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아는 만큼 보이는’ 앤티크 사조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앤티크의 세계로 안내한다. 앤티크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종류도 많거니와 시대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다. 주요 왕조와 스타일, 대표적인 인물들을 알아두면 앤티크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이현주 기자│사진 ‘앤틱 가구 이야기’(호미 출판사) 제공
앤티크 수집을 시작할 때 가장 자주 들리면서 또 낯선 표현이 사조에 관한 것이다. ‘빅토리안’, ‘아트 앤 크래프트’ 등은 앤티크 입문자들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앤티크 투자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 나라의 문화, 예술, 주거 환경, 정치 및 경제, 종교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그중 가장 기본이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대 구분은 영국의 대표적 왕조와 예술사조에 따른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이를 참고해서 각자의 왕조나 시대를 분류하기도 한다. 가구를 중심으로 분류됐고, 다른 종류의 앤티크도 이 안에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튜더 왕조(1485~1603년)의 마지막 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 시절부터 살펴볼 수 있는데, 수량이 많지 않고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경우가 많아 이곳에서는 1700년대의 조지안 시대부터 짚고 넘어간다.
1 조지안 시대(1714~1830년)
개요 앤티크 연대표에서 조지안 시대는 영국의 조지 1세부터 조지 4세까지의 군주를 포함하는 18~19세기 중반을 말한다. 이 중 조지 4세 때는 별도로 리전시 시대(1800~1830년)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 시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반에서는 예술사조로 로코코(1720~1760년) 스타일, 신고전주의 스타일(1760~1800년) 등이 유행했다.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등의 예술사조는 조지안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다.
시대 특징 조지안 시대는 12년의 짧은 통치를 한 앤 여왕의 서거 이후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왕자인 하노버 왕가의 조지 1세가 왕위를 계승하며 서막을 열었다. 조지안 시대는 산업혁명(1760~1830년)을 겪으며 자본주의를 태동한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대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뒤를 이어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시대가 열렸다.
스타일 특징 조지안 시대의 앤티크 스타일은 우아하면서도 역동성을 갖는다. 조지안 시대의 가구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예술성을 추구했고.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가구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조지안 시대 초기에 영향을 준 로코코 스타일은 흔히 여자에 비유된다. 딱딱한 바로크 스타일에서 벗어나 ‘C’나 ‘S’자와 같은 볼록한 곡선의 형태가 많다. 또한 유럽 자기의 태동기와 맞물리며 마이센(Meissen), 세브르(Sevres) 등의 자기가 출현했다. 조지안 시대 말기의 리전시 시대는 프랑스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루이 16세 스타일’로 일컫는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스타일은 왕실의 세련됨과 우아함으로 로코코의 곡선은 단정한 직선으로 바뀌었다.
주요 장인들 토머스 치펀데일(Thomas Chippendale, 1718~1779년)
18세기 중반의 가장 중요한 제작자이자 가구 역사의 획을 그은 인물이다. 초기 조지안 시대 우아함을 기본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완성시켰다.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풍과 중국풍, 고딕 양식을 접목한 디자인으로 로코코 스타일과는 또 다른 ‘치펀데일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당시 치펀데일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가구들은 모두 치펀데일 앤티크로 분류된다. 그 당시에도 모조품이 많았고 후기 빅토리안 시대에도 리바이벌된 제품이 많이 나왔다. 오리지널 치펀데일 제품은 의자 하나에 4000만~5000만 원 사이에 거래된다. 치펀데일의 뒤를 이은 조지 히플 화이트, 셰라톤 등도 중요한 가구 장인으로 조지안 시대는 가구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2 빅토리안 시대(1837~1901년)
개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시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을 말한다. 그만큼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고, 19세기의 앤티크는 ‘빅토리안 스타일’로 불릴 만큼 풍부하다. 빅토리안 스타일은 영국 앤티크를 대표하는 황금기다.
시대 특징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세계를 재패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18세에 왕 위에 올라 81세까지 64년간 재위하며 영국 왕으로서는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화 이후 부르주아 계급이 출현했으며,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번영을 누렸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는 유리로 만든 전시관 수정궁을 선보였는데, 영국민의 3분의 1이 관람했을 정도다. 런던 만국박람회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중산층들은 다양한 신기술과 화려한 가구들을 접할 수 있었다.
