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현재 전 세계는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건 쟁탈전을 치르고 있다.
리튬은 21세기 들어 전기자동차를 비롯해 스마트폰, 노트북 등 각종 전자제품의 배터리 소재로 사용되면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볼리비아 남서쪽 포토시주의 우유니 소금사막. 해발 3653m에 있는 이곳의 면적은 1만2000㎢나 된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봐도 소금밖에 없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지각 변동으로 솟아올랐던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2만 년 전에 녹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소금 총량은 최소 100억 톤으로 추산되며 두께는 1m에서 최대 120m까지 다양하다. 이곳에는 전 세계 리튬(lithium) 매장량의 절반에 달하는 500만 톤이 염화리튬 상태로 녹아 있다.
우유니 소금사막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칠레, 아르헨티나 등 남미 3국은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80%를 보유해 ‘리튬 트라이앵글’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 호주 등에도 리튬이 매장돼 있다.
리튬은 원자번호 3번 원소로 지구상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이다. 우주 생성의 대폭발 시 수소, 헬륨과 더불어 처음으로 생성된 원소다. 스웨덴 과학자 요한 아르프베드손이 1817년 엽장석이라는 광물에서 리튬을 처음 발견했다.
암석을 뜻하는 그리스어 ‘리토스(lithos)’에서 이름을 따온 리튬은 21세기 들어 전기자동차를 비롯해 스마트폰, 노트북 등 각종 전자제품의 배터리 소재로 사용되면서 ‘하얀 석유’라는 말을 들어왔다.
특히 최근 들어 전기차 생산이 증가하면서 리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리튬은 전기차의 리튬-이온 배터리 및 에너지저장장치(ESS)에 필요한 핵심 원료다. 캐나다 광물 회사 퓨어에너지미네랄에 따르면 전기차에는 리튬 28kg이 사용되는데, 이는 스마트폰에 쓰이는 리튬(0.02kg)의 1400배 수준이다.
◆리튬 수요 급증…생산량은 제자리걸음
리튬은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한정된 희소 광물이다. 그러다 보니 리튬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각국이 사활을 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세계 주요 자동차·배터리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생산 설비를 급속도로 늘리고 있어 리튬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펀드 정보 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리튬 수요는 2015년 17만6000톤에서 2025년 77만5000톤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 투자은행(IB) 맥쿼리도 2020년 리튬 수요(26만1000톤)가 공급(23만7000톤)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자재 가격 정보 업체 플래츠도 2020년이 되면 리튬 수요(32만 톤)와 공급(32만1000톤)이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오는 2025년까지 리튬 수요가 현재의 3배 수준인 57만 톤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리튬 생산량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을 비롯해 일본 등 각국은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최대 리튬 생산 업체 티앤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리튬 광산인 호주 그린부시 광산의 지분 51%를 확보했다. 그린부시는 9만5000톤 규모의 리튬 생산능력을 갖췄다.
티앤치는 또 리튬 가공 공장을 확장하기 위해 5억78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티앤치는 중국 쓰촨성과 티베트 시가체 지역에도 리튬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장시성의 간펑리튬은 지난 5월 광산 개발을 위해 호주 리튬 생산 업체인 필바라 미네랄과 공급 및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간펑은 호주 마리온 광산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리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국 산시성의 제이앤알 옵티멈 에너지도 지난 6월 호주 알투라 마이닝과 투자 계약을 맺었다. 중국 국영기업 시틱도 칠레 최대의 리튬 생산 업체인 SQM의 지분을 확보했다. 심지어 중국 업체들은 아프리카까지 손을 뻗쳐 리튬 광산 개발에 참여하거나 리튬 생산 업체의 지분까지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세계 전기차 시장 1위 기업인 BYD는 중국 내륙의 리튬 광산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리튬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자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자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은 올해 40.6기가와트시(GWh)에서 오는 2021년 151.6기가와트시로 4배 정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전기차 생산량은 2014년 8만4000대, 2015년 38만 대, 2016년 52만 대를 기록하는 등 매년 급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는 2020년 전기차 생산량을 500만 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공업신식화부(MIIT)는 2018년부터 전기차 의무 판매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전체 차량의 8%를 전기차로 생산해야 한다.
일본 자동차 업체 도요타도 10년 전부터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도요타그룹 내 종합상사인 도요타통상은 2012년 아르헨티나 북서부 개발 허가를 얻었고, 호주 광산 회사 오로코브레와 합작사를 설립했다. 도요타가 공동 개발에 나선 호주 올라즈 광구의 생산량은 연간 최대 1만7500톤이고, 향후 25년간 채굴할 수 있다.
