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 Longevity
[한경 머니 =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석좌교수]
초장수인들은 일반 노인들보다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에 대한 귀의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백세인은 간절하고 절실하며 진지한 신앙생활의 면모를 보여주어 감동을 주었다.
초장수인들은 국내에 종교가 들어온 지 오래 되지 않아 성장기에 이들 종교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을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초장수인들이 삶에 대해 달관하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분들은 종교를 통해 기복(祈福) 또는 왕생극락(往生極樂)을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스스로 책임지고 담대하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백세인들의 삶에서 종교의 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강원도 조사를 다니면서 피서철에는 완연히 다른 지역으로 크게 변모돼 버린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깊은 산속 마을이라도 펜션이 들어서 있고 강원도의 소박한 모습이나 순박한 시골 인심이 사라져 버린 듯해 서운했다.
피서객들로 부산한 길을 따라 양양군 강현면에 사시는 이을향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마침 다음 날이 할머니 백수연(百壽宴)이라 온 가족들이 찾아와 가족모임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할머니는 2년 전에 우리가 이미 1차 조사를 한 바 있어 생리 기능, 인지 능력, 일상생활 등에서의 변화가 관심이었다. 놀랍게도 할머니의 인지 능력과 식습관에 큰 변화가 없었으며, 지금도 바늘귀를 직접 꿰어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나이가 들어가면 생체 기능이 약해지고 효율이 떨어짐은 당연한데, 이런 백세인을 뵐 때면 마치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정지돼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할머니는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지 모르겠네”라고 하며 당신의 장수 때문에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민망해하셨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 장수인과 외국 장수인이 크게 다르다. 서양의 장수인은 자신의 장수를 당당하게 여기는 데 반해 우리나라 장수인은 자식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고통 속 신앙의 절실함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내내 할머니 손에는 누렇게 바래다 못해 다 헐어진 찬송가가 들려 있었다. 할머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가족이었다. 특히 여든이 된 사위는 개척교회를 이루었고 지금도 장로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셨다. 그러나 할머니의 독실한 신앙 활동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앉으나 서나 언제나 돋보기를 쓰고 성경을 읽으며, 당신이 애용하는 찬송가는 너무도 많이 사용해 다 바래고 헐어져 있지만 할머니는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내가 오래 건강하게 살고 가족들이 모두 온전하게 살고 있는 것이 모두 주님의 뜻이고 은총이지 않겠어”라고 우리에게 되묻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종교가 참으로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짐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남 담양군 대덕면에서 만난 백세인 임 씨 할머니는 활달했다. 지금도 밭일을 거들 만큼 건강하셨다. 조사단이 묻는 기본적인 시공간 인지 상태를 묻는 심리검사 내용들에 대해 너무 쉽고 우습다며 오히려 핀잔을 주셨다. “그런 것도 모르면 뭐 한다여!” 할머니는 지금도 스스로 쪽을 지고 단정하게 앉아 노래를 청하자 서슴없이 찬송가를 부르셨다.
백세인에게 노래를 청했을 때 찬송가를 부르시는 분은 그다지 흔하지 않았는데 숙연해진 우리가 할머니에게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느냐고 묻자, 갑자기 우울해지면서 “내가 교회를 두 번이나 못 갔어” 하며, 주일예배에 두 번 빠진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가족 중에서 누가 가장 보고 싶은가 물었다. 그래도 돌아가신 영감님이 생각난다는 답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필자의 귀를 잡아당기며 조심스럽게 속삭이셨다. “셋째 아들이 제일 보고 싶어.” 옆방에 있는 큰아들이 혹시 들을까 봐 눈치 보며 당신이 보고 싶은 셋째 아들을 들먹이며 눈물을 지었다. “그놈이 찬송을 참 잘했어” 하며 울먹이셨다. 죽은 영감보다도, 다른 어떤 가족보다도 그 아들 생각이 강하게 난 것을 어떻게 하랴. 신앙에 대한 진지함, 그리고 자신이 그리워하는 대상에 대한 분명함이 백세가 다 되신 할머니에게 있었다.
장수인들 신앙심의 절실함은 소록도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나환자들은 100% 절대 신앙인들이었다. 너무도 절실하게 삶의 바탕이 신앙임을 강조한 할머니를 만났다. 유 씨 할머니는 15세에 발병해 23세에 소록도에 들어와 이미 67년째 살고 있었다. 현재는 고관절 골절로 운신을 못하고 앉아서만 생활했다. 나이 마흔다섯에 지금의 남편과 만나 45년째 함께 살고 있었으며, 부부 모두 독실한 신자들이었다.
부부는 일상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부부 모두 마치 합창하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고 제일 좋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예배당 가는 일이라고 답했다. 조사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수인사를 하자마자 할머니가 우리에게 되물었다. “선상님, 예수 믿지요?” 그래서 “예,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할머니는 “예수 믿고 천당 가서 만납시다”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조사가 시작돼 몇 가지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가 또 물었다. “선상님, 예수 믿지요?” 할 수 없이 또 “예” 하고 답하자 동일한 질문과 다짐이 되풀이됐다. 또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또 하고. 할머니에게는 오로지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일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예수 믿고 천당 가세”, “하나님은 내 마음 알아 줘”, “예수 믿고, 궂은지 좋은지 모르고 살았어”, “속에 맺힌 것 참고 넣어 두어야 해. 예수님은 다 알아줘” 처음부터 끝까지 할머니에게는 예수뿐이었다.
떠나는 우리에게 할머니가 내뱉는 말은 가슴을 더욱 찡하게 했다. “예수가 없었더라면 약이라도 먹고 죽었을 거야.” 처참한 현실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신앙이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앙심 깊은 백세인이 비록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삶에서의 어려움과 고통을 종교에 의지해 극복하고, 매사를 감사해하며 살아온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많아질 외롭고 힘든 장수인들에게 종교가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