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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별을 일부러 경험하고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중한 만남만이 가득한 삶이 됐으면 하고 바라지만 정확하게 우리는 만나는 숫자만큼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한날한시에 삶을 마감하기를 바랄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남녀도 동시에 세상과 작별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사랑을 잘 하는 기술만큼이나 이별 기술도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이별의 대상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반려동물과의 영원한 이별도 감정적으로 큰 슬픔을 주는 것을 보게 된다.
사별로 인한 슬픔은 마음만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박동하는 마음인 심장도 망가트릴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시행한 연구를 보면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2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첫 일주일 동안 심장마비의 위험성이 얼마나 증가하나 보았더니 6배나 높았다.
뇌졸중 위험도도 증가했다. 사별 후 한 달을 거치면서 심장마비의 위험도는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심장마비 위험을 증가시키는 심장박동, 혈압, 혈전 생성 증가는 사별 후 6개월까지 지속됐다. 그래서 슬픈 이별을 겪고 있는 사람에 대해 심리적 안정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도 함께 체크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균형 잡힌 식단과 식사 시간을 갖도록 하고 규칙적인 취침과 기상 시간을 취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사별(bereavement) 반응이라 부른다. 사별 반응의 핵심은 애도(grief), 즉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슬픔이다. 소중한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 뒤에 나타나는 애도 과정은 일반적으로 네 단계를 거친다.
처음엔 충격(shock)과 부인(denial)의 과정이 찾아온다. 고인의 죽음을 믿지 않으려 하는 심리를 보이다가는 반대로 상실의 느낌이 강하게 찾아와 슬픔과 그리움의 감성이 자신을 압도해 버린다. ‘쇼크 먹었다’란 말처럼 감정 반응이 회색에서 빨강, 그리고 검정으로 왔다 갔다 한다. 사별 후 2~3개월 정도 지속된다. 그러다가 지속적으로 고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사별 후 애도 반응의 단계
고인의 죽음을 부인하거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더 이상 일어나지는 않지만 생각과 대화의 대부분이 고인에게 집중돼 있다. 고인의 죽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그 사람의 존재감을 자기 곁에 유지시키는 것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이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절망과 우울감의 시기가 찾아온다.
고인이 더 이상 자기 곁에 있지 않음이 더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일어나는 애도 반응의 단계다. 우울하기도 하고 분노감이 생기다 죄책감과 불안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반드시 각 단계가 명확하게 구분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서로 중첩되면서 애도 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죽을 것 같은 사별의 충격이지만 우리 유전자에는 상실에 대한 회복 능력이 내재돼 있다. 사별 경험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삶의 내용이다. 그렇기에 회복 능력이 우리 안에 내재돼 있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이 슬픔에 빠져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영원한 이별을 경험하지 않는 인생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 또는 친구들이 상실의 사실을 잘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망자의 이야기를 계속하면 심리적 스트레스를 더 받고 정서적으로 오히려 나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다. 상실의 수용에 있어 떠나가신 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영안실에서 장례식 기간 동안 가족들, 그리고 찾아준 친구들과 말하기 싫든 좋든 망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냐” 하며 계속 질문 받고 답하게 된다. 그러면서 떠나감을 수용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애도 반응을 관리하는 지혜를 우리 조상들이 습득했다고 생각된다. 사별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글로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애도 반응에서 일어나는 불안, 우울, 분노를 함께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돌아가신 이와 연관된 기념일에 함께 해주어야 한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이 시간은 과거의 기억이 몰려오며 애도 반응이 강하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사람의 애도 반응을 잘 공감하고 경청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슬픔을 공감하면 자신의 마음도 슬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고픈 사람은 없다. 그러다 보니 애도 반응 중인 사람에게 “빨리 잊고 정상적인 마음, 일상생활로 돌아가라”고 충고하기 쉽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슬픔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상대방의 슬픔이 흘러나오는 것을 멈추게 하고픈 무의식도 섞여 있는 말이다. 상식과 달리 잘 이별하려면 애도 기간 중에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억지로 잊고 빨리 긍정성을 가지려고 하는 작위적인 노력은 좋지 않을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성급하게 새로운 만남이나 취미를 권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면 함께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사별 후 6개월에서 1년이 지났는데도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애도 반응을 보이는 경우에 전문가 도움을 받을 것을 권유한다. 만성 우울증 등 정서적인 장애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