스타일 특징 빅토리안 스타일의 특징은 복고주의로 요약된다. 19세기 많은 사람들은 당대를 풍미하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중세를 그리워했다. 영국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빅토리아 여왕 자신이 크게 예술이나 패션에 예민하지 않았고 새로운 감각을 선도할 수 없었다. 또한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실세는 귀족에서 신흥 중산계급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 돈을 번 벼락부자들은 과거의 스타일로 회귀하며 고딕, 르네상스, 로코코풍의 장식과 가구들로 집 안을 꾸몄고 여러 시대의 것을 모방했다. 또한 만국박람회를 통해 유럽의 스타일뿐 아니라 일본, 인도, 이슬람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복합주의 스타일이 나타났다. 빅토리안 시대의 가구들은 근대 기계문명이 부상하면서, 메탈을 가미한 장식품이 나타나고 네모 부분이 둥글게 바뀐 소파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3 에드워디안 시대(1901~1914년)
개요 시대는 20세기로 접어들었고,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이후 맏아들이 뒤를 이어 에드워드 7세 시대를 맞게 된다. 빅토리안 시대의 번영을 이어받아 풍조를 반영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많이 나왔다. 영국의 에드워디안 시대는 1890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를 이르는 ‘아름다운 시대’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와도 일맥상통한다. 벨 에포크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풍요로워진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시대로, 무도회와 만찬과 교외 별장에서의 파티가 성행했으며 각국의 귀족들과 부자들이 파티를 즐기기 위해 파리로 모여 들었다.
시대 및 스타일 특징 이 시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전통적인 사회구조의 붕괴가 가속화됐고,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상류사회의 핵심으로 신흥부자들이 출현했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더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도자기와 커트러리로 장식된 화려한 식문화를 즐겼다. 신흥부자들은 귀족들의 취향을 그대로 닮고 싶었고 앤티크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문화의 정체성을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서 찾고자 했고, 가구를 중심으로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스타일이 다시 부활했다.
4 아르누보 시대(1895~1915년)
개요 아르누보 시대는 왕조가 아닌 예술사조인데, 앤티크에 초점을 맞추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조로 분류된다. 가구를 비롯해 작은 소품까지 라이프스타일의 주요 모티브가 됐고,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스타일 특징 아르누보의 시대 구분은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넓게는 1884년부터 1918년까지 이른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로 불리며,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1834~1896년)가 이끈 아트 앤 크래프트(Art & Cratf) 운동의 영향을 받아 벨기에에서 처음 시도돼 프랑스에서 꽃을 피웠다.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만능주의에 반대해 중세적 원리에 따르는 작업 방식을 시도하고 수공업 형식으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며 풀잎, 나무, 여인, 동물 등을 테마로 화려한 색상과 유려한 곡선을 선보였는데, 이는 아르누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르누보는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 하나는 물처럼 흐르는 듯한 곡선인데, 짧고 경쾌한 느낌의 로코코 곡선과는 다르다. 아르누보의 곡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소재로는 도자기와 유리, 금속 공예품이 있고 자연을 주제로 한 도기가 많이 나왔다.
주요 장인들 아르누보 시대에는 앤티크와 관련돼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출연한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벨기에 출신으로 건축과 장식 분야에 뛰어난 파울 한칸과 헨드리크 반 데 벨데 등이 있다. ‘낭시 학파’의 선두주자인 프랑스 유리공예가 에밀 갈레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또한 낭시 학파의 루이 마조렐의 가구는 진흙으로 빚은 듯 입체적이면서 곡선이 유려하다. 다른 사조와 비교할 때 미국에서의 활동이 눈에 띄는데 대표적으로 유리공예가 루이스 컴퍼트 티퍼니와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있다.
5 아르데코(1914~1935년)
개요 아르누보에 이어 지속된 혁신적인 장식 양식을 말한다. 아르누보가 자연과 곡선, 화려함을 기본으로 한다면, 아르데코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세련미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주로 가구, 보석, 직물, 인테리어 등에 이와 같은 패턴이 적용됐다. 아르데코의 스타일은 지금까지 현대적 감각을 추구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
스타일 특징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아르누보와 달리 기계적, 산업적인 형태의 디자인이 유행했다. 미국 크라이슬러 빌딩, 독일 바우하우스 제품 등이 아르데코 스타일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들이다. 아르데코라는 이름은 1925년 파리 박람회인 ‘장식미술과 현대 산업박람회’에서 처음 유래됐다.
