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가 손사래 친 농협 개혁, 文 정부는?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농협중앙회장이 센지 내가 센지 모르겠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정부 주도의 농협 개혁 추진이 번번이 난관에 부딪히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꺼낸 얘기다. 이후 세 차례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지만 농협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참여정부 2기’로 평가받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사실 농협 개혁 문제는 비단 노무현 정부 당시만의 얘기는 아니다. 농민 중심의 정체성 확립과 함께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로 지난 1988년 도입된 직선제는 이후 선거 과열 우려로 조합장 중심의 간선제로 전환됐다. 하지만 이는 농협중앙회장과 지역조합장 간 부적절한 유착동맹으로 이어졌고, 결국 권력 집중화에 따른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역대 중앙회장이 비자금, 금품수수 등 각종 비리로 구속된 전례는 농협 개혁의 당위성을 반증한다.

실제 지난 1988년 첫 민선 회장인 한호선 회장은 4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원철희 2대 회장은 6억 원의 업무추진비 횡령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대근 3대 회장 역시 억대의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고, 최원병 4대 회장은 금품수수와 특혜대출 혐의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병원 6대 회장 역시 2016년 치러진 중앙회장 선거 과정에서 불법선거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은 김 회장 당선 이후 수차례에 걸쳐 조합장 및 조합임원 등으로부터 금품수수 정황이 포착됐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노조 관계자는 “농협중앙회는 정부당국과 정치권, 지역 농·축·품목조합 간 거미줄 같은 복잡한 이합집산과 유착동맹이 형성돼 있으며 이것이 농협 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폐”라며 “불법 선거운동부터 뇌물수수 혐의까지 김 회장 역시 전직 중앙회장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 억대 연봉 수두룩…農心 외면한 ‘신의 직장’
농협중앙회의 자기권력화는 폐쇄적 조직문화와 맞물려 여러 폐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농협은 김병원 회장 취임 2년 차인 2017년 11월부터 ‘농업가치 헌법 반영 1000만 서명 운동’ 등 농협의 정체성 강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국민들을 상대로 한 인식 개선에 앞서 내부 개혁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농협의 ‘농심(農心) 외면’ 및 ‘방만 경영’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개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앞서 10월 말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농협중앙회 임직원들의 ‘돈 잔치’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장을 비롯한 전무이사, 농업경제대표이사, 축산경제대표이사, 상호금융대표이사, 감사위원장, 조합감사위원장 등 상임임원진의 평균 연봉은 3억4000만 원에 달했고, 2013년 이후 일반 직원들의 기본성과급과 특별성과급을 합친 금액은 400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또 2016년 말 기준 농협중앙회 정규직 직원 2487명 가운데 16.5%(401명)가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억대 연봉자 비중도 급증하는 추세다. 하지만 농협중앙회의 당기순이익은 1년 만에 1000억 원가량 감소했고 부채비율도 639.8%에 달했다. 여기에 농협중앙회장의 경우 100㎡에 달하는 사무공간은 물론 3억3000만 원(2016년 기준)에 육박하는 연간 렌트료와 수천만 원의 유지비를 지원받았다.

반면 농협중앙회의 비정규직 계약직의 경우 연평균 2900만 원의 급여를 받아 임원진 연봉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발맞춰 비정규직 50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만, 지역 농·축·품목조합의 계약직 노동자가 1만8000여 명에 달하고 이들 대부분이 심각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철민 의원은 “농민을 위해 설립된 농협중앙회가 정작 농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신(神)의 직장’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억대 연봉자가 수두룩하다”며 “어려운 농촌과 농민 현실과 동떨어지는 지나친 ‘밥그릇 챙기기’를 자제하고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외에도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부동산 투기를 방불케 하는 수백억 원대 임대수익 논란부터 청년농업인에 대한 가혹한 농협 대출제도, 농협 하나로유통의 대기업 상품 편중 판매, 계열사 수수료 과다(3중) 수취, 퇴직 임원들의 자회사 재취업, 관료 출신 비상임이사의 과도한 활동 수당 등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 대부분은 농협중앙회의 고질적 병폐이자 지난 수년간 꾸준히 거론돼 왔던 문제다.

◆지배구조 역주행…문어발식 확장 경영
이처럼 농협의 방만 경영 논란이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개혁 칼날’은 주요 재벌기업으로만 향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대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 및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계열사 정리에 나선 가운데 농협중앙회의 거침없는 ‘몸집 불리기’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5월 말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31곳 가운데 농협의 계열사는 81개로 SK(96개)와 롯데(90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총수가 없는 기업집단 가운데서는 최대 규모로 직전 1년 동안에만 무려 36개사가 새롭게 편입됐다.

특히 계열사 간 거래 규모는 지난 9월 말 기준 비금융사 1조7854억 원, 금융사 5조4742억 원으로 총 7조2596억 원에 달했다. 이는 2년 전(1조7490억 원)과 비교해 4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농협이 농촌과 농민 지원이라는 본연의 업무보다 구시대적 확장 경영에만 매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농협 조직이 국내 대기업과 견줄 정도로 비대해지면서 정부의 통제력이 크게 약화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지난 2012년 신경분리 이후 각 농협경제 및 금융지주뿐 아니라 자회사와 손자회사에서도 불공정거래 관행 의혹이 지속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관리감독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농협중앙회의 상호금융특별회계 방만 운용이 논란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상호금융특별회계는 지역 농·축협에서 출자한 기금과 농민조합원 등 고객의 긴급한 필요에 대비해 적립하는 상환준비금 성격으로 2016년 말 기준 83조 원에 달한다.

그만큼 안정성과 건전성이 담보돼야 하지만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막대한 자금이 해외 부동산 투자 등에 쓰였다. 이 과정에서 텍사스 유전개발펀드(160억 원)와 캐나다 토론토 주상복합 프로젝트파이낸싱(150억 원) 등 수백억 원이 위험도 높은 투자처로 흘러들어갔고, 결국 같은 해 1777억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농협중앙회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현 김병원 회장 체제에서 재개됐지만 2017년 9월 말 기준 수익률은 2.82%에 그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국협동조합노조도 농협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농협 적폐의 핵심은 관료 출신 및 중앙회 출신, 농·축협 조합장들이 계열사의 이사와 감사 자리를 독식하는 권력 카르텔에 있다”며 “농협중앙회는 법적, 제도적 안정성을 위해 로비에 몰두하고 있으며, 조합장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자 금품 선거가 횡행하게 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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