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가업상속공제, 정치권 공방 뜨겁다



[한경 머니= 한용섭 기자]20대 국회에서 여야 간 부자감세 논란이 가업상속공제로 옮겨 붙었다. 법안 맞대결도 불사하는 정치권의 고래싸움에 기업들의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

가업상속공제와 관련된 법안 추진에서 여야가 공수를 교대했다. 2014년 기획재정부와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가업상속공제의 대상이 되는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요건과 사후관리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냈다가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됐는데 이번에는 야당이 공제세액을 대폭 축소하겠다며 선공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최근 여야는 상속 관련 법안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 왔다. 공익법인의 주식 기부 비과세 상한선인 ‘5%룰’과 관련해 ‘기부 문화 활성화(여당)’와 ‘재벌의 편법 상속·증여 방지(야당)’로 맞서며 상반된 개정안을 내놓는가 하면 법인세 인상 등 야당의 부자증세 공세에 정부와 여당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가업상속공제는 최소 1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한 매출액 3000억 원 이하 중소·중견기업 오너가 자식 등 상속인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 상속재산에 대한 요건을 갖춘 경우 최대 500억 원(경영 기간 10년 이상 200억 원, 15년 이상 300억 원, 20년 이상 500억 원)을 공제해주는 제도다.

당초 이 제도는 중소·중견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고용 유지를 위한 지원책으로 마련됐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에서 ‘세금 없는 부의 세습’으로 제도가 악용될 수 있다며 제도 확대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제도의 수혜자여야 할 기업들도 불만이 많다. 기업경영인의 고령화로 가업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견기업들이 제도상 혜택을 받기에는 매출액 3000억 원 이하라는 기준이 현실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부 중견기업들은 가업승계를 위해 회사를 분할하거나 성장을 멈추는 ‘피터팬 증후군’의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를 ‘부의 세습’으로 보느냐, ‘기업의 안정적인 승계’로 보느냐에 따라 ‘규제의 칼’을 꺼낼지 ‘지원의 손’을 내밀지 정치권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견기업 육성이냐, 규제냐

올해 3월 중소기업계는 중소기업 세제 개선 과제 47선을 선정해 정부에 건의했다. 특히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가업승계 증여과세특례 개선 등을 ‘핵심 과제 10선’으로 묶어 정부에 긍정적인 검토를 요청했다.

이미 정부에서는 지난 2014년 가업상속공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 기업을 현행 매출액 3000억 원 이하에서 5000억 원 이하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상증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야당 측에서 부자감세라고 반발해 법 개정이 좌초되자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였던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바통을 이어받아 개정안 재발의라는 강수를 두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정부에서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손보려는 것은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노령화로 2·3세 경영인들이 상속세를 내고 기업을 물려받으려 해도 현금이 없어 기업을 매각하거나 주식을 현물로 납부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때마다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국내 1위 종자기술 보유 기업 농우바이오다. 2013년 8월 소유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상속 이벤트가 발생했지만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해 급기야 기업을 매각해야 했던 것.


2013년 기준 농우바이오의 매출액은 약 676억 원이었으며 종업원은 약 403명이었지만 가업상속세는 1000억 원을 초과해 부과됐다. 중견기업의 가업상속 문제를 기업 소유주의 개인 문제로 접근하지 말고 국가경제 전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가업상속공제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8월 26일 가업상속공제 한도를 현행 500억 원에서 30억 원(15년 이상 계속 경영한 기업)으로 축소하는 의원입법을 발의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었다.

박 의원은 지난 2007년 이후 공제 한도는 1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공제율은 100분의 20에서 전액으로, 공제 대상은 중소기업에서 매출액 3000억 원 이하 기업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가업상속공제가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기업 소유를 상속세 부담 없이 세대를 이어 영속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상속 이후 기업의 운영에 대한 상황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상속 이후 가업 유지 요건은 현행 10년에서 7년으로 완화토록 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2일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을 연 매출액 3000억 원 이하 기업에서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으로 변경해 중견기업 등에 대한 세제 지원에 선을 긋는 법안을 발의했다.

가업상속자에 대한 부의 집중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가업상속공제 대상 범위를 확대해 중견기업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법안 발의의 배경이다. 박 의원은 상속 및 증여신고세액 공제 한도도 현행 10%에서 3%로 낮추는 내용을 개정안에 포함시켜 부자증세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에 반해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의 추경호 새누리당 의원은 가업상속공제의 한도를 명문장수기업의 경우에는 현행 최대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지난 9월 12일 발의했다. 9월 30일부터 시행되는 명문장수기업 확인제도에 덧붙여 공제세액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창업 세대가 고령화됨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건실한 운영을 펼쳐온 명문장수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적 고용 유지, 일자리 창출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법 개정 취지였다.

