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면에 웃음 짓는 방산업체들

[한경 머니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강대국들이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는 등 군비 경쟁을 벌이면서 방위산업체(이하 방산업체)들도 특수를 맞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에 따라 동북아와 동남아를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국방 예산이 증가하고 있고, 러시아의 위협에 안보를 강화하는 서유럽 국가들이 국방 예산을 늘리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방산업체들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호황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력 강화 방침에 따라 2018 회계연도(2017년 10월~2018년 9월) 예산안 가운데 국방 예산을 크게 늘렸다. 국방 예산은 2017 회계연도보다 비율로는 10%, 금액으로 540억 달러(61조2630억 원) 증가한 6030억 달러(684조1035억 원)로 책정됐다.

미국의 국방 예산 증액 규모는 우리나라 1년 치 전체 국방 예산(40조 원)의 1.5배에 달한다. 2018 회계연도 국방 예산은 이라크전이 막바지이던 2007년(증가율 12%)과 2008년(10%) 이후 10년 만에 최대 폭이다. 미국 국방 예산은 2010년 6910억 달러를 기록한 뒤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계속 줄어들어 2013년 이후 5500억~6000억 달러 안팎을 기록해 왔다.

트럼프 정부는 늘어난 국방 예산을 함정과 전투기 구매 등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함정을 275척에서 355척으로, 전투기를 1100대에서 1200대로 각각 늘리고, 육군 5만 명과 해병대 1만2500명을 증원하는 등 군사력을 증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의회는 트럼프 정부가 제출한 2018 회계연도 예산안을 심의해 편성할 계획인데, 공화당과 민주당은 국방 예산의 적절한 증액 규모를 놓고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은 국방 예산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국방 예산 증액이 너무 과도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민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정부의 국방 예산 증액안은 대부분 그대로 반영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도 올해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렸다. 중국의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는 지난 3월 국무원이 제출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중국의 올해 국방 예산은 1조444억 위안(175조 원, 1510억 달러)으로 지난해 국방 예산 9544억 위안에 비해 9.4%가 증액됐다.

중국의 국방 예산이 1조 위안이 넘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중국의 국방 예산은 우리나라의 4배, 일본의 3배가 넘는 액수지만 미국의 4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의 국방 예산은 2011년 12.7%, 2012년 11.2%, 2013년 10.7%, 2014년 12.2%, 2015년 10.1% 등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왔지만 지난해엔 6년 만에 처음으로 7.6%로 한 자릿수 증가율에 머물렀다.

하지만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의 국방 예산이 실제로는 정부의 공개 규모보다 최대 3배 정도 많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전인대에 보고하는 공식적인 국방 예산 이외에도 은폐성 군사 예산을 운용해 왔다.

이 때문에 실제 국방 예산은 훨씬 많을 것으로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추정해 왔다. 실제로 과학기술 연구비나 지방정부 개발비 등에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 국방 예산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에 쏟아 부은 엄청난 자금은 하이난 성 개발비 예산에 들어가 있다.

또 군사용 무인기, 군함, 전투기, 미사일 등의 무기 체계 개발에 투입되는 예산은 과학기술 연구비로 책정돼 있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경제성장율보다 더 높게 국방 예산을 증액시켜 왔다. 특히 해·공군력 현대화에 막대한 자금을 퍼붓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국방 예산은 공개한 수치보다 최소 2~3배는 많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국방 예산도 눈이 띄게 늘어났다. 일본은 국방 예산을 방위 예산, 또는 방위비라고 부른다. 2017 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 방위 예산은 5조1251억 엔(51조8000억 원)이다. 2016 회계연도보다 1.4%(710억 엔)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일본의 방위 예산은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한 이후 지난 2013년부터 5년 연속 증가세를 보여 왔다.

