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 오나

올해 10월부터 지난해 11월 말에 편입됐던 중국 위안화의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이 발효된다. 국제금융질서와 한국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국 위안화의 IMF SDR 통화바스켓 발효는 신흥국 통화 중 첫 번째 준비통화로 인정받게 되는 것으로 기존 미국과 선진국 중심으로 이어져 온 국제금융질서와 한국을 포함한 각국 경제에 커다란 변화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SDR는 회원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담보 없이 인출할 수 있는 가상적인 국제 준비자산이자 통화다. 1970년 도입 당시에는 SDR와 미국 달러와의 가치를 동일하기 위해 1SDR를 금 0.88671g으로 설정했다.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가 약화되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되자 SDR의 새로운 산출 방식을 모색했다.



금의 경우 생산량에 한계가 있고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경상적자를 감수(트리핀 딜레마)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1974년부터는 SDR의 가치를 세계 무역의 1% 이상을 구성하는 상위 16개 국가의 통화와 연계돼 산출하는 복수통화바스켓 방식이 도입됐다.

하지만 구성 통화가 많아 계산이 복잡하고 변동성이 높았기 때문에 1981년부터는 미국 달러화, 일본 엔화, 독일 마르크화, 영국 파운드화, 프랑스 프랑화로 대폭 축소했다. 2001년부터는 마르크화와 프랑화가 유로화로 흡수되면서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 4개국 통화로 구성돼 왔다. 비중은 각각 42%, 37%, 10%, 11%다.

SDR 통화바스켓 편입 여부는 5년에 한 번씩 기존 편입국의 85%가 찬성해야 확정된다. 편입 희망국 통화는 2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세계 무역시장에 활발히 참여하는 국가로 국제무역 결제에 있어 해당 통화의 활용 여부를 평가한다. 세부 기준은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외환보유액 보유 비중, 활용 금융사의 비중 등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 외환시장에서 사용 편의성으로 충분한 외환 거래량 확보, 선물환 시장 존재 여부, 자본거래 개방화 수준, 금융 자유화 진전 정도 등이 평가 기준이다. 이 때문에 SDR 통화바스켓 편입과 발효의 의미는 활용 규모와 편의성 면에서 해당 통화의 국제화를 내포하고 있다.



특정국 통화가 국제화되는 것은 통화의 일부 혹은 전체 기능이 글로벌로 확대돼 국제통용 화폐가 되는 동태적인 과정을 말한다. 특정국 통화가 국제통화가 되면 해당 국가의 대외무역과 투자가 효율적으로 촉진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화의 국제화는 해당국 경제의 앞날과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각국이 추진하는 대외정책의 최종적인 목표다.

특정국 통화가 국제화되기 위해서는 기능별, 용도별, 지역별로 각각 3단계의 국제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기능별로는 교환수단, 가치저당수단, 계산단위 등 3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용도별로는 결제통화, 투자통화, 보유통화 단계를 걸쳐야 하며, 지역적으로는 주변국에서 지역권을 걸쳐 전 세계적으로 통용돼야 한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양회(전국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위안화 국제화를 공식 선언한 이후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환율제도 개편뿐만 아니라 무역과 투자 대금 결제 시 위안화 사용 권유, 자본시장 개방을 통한 외국인 투자 자본 유치, 역외 인프라 구축을 통한 수요 확대를 바탕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실현하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위안화 국제화 과제 달성에 주력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위안화 무역결제 규모는 2010년 3분기 1264억 위안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7조2300억 위안으로 급증했다. 중국과 세계 무역 결제액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각각 30%, 3.4% 수준까지 높아졌다.

같은 해 글로벌 대출과 직접투자, 채권 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6%에 달했다. 세계 외환보유액 중 위안화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1%를 초과했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당시 1800억 위안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경상과 자본거래뿐만 아니라 역외 위안화 거래센터 구축, 역내 위안화 직거래 확대 등을 통해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 왔다. 지난해 4분기 위안화 국제화 지수(RII)는 3.6으로 2013년 4분기 0.95에 비해 4배나 상승했다. RII란 경상거래와 자본거래,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산출한다.

