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노믹스의 성공 비결

[한경 머니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화폐 개혁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세제 개혁 등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인도 경제가 다른 브릭스 회원국들보다 잘나가고 있는 이유가 모디노믹스 덕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인도 경제가 화폐 개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순항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해 11월 8일 인도 경제의 고질병인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화폐 개혁의 내용은 전체 화폐 유통 물량의 86%를 차지하는 500루피와 1000루피 등 고액권 화폐 2종을 폐지하고 새로운 화폐인 500루피와 2000루피로 교환하는 것이다.

화폐 개혁의 목적은 부패의 온상이자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20~30% 수준으로 추정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검은돈과 부정부패는 가난을 뿌리 뽑는 데 있어서 최대 장애물”이라면서 “경제 개혁을 위해 화폐 개혁은 불가피한 조치다”라고 강조했다.

‘부패와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모디 총리는 그동안 추진해 온 경제 성장 정책인 ‘모디노믹스(Modinomics)’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화폐 개혁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실제로 인도의 세금징수원은 지난 수십 년간 탈세를 해 온 개인자산가나 사업가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다.

이 때문에 인도의 세수는 전체 경제 규모의 6%로 평균 12%인 선진국의 절반에 불과했다. 인도에서 탈세나 범죄 등을 위해 지하 세계로 흘러들어 간 돈은 2조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런 자금이 제조업에 투자된다면 인도 경제는 날개를 달 수 있다. 지하경제의 양성화로 조세 수입이 증가하고, 재정 여력이 확보될 가능성이 높다. 또 시중자금의 은행 예치 급증, 신용카드 사용 확대, 금융 디지털 인프라 확충 등 인도의 금융 시스템도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모디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한 화폐 개혁은 한때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신권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통화량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 전국의 은행들 앞에는 구권을 신권으로 교체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자동인출기(ATM)의 현금이 아예 동이 나기도 했다. 금 등 안전자산의 수요가 급증해 금값이 2배로 급증하기도 했다.

특히 은행계좌가 없고 현금 사용이 많은 빈곤층과 중산층이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현장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일당으로 줄 현금이 없어 공사를 중단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농민들은 수확한 쌀 등 농산물을 내다 팔아도 신권이 없어 대금을 못 받기 일쑤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은 다음 농사를 위한 비료조차 구하지 못해 불안에 떨었다. 많은 영세업자들은 사업을 축소하거나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이에 따라 소비가 크게 위축되는 등 경제는 몸살을 앓았다. 화폐 개혁으로 GDP 성장률이 최소 1% 둔화될 것이란 부정적인 전망까지 나왔다.

화폐 개혁 성공으로 도약 발판 마련

화폐 개혁을 단행한 지 5개월째를 맞으면서 혼란은 수습됐고 은행들로부터 현금 인출은 정상화됐다.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 인도 총리 수석경제보좌관은 화폐 개혁으로 인한 현금 유동성 부족 사태는 해결됐다고 밝혔다. 화폐 개혁으로 인도 경제가 침체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오히려 인도 경제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타이무르 베이그 독일 도이체방크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인도의 화폐 개혁 충격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면서 “경제 활동이나 GDP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인도 중앙통계국(CSO)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GDP 성장률은 7.0%를 달성해 시장 전망치(6.4%)를 크게 웃돌았다.

인도의 지난해 4분기 GDP 수치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로, 같은 기간 중국은 6.8%를 기록했다. CSO는 2016~2017 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GDP 성장률도 7.1%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도의 GDP 성장률은 모디 총리가 집권한 지난 2014년 7.24%, 2015년 7.56%를 각각 기록했다.