명문장수기업은 45년 이상 주된 업종 변동 없이 사업을 유지하고, 기업의 경제적·사회적 기여도, 브랜드 가치, 보유 특허 수준, 제품의 우수성,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따져 지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업승계 대상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30억 원으로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줄이자는 야당과는 현격한 온도차를 보여준 것이다.

또 이는 앞서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내놓은 정부의 의중과도 괘를 같이 하고 있어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야당과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경제 허리 중견기업들 속 탄다

정부에서 세제 혜택까지 부여하며 가업승계를 독려했던 이유는 한국 경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의 지속적인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왜 한국에서는 100년 이상 업력을 이어오고 있는 장수기업이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다.

한국은행과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200년 이상 장수기업이 총 57개국에서 7212개사가 존재하며, 일본이 3113개(43.2%)로 가장 많고 이어 독일 1563개(21.7%), 프랑스 331개(4.6%) 순이다.

반면 한국은 근대적 기업의 역사가 짧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00년 이상 기업이 7개사(두산, 동화약품, 신한은행, 우리은행, 몽고식품, 광장, 보진재)에 불과하며, 538만 개(개인기업 포함) 기업 중 60년 이상 된 법인 기업은 184개에 그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업상속공제와 관련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중견기업들의 마음은 다소 착잡하다.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20대 국회 들어 가업상속공제 대상 매출액 기준을 축소하는 법안들이 많이 발의되고 있는데 이는 기업의 영속성을 제한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훼손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중견기업연구원과 법무법인(유한) 바른이 지난 5월 공동으로 발표한 ‘가업상속세의 거시경제적 효과 및 가업상속 과세특례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중견기업 수는 2979개이며, 총 매출액과 총 고용은 각각 483조6000억 원과 89만9000명에 달한다.

이들 중견기업의 대표이사 연령을 살펴보면 2014년 기준으로 50대가 40.3%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60대 이상 중견기업 대표이사도 44.3%였다. 특히 매출액 3000억 원 이상 중견기업 대표이사의 60대 이상 비중은 59.4%로 수십 년 내에 가업상속 이벤트가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상당수 중견기업들이 가업상속공제를 해야 될 시점에는 매출액이 3000억 원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에서 2013년까지 매출액이 3000억 원을 넘는 중견기업 수의 연평균 증가율 12.1%를 2014년 중견기업 수(450개)에 적용하면 10년 뒤인 2024년 매출액 3000억 원 이상 예상 중견기업 수는 1122개에 이른다.


기업 오너의 고령화로 가업승계에 대한 고민이 깊은 중견기업들이 현행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매출액 3000억 원 이하 기업으로 한 규모 제한 자체를 풀어달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에도 불만이 있기는 매한가지다. 우리나라는 공제를 받은 후 10년 동안 업종(소분류 내 업종 변경 허용), 자산(가업용 자산 20% 이상 처분 금지), 고용(매년 정규직 평균 인원 기준 고용 인원의 80% 이상 유지), 지분(최대주주 지분 유지 및 대표이사 유지, 1년 이상 휴·폐업 금지) 등 엄격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이에 대해 중견기업들은 산업의 패러다임이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업종 변경을 제한하고 고용 확대 의무를 정규직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같이 가족기업 비중이 높은 독일에서는 가업상속과 관련 공제 대상이나 공제 한도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다만 사후관리 요건은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가업자산 5년(7년)간 유지, 상속지분 5년(7년)간 유지, 5년(7년)간 지급 임금 합계가 상속 당시 임금 합계의 400%(700%) 이상의 요건을 채우면 5년간 사업 유지 시 85%(7년간 유지 시 100%)의 공제율을 적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청 등 정부 4개 부처청은 지난 9월 2일 ‘2017년 경제 활력 회복 예산안’에서 중소·중견기업 육성 예산으로 8조1133억 원을 배정했다고 밝혔다. 또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9월 5일 중견기업계를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 등 정부와 여당이 중견기업 육성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가업상속공제를 둘러싼 최근의 법안 전쟁은 가업승계 문제를 최대 고민으로 꼽고 있는 중견기업들의 한숨을 불러오고 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