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광고회사 사장에서 디젤엔진 사업가로

장유필 (주)광남컴퍼니 대표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21세기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친환경’이다. 특히, 배기오염 배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디젤엔진 분야에선 미래 생존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이 중 100년 전부터 이 키워드를 차근히 풀어 온 기업이 있다. 바로, 일본의 프리미엄 디젤엔진 제조사 얀마(Yanmar)다. 현재 한국에서 얀마와 가장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 장유필(51) (주)광남컴퍼니 대표와 만나 디젤엔진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엿들어 봤다.

장유필 (주)광남컴퍼니 대표는 스스로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특별히 말을 재밌게 하는 재주도 없을뿐더러, 딱히 내세울 만한 취미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을 향한 그의 집념만큼은 결코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회사와 자신의 일에 애정이 있기 때문일 터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지금의 일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장 대표의 꿈은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실현하고자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주)신원에 입사해 기획 및 마케팅 업무에 뛰어들었다. 이후 장 대표는 10년간의 직장생활 끝내고 광고회사 T&M기획을 설립, 사업가로서 탄탄대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부친인 장준호 (주)광남상사 회장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장 대표의 인생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바로, 부친의 사업을 잇게 된 것이다. 장 회장이 이끈 광남상사는 1975년부터 약 40년간 디젤엔진으로 유명한 일본 얀마 한국 공식 대리점으로 산업용·선박용 엔진과 발전기를 국내에 공급하고, 순정부품과 사후관리(AS)를 제공해 왔다. 이후 2011년부터는 장 대표가 출범한 광남컴퍼니로 얀마와의 인연을 끈끈하게 지속하고 있다.

얀마는 1912년 일본 오사카시에서 발동기 공작소로 시작해 명실 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엔진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다. 특히, 100년 넘게 한결같이 ‘연료보국(燃料報國: 기름을 아끼는 것이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기치 아래 ‘연비’와 ‘친환경’ 면에서 독보적인 성능의 디젤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1933년엔 세계 최초로 상업용 콤팩트 디젤엔진을 출시했고, 1955년 독일 발명가협회의 ‘디젤 금메달(Diesel Gold Medal)’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현재 일본 본사와 지사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북미·중남미에 글로벌 거점을 두어 각 지역의 특성과 요구에 맞춘 최적화된 제품을 조달해 전 세계 고객에게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얀마가 지난 100년간 디젤엔진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또한 반세기 넘게 얀마의 유일한 국내 파트너로 세대교체 이후에도 끈끈한 관계를 지속해 온 광남컴퍼니만의 신뢰 경영과 디젤엔진 시장의 미래도 궁금해졌다. 장 대표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얀마는 어떤 회사인가요.
“얀마는 세계 3대 디젤엔진 제조사로 주로 선박용과 육상용 디젤엔진을 생산합니다. 그중 육상용은 일본의 비와(Biwa)공장에서 연간 43만 대(2020년 80만 대 생산 목표)가 생산되고 있는데, 이는 디젤엔진을 생산하는 단일 공장으로선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선박용 엔진은 현재 현대조선과 삼성중공업 등 국내외 유명 조선소에 엔진을 납품하죠. 얀마가 1912년 창립부터 줄곧 세계 최고 등급의 디젤엔진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독일 기술자들로부터 디젤엔진 생산 원천기술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 여기에 설립자 마고기치 야마오카 초대 회장의 투철한 ‘연료보국’ 바람이 더해지면서 ‘연비’와 ‘친환경’ 면에서 독창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1933년 세계최초의 수평형 수냉식 소형 디젤엔진인 HB-타입(HB-type) 디젤엔진 개발은 물론, 2012년엔 세계최초로 CARB (California Air Resources Board) Tier-4 인증을 획득하는 등 엄격하고 까다로운 전 세계 규정을 통과한 세계 최고 품질의 산업 및 해상용 엔진과 발전기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력만큼이나 ‘소통’이 잘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일본에는 호렌소(報連相) 문화가 있습니다. 즉, ‘보고’, ‘연락’, ‘상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인데 기업에서 업무 진행 상황을 빼놓지 않고 상부에 보고하고, 그걸 토대로 끊임없이 회의하고 소통하는 것이죠. 이런 투명한 소통 문화가 얀마를 지난 1세기 동안 최고의 자리를 유지시켜준 주된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부친 장준호 회장이 얀마와 인연을 맺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버님은 청년 시절인 1960년 초반부터 무역업을 하셨습니다. 홍콩 등 해외 출장을 자주 가셨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의 얀마를 알게 됐고, 거래를 시작하셨죠. 당시엔 지금처럼 공식대리점은 아니고 그저 소규모로 제품을 수입·판매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던 중 국내에서 얀마 제품 납품과 관련해 큰 문제가 생겼어요. 일본 기업이라는 점도 기업 이미지에 불리하게 작용했죠. 이때 저희 아버님이 해결사를 자처하셨죠. 얀마 제품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하셨던 거죠.

아버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문제는 해결됐고, 이후 당시 얀마 본사의 다다오 야마오카 3대 회장이 아버님의 남다른 책임감에 감동해 지금까지 사업적 파트너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얀마 100주년 박물관 건립 행사 전야제 파티에서도 전 세계 대리점 중에서는 유일하게 저희 광남컴퍼니만 초청받을 정도였어요. 다게히토 야마오카 4대 회장과 저희 가족 간 끈끈한 파트너십을 나누고 있죠. 상대를 가족같이 섬기는 마음과 투철한 신뢰가 바탕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 같습니다.”