일본 정부는 올해 방위 예산을 대폭 늘린 이유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이 앞으로 방위 예산의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1%보다 높게 편성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GDP 대비 방위 예산 1% 이내의 원칙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일본 역대 정부는 1976년 미키 다케오 총리 시절부터 이 원칙을 유지해 왔다. 아베 총리가 내년부터 이 원칙을 바꾸면 집단자위권 행사, 무기수출금지 3원칙 폐지에 이어 일본이 오랜 시간 유지해 온 방위 원칙을 또 하나 깨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트럼프 정부도 일본 정부의 방위 예산 증액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이 군사대국의 길을 질주할 것이 분명하다.

미·중·일 국방 예산 크게 늘어
이처럼 주요 강대국들을 비롯해 전 세계가 냉전(冷戰) 때보다 더 많은 군비를 쓰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의 군사비 지출은 총 1조6860억 달러(1930조4400억 원)로 냉전이 절정이던 1988년 1조4410억 달러보다 2450억 달러가 더 많았다. SIPRI는 특히 아·태 지역이 중국 때문에 군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고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군비 지출은 4차례의 변곡점을 거치면서 급등했다.

첫 번째는 1950년 한국전쟁, 두 번째는 베트남전, 세 번째는 1980년대 미·소 군비 경쟁, 네 번째는 2001년 미국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이었다. SIPRI는 지금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가 새로운 군비 대결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각국의 군비 증강에 무기 수출국들과 방산업체들도 신바람이 나고 있다. SIPRI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세계 무기 수출 시장에서 상위 5개국을 보면 미국(전체 비중의 33%), 러시아(23%), 중국(6.2%), 프랑스(6.0%), 독일(5.6%) 등이다. 이들 무기는 세계 100대 방산업체들이 주로 생산한다. 이들 업체의 무기판매액(2014년 기준)은 4010억 달러에 달했다. 100대 무기 생산업체 매출액의 80.3%를 미국과 서유럽에 본사를 둔 회사들이 차지했다.

특히 상위 10개 업체는 모두 미국과 서유럽 국가 회사들이다. 이들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49.6%나 된다. 세계 최대의 방산업체는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다. 록히드 마틴은 세계 최강의 전투기인 F-22를 비롯해 F-35 등 각종 항공기와 사드(THAAD), 패트리엇(PAC)-3 등 요격미사일 체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록히드 마틴이 제작한 7조4000억 원 규모의 F-35 40대를 도입한다.

록히드 마틴 이외의 방산업체들을 보면 2위 미국 보잉사, 3위 영국 BAE 시스템스, 4위 미국 레이시온, 5위 미국 노스롭 구르먼, 6위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 7위 유럽연합(EU) 에어버스그룹, 8위 미국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9위 이탈리아 핀메카니카, 10위 미국 L-3 커뮤니케이션 등이다.
방산업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쟁이나 분쟁은 말 그대로 호재다.

게다가 각국이 군비 경쟁까지 벌이면 금상첨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실제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큰 수혜업종이 미국 방산업체들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 등에 힘입어 미국 방산업체들의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도 방산업체들의 해외 무기 시장 개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 업체 중에선 미쓰비시 중공업(28위)과 가와사키 중공업(37위), 미쓰비시 전기(75위) 등 3개사가 세계 100대 방산업체에 들어 있다. 일본은 최근 인도에 최대 16억 달러 규모의 수색구난 비행정 US-2 12대를 수출하기로 했다. 일본은 또 뉴질랜드에 P-1 초계기와 C-2 수송기 수출을 위한 협상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군사용 기술에 민간 기술을 접목해 미국의 록히드 마틴이나 보잉 같은 거대한 군산복합체 설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군사용 기술을 발판으로 산업 발전을 꾀하는 국가 전략인 ‘군·민 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미국처럼 군산복합체를 육성하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의 의도는 현재 세계 최강 전력으로 평가받는 미국의 군사력이 보잉이나 록히드 마틴과 같은 군산복합체를 통해 가능했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조선업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수주량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을 군·민 융합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고 있다.

해군 함정 건조를 수십 년간 지속해 온 끝에 전체 조선업 발전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했고 거대 조선업이 강한 해군 건설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과거 값싼 재래식 무기 수출에 치중했지만 최근엔 고가의 첨단 무기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 대형 방산업체들을 설립할 경우 세계 무기 시장에서 방산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