또 은행, 자동차, 건설, 소비재 등 대부분 기업들의 실적도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인도 증시에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인도의 대표적 주가 지수인 센섹스(S&P BSE SENSEX)는 올 들어 지금까지 11%나 오르며 중국, 브라질, 미국 등의 지수 상승률(4~8%)을 압도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인도 증시가 올해 상반기 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화폐 개혁 이후 검은돈이 줄어들면서 금융시장의 투명성이 강화되고, 세수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화폐 개혁이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인도에 해외 투자자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과 채권을 사들이며 주가는 치솟고 루피아화도 덩달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서 화폐 개혁에 대한 정치적 승리도 거두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지난 3월 11일 실시된 우타르프라데시, 우타라칸드, 펀자브, 고아, 마니푸르 등 5개 주의 의회선거 가운데 2개 주에서 압승하면서 단독으로 주정부를 구성했다. BJP는 또 나머지 3개 주에서 제1야당 인도국민회의(INC)에 뒤졌지만, 고아 주와 마니푸르 주에서 다른 정당들과 연합해 주정부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BJP와 연합정당이 주정부를 차지한 주는 인도 전체 29개 주 가운데 17개에 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BJP가 인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우타르프라데시 주 의회선거에서 전체 403석 중 312석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2012년 47석과 비교해 265석 늘어난 것으로 지난 30년간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여당이 확보한 의석수 중 가장 많다.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인구는 무려 2억400만 명이기 때문에 총리를 결정하는 연방 하원의원 545명 중 80명을 배정받고 있다. 이에 따라 모디 총리는 오는 2019년 실시될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에 연임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BJP는 또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만 상원 의석 20석을 추가로 확보하게 돼 모디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경제 개혁도 탄력을 받게 됐다. 인도는 법률안 통과 권한이 있는 연방 상원의원을 각 주의 주 의회 의석수를 기준으로 선출한다. 지방선거의 압승은 모디 총리가 부패 청산을 위해 단행한 화폐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라고 볼 수 있다.

모디 총리는 앞으로 중간 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은 것을 지렛대 삼아 모디노믹스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모디노믹스의 핵심은 외국인의 투자를 통한 인프라 확충과 제조업 육성,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특히 그는 인도를 제조업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제조업 활성화)’ 정책을 모디노믹스의 간판으로 내세워 왔다. 오는 2022년까지 자동차, 철도, 항공우주 등 25개 산업 분야를 육성해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현재 15%에서 25%로 늘려 일자리 총 1억 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정보기술(IT) 산업 등 서비스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 온 인도를, 제조업을 성장 동력의 발판으로 삼아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려 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신흥경제대국들인 브라질, 러시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회원국들 중에서 인도는 가장 좋은 경제 성적을 보여 왔다. 국제사회는 인도 경제가 다른 브릭스 회원국들보다 잘나가고 있는 이유가 모디노믹스 덕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SOC 확충에 올인
인도 정부는 모디노믹스를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회기반시설 확충은 제조업 육성을 위해서 필수적이고 인구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극빈층에게 기본적인 식량, 물, 전기, 주택, 위생, 교육, 직업 등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도시에 메트로를 건설하고, 뭄바이~아마다바드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모디 총리는 이를 위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손을 잡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1월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뭄바이~아마다바드 505km 구간에 고속철도인 신칸센의 건설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이 고속철도는 2018년 착공돼 2023년 개통될 예정인데, 일본은 총 사업비 1조8000억 엔(19조3392억 원) 가운데 81%를 차관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또 인도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0년간 3만 명의 기술 인재를 육성하고,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기업들이 인도 각지에 직업훈련소를 설립해 주기로 했다.
인도 정부는 현재 주마다 다른 부가가치세를 오는 7월부터 29개 주에 단일한 상품·서비스세(GST)로 통합할 계획이다. 인도 하원은 GST 시행을 위한 4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GST는 1957년 연방과 주별로 도입된 판매세, 1985년 도입된 소비세, 상품이 다른 주로 넘어갈 때 부과되는 진입세 등 각종 부가세를 모두 통합하는 것이다.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계획경제를 도입한 인도는 1991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유시장경제로 돌아섰지만 세제가 통일되지 않아 기업 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상품과 서비스를 팔았을 때 내야 하는 판매세는 주마다 달랐다. 기업들은 주를 넘나들 때마다 이중, 삼중의 세금 부담에 시달려야만 했다. 인도 정부는 60년 만에 최대 세제 개혁 조치인 GST가 시행될 경우 GDP 성장률이 최대 2%포인트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도의 국력은 인구에서도 나오고 있다. 인도 인구는 현재 13억2680만 명이다.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이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전체 인구 평균 연령이 25.9세다. 젊은 노동인구의 생산력 증가는 소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중산층도 늘어나고 있다. 인도의 중산층은 이미 3억 명을 넘어섰다. 인도는 향후 20년간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노동 공급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인도는 2035년까지 1억9300만 명의 노동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디 총리는 “2022년까지 새로운 인도를 건설하겠다”면서 현재 임기인 2019년을 넘어 다음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런 장담이 실현될 수 있을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모디 총리가 잠자는 거대한 코끼리를 깨어나게 해 뛰어다니도록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의 원대한 비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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