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100만 시대 펫트러스트 가능할까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한국도 고령화와 싱글 가구가 늘어나는 등 가족 구조가 변화하면서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반려동물에게 신탁을 통해 상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가능할까.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반려동물은 97만9000마리로, 미등록 반려동물까지 고려하면 100만 마리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 시장규모도 2015년 1조8000억 원에서 2020년이면 6조 원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되는 등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펫팸(pet+family)족’이 늘면서 관련 산업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일각에서는 주인이 급작스럽게 사망할 경우 반려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펫트러스트(pet trust)’ 형태의 상속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펫팸 문화가 사회 저변에 확산된 미국의 경우, 명예신탁의 형태로 사망한 주인을 대신해 신탁회사가 남겨진 반려동물을 보호하고 있다. 간혹 해외 토픽으로 주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거액을 상속해 화제가 되기도 한다.

가장 큰 관심을 끈 상속 중 하나는 2007년 미국 부동산 재벌의 미망인이 애완견 ‘트러블’에게 1200만 달러(약 143억 원)를 물려준 것이다. 이 애완견은 미망인의 손자 둘까지 제치고 상속을 받았는데, 경호원까지 대동하고 호텔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통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재산권을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사자(死者)나 동물은 재산상의 이익을 누릴 수 없어 신탁의 수익자가 될 수 없다. 즉, 아무리 동물을 가족의 개념으로 본다고 해도 직접적인 상속의 주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의 저서 <미국상속법(American Wills and Trusts)>에 따르면 명예신탁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것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로 설정된 것으로 비공익적 목적을 가진 신탁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물을 위한 명예신탁으로 이는 특정 애완동물의 보호 및 이익을 위한 신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남겨진 동물을 보호하는 명목상 명예신탁을 할 경우에도 이를 허용하는 실정법을 통해서만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미국은 현재 많은 주에서 명예신탁에 관한 법령을 시행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애완동물신탁’ 제도를 두고 있고, 신탁법(Uniform Trust Code, UTC)도 ‘동물의 보호를 위한 신탁’과 ‘확정 가능한 수익자가 없는 비공익 신탁’을 규정해 반려동물의 신탁상속을 허용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펫트러스트는 명예신탁의 일종으로, 사익신탁이면서도 수익자가 없는 소위 ‘사익목적신탁’”이라며 “수익자가 없거나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공익신탁과 같지만 공익 목적이 아닌 사익 목적이라는 점에서 공익신탁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미국·일본에선 ‘펫신탁’ 활성화
일본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어 본인의 사망 후 남겨질 반려동물을 위한 펫신탁에 대한 관심이 많다. 최근 황원경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펫신탁의 개념과 일본 금융권 활용 사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금융권에서는 펫신탁을 활용한 상품 및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펫신탁의 프로세스를 보면 우선 반려동물의 주인은 자신을 대표로 관리회사를 설립하고 반려동물에게 남기고 싶은 재산을 사전에 관리회사로 옮긴다. 이어 본인이 사망한 후 반려동물을 맡게 될 새로운 주인을 수익자로 하는 유언서를 작성하고 사육을 위한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관리회사는 새로운 주인이 제대로 동물을 키우는지 신탁감독인을 두고 관리하는데, 새 주인이 반려동물을 사육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 변호사, 행정사 등 감독인들이 사육 상황을 점검하고 감독하도록 한다.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은 푸르덴셜생명보험과 공동으로 보험을 활용한 펫신탁 상품 ‘안심지원신탁’을 취급하고 있다. 아스모 소액단기보험사도 반려동물 주인을 대상으로 ‘펫지킴이’ 보험 상품을 출시했다. 반려동물보험을 취급하는 니혼 펫 아너스클럽은 펫 안심 케어 서비스를 통해 주인이 회원 가입을 하면 회사가 주인을 대신해 관리회사와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고령화 진전과 1~2인 가구 증가 등 일본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반려동물신탁 활용 방안을 점검해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법령이 마련돼 있지 않아 펫트러스트 방안이 실제 활용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 변호사는 “미국식 펫트러스트는 수익자가 없는 신탁이다 보니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현재 상태로는 도입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일본처럼 수익자를 반려동물 자체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으로 하고 그 수익자에게 반려동물을 관리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이라면 현재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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