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사람들이 주목하는 소리의 종류는 그 시대의 경제, 문화, 과학, 사회구조 등에 따라 달라져 왔다. 반대로, 소리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주목하는 소리의 실체가 곧 현시대적 상황과 맞닿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지금 우리는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고 있는가. 참고 문헌 <소리로 읽는 세상>(배명진 지음)·<소리의 얼굴들>(구자현 지음)
‘탕, 탕, 탕.’
이 의성어를 보자마자 당신의 머릿속에 든 이미지는 무엇인가. 누군가에겐 전쟁터의 총소리일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윗집의 시끄러운 망치 소리, 혹은 대통령 탄핵안 통과 당시 국회에 울린 의사봉 소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한이 많은 사람이라면 서럽게 울며, 가슴을 주먹으로 ‘탕, 탕, 탕’ 치던 지난날의 아픔을 곱씹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소리란 그것을 듣는 사람이 지금까지 겪어 온 체험, 살아 온 환경 등에 따라 느끼는 방식도 선호하는 취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한국인들이 소리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도 대개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와 연결돼 있었다.
소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과거 한 유명 그릇 회사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콘셉트의 이 광고에서 한 여성이 극강의 고음을 내지른다. 그러자 곁에 있던 유리컵들은 속수무책으로 깨져나갔지만, 이 회사의 제품은 끝까지 깨지지 않았다. 독특한 설정 탓에 광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말 더 화제가 됐던 건 따로 있었다.
소리로 정말 유리잔을 깰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이 국내 최초로 공중파 방송을 통해 방영되면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한 발라드 가수가 3시간 반 이상 소리를 지르던 도중, 와인 잔이 금이 가면서 깨져 버린 것이다. 당시 방송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소리를 활용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실험들은 많았다. 새소리나 바람소리 등 백색 소음을 들었을 때 집중력이 올라가는 지에 대한 실험, 청력이 감퇴됐을 시 발생하는 인지 능력 테스트,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목소리 실험, 소리를 활용한 마케팅 등 소리에 관한 연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논의돼 왔다. 당연히 소리를 연구하는 학문도 다양하다. 소리의 물리적인 특징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음향학이 있고, 음원을 효과적으로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음향공학’과 물리적인 특성이 보다 강조되는 ‘진동학’ 등이 있다.
인간이 어떻게 소리를 인식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소리에 대한 탐구심을 자극해 왔다. 사람의 입이 식별되는 기호로서의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오랜 관심은 음성학이라는 전문 연구 분야를 탄생시켰다. 성대와 구강과 비강, 혀와 입천장과 치아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의 비밀이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탐구심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를 통 속에 넣어 보관한다는 생각이 19세 후반부터 실현되면서 소리 기술에 혁명이 일어났다. 1857년 개발된 폰오토그라프(Phonautograph) 등 소리를 기록하는 기계의 발명은 사람들에게 소리도 ‘저장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가령, 사진이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후대에 전해주는 것이라면 소리의 저장과 재생 기술은 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더 나아가 음악을 통속에 넣어서 판매하는 시장도 열렸다. 당연히, 이 사업의 성패는 복제된 소리가 얼마나 원음을 닮았느냐가 관건인 만큼 더 좋은 음질의 향상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가속화됐다.
전화가 발명된 이후에는 소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데 관심이 집중됐다. 통신 설비를 사용해 사람의 말소리를 상대방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음성통신공학’과 ‘신호처리공학’이 연구됐으며,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나 초저주파를 사용해 신체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거나 설비 구조의 강도를 점검하고 깊은 바다 속 해양 탐사에 활용되는 ‘수중음향학’까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의 목소리를 문자화하는 음성인식 소리연구에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미권에서는 소리가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생태음악학(ecomusicology)’, ‘음악윤리학(music and ethics)’ 등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 인정받아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소리는 시대적 상황, 기술의 발달, 인식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이는 한경 머니가 소리에 주목하는 이유다.
