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 세상 품은 특별한 선물

The Precious Message, 캔버스에 유채, 162.1×97cm, 2017년

LIFE & ●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김시현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작품 제목을 보면 그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김시현 작가는 일괄적으로 <더 프레셔스 메시지(The Precious Message)>라는 작품 제목을 사용한다. 사전적 의미는 대략 ‘희귀하고 많은 금전적 가치를 지닌 아주 귀중한 메시지’ 정도 될 것이다. 보자기에 싸여 무슨 물건인지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 안엔 뭔가 특별한 것이 들어 있을 것만 같다. 과연 김 작가는 어떤 선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김시현 작가의 작품은 ‘보자기’라는 소재의 특성을 살려 한국적인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처음부터 보자기가 메인 테마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보자기 형상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물론 라는 작품 제목도 이때부터 등장한다. 대학 졸업 이후 1997년부터 2000년 초반까진 소소한 변두리 풍경을 햇살에 의한 음영효과로 그려낸 수채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2006년에 들어서 <흐름>이란 시리즈 제목을 잠시 사용하다가 2007~2008년에 <코리아 판타지(Korea Fantasy)>라는 통일된 제목을 사용하며 ‘한국적 이미지’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2004년에도 라는 제목을 간헐적으로 사용했지만, 이때는 한복 입은 여인이 주로 연꽃 혹은 연못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2007년에야 비로소 일반 정물과 어우러져 한국적 문양과 탁자에 깔린 보자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릴레이션(Relation)>이란 제목으로 잠시 천을 활용한 매듭 시리즈가 발표되는데, 바닥에 깔렸던 보자기와 이 천 매듭 형상이 합쳐져 지금 작품들의 근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채화 기법과 유채를 번갈아 가며 사용했지만 2009년부터는 유화 작품에 매진한다.

“한국적 감성과 극사실적인 표현을 조합해 동양의 정신적인 신비로움을 표출하려 합니다. 특히 한국적인 진정한 조형미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끊임없이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 작가의 내적, 외적 환경과 동시대적 감성 역시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보자기 형상은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상대방과의 아름다운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김 작가는 작품의 메인 소재인 보자기와 배경의 조화로운 어우러짐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주제를 살리기 위한 배경의 색상 처리 또는 부주제와의 관계성에 큰 비중을 둔다. 또한 단순히 보자기의 주름 표현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간 다양한 문양이나 한 땀 한 땀 손수 놓은 자수 표현까지 극사실적 기법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끌어낼 몇 가지의 키워드를 제공한다. 가령 ‘한국성·포용성·모성애 & 치유·선물’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우선 ‘한국적 이미지’를 극대화시켜주는 전통적 표상으로 옛 궁중에서 쓰이는 무늬에 주목했다. 초창기부터 애용한 모란, 봉황, 단청, 오방색동 등과 더불어 최근엔 팝 성향의 이미지도 과감하게 어우러져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다음으로 보자기가 지닌 ‘포용적인 인상’이 큰 역할을 한다. 보자기의 용도를 단순히 물건을 감싸는 쓰임 외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모든 물건을 쌀 수 있는 넉넉한 포용성은, 마치 새가 알을 품듯 ‘자식을 품은 어머니’에도 비유할 만하겠다. 그래서 넓게는 김시현의 작품에서 ‘모성애적인 치유’의 넉넉함까지 ‘선물’하고 있다. 그 선물이 바로 김 작가만의 중심 메시지를 대변한다.

김 작가가 보자기에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대학원 시절 작업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그에게 지도교수는 “너무 멀리에서 찾지 마라. 발아래 가장 가까운 것부터 찾아봐라”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고 보니 유년 시절부터 가슴 깊숙이 잠들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오빠와 언니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집안일 중인 어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어린 눈에 불현듯 들어온 것이 바로 어머니께서 시집올 때 가져오신 장롱 속의 형형색색 자수무늬 이불 보자기였다.

