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지고 ‘주식’ 뜬다



[한경 머니 기고=허창인 SC제일은행 투자자문부 이사]2017년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할 경제 현상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리플레이션이 될 공산이 크다. 안정적인 투자처인 채권의 매력이 다소 반감하며 자산으로서 주식의 가치는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은 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 동안 여러 이벤트들, 이를테면 2016년 6월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부터 11월의 미국 대선, 12월 한국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여러 변화들을 경험하면서 전환의 에너지는 서서히 축적됐다. 2017년에는 이를 동력으로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2017년 시장을 전망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2017년 글로벌 금융시장을 이끌 동력은 무엇인가’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근까지도 글로벌 금융시장 전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의지’였다.

미국의 경기 부양 의지가 2008년 위기를 벗어나는 데 큰 힘이 됐으며, 2011년 후반부터 몇몇 국가의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허덕이던 유럽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완화책에 힘입어 서서히 안정세를 되찾았다.

2013년 이후 일본은 아베의 의지(아베노믹스)로 인해 모처럼 의미 있는 회복세를 보였다. 이머징 국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부 정치의 혼란을 겪던 브라질이나 유럽과의 무력 마찰로 고민하던 러시아는 예외였지만, 인도나 중국 등 아시아의 대표적인 국가들은 정부 주도로 착실히 구조조정을 수행하고 회복의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각국 정부의 정책 의지’는 이번 사이클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이며, 2017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전환

전환의 시기가 될 2017년은, 좁게는 정부의 정책 수단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경제 현상 측면에서는 리플레이션(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에서는 벗어났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에는 이르지 않은 상태)이 화두가 될 것이다.

그동안 세계화라는 범주에서 균형과 화합을 도모했다면, 2017년에는 각박해진 각자의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유럽이 난민 이슈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보호무역주의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헤게모니의 관점에서는 미국 주도(Pax America, 팍스아메리카)에서 다극화 체제가 더 강화될 것이다. 특히 중국이 또 다른 한 축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진행 중이지만, 특히 2017년에는 그 모습이 뚜렷해지면서 경제 전반에도 많은 변화를 이끌 것이다.

SC제일은행에서는 해마다 한 단어로 된 키워드 테마를 통해 시장 전망과 투자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2017년에는 ‘#PIVOT(전환점)’이 전망의 핵심 테마다. 해시태그(‘#’ 기호와 특정 단어를 붙여 쓴 것으로, 해시태그는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서 특정 핵심어를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메타데이터의 한 형태임) 형식을 차용한 건 2017년이 처음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의 속도를 표현하는 한편, 우리가 제시하는 4가지 전환의 키워드가 전망의 핵심 전제이자 근거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전환의 시기에 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할 경제적 현상은 리플레이션이다. 올해 나타날 리플레이션 현상은 무엇보다 재정 확대 정책에 기인할 것이다. 인도를 위시한 몇몇 국가들에서는 이미 재정정책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고 있었지만, 사실 최근 몇 년간 선진국들은 재정적 여력이 거의 없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13년 미국은 재정절벽(세금 감면 혜택 종료와 정부 지출 삭감 정책이 동시에 실시되면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현상) 위기에 처했던 경험이 있으며, 유럽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위기의 시작이 ‘재정위기’였다. 일본도 정부의 부채 수준이 글로벌에서 가장 높다. 모두 재정 측면에서는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통화정책으로 경기 부양을 꾀하면서 주요국들의 통화정책 효용성이 떨어진 가운데, 재정 지출 여력은 조금이나마 확보된 상황이다.

트럼프의 재정 확대 공약은 분위기 전환을 이끄는 데 성공했고, 결국 그를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재정정책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트럼프의 공약을 실천할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무기이자, 글로벌 차원에서 리플레이션 기대를 이끌고 있는 거대 함의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될 리플레이션 환경에서 성공 투자를 이끌 투자처는 어디일까. 일단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자산은 주식이 될 것이다. 리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으로 이르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그 기저에 경기 회복을 품고 있다. 즉, 경기 회복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물가 상승이 나타나는, 그야말로 골디락스(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식 중에서도 미국 주식은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된다. 리플레이션 전망 자체가 미국의 정책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예상외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한 달 동안 가장 흥미로운 모습을 보였던 자산은 미국 주식이었다.

특히 철강, 소재, 자본재 등 인프라 관련 업종이 트럼프 당선 이후 강세를 시현했다는 점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상치 못한 엔 약세의 수혜를 받고 있는 일본 증시와 미국발 글로벌 경기 회복의 훈풍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아시아 주식 역시 긍정적일 것이다. 더불어 인플레이션 기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동안 부진했던 원자재 시장이 모처럼 수익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2016년 투자자들의 든든한 안식처이자, 인컴 수익의 원천이 됐던 채권의 매력도는 낮아질 것이다. 물가 상승 기대는 결국 금리 인상으로 반영될 것이며, 이는 채권 시장 전반에 부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선별적인 기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가 상승이나 금리 인상 기대를 감안할 때 TIPS와 같은 물가연동채권이나 시니어론 등은 포트폴리오의 방어력을 높이면서 안정적 수익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한편 미국 하이일드 채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면서도 경기 회복의 수혜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채권 자산이다.

허창인 SC제일은행 투자자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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