소리를 활용한 과학과 비즈니스 투자도 뜨겁게 진행 중이다. 특히, 소리는 ‘융합기술’이 곧 필수 요건이 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활용 가치가 높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휴대전화를 하나 구입할 때도 전화나 통신 기능, 디자인만 따지지 않는다. 뛰어난 디지털 카메라이자 캠코더, 훌륭한 오디오인 동시에 완벽한 휴대용 게임기로서의 역할도 기대하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요즘은 다양한 기능만큼이나 각각에 더 완벽한 성능을 추구하기도 한다. 최근 기업들이 소리를 제품에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승영 오디오 칼럼리스트는 “소리는 인체 뇌신경 시스템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대상인 만큼 소리의 품질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커져 왔다”면서 “다만, 이 소리를 구현하는 의지의 정도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서로 달랐지만 문명과 문화 발달에 따라 소리의 역할이 주요한 ‘대상’들이 늘어나면서 그에 상응하는 소리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음질 면에서 소리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것 외에도 음성인식기술 등 소리를 활용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음성인식기술은 컴퓨터가 마이크와 같은 소리 센서를 통해 얻은 음향학적 신호(acoustic speech signal)를 단어나 문장으로 변환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이미 애플의 음성 기반 개인비서 서비스인 ‘시리(Siri)’를 필두로, 구글의 ‘구글 나우(Google Now)’,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Cortana)’ 등 글로벌 기업들의 소리 투자는 거대한 메가트렌드이자 미래를 위한 필수 아이템이 돼 버렸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 뜨거운 감자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이처럼 인공지능(AI)은 이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에 탑재되면서, 결국에는 사물인터넷(IoT)을 넘어 사물 지능의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미래 사회에는 거의 모든 사물에 센서가 부착되며, 여기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해당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 및 단체의 가치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소리에 미래를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소리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나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소리에 영향을 받고 있을까. 먼저, 기술의 발달에 따른 소리에 대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청진기의 발명이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자. 소리에는 빛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
빛은 빈 공간을 통과해서 우주의 메아리를 전해주지만, 소리는 채워져 있는 물질을 통과해서 진동을 전해준다. 비단, 청진기의 발명 이전에도 소리를 듣고서 몸속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소극적인 시도는 존재해 왔다. 하지만 기술상의 문제 외에도 근접성에 대한 사회적 장벽이 더 컸다. 조선시대만 해도 남자 의원이 양반집 규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는 것조차 어려웠던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청진기의 발명은 몸의 소리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접근 범위 밖에서 몸속의 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사회적 장벽 역시 뛰어넘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처럼 기술의 진화는 소리를 소비하는 방식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 왔다.
계희승 한양대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은 “40년 전 프랑스 사상가 자크 아탈리는 <소음(Bruits)>
(1977년)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음악(소리)은 예언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며 “음악(소리)이 그 어떤 다른 ‘물질적 현실’보다 빠르게 경제구조를 탐구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소리에 ‘주목하는’ 이유임과 동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즉, 소리의 변화는 적게는 한 개인의 행동의 변화 이상으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소리의 모습도 우리 삶에 다양한 영향을 미쳐 왔다. 핵가족화로 인한 이웃과 세대 간의 단절, 급속한 사회 변화에 뒤처지면서 나타나는 인간 소외 현상, 무한 경쟁 속 기계적인 노동의 무게는 점차 공동체의 연대의식보다는 처절한 생존을 위한 고립 사회로 변모해 가는 양상이다. 또한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 곁에서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절실하지만 공허하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꺼내든 것은 결국 소리다.
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에 탄 사람들 대개가 귀에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끼고 있는 것은 어쩌면 혼자라는 적막을 깨기 위한 탈출구이자 위로일지도 모른다. 요즘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SNS 방송에서 ‘듣는 방송’인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ASMR)이 ‘귀르가즘’, ‘소리가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런 흐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나만의 소리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나를 위한 소리 투자인 셈이다. 이들을 위한 전문 청음 샵도 각종 오디오 가게, IT 기기 전문점은 물론, 대형 백화점 내 문화 공간 등에 확산되고 있다.
