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MeToo



[한경 머니 기고=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성희롱은 남녀 젠더의 문제라기보다는 폭력의 문제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MeToo’라고 동조 표시를 달아
성폭력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나선 대목은 고무적이다. 이 같은 해시태그 캠페인은 성공적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지금 세계가 성희롱 이슈로 뜨겁다. 얼마 전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여배우들에 대한 성 추문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면서부터다. 사실 미국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무척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나라다. 아마도 그것은 영국과 아일랜드 등에서 엄격한 청교도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개척하기 시작한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까지 늘 그래왔듯이 곧 잦아들 것으로 보였던 하비 와인스틴의 성희롱 추문은 건조한 계절의 산불처럼 무서운 기세로 번져 나가고 있다.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와 기네스 펠트로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용기를 얻은 성희롱 피해자들에 의해 하비 와인스틴뿐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권력, 부를 이용해 여자들을 희롱한 사람들의 이름이 차례로 불려졌다.

거기엔 영화배우 캐빈 스페이시, 코미디언 루이스 C. K.·빌 코스비,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선거에 후보로 나선 루이 무어 후보까지 줄줄이 호명되고 있고, 추세로 보아 앞으로 많은 힘 있는(?) 남자들이 자기의 순서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여자들은 자신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해시테그로 ‘#MeToo’, 즉 나도 당했다는 동조의 표시를 달기 시작했고, 지금 그 캠페인은 점점 불이 활활 붙고 있다. 이 ‘#MeToo’ 캠페인은 이제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여자들의 동조를 얻고 있으며, 이 캠페인으로 인해 세계 각국의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추락할 것이다.

게다가 부끄러움을 느낀 남자들은 반성의 뜻을 실어 ‘#IdidThat’(나도 그랬다)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이제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여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MeToo’와 ‘#IdidThat’ 해시태그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성희롱은 폭력의 문제

몇 년 전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따라갔던 청와대 대변인의 성희롱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순방 기간 동안 자신을 돕는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서둘러 귀국한 그는 자신은 그럴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며 성희롱이 아니라고 시끌벅적하게 기자회견까지 열고 사표를 냈다.

그때 필자는 내심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추방’을 기치로 내세웠던 정부가 확실하게 성희롱의 대가를 본보기로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유야무야되고 그는 숨어 버렸으며 사건은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봐라. 미국이 내게 아무런 법적 소추를 하지 않았다. 내가 성희롱하지 않은 것을 증명한 것이다”라고 떠벌였다. 하지만 얼마 전 미국 검찰에서는 “윤창준 씨는 분명히 성희롱을 했지만, 외교관 면책특권의 덕을 입었다”고 입장을 밝혔고, 심지어 피해자에게 민사소송을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성적인 추행, 폭행, 희롱에 대해 여지없이 관대한 대한민국은 최근 기업인들과 정치인들부터 대학생들의 단체카톡방 사건까지 터져 나오는 성희롱으로 전전긍긍이다. ‘손녀딸 같아서’ 캐디의 가슴을 만진 전 국회의장, 여비서를 강제로 호텔로 끌고 가려던 기업 대표,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심지어 강간하려고 했다는 기업의 인사과 직원 등.

이런 성희롱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한쪽은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엄한 처벌을 요구하며 피해자를 안타까워하지만, 다른 한쪽은 피해자에게 분노한다. 피해자에게 분노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 ‘꽃뱀’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며, 2차 가해에 가담한다.

이렇게 유명한(혹은 유명하지 않더라도) 남자를 어떤 여자가 성희롱으로 고발하면, 그 남성은 여자를 거짓말쟁이라 부르고, 언론에 보도되며 거액의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가 개입한다. 그리고 여자를 ‘거짓말쟁이’, ‘꽃뱀’으로 부르며 합의를 유도한다. 여자는 거액의 합의금을 받거나 못 받거나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어떤 여자가 성희롱 합의금을 받기 위해 어렵게 들어간 자신의 평생 일자리를 걸 것이며, 성적인 희롱에 동조해 자신의 명예를 더럽힐 것인가? 이런 함의가 자꾸 이뤄지면 여자들은 성희롱 피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여자도 남자도 마찬가지다.

원래 성희롱은 남녀 젠더의 문제라기보다는 누가 힘을 가졌는가 하는 권력, 폭력의 문제다. 하지만 남자들이 먼저 주도권을 잡은 산업사회의 조직체계상 힘을 가진 남자들에 의해 약자인 여자들이 성적 희롱의 대상이 돼 왔기에 현재 성희롱 문제에서 젠더의 문제는 자유롭지 않다.

이제 일하는 여자들은 더 많아질 테고, 일에 대한 여자들의 생각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는 힘을 가진 여자들에 의한 성희롱도 적지 않을 것이다. 성희롱 피해자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공감이며, 위로이고, 가해자의 통절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그로부터의 명예 회복이다.

이번 ‘#MeToo’ 캠페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앞으로 젠더 문제로 내가 불이익을 받는다면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말한다. 남자들은 “앞으로 여성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다면 더 목소리를 내겠다”고 대답했다. 또 이번 캠페인을 지켜보며 자신의 행동 및 여성과의 소통 방식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래서 누군가가 힘에 의해 침해당하고, 희롱당하고, 강간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막아내고, 보호하고, 간과하지 않고, 격려하고, 응원한다면 우리 사회는 좀 더 성적으로 평등한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다.

다행히 정부는 지난 10월 9일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하면서 성희롱 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IdidThat’은 고사하고, ‘#MeToo’에 대한 고백도 없이 조용하다. 그러나 이런 해시태그를 걸든 아니든 그 운동의 내용과 정서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길 소망한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성 전문가·보건학 박사/ 일러스트 전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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