전기차 시장 트렌드를 선도하는 미국의 테슬라는 물류비 절감을 위해 북미대륙에서 리튬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테슬라는 북미 광물 기업들과 리튬 공급 계약 2건을 연달아 체결했다. 대표적으로 멕시코 소노라 리튬 프로젝트는 생산을 개시하면 3만5000톤에서 5만 톤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유할 전망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네바다주 사막에 세계 최대 배터리 공장인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고 있다. 머스크는 기가팩토리를 통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보여 왔다. 기가팩토리가 2018년 완공되면 생산량이 연간 35기가와트시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는 올해 말 4개의 새 기가팩토리 건설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독일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 AG는 향후 5년간 90억 유로를 투자하는 등 배터리 개발에 기존 예산의 3배를 투입할 계획이다. 또 독일 자동차 업체 다임러 AG도 배터리 개발에 100억 유로를 투자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리튬의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이 치솟자 리튬 생산국들은 각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개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리튬은 호주 탈리슨 광산(36%), 칠레 SQM(21%)과 알버말(19%), 아르헨티나 FMC(11%) 4곳에서 전체 물량의 90%가 생산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최근 리튬 생산을 늘리기 위해 각종 금융 및 세제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아르헨티나는 주로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러시아, 일본, 네덜란드에 리튬을 수출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리튬 생산이 두 번째로 많은 국가다.
리튬은 아르헨티나의 광산업 중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각국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들여 앞으로 리튬의 연간 생산량을 16만5000톤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경우 아르헨티나는 리튬 생산 1위 국가가 된다.
◆전기차 시장 급성장에 광물 가격 폭등
세계 최대 구리 생산 업체인 칠레 국영기업 코델코는 리튬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 살라 데 마리쿤가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칠레 국가리튬위원회는 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해 리튬 개발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칠레의 리튬 생산 원가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 하나인 볼리비아도 우유니 소금사막의 리튬을 개발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들일 계획이다. 좌파 성향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그동안 해외 투자를 거절하고 독자적으로 리튬을 개발해 왔으나, 어려움에 직면하자 외국 기업들에 문호를 대폭 개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서부 네바다주에도 1800년대 서부개척 시대의 ‘골드러시’처럼 리튬을 개발하려는 광산 업체들이 몰려들고 있다. 네바다주에서 생산되는 리튬은 불순물인 마그네슘 농도가 낮아 정제 비용이 적게 든다.
바위를 깎아 리튬을 추출해야 하는 호주와 중국의 광산들과 달리 네바다주와 리튬 트라이앵글에선 땅 밑에서 광물을 채굴한 뒤 햇볕에 말려 수분을 없애는 방식으로 리튬을 뽑아낸다.
각국은 최근 들어 또 다른 희귀광물인 코발트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코발트는 리튬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다. 코발트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2차 전지, 그중에서도 한 번 충전하면 수백 km를 달릴 수 있는 고용량 2차 전지 제작에 필수적인 원료다.
니켈, 코발트, 망간 등 3가지를 섞어 만든 삼원계 배터리가 대표적인 고용량 배터리다. 전 세계에서 코발트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국가는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이다. 콩고의 코발트 생산량은 전 세계 60%를 차지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코발트의 수요뿐만 아니라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실제로 코발트 가격은 올해 초 톤당 3만2500달러에서 지난 7월 6만1000달러까지 88%나 올랐다. 코발트 수요는 지난해 4만3110톤에서 2021년 5만6010톤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콩고의 코발트 생산량이 지난해부터 크게 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콩고 내전 등 정치적 불안 때문이다.
특히 코발트는 ‘분쟁광물(conflict minerals)’로 규정돼 국제사회의 규제를 받고 있다. 미국은 2013년부터 코발트를 분쟁광물로 규정하고 유통을 제한했다. 무장 세력의 자금줄로 쓰이는 데다가 채취 과정에서 노동력 착취라는 인권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장기업뿐 아니라 분쟁광물로 전자부품을 만들어 미국 기업에 공급하는 외국 기업도 규제 적용 대상이다.
콩고의 코발트 광산은 대부분 중국 저장화유코발트와 자회사 콩고둥팡광업 등이 장악한 상태다. 독재자라는 말을 듣고 있는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은 2001년 이후 17년째 콩고를 장기 집권해 왔다. 카빌라 대통령은 지난해 말로 임기가 끝났지만, 과도정부를 구성해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콩고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으로 수백 명이 숨지고 1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코발트 등 천연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카빌라 대통령을 지원해 왔다. 아무튼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는 만큼 리튬과 코발트 등 배터리의 핵심 원료를 차지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은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