프리미엄 평판형 헤드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오디지(AUDEZE)의 창립 멤버이자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샹카는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소리를 접하는 모습도 바뀌었다”며 말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음악이란 ‘공유’의 느낌이 강했어요. 말 그대로 다 같이 듣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헤드셋이나 이어폰의 소비가 증가하는 이유도 이 같은 사회적 현상과 맞닿아 있죠. 또한 우리가 더 하이엔드 헤드폰에 주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리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채우는 대체재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살아야 감성을 충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면서 개인은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게되죠. 소리는 그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차선책이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사람들이 소리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는 기억력을 향상시킬까]
과거 소리를 활용한 학습보조기가 처음 국내에 등장했을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소리를 듣기만 할 뿐인데 공부에 도움이 된다니, 당시로선 꽤 신선한 개발품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소리와 학습 능력에 상관관계가 있을까. 소리공학연구소의 실험에 따르면, 평소의 경우와 백색 소음을 들려주는 2가지 상황에서 중학생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영어단어를 주고 5분간 암기 테스트를 한 결과, 평소에 비해 백색 소음을 들려주었을 때 기억력이 35%나 향상됐다고 한다. 뇌파 반응 검사도 수행했는데 백색 소음을 들려주면서 학습을 유도했을 때는 평상시에 비해 피험자의 뇌파에서 베타파가 줄어든 반면, 집중력과 안정도가 개선되는 알파파, 세타파, 델타파 등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이난영·이미자의 소리 비밀]
목소리의 공명 현상과 성대의 떨림에 근거해 성문 분석을 해보면 성별은 물론이고, 체형이나 말투, 혹은 성격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 점을 활용해 특별한 목소리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가수들의 소리 비밀도 분석이 가능하다. 소리공학자인 배명진 교수는 지난해 가수 이난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 곡 <목포의 눈물>의 창법적 특징을 소리과학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이난영의 가늘고 맑은 목소리는 배음이 4500헤르츠 이상으로 이는 일반인의 3배 수준이다, 또한, 노래 목소리의 울림 중심이 500~1000헤르츠 사이로 여성의 울음 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자의 경우,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리는 이유가 보통 사람의 2.5~3배에 달하는 폐활량으로 저음, 중음, 고음 모두에서 깊은 바이브레이션이 가능하다. 흔히 소리가 갈라지기 쉬운 고음에서도 음정의 대역 차이가 또렷했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가 3옥타브(8배 음폭) 동안 안정적이었다.
‘탕, 탕, 탕.’
이 의성어를 보자마자 당신의 머릿속에 든 이미지는 무엇인가. 누군가에겐 전쟁터의 총소리일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윗집의 시끄러운 망치 소리, 혹은 대통령 탄핵안 통과 당시 국회에 울린 의사봉 소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한이 많은 사람이라면 서럽게 울며, 가슴을 주먹으로 ‘탕, 탕, 탕’ 치던 지난날의 아픔을 곱씹을 것이다. 정답은 없다. 소리란 그것을 듣는 사람이 지금까지 겪어 온 체험, 살아 온 환경 등에 따라 느끼는 방식도 선호하는 취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요즘 한국인들이 소리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도 대개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와 연결돼 있었다.
소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과거 한 유명 그릇 회사의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란 콘셉트의 이 광고에서 한 여성이 극강의 고음을 내지른다. 그러자 곁에 있던 유리컵들은 속수무책으로 깨져나갔지만, 이 회사의 제품은 끝까지 깨지지 않았다. 독특한 설정 탓에 광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말 더 화제가 됐던 건 따로 있었다.
소리로 정말 유리잔을 깰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이 국내 최초로 공중파 방송을 통해 방영되면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한 발라드 가수가 3시간 반 이상 소리를 지르던 도중, 와인 잔이 금이 가면서 깨져 버린 것이다. 당시 방송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보이지 않는 소리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소리를 활용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실험들은 많았다. 새소리나 바람소리 등 백색 소음을 들었을 때 집중력이 올라가는 지에 대한 실험, 청력이 감퇴됐을 시 발생하는 인지 능력 테스트,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목소리 실험, 소리를 활용한 마케팅 등 소리에 관한 연구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논의돼 왔다. 당연히 소리를 연구하는 학문도 다양하다. 소리의 물리적인 특징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음향학이 있고, 음원을 효과적으로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음향공학’과 물리적인 특성이 보다 강조되는 ‘진동학’ 등이 있다.
