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외투'는 필요하다

고골리

도스토옙스키는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만큼 1842년에 발표된 <외투>는 현실 세계를 담아내는 성서로 얘기되곤 한다. 푸시킨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러시아 문학을 일궈냈던 고골리. 그의 <외투>는 도스토옙스키의 상찬이 아니더라도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누구에게나 ‘외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러스트 김호식

소설 <외투>의 이야기는 ‘어느 관청에 어떤 관리가 근무하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주인공 ‘아카키’는 땅딸막한 키에 얼굴에는 얽은 자국이 있으며 이마는 조금 벗겨졌지만 낯빛은 치질환자 같다. 그뿐만 아니라 아카키는 9급 관리로 일하고 있는데, 당시 러시아에서 9급 관리란 ‘밟혀도 끽소리 한번 못하는 사람들로 비꼬기 딱 좋은’ 9급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사회적 대우가 좋지 않았다. 아마도 아카키가 태어나는 순간 ‘9급 관리가 될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얼굴을 찡그린’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 페테르스부르크의 연봉 400루블 정도를 받는 이들에게 ‘강력한 적’은 바로 ‘북쪽의 한파’였다. 따뜻한 외투를 입고 마차를 이용하는 고위직도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인데, 얇은 외투로 거리를 가로질러야 하는 9급 관리에게 겨울 한파는 무서운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가난한 아카키에게 이번 겨울은 유독 두려웠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구멍 난 외투 때문이었다. 종이방패와 다를 바 없는 외투. 그는 결국 재봉사 패트로비치를 찾아간다. 군데군데 구멍 나고 해진 부분을 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사실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재봉사는 “옷이 완전히 망가졌다”라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아카키는 약간 망설이다가 외투 가격을 넌지시 물어봤다. 아뿔싸! “50루블짜리 석 장에 조금 더 얹어주셔야 한다”라는 답변이 날아왔다. 한마디로 아카키의 형편으로는 가당찮은 금액이라는 말이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는 부딪혀보는 게 최선이었다. 아카키는 재봉사의 마음을 돌려 외투를 수선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재봉사의 진단은 잔인할 정도로 분명했다. 바늘을 갖다 대는 순간 갈가리 찢어질 정도로 손을 댈 수 없는 상태라는 것. 외투를 새로 장만해야 했다. 그런데 외투 하나를 맞추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사실 구두수선공에게 빚진 돈이 있었으며, 대놓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속옷부터 장만해야 하는 사정 또한 있었다. 아카키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저녁마다 마시던 차도 끊고 저녁때마다 켜던 촛불도 켜지 않았다.

또 구두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길에서 더욱 사뿐사뿐 걷기로 했고, 속옷이 빨리 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세탁 횟수를 줄이기로 했다. 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한 말이 맞는지 생각보다 많은 보너스를 받았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새 외투를 손에 넣게 됐다.

아카키가 새 외투를 입고 출근하자 관청의 사람들은 축하해줬다. 심지어 새 외투를 위해 기념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떠들썩하게 부추기기까지 했다. 한 관리는 아카키를 파티에 초대해주기까지 했다. 그전까지 내내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허름한 제복단추와 엉덩이 치질’을 가진 직원 정도로 독설을 품어내던 동료들도 비로소 아는 척을 했다.

그래서 아카키도 아주 오랜만에 저녁 거리를 나가게 됐다. 거리는 처음인 듯 낯설었고 흥겨웠다. 그뿐만 아니라 파티를 주최한 관리의 집은 생각보다 더 멋지고 화려했다. 사람이 산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이야기하고 웃고 마시며 흥겨울 수 있는 것. 아카키는 자정이 될 때까지 파티를 즐겼다.

그러나 파티는 파하기 마련이었고, 아카키는 어둠을 가로질러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파티가 열린 집과 아카키의 집은 구역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강도가 순식간에 외투를 빼앗아 달아났다. 어떻게 장만한 외투인데, 그걸 하루 만에 빼앗기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외투를 잃을 수는 없었다.

당장 외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경찰서에 갔으나 경찰서장은 “왜 밤에 광장에 있었느냐”는 질문만 던지며 외투 강도 사건에 대해 다른 짐작만 늘어놓았다. 아카키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누군가가’ 고위층을 찾아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해서 결국 고위층 인사의 집까지 찾아가게 됐다.

그런데 고위층 인사는 늘 그렇듯 제 권위를 위해 문 앞에 사람을 세워 두다가 결국 얘기를 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을 얻었을 때 고작 던지는 말이라는 것이 “누구 앞인지 알기나 해 알기냐 하느냐 말이야”라며 두 다리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아카키는 이날 이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외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찾을 수 없는 것뿐만 아니라 찾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그날 이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카키가 죽고 난 뒤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았지만, 유령이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아 가는 일이 생긴 것. 누구나 아카키를 떠올렸지만 그렇다고 죽은 자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이 유령 외투 스캔들은 한참이나 계속됐다.

그뿐만 아니라 유령은 아카키가 죽기 전에 찾아갔던 고위관리에게도 나타났다. 그리고 “이젠 내 옷을 내놔”라고 말했고 고위관리는 외투를 벗어던진 채 도망쳤다. 그 후 고위관리는 달라졌다. “감히 누구 앞인지 아느냐”는 말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했고 겁박하듯 훈계조로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또 이상한 것은 그 관리가 옷을 뺏긴 뒤에 유령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유령은 아카키였을 것이다. 그에게 외투가 무엇이었기에 죽지 못하고 유령으로 남아 외투를 찾았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외투가 단지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유일한 옷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외투는 동료들이 그를 알아봐줄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대우이자, 정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 같은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따름이다. 죽은 자에게도 외투는 필요하다. 그가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사정은 외투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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