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트 아이콘으로 포착한 유기적 초상의 리얼리티

icon, 캔버스에 녹두, 45.5×38cm, 2003년


LIFE & ●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이동재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이동재 작가가 지금의 주목할 만한 ‘스타 작가’로 발돋움 한 것은 ‘콩팥’ 덕분이다. 말 그대로 신체기관인 콩팥(신장)이면서 곡물의 콩과 팥을 가리킨다. 지난 2003년 서울 인사동의 한 기획전시에 출품된 그의 작품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 농산물을 소재로 한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이동재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았던 점은 ‘심플함’과 ‘명징함’ 때문이었다. 작품은 다름 아닌 곡물 자체인 쌀로 ‘쌀’자(字)를, 콩으로 ‘콩’자를, 팥으로 ‘팥’자를 만들어 썼다. 혹은 콩과 팥으로 ‘콩팥 형상’을 만들기도 했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화법은 그해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손꼽혀 다양한 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지금이야 쌀알이나 여러 곡물이 작품 제작 재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처음 이 작가가 곡물을 활용해 선보인 시기만하더라도 매우 획기적이고 신선했다. 아마도 날마다 마주하는 평범하고 친숙한 소재들이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광경에선 생경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콩으로 표현된 미스터 빈(Mr. Bean), 현미(玄米)로 된 가수 현미, 녹두로 된 녹두장군 전봉준, 쌀로 된 미국 전 국무부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등의 얼굴 초상이 대표적이다. 아마도 그의 작품을 ‘유기적 회화(organic pain-ting)’로 보는 시각도 자연 생명인 곡물이란 점 이외에 다양한 작품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놓여 있다.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인 회화의 시각적인 요소를 가졌지만, 제작 과정이나 재료가 지닌 것은 지극히 조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장르와 조형 기법의 혼용 못지않게 작품 구성의 중요한 요소로 빠지지 않는 점은 ‘작품을 대하는 자세’다. 어떤 이는 그의 작업 과정에서 ‘참선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발견한다고도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미세한 픽셀 조각 수천, 수만 개를 부착하는 과정은 극히 ‘정적(靜的)인 집중력’이 요구된다. 사방 1m 내외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적어도 보름 정도가 소요되는 것을 보면, 그의 일상생활 자체가 ‘절대적 고요의 진행형’인 셈이다.
Seed, 캔버스에 콩·팥, 35×27cm(각), 2003년

지금 작품의 시작점은 대학원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전후 당시의 관심사는 ‘사람들에게 기여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래서 과일이나 채소를 석고로 떠내고 주물로 제작하기도 했다. 가령 ‘먹어서 사라지거나 썩고 변해 버릴 존재’의 외형을 변치 않는 금속으로 기록하는 것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의 작업이었다. 특히 수업 중에 ‘100일 동안 하루 한 가지씩 채집한 이미지 결과물을 전시하는 과제’ 역시 결정적 경험이 된다. 이때 그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100일 동안의 점심 밥상’을 촬영해 보여준다. 단순히 한 끼 식사지만 ‘먹어야 사는 반복적인 일상 삶의 철학’을 담은 것이다.

“제 작업은 이미지와 오브제를 살펴보면서 다각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재료가 갖는 의미와 도상과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감상하는 재미를 공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초기 작업에선 일상적인 사물을 다양한 관점 혹은 낯설어 보이는 장치를 통해서 새롭게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의도했다면, 최근 작품은 언어와 사물의 관계, 오브제를 나열해 이미지를 구축하는 제작 과정의 형식적인 실험 등을 통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작가 작품의 키워드가 된 ‘유기적 아이콘(organic icon)’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대학원 졸업 이후 가진 초기의 개인전(2003년 1회 개인전 ‘씨앗’, 2004년 2회 개인전 ‘rice_price’)이다. 특히 두 번째 개인전에서 보여준 ‘쌀(혹은 곡물)을 캔버스에 붙인 인물의 초상 시리즈’는 새로운 서막을 활짝 열어주었다. 마침 당시엔 ‘농산물 개방’이라는 핵심 이슈와 맞물려 그의 작품은 ‘시대적 리얼리티가 담보된 진정성의 표상’으로까지 비춰졌다. 쌀을 비롯한 곡물, 자개단추, 알약 등의 다양한 오브제를 이용한 인물들의 초상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형상을 그대로 옮긴 ‘재현(再現)’을 넘어, 대상에 담긴 진의(眞意)까지 시각화시킨 ‘구현(具現)’의 미학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재현과 구현이 ‘한 끗 차이’ 같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외면과 내면,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성이 함께여야 온전히 하나인 것과 같다. 이 작가 역시 회화와 조각의 두 장르적 특성을 바탕으로 재현과 구현의 접점을 효과적으로 포착한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알약 작품을 통해 ‘질병을 치유하고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키고 싶은 인류의 오랜 염원’까지 담아내듯, 오스트리아 크리스털 명품 스와로브스키 큐빅으로 표현된 이 작가의 메릴린 먼로 초상은 ‘꽃처럼 영화로운 삶을 산 한 여인(인간)의 탐미적 기본 욕구’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이 지닌 여러 특징 중에 우선 ‘오브제가 지닌 중의성(重義性, ambiguity)’을 들 수 있다. 이는 초기의 곡물 시리즈부터 현재 알파벳 형태의 레진 오브제 시리즈를 잇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특성은 이 작가 작품에 ‘유기적(organic)’이란 표현을 가능하게 해준다. 다음으로 ‘픽셀 위주의 화면 구성’이다. ‘픽셀(Pixel)’은 ‘이미지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점들’을 말하는데, 원래는 ‘그림(picture)의 원소(element)’라는 뜻을 지닌 합성어다. 또한 픽셀은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디지털’ 개념의 대변으로도 인식된다. 결국 ‘픽셀(Pixel: Dot)’의 개념은 그의 작품 제작 방식이면서 동시에 주제의식을 함축해내는 키워드인 셈이다. 이 ‘작은 조각(Dot: Pixel)’들은 그가 내세운 ‘아이콘(icon)’ 이미지의 기본 구성요소를 담당한다.

실제로 2008~2009년 개인전의 시리즈나, 2011~2012년 개인전의 시리즈 역시 같은 맥락이다. 특히 최근의 작업은 그동안의 작품 제작 방식의 종합판이다. 겉보기엔 화면을 빼곡하게 채운 텍스트 조각들뿐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주제에 해당하는 관련 문장의 텍스트’를 가지런히 늘어놓은 것이다. 물론 마련된 원고를 보며 레진으로 손수 제작한 유닛 오브제들이다. 아마도 이렇게 나열된 텍스트나 초창기 화면 위에 정렬된 곡물과 여러 오브제를 통해 전하려는 작가적 메시지 역시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작가는 현재 국내의 대표적인 화랑인 가나아트센터에 소속돼 있다. 이 화랑을 통해 2008년 파리 시테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개인전을 가졌다. 이듬해엔 중국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갖고, 뉴욕 크리스티 경매 아시아 컨템퍼러리에 출품된다. 또한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환기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과 울산지방검찰청, 동국대학교 등 여러 공공기관에도 소장돼 있을 정도로 탄탄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작품 가격은 2008년 이후 10(53×45.5cm) 크기가 400만 원, 50호(116.8×91cm)는 1500만 원, 100호(162.2×130.3cm)는 2000만 원 등으로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아마도 오는 6월 장흥아트파크 미술관 레드스페이스의 개인전을 기점으로 변화가 있지 않을까.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ㆍ세종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및 수원대 미술대학 대학원 객원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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