인간이 어떻게 소리를 인식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소리에 대한 탐구심을 자극해 왔다. 사람의 입이 식별되는 기호로서의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오랜 관심은 음성학이라는 전문 연구 분야를 탄생시켰다. 성대와 구강과 비강, 혀와 입천장과 치아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의 비밀이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탐구심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를 통 속에 넣어 보관한다는 생각이 19세 후반부터 실현되면서 소리 기술에 혁명이 일어났다. 1857년 개발된 폰오토그라프(Phonautograph) 등 소리를 기록하는 기계의 발명은 사람들에게 소리도 ‘저장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가령, 사진이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후대에 전해주는 것이라면 소리의 저장과 재생 기술은 사람의 목소리에 담긴 정신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더 나아가 음악을 통속에 넣어서 판매하는 시장도 열렸다. 당연히, 이 사업의 성패는 복제된 소리가 얼마나 원음을 닮았느냐가 관건인 만큼 더 좋은 음질의 향상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가속화됐다.
전화가 발명된 이후에는 소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데 관심이 집중됐다. 통신 설비를 사용해 사람의 말소리를 상대방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음성통신공학’과 ‘신호처리공학’이 연구됐으며,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나 초저주파를 사용해 신체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거나 설비 구조의 강도를 점검하고 깊은 바다 속 해양 탐사에 활용되는 ‘수중음향학’까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람의 목소리를 문자화하는 음성인식 소리연구에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미권에서는 소리가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생태음악학(ecomusicology)’, ‘음악윤리학(music and ethics)’ 등이 하나의 학문 분야로 인정받아 진지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처럼 소리는 시대적 상황, 기술의 발달, 인식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고, 이는 한경 머니가 소리에 주목하는 이유다.
소리를 활용한 과학과 비즈니스 투자도 뜨겁게 진행 중이다. 특히, 소리는 ‘융합기술’이 곧 필수 요건이 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활용 가치가 높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히 휴대전화를 하나 구입할 때도 전화나 통신 기능, 디자인만 따지지 않는다. 뛰어난 디지털 카메라이자 캠코더, 훌륭한 오디오인 동시에 완벽한 휴대용 게임기로서의 역할도 기대하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요즘은 다양한 기능만큼이나 각각에 더 완벽한 성능을 추구하기도 한다. 최근 기업들이 소리를 제품에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승영 오디오 칼럼리스트는 “소리는 인체 뇌신경 시스템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대상인 만큼 소리의 품질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커져 왔다”면서 “다만, 이 소리를 구현하는 의지의 정도가 개개인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 서로 달랐지만 문명과 문화 발달에 따라 소리의 역할이 주요한 ‘대상’들이 늘어나면서 그에 상응하는 소리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음질 면에서 소리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것 외에도 음성인식기술 등 소리를 활용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음성인식기술은 컴퓨터가 마이크와 같은 소리 센서를 통해 얻은 음향학적 신호(acoustic speech signal)를 단어나 문장으로 변환시키는 기술을 말한다. 이미 애플의 음성 기반 개인비서 서비스인 ‘시리(Siri)’를 필두로, 구글의 ‘구글 나우(Google Now)’,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Cortana)’ 등 글로벌 기업들의 소리 투자는 거대한 메가트렌드이자 미래를 위한 필수 아이템이 돼 버렸다.
국내 기업들 역시 이 뜨거운 감자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이처럼 인공지능(AI)은 이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에 탑재되면서, 결국에는 사물인터넷(IoT)을 넘어 사물 지능의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미래 사회에는 거의 모든 사물에 센서가 부착되며, 여기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해당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 및 단체의 가치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소리에 미래를 투자해야 하는 이유다.
소리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나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소리에 영향을 받고 있을까. 먼저, 기술의 발달에 따른 소리에 대한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청진기의 발명이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자. 소리에는 빛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
빛은 빈 공간을 통과해서 우주의 메아리를 전해주지만, 소리는 채워져 있는 물질을 통과해서 진동을 전해준다. 비단, 청진기의 발명 이전에도 소리를 듣고서 몸속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소극적인 시도는 존재해 왔다. 하지만 기술상의 문제 외에도 근접성에 대한 사회적 장벽이 더 컸다. 조선시대만 해도 남자 의원이 양반집 규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는 것조차 어려웠던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청진기의 발명은 몸의 소리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접근 범위 밖에서 몸속의 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사회적 장벽 역시 뛰어넘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처럼 기술의 진화는 소리를 소비하는 방식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 왔다.
