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미국의 모든 주법에서는 유언이 문서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다만 유언자가 서명할 의도로 기재한 표시라면 이름 전체를 완전하게 쓰지 않더라도 인정해준다.
미국의 원칙적인 유언 형태인 인증유언(Attested Wills)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문서요건, 서명요건, 증인요건(면전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미국 통일상속법(UPC)을 포함한 모든 주법들은 유언이 문서로 이루어질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음성 녹음이나 비디오 촬영은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유언으로서 기능을 할 수는 없다. 인증유언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유언자가 서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언자가 자신의 이름 전체를 완전하게 쓸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유언자가 서명을 할 의도로 기재한 표시이기만 하면 충분하다.
예컨대 맥케이브의 유산(In re Estate of McCabe) 사건에서 유언자인 제임스 맥케이브는 사망하기 15일 전에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당시 그는 너무 몸이 약해서 유언장에 자신의 이름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타이핑돼 있는 곳 윗부분에 ‘X’라고만 표시했다. 이해관계가 없는 증인이 유언자의 표시임을 인정하고 서명하면서 그 표시 옆에 ‘증인(witness)’이라고 기입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이 증인으로서 서명했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은 유언장의 유효함을 인정하면서 설사 증인이 유언자의 ‘X’ 표시 옆에 유언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았더라도 무방하다고 판시했다. 텍사스주 항소법원도 필립스 대 나자르(Phillips v. Najar) 사건에서 유언자가 손으로 글씨를 쓰는 능력이 악화돼 할 수 없이 ‘X’라고만 표시한 유언장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대부분의 법원은 증인이 서명하기 전에 유언자가 먼저 유언장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번스 대 아담슨(Burns v. Adamson) 사건에서 문제가 된 유언장에는 3명의 증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증인은 유언자가 서명하기도 전에 먼저 서명하고 자리를 떠났으며, 또 다른 증인은 유언자가 서명하는 것을 목격하기는 했지만 정작 자신은 서명하지 않았다.
이 유언이 행해진 아칸소주법에 따르면 최소한 2명의 증인이 유언자가 서명할 당시 출석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 유언의 경우에는 이 요건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법원은 이 유언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인증유언서 증인은 필수불가결 요건
인증유언에 있어서 증인은 본질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다. UPC를 채택하지 않은 주들은 일반적으로 증인이 유언자의 면전에서 유언장에 서명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무효가 된 유언장은 무수히 많다.
예컨대 웨버의 유산(In re Estate of Weber) 사건에서 피상속인인 웨버는 몸이 아파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자신이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은행 앞에서 차를 멈추고 은행 지점장에게 자신의 재산을 아내와 조카에게 나누어준다는 취지의 유언장 작성을 부탁했고, 지점장이 유언장 초안을 작성해서 그에게 가져왔다.
그는 차 안에서 유언장에 서명했고 지점장이 그 유언장을 가지고 은행 안으로 들어가 은행 직원들이 증인으로 서명했다. 피상속인과 증인들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그런데 지점장은 유언장 초안을 작성하면서 웨버의 아내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웨버는 이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캔자스주 대법원은 면전요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유언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은행 직원들은 웨버가 서명하는 것을 볼 수 없었고, 웨버 역시 그들이 서명하는 것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애초에 유언장 초안이 잘못 작성됐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유언의 효력을 부인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경우에 이러한 면전요건이 충족되는지에 관한 심사 기준으로는 전통적인 다수 견해인 ‘시야 기준(line-of-vision test)’과 제3차 재산법 리스테이트먼트가 채택한 ‘의식적 현존 기준(conscious-presence test)’이 있다.
전자는 유언자의 시야 내에서 증인이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유언자가 자신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도 유언장이 인증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을 요구한다. 유언자가 정말로 보았을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증인이 유언자와의 전화를 통해 유언자의 유언 의사를 확인한 경우에는 면전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된다[제퍼슨의 유언(Will of Jefferson), 미시시피주 대법원 1977년]. 그러나 이 기준은 지나치게 형식 논리적이며 유언자가 맹인인 경우를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의식적 현존 기준’은 면전요건을 보다 자유롭게 해석한다. 즉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직접 보지 않고서도 그 사람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하여 유언자가 증인을 직접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증인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이면 면전요건이 충족된 것으로 본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