외교부 EU 조정부처 부장
2007~2010년 덴마크 외교부 EU 조정부처 차장
2003~2007년 주스웨덴 덴마크 대사관 공사참사관
2000~2003년 덴마크 외교부 EU 정무부처 과장
1999~2000년 덴마크 외교부 EU 조정부처 과장
1996~1999년 주아일랜드 덴마크 대사관 1 등 서기관
1993~1996년 덴마크 외교부 예산행정부처 과장
1992~1993년 덴마크 외교부 무역정무부처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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