계희승 한양대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은 “40년 전 프랑스 사상가 자크 아탈리는 <소음(Bruits)>
(1977년)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음악(소리)은 예언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며 “음악(소리)이 그 어떤 다른 ‘물질적 현실’보다 빠르게 경제구조를 탐구할 수 있는데,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소리에 ‘주목하는’ 이유임과 동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즉, 소리의 변화는 적게는 한 개인의 행동의 변화 이상으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로,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소리의 모습도 우리 삶에 다양한 영향을 미쳐 왔다. 핵가족화로 인한 이웃과 세대 간의 단절, 급속한 사회 변화에 뒤처지면서 나타나는 인간 소외 현상, 무한 경쟁 속 기계적인 노동의 무게는 점차 공동체의 연대의식보다는 처절한 생존을 위한 고립 사회로 변모해 가는 양상이다. 또한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5년 기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 곁에서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절실하지만 공허하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꺼내든 것은 결국 소리다.
출퇴근길 버스나 지하철에 탄 사람들 대개가 귀에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끼고 있는 것은 어쩌면 혼자라는 적막을 깨기 위한 탈출구이자 위로일지도 모른다. 요즘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SNS 방송에서 ‘듣는 방송’인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ASMR)이 ‘귀르가즘’, ‘소리가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그런 흐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나만의 소리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나를 위한 소리 투자인 셈이다. 이들을 위한 전문 청음 샵도 각종 오디오 가게, IT 기기 전문점은 물론, 대형 백화점 내 문화 공간 등에 확산되고 있다.
프리미엄 평판형 헤드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의 오디지(AUDEZE)의 창립 멤버이자 현재 최고경영자(CEO)인 샹카는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소리를 접하는 모습도 바뀌었다”며 말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음악이란 ‘공유’의 느낌이 강했어요. 말 그대로 다 같이 듣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습니다. 헤드셋이나 이어폰의 소비가 증가하는 이유도 이 같은 사회적 현상과 맞닿아 있죠. 또한 우리가 더 하이엔드 헤드폰에 주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소리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채우는 대체재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살아야 감성을 충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면서 개인은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게되죠. 소리는 그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차선책이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사람들이 소리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소리는 기억력을 향상시킬까]
과거 소리를 활용한 학습보조기가 처음 국내에 등장했을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소리를 듣기만 할 뿐인데 공부에 도움이 된다니, 당시로선 꽤 신선한 개발품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소리와 학습 능력에 상관관계가 있을까. 소리공학연구소의 실험에 따르면, 평소의 경우와 백색 소음을 들려주는 2가지 상황에서 중학생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영어단어를 주고 5분간 암기 테스트를 한 결과, 평소에 비해 백색 소음을 들려주었을 때 기억력이 35%나 향상됐다고 한다. 뇌파 반응 검사도 수행했는데 백색 소음을 들려주면서 학습을 유도했을 때는 평상시에 비해 피험자의 뇌파에서 베타파가 줄어든 반면, 집중력과 안정도가 개선되는 알파파, 세타파, 델타파 등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이난영·이미자의 소리 비밀]
목소리의 공명 현상과 성대의 떨림에 근거해 성문 분석을 해보면 성별은 물론이고, 체형이나 말투, 혹은 성격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 점을 활용해 특별한 목소리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가수들의 소리 비밀도 분석이 가능하다. 소리공학자인 배명진 교수는 지난해 가수 이난영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 곡 <목포의 눈물>의 창법적 특징을 소리과학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이난영의 가늘고 맑은 목소리는 배음이 4500헤르츠 이상으로 이는 일반인의 3배 수준이다, 또한, 노래 목소리의 울림 중심이 500~1000헤르츠 사이로 여성의 울음 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자의 경우, 목소리가 애절하게 들리는 이유가 보통 사람의 2.5~3배에 달하는 폐활량으로 저음, 중음, 고음 모두에서 깊은 바이브레이션이 가능하다. 흔히 소리가 갈라지기 쉬운 고음에서도 음정의 대역 차이가 또렷했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가 3옥타브(8배 음폭) 동안 안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