주요 장인들
프랑스의 자크 에밀 룰만이 대표적인 아르데코 디자이너다. 18세기의 원형을 단순화, 추상화시킨 디자인을 고급스러운 소재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아르데코의 패션을 이끈 예술가는 여성 의류 디자이너였던 폴 푸아레가 있고, 유리 분야에선 르네 랄리크의 작품이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랄리크는 보석 세공으로도 유명세를 떨쳤는데, 화병과 식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앤티크 사조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앤티크의 세계로 안내한다. 앤티크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종류도 많거니와 시대마다 다양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서다. 주요 왕조와 스타일, 대표적인 인물들을 알아두면 앤티크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 길라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이현주 기자│사진 ‘앤틱 가구 이야기’(호미 출판사) 제공
앤티크 수집을 시작할 때 가장 자주 들리면서 또 낯선 표현이 사조에 관한 것이다. ‘빅토리안’, ‘아트 앤 크래프트’ 등은 앤티크 입문자들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앤티크 투자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그 나라의 문화, 예술, 주거 환경, 정치 및 경제, 종교 등을 종합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그중 가장 기본이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시대 구분은 영국의 대표적 왕조와 예술사조에 따른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는 이를 참고해서 각자의 왕조나 시대를 분류하기도 한다. 가구를 중심으로 분류됐고, 다른 종류의 앤티크도 이 안에서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튜더 왕조(1485~1603년)의 마지막 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 시절부터 살펴볼 수 있는데, 수량이 많지 않고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경우가 많아 이곳에서는 1700년대의 조지안 시대부터 짚고 넘어간다.
1 조지안 시대(1714~1830년)
개요 앤티크 연대표에서 조지안 시대는 영국의 조지 1세부터 조지 4세까지의 군주를 포함하는 18~19세기 중반을 말한다. 이 중 조지 4세 때는 별도로 리전시 시대(1800~1830년)로 지칭하기도 한다. 이 시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반에서는 예술사조로 로코코(1720~1760년) 스타일, 신고전주의 스타일(1760~1800년) 등이 유행했다.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등의 예술사조는 조지안 스타일에 영향을 끼쳤다.
시대 특징 조지안 시대는 12년의 짧은 통치를 한 앤 여왕의 서거 이후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왕자인 하노버 왕가의 조지 1세가 왕위를 계승하며 서막을 열었다. 조지안 시대는 산업혁명(1760~1830년)을 겪으며 자본주의를 태동한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프랑스에서는 프랑스대혁명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뒤를 이어 나폴레옹과 조제핀의 시대가 열렸다.
스타일 특징 조지안 시대의 앤티크 스타일은 우아하면서도 역동성을 갖는다. 조지안 시대의 가구는 단순함에서 벗어나 예술성을 추구했고.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가구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조지안 시대 초기에 영향을 준 로코코 스타일은 흔히 여자에 비유된다. 딱딱한 바로크 스타일에서 벗어나 ‘C’나 ‘S’자와 같은 볼록한 곡선의 형태가 많다. 또한 유럽 자기의 태동기와 맞물리며 마이센(Meissen), 세브르(Sevres) 등의 자기가 출현했다. 조지안 시대 말기의 리전시 시대는 프랑스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이 주를 이룬다. ‘루이 16세 스타일’로 일컫는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스타일은 왕실의 세련됨과 우아함으로 로코코의 곡선은 단정한 직선으로 바뀌었다.
주요 장인들 토머스 치펀데일(Thomas Chippendale, 1718~1779년)
18세기 중반의 가장 중요한 제작자이자 가구 역사의 획을 그은 인물이다. 초기 조지안 시대 우아함을 기본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완성시켰다.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풍과 중국풍, 고딕 양식을 접목한 디자인으로 로코코 스타일과는 또 다른 ‘치펀데일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당시 치펀데일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가구들은 모두 치펀데일 앤티크로 분류된다. 그 당시에도 모조품이 많았고 후기 빅토리안 시대에도 리바이벌된 제품이 많이 나왔다. 오리지널 치펀데일 제품은 의자 하나에 4000만~5000만 원 사이에 거래된다. 치펀데일의 뒤를 이은 조지 히플 화이트, 셰라톤 등도 중요한 가구 장인으로 조지안 시대는 가구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2 빅토리안 시대(1837~1901년)
개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시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을 말한다. 그만큼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고, 19세기의 앤티크는 ‘빅토리안 스타일’로 불릴 만큼 풍부하다. 빅토리안 스타일은 영국 앤티크를 대표하는 황금기다.
