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꽂 맞는 신탁상속 설계, “분쟁 없는 상속 위한 최적의 수단”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강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다. 누구나 행복한 노년을 꿈꾸지만 치매는 물론, 자녀들 간 상속 분쟁으로 암울한 시기를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신탁’이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은 이날 상속포럼에서 현재 고령화사회에서 상속으로 야기될 수 있는 각종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다양한 신탁제도를 활용한 해결 방안을 꼼꼼히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업가 최 모(57) 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자식들이 대학 졸업 후 독립하거나 새 가정을 일궈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고 있지만 40대 초반에 결혼한 그는 10세, 15세 어린 자식들의 뒷바라지 할 일이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최근 몇 년 새 몸도 자주 피곤함을 느끼면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갑자기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 경우, 남겨질 아내와 아이들의 신변 걱정도 크다. 가령, 그간 자산관리를 해본 적이 없는 아내에게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주변의 꼬임에 속아 평생 일군 자산을 한순간에 날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결국, 최 씨는 주변의 권유로 유언대용신탁 서비스를 활용해 자신이 사망하면 재산의 절반가량인 수익형 부동산을 아내에게 양도하되 아내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처분하지 못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최근 최 씨처럼 상속·증여 문제의 대안으로 ‘신탁’을 활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신탁은 재산 보호라는 목적 외에 재산의 관리와 증식, 다양한 재산 승계 방법의 활용, 절세 효과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또한 생전에 재산을 자손들에게 이전하면서 자손들이 함부로 재산을 처분하거나 유용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도 쓰인다.

신탁계약은 위탁자의 자유의사대로 그 계약 내용을 매우 유연하게 정할 수가 있고 계약 내용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특히 신탁을 할 경우, 도산격리(insolvency protection)가 가능한데 이는 위탁자의 파산재단에도 귀속되지 않고, 수탁자의 파산재단에도 귀속되지 않는다.
이미 미국, 영국 등 외국에서는 상속과 관련해 유언장 대신 ‘신탁’을 한 방편으로 널리 이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적인 디바 고(故) 휘트니 휴스턴의 ‘유언신탁’이다. 그녀는 딸을 낳기 한 달 전에 유언신탁을 통해 ‘자녀가 재산 관리 능력이 있을 때까지 신탁으로 유산을 관리하다가 재산을 물려주라’는 계약을 했고, 이에 따라 상속재산은 1차(21세), 2차(25세), 3차(30세)로 나눠 지급되도록 했다. 따라서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에도 상속 절차는 계약된 신탁 절차에 따라 이뤄질 수 있었다.

고령화 시대, 맞춤형 신탁 가능
여기에 2000년부터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고령 상속은 간과할 수 없는 숙제와도 같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에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견되는 등 가파르게 고령 인구가 늘면서 상속 관련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따라서 최근에는 고객이 유언이 아닌 신탁계약 형태로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을 신탁해 고객의 생전 및 사후 신탁재산의 수익권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자를 지정함으로써 상속 플랜을 달성할 수 있는 ‘유언대용신탁’ 및 ‘수익자연속신탁’ 관련 상품들이 호응을 얻고 있다.

그중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서 작성 없이도 신탁계약으로 재산 상속이 가능토록 한 것인데 유언과 달리 상속 자산을 자식에서 손자로, 아내에서 아들로 순차적으로 지정해 세대 간 연속 상속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유언대용신탁 설정 시 노후를 대비한 효율적인 재산 관리는 물론 본인 사망 시 어린 자녀를 위한 안전한 재산 상속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옵션을 만들 수 있고, 특히 신탁의 경우 채권자로부터 재산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자녀에게 자산이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KEB하나은행의 치매안심신탁의 경우, 치매가 오기 전이나 치매 초기일 때 신탁을 통해 자산관리와 상속 설계를 해 놓을 수 있다. 병원비, 간병비, 생활비 등을 미리 지정하면 치매 판정 후 은행이 돈을 관리해준다. 성년후견인지원신탁도 비슷하다. 성년이지만 발달장애인 등 판단 능력이 없어 법원에서 성년후견 개시 심판 또는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은행이 후견인으로서 생활비를 지급하고 주요 재산을 보전·관리해준다.

‘가족배려신탁’ 상품은 본인이 사망했을 때 남은 가족들이 부담 없이 장례를 치르고 세금, 채무 상환, 유산 정리 등 사후에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은행에 금전재산을 위탁하고 가족이나 믿을 만한 사람을 귀속권리자(사후 맡긴 돈을 찾아갈 사람)로 미리 지정하게 되면 본인이 사망했을 때 별도의 유산 분할 협의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귀속권리자에게 신탁된 금전재산을 지급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은행이 건물을 위탁받아 건물의 자산 가치와 임대료 수익을 높여주는 ‘부동산 트러스트(신탁)’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부동산 트러스트는 은행이 일정한 수수료를 받으면서 건물의 관리와 리모델링, 신축, 시공, 임대까지 대행하고 건물 주인은 임대 수익만 챙기는 자산관리 서비스다. 가령, 부모의 사망으로 건물을 상속받은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하는데 상속인이 건물을 관리할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해외에 거주해 건물을 관리하기 어려운 경우에 부동산 트러스트 서비스를 받으면 편리하다.

이 밖에도 부동산 트러스트의 장점 중 하나는 건물주가 갑자기 사망하더라도 자녀들의 상속 분쟁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과 건물관리 신탁계약을 맺을 때 건물주가 불의의 사고 등으로 사망할 경우 누구에게 상속할지 계약서에 명시할 수 있을뿐더러, 미성년자인 자녀가 상속을 받을 때에는 부동산 트러스트를 통해 일정 기간 은행에 관리를 맡겨 건물의 자산 가치를 유지하다가 자녀가 성인이 된 후 상속받도록 할 수도 있다.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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