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한용섭 기자]우리은행이 16년 만에 민영화를 이루자마자 금융지주 체제 전환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수익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정비한 뒤 시장에서 본격적인 진검승부를 펼치겠다는 포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3월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금융지주사 전환 안건이 통과되면 이사회를 거쳐 4월에 금융위원회에 지주사 승인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통상 금융지주사 인가가 90일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르면 상반기 중에 우리은행의 금융지주 체제 출범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일부에서는 금융지주 체제 전환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하는데 우선 집부터 지어 놓고 그 이후 가전제품을 구입해 채워 놓는 것이 맞는 순서가 아니겠냐”며, 비은행 부문에 대한 본격적인 인수·합병(M&A)에 앞서 지주사 출범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앞서 연임에 성공한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지난 1월 25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주사로 전환하게 되면 자본비율도 좋아지고 추가적으로 자회사를 매입하거나 M&A를 할 때 들어가는 비용도 조절되기 때문에 사외이사 협의 아래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사전에 교감을 많이 가졌다”며 “수익 포트폴리오를 빠른 시일 내에 완성시키면 좋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4년 11월 우리은행에 흡수 합병되며, 역사 속에 사라졌던 국내 원조 금융지주사 우리금융지주. 그동안 옛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과 옛 현대증권(현 KB증권) 등을 품에 안으며 몸집을 키워 온 금융지주사들이 버티고 있는 현재 시장에서 우리은행은 어떤 반격을 모색하게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원조 금융지주의 귀환, 왜?
우리은행의 지난해 성적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연결기준(자회사 7곳 포함) 연간 당기순이익은 1조2613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1%(2021억 원) 증가해 2013년 이후 최고의 연간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해 두 번에 걸친 명예퇴직비용(1780억 원)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과를 올리며, 민영화 첫해부터 시장의 신뢰를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분명한 한계도 드러난 성적표였다.
우리은행의 호실적은 이자이익 증가(5.4%) 등의 덕을 톡톡히 봤는데 그만큼 가계대출 부문 집중이 심화됐다는 반증이며, 비은행 부문의 취약성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실적 발표를 한 신한금융지주(신한은행)나 KB금융지주(KB국민은행)와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는 연간 당기순이익(연결기준)으로 각각 2조7748억 원과 2조1437억 원을 거뒀다. 신한금융의 경우 2011년 연간 순이익 3조 원을 돌파한 이후 두 번째로 좋은 실적이며, KB금융은 3년 연속 순이익 증가세다.
은행만 놓고 보면 우리은행은 1조1350억 원(은행 부문 수익 비중 89.98%)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은 각각 1조8302억 원(은행 부문 수익 비중 65.95%)과 9643억 원(은행 부문 수익 비중 44.98%)을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의 순이익이 전년 대비 12.9%(1429억 원) 감소한 이유는 지난해 4분기에 인식한 희망퇴직 비용(8072억 원)의 영향이 컸는데, 이를 제외하면 연간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1조4610억 원으로 전년 대비 9.8%(1302억 원) 증가하게 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실적에서 차지하는 은행 부문의 비중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은행의 쏠림 현상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자회사의 위험가중자산을 떠안고 있는 구조라 그만큼 조달 금리도 높아지게 된다.
또 저금리 장기화로 예대마진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계대출 부문이 위축되면 곧바로 실적에 타격을 받게 되는 구조다. 실제 우리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보면 가계 부문이 47.3%로 가장 높으며, 중소기업(32.7%)과 대기업(18.2%)에 비해 월등히 앞서 있다.
신한금융의 경우 지난해 은행 부문의 손익기여도가 2015년 58%에서 2016년 66%로 다소 상승했지만, 은행과 비은행 부문의 포트폴리오 비율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KB금융도 옛 현대증권의 합병 효과로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이 상승했는데 총자산은 전년 말 대비 14.2%(46조6000억 원) 늘었으며, 그룹의 순수수료 이익에서 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분기 약 6%에 불과했던 것이 4분기에는 약 24%로 크게 증가했다.
사실 KB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그룹 총자산은 각각 375조7000억 원과 343조4000억 원으로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은행만 비교하면 오히려 우리은행(334조7000억 원)이 KB국민은행(307조1000억 원)보다 많다.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과거 민영화 과정에서 타 금융사로 입양시킨 알짜배기 자회사들이 눈에 선한 것이다.