환율제도도 국제사회에서 받아 온 비난을 줄이고 통화 국제화와 시장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위안화 기준환율 결정 메커니즘을 외환 수급 상황, 주요 통화의 환율 움직임 등을 감안해 실제 시세가 반영될 수 있도록 개편했다. 궁극적으로 자유변동환율제로 가기 위한 수순이다.

시진핑 정부가 위안화의 SDR 편입과 발효에 주력해 온 가장 큰 이유는 위안화가 중국 경제에 걸맞은 국제통화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위안화가 SDR의 준비통화로 사용되기 시작하면 경제 규모에 걸맞게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위상을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각국은 위안화를 보유 통화로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신흥국에 속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불이익을 당해 왔던 ‘낙인 효과’에서 자유로워진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효율적인 자금 조달도 가능하게 된다. 특히 위안화의 SDR 통화바스켓 편입으로 각국에서 위안화를 보유 외화자산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위안화 채권 비중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위안화의 국제 위상이 확대돼 향후 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대형 투자 프로젝트 재원을 마련하기가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달러화 의존도를 낮춰 ‘달러 함정(dollar trap)’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중국은 해외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중 20%가 넘을 만큼 최대 보유국이다. 중국이 미국 국채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 미국 국채 매입을 중단하거나 팔게 되면 보유 국채의 가치 하락을 더욱 부추겨 환차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1980년대 이후 일본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달러 자산을 매입해야 하는 ‘달러 함정’에 빠져 왔다.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돼 위안화가 국제 준비통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면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비중을 줄여 나가 장기적으로 달러 함정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IMF 내 신흥국 입지 강화
앞으로 국제금융질서는 미국과 중국 주도의 양대 경쟁 구도인 주요 2개국(G2) 혹은 차이메리카 시대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금융질서는 미국 중심의 ‘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축으로 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가 지속돼 왔다.

하지만 위안화가 SDR의 준비통화로 사용되기 시작하면 중국 주도의 ‘긴급외환보유기금(CRA), 신개발은행(N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통해 팍스 시니카(Pax Sinica) 시대를 전개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움직임이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SDR 통화바스켓 발효는 위안화가 세계 5대 중심 통화로 거듭나게 된다는 의미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함께 주도하는 세계경제 구도가 펼쳐져 2020년에는 국제 외환보유액 중 현재 60%를 초과하는 미국 달러의 비중은 27.4%까지 감소하고 현재 1% 수준인 위안화의 비중은 21.5%까지 오르게 될 것으로 예측기관들은 내다보고 있다.

IMF에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IMF 내 투표권은 신흥 회원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내외에 불과하다. 위안화가 SDR의 준비통화로 구성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IMF 내에서 신흥국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압도적으로 높은 의결권과 SDR 준비통화 비중에서도 균형을 찾아가게 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위안화의 SDR, 우리에게 득 되려면…
SDR 준비통화로 위안화가 앞으로 무역과 자본거래 결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영향력과 신뢰성을 확보해 나간다면 위안화 가치는 장기적으로 절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거래, 외환보유액에서의 위안화 비중이 확대되고 위안화 표시 금융자산을 증대시켜 위안화 수요가 증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무역특화지수(TSI) 기준으로 휴대전화, 철강, 조선업의 경우에는 가격경쟁력이 중국에 추월당한 상황이다.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부문에서의 격차도 줄어드는 추세로 앞으로 위안화 가치가 절상되면 중국 상품 대비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에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경합도(ESI)를 보더라도 휴대전화(0.745), 반도체(0.648), 가전(0.572), 선박(0.541), 철강(0.462) 등의 산업은 중국과의 경합도가 높아 혜택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에서 동태적 최소자승법(Dynamic OLS)을 기반으로 세계 수출물량함수를 추정해보면 원·위안 환율이 5%가 상승(위안화 절상)하면 한국의 대세계 수출은 1.5%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은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음과 동시에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양국 관계 모든 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위안화가 SDR 준비통화로 사용된 이후 나타날 금융과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이를 토대로 선제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기업도 환리스크 관리, 브랜드 가치 강화,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통한 기술력 제고 등을 통해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마련해 나가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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