그것은 영락없이 온전한 프레임을 갖춘 하나의 예술품이나 진배없었다. 그 뒤로 골무며 색동 천 조각이나 어머니의 반짇고리까지, 또 다른 여러 여성용 소품들도 장난감이 돼줬다. 그렇게 작가와 함께 자란 어릴 적의 감성은 어느덧 김시현에게 예술가적 영감의 원천이 된 것이다. 분명 2차원의 평면성을 지닌 보자기지만, 그 어떤 3차원의 대상이라도 고스란히 싸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매력이다. 여기에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자기에 싸인 형상을 그대로 살린 변형 캔버스 역시 더 큰 조형적 재미를 선사한다.

최근엔 풍부한 스토리텔링 만들기에도 주력하고 있다. 특정 대상을 보자기로 싼 형상성에 ‘읽는 재미의 문학적 코드’가 더해졌다. 물론 다양한 문화의 혼재, 동서양의 조우 등 ‘서로 다름의 융합’이란 주제 설정은 변함이 없다. 특히 보자기 미학을 통해 삶 속에 즐기는 대중적 소비문화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궁중 다례복 문양의 바탕 표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차용한 보자기에 카라 꽃, 코카콜라 문양 보자기에 칠보봉황 비녀, 조선 순조의 차녀 복온공주(福溫公主) 활옷 문양을 활용한 보자기에 루이비통 권총의 컬래버레이션까지 흥미로움의 연속이다.

“이전 작품에선 보자기 이미지를 화면 중앙에만 놓은 직설적인 화법이었다면, 이번엔 민화(民畵)식 그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민화의 대표적 모란 이미지와 보자기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동시에 생경함을 전하려 했습니다. 예로부터 ‘모란은 부귀영화’라는 공식이 통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마침 ‘보자기’와 ‘복(福)’의 한자 발음마저 유사해 남다른 재미를 전합니다. 그리고 보자기 그림의 재료 기법 면에도 동양 미학의 정수로 꼽히는 민화를 서양 화구인 유화 재료로만 그린 겁니다. 비록 서로 다른 상반된 이미지의 만남이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새롭고 긍정적인 융합의 기운이 발현되길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The Precious Message, 캔버스에 유채, 72.5×72.5cm, 2016년

작품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프로적 근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보자기들은 대개 김 작가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특정한 문양이나 그림 이미지를 골라 컴퓨터 작업을 거쳐 실크 천에 전사한다. 그다음엔 다양한 기물을 싼 보자기를 적당하게 연출해 고화질 사진 촬영을 거친다. 이를 참고해서 밑 작업을 마친 캔버스 화면에 직접 스케치한 후 ‘초벌 칠-묘사 작업-건조’ 등의 후가공을 거쳐야만 최종적으로 바니시를 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일반인이 회사에 출근하듯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반복한다. 특히 작업의 집중력을 위해 TV 대신 라디오를 선택했다는 대목에선 그 집요함이 짐작된다.

김 작가의 보자기는 실용적인 도구 그 이상의 존재감이다. 보자기에 화려한 색채와 문양을 수놓은 것은, 주는 이가 받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표하기 위함이다. 그 소통과 교감의 상징인 보자기 작품에 일관되게 라는 제목을 내세운 것도 그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그 안에 품고 있는 ‘특별한 궁금증과 설렘’은 보는 이에게 주는 보너스 선물인 셈이다. 받는 이의 감성과 경험에 따라 제각각으로 해석되는 김시현의 보자기 작품은 행복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토크박스 역할을 대신한다.

작품 가격은 전시 기준 10호(53×45.5 cm) 크기가 5년 전의 18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다소 올랐고, 30호(90.9 ×72.7cm) 600만 원, 100호(130×162cm) 1500만 원 정도로 책정돼 있다. 참고로 오는 10월 28일부터 서울 청담동 ‘갤러리 두’에서 개인 초대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세종대 겸임교수,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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