원래 광고 쪽 일을 하셨던데 부친의 사업을 잇게 된 이유가 있나요.
“과거 아버님이 사업을 꽤 크게 하셨어요. 큰 조선소만 국내 2개 보유하고 계셨죠. (주)광남상사 외에도 (주)광양중공업, (주)광양종합기계를 설립했죠. (주)광양종합기계는 얀마 100년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얀마 제품을 자체 생산한바 있습니다. 그만큼 사업에 대한 열정도 많으셨고, 공도 세우셨죠. 그런데 세상일이 꼭 원하는 대로만 흐르는 건 아니잖아요. 잘 진행되던 사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법정관리 수순까지 이어졌어요.

그래도 얀마와의 인연을 끊고 싶지 않았죠. 그 과정에서 차남인 제게 아버지께서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시면서 제가 (주)광남컴퍼니를 설립해 다시 얀마와 공식대리점 계약을 맺게 됐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정말 하기 싫었어요. 원래 꿈이 광고 쪽이었고, 평생 문과계열 공부만 했던 제게 디젤엔진 사업은 버거운 숙제였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얀마 본사가 운영하는 영업 시스템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잘 돼 있어서 적응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장 대표가 엔진 영업에 전념하기 위해 부인인 이연정 이사가 광고회사 업무를 맡아 함께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엔진 시장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엔진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비와 친환경입니다. 특히, 친환경 요소는 단연 미래 사업의 생존이 걸린 키워드라고 할 수 있죠. 배기가스 규제는 자동차 산업에 이어 이제 산업용이나 선박용 엔진에 대해서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죠. 현재 미국은 미국환경청(EPA)에서 배기가스 환경 규제의 일환으로 친환경 티어4 엔진을 권고하고 있고, 2019년부터는 티어5로 규제 수준을 더 높일 예정이죠.

유럽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엔진인증(EU STAGE)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얀마의 엔진은 미래 경쟁력을 갖췄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현재 상용되고 있는 얀마 티어4의 스펙이 이미 티어5 기준에도 적합하기 때문이죠. 특히, 최근 상용화된 얀마의 엔진 ‘4TNV94FHT’의 경우, 파이널티어4 제품으로 고출력 밀도, 저속 고회전력, 낮은 연료소비율을 자랑하죠.”

사업을 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경험이 있으시다면요.
“광남컴퍼니를 처음 출범시키고 정작 어떻게 영업을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어요. 제가 엔진에 대해서 많이 알던 시절도 아니었고요. 고민 끝에 우선 선박용 엔진 영업에 뛰어들었죠. 그런데 당시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라 조선소들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엔진을 사려는 조선소가 많지 않았죠. 하지만 틈새시장이 하나 있더라고요. ‘예인선’ 시장이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크게 예인선 사업을 하는 대륙상운을 찾아냈어요. 대륙상운에서 운행하는 예인선의 엔진 90%가 얀마의 라이벌 N사 제품이었어요. N사의 경우, 예인선 엔진뿐만 아니라 엔진만큼 중요한 프로펠러도 생산하고 있어서 동시에 대륙상운에 제품을 납품했죠.

얀마는 오로지 디젤엔진만 생산하는 기업이라서 가격을 어떻게 맞출까 고민이 됐어요. 사실 엔진 가격은 얀마가 조금 더 비쌌거든요. 그만큼 품질은 자신 있었고요. 고민 끝에 유럽의 유명 프로펠러 회사 두 곳과 합작해서 대륙상운 예인선 1대에 엔진을 납품하는 데 성공했죠. 시기적으로도 굉장히 좋았던 게 당시 엔화 가치가 3배가량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N사의 엔진과 프로펠레 가격보다 얀마 엔진에 유럽 회사의 프로펠러를 합작한 가격이 더 이점이 있었어요. 게다가 한번 대륙상운 김진동 대표님이 얀마 엔진을 써보니 그 성능이 훨씬 좋다는 걸 알게 되면서 주변 분들에게 많이 홍보를 해주어 판매도 많이 늘었죠. 그때 참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바쁜 일상 속 장 대표님만의 휴식 방법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술도 마시면서 지인들과 회포를 풀기도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끊었습니다. 물론, 금단 증상도 있었죠.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우연히 어느 책에 그런 구절이 있더라고요.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교양을 쌓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말초적인 쾌락이나 감정은 궁극적으로 저의 외로움을 해소해주지 못하죠. 그래서 그때부터 시간만 나면 책을 읽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휴식을 즐깁니다.”

평소 존경하는 롤 모델이 있다면요.
“요즘 사람들은 식상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의 아버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저의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번뜩이는 아이디어, 그리고 성실한 삶의 자세로 사업을 이끄셨습니다. 그걸 자연스럽게 보고 자란 것이 제겐 큰 도움이 됐죠.”

앞으로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지금처럼 얀마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시키면서 대리점 외에도 부친이 하셨던 대로 독자적인 생산라인을 구축할 수 있도록 열정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장유필 (주)광남컴퍼니 대표는…
1991년 한국외국어대 졸업
1991~1999년 패션기업 ㈜신원 근무
1999년 7월 광고회사 T&M기획 설립
2011년 1월 ㈜광남컴퍼니 설립
일본 얀마사 한국 공식 파트너 계약
산업용·해상용 엔진 및 부품 판매
2017년 세계 발전기 5대 메이커 중 하나인 HIMOINSA 한국 대리점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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