우선 NH농협금융지주에 매각된 옛 우리투자증권은 NH투자증권으로 변신한 뒤 모기업인 NH농협금융지주가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지난해 당기순이익 2362억 원을 기록해 증권업계 최고의 성적으로 버팀목이 돼주었다. JB금융지주에 매각된 광주은행 역시 전년 대비 75.3% 증가한 1015억 원의 순이익을 달성해 업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 대신증권에 매각된 부실채권 정리사인 우리F&I는 대신F&I로 이름을 바꿔 지난해 3분기까지 593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모기업인 대신증권의 별도기준 순이익(337억 원)과 단순 비교를 하면 2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우리은행은 과점주주 체제하에서 6개월에 한 번씩 숙제 검사(경영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였던 시절에도 느껴보지 못한 압박감이다. 금융지주 체제 전환을 통해 어떻게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지난 2011년 국내 첫 금융지주사를 출범시켰던 우리은행이 다시 금융지주 체제로 복귀하려고 하는 것은 자본 안정성과 계열사 간 시너지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대손비용을 전년 대비 13.7%(1325억 원) 감소시키고, 대손충당금 적립비율(NPL 커버리지 비율)도 165.0%로 큰 폭(43.5%포인트)으로 상승시켜 손실 흡수 능력을 키웠다.
하지만 우리은행이 모회사가 돼 우리카드, 우리종합금융 등 자회사의 위험가중자산을 떠맡는 구조에서는 자본비율 산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계열사 간 협업과 시너지 창출 측면에서도 불리하다. 장기적인 저금리 상황에서 은행 위주의 영업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며, 복합 금융과 자산관리가 트렌드로 잡혀 가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은행법상 자회사 간 정보 공유도 막혀 있다. 현재 우리카드가 은행에서 분사 돼 있는데 과거 지주사 시절에는 경영관리 목적상 고객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으나, 은행법상에서는 은행과 카드사의 고객 정보 공유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 계열사 간 시너지 제고가 쉽지 않다.
우리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우리은행이 구축함이라면 다른 금융지주사들은 항공모함이라고 보면 된다”며 “단기전에서는 구축함이 기동성이 있어 유리할 수도 있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백전백패다. 지주사 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지주사 전환, 해결 과제는?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을 위해 전초기지까지 마련했다. 지난 2월 3일 조직개편을 통해 그룹 산하에 지주사 체제 전환을 전담하는 미래전략단을 신설하며 야무진 각오를 보여준 것이다.
금융지주 체제로 복귀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우선 이사회 의결을 거쳐 금융위원회에 금융지주사 전환 승인 요청을 해야 하는데 우리은행의 경우 국내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미국 주식시장에 예탁증서(ADR) 형태로 상장돼 있는데, 이를 우리은행에서 다시 우리금융 주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기술적으로 간단치 않다.
과거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을 매각할 당시에도 분할과 합병, 재상장 과정을 거치며 최대 한 달간 주식 거래가 정지된 바 있다.
금융지주 체제 출범 이후에는 최적의 수익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과점주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현재 전략적 투자자(SI)인 IMM 프라이빗 에쿼티, 한화생명, 동양생명,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이 이사회를 통해 우리은행의 경영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유진자산운용은 재무적투자자(FI)로서 실제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이 금융지주로서 수익 포트폴리오라는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증권과 보험 부문의 보강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은행의 구상에서 증권 등의 부문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캐피털사, 자산운용사, 부동산관리 회사 등 자회사의 보강이 1순위이고, 증권이 2순위, 보험은 맨 마지막 순위에 놓여 있다.
이는 시장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현재 시장에서 대형 금융사 물건은 씨가 마른 상태다. 중소형 매물로 비상장사인 하이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이 6930억 원으로 대주주인 현대미포조선이 연내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SK증권(자기자본 4112억 원)은 지분 10% 제3자 매각을 확정해 8월 전에 매각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보험사 인수의 경우 새 국제회계기준(IFRS9)이 적용되면 자본 부담이 대폭 늘기 때문에 무턱대고 M&A하기도 부담스럽다. 또 증권사(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와 보험사(한화생명, 동양생명)가 과점주주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증권과 보험사에 대한 M&A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기도 껄끄럽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으로 자회사로 있는 우리종합금융의 종금사 라이선스를 증권사로 전환해 발급받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대규모 비용을 투자해 증권사를 설립하기보다는 종금사를 증권사로 전환한 뒤 추가적으로 중소형 증권사를 매입해 규모를 키우는 방안이다.
하지만 국내 유일의 종금사 라이선스를 포기해야 하는 대목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종금사 라이선스가 오는 2020년에 끝나게 되면, 이후 우리종합금융의 가치는 상한가를 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과거 우리투자증권 정도의 증권사를 사기는 어렵겠지만 향후 증권사 매물이 나오는 걸 보면서 증권 부문의 보강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아직 종금사를 증권사로 전환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지주사 전환은 민영 우리은행의 성공적인 안착의 실험대가 될 수 있다. 우리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중 최대인 총 250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는 등 적극적인 글로벌 공략과 위비뱅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금융 분야에서는 한 발 앞서 있다는 평가지만 자산관리 및 신탁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통해 WM사업단과 연금신탁사업단을 그룹으로 격상해 고객 중심의 자산관리, 프로급 자산관리 전문가 육성 등에 나서기로 했는데, 결국 금융지주 체제하에서 자산관리 부문의 시너지 확대는 리딩뱅크 경쟁의 승패를 가늠할 승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 일러스트 허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