시대 특징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세계를 재패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18세에 왕 위에 올라 81세까지 64년간 재위하며 영국 왕으로서는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화 이후 부르주아 계급이 출현했으며,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번영을 누렸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는 유리로 만든 전시관 수정궁을 선보였는데, 영국민의 3분의 1이 관람했을 정도다. 런던 만국박람회를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중산층들은 다양한 신기술과 화려한 가구들을 접할 수 있었다.
스타일 특징 빅토리안 스타일의 특징은 복고주의로 요약된다. 19세기 많은 사람들은 당대를 풍미하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중세를 그리워했다. 영국은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빅토리아 여왕 자신이 크게 예술이나 패션에 예민하지 않았고 새로운 감각을 선도할 수 없었다. 또한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실세는 귀족에서 신흥 중산계급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때 돈을 번 벼락부자들은 과거의 스타일로 회귀하며 고딕, 르네상스, 로코코풍의 장식과 가구들로 집 안을 꾸몄고 여러 시대의 것을 모방했다. 또한 만국박람회를 통해 유럽의 스타일뿐 아니라 일본, 인도, 이슬람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복합주의 스타일이 나타났다. 빅토리안 시대의 가구들은 근대 기계문명이 부상하면서, 메탈을 가미한 장식품이 나타나고 네모 부분이 둥글게 바뀐 소파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3 에드워디안 시대(1901~1914년)
개요 시대는 20세기로 접어들었고,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 이후 맏아들이 뒤를 이어 에드워드 7세 시대를 맞게 된다. 빅토리안 시대의 번영을 이어받아 풍조를 반영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많이 나왔다. 영국의 에드워디안 시대는 1890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를 이르는 ‘아름다운 시대’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벨 에포크 시대와도 일맥상통한다. 벨 에포크는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풍요로워진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시대로, 무도회와 만찬과 교외 별장에서의 파티가 성행했으며 각국의 귀족들과 부자들이 파티를 즐기기 위해 파리로 모여 들었다.
시대 및 스타일 특징 이 시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전통적인 사회구조의 붕괴가 가속화됐고,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상류사회의 핵심으로 신흥부자들이 출현했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더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도자기와 커트러리로 장식된 화려한 식문화를 즐겼다. 신흥부자들은 귀족들의 취향을 그대로 닮고 싶었고 앤티크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문화의 정체성을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서 찾고자 했고, 가구를 중심으로 18세기 후반의 신고전주의 스타일이 다시 부활했다.
4 아르누보 시대(1895~1915년)
개요 아르누보 시대는 왕조가 아닌 예술사조인데, 앤티크에 초점을 맞추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조로 분류된다. 가구를 비롯해 작은 소품까지 라이프스타일의 주요 모티브가 됐고,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스타일 특징 아르누보의 시대 구분은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넓게는 1884년부터 1918년까지 이른다. 아르누보는 ‘새로운 예술’로 불리며,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1834~1896년)가 이끈 아트 앤 크래프트(Art & Cratf) 운동의 영향을 받아 벨기에에서 처음 시도돼 프랑스에서 꽃을 피웠다. 윌리엄 모리스는 기계만능주의에 반대해 중세적 원리에 따르는 작업 방식을 시도하고 수공업 형식으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며 풀잎, 나무, 여인, 동물 등을 테마로 화려한 색상과 유려한 곡선을 선보였는데, 이는 아르누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르누보는 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 하나는 물처럼 흐르는 듯한 곡선인데, 짧고 경쾌한 느낌의 로코코 곡선과는 다르다. 아르누보의 곡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소재로는 도자기와 유리, 금속 공예품이 있고 자연을 주제로 한 도기가 많이 나왔다.
주요 장인들 아르누보 시대에는 앤티크와 관련돼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출연한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벨기에 출신으로 건축과 장식 분야에 뛰어난 파울 한칸과 헨드리크 반 데 벨데 등이 있다. ‘낭시 학파’의 선두주자인 프랑스 유리공예가 에밀 갈레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또한 낭시 학파의 루이 마조렐의 가구는 진흙으로 빚은 듯 입체적이면서 곡선이 유려하다. 다른 사조와 비교할 때 미국에서의 활동이 눈에 띄는데 대표적으로 유리공예가 루이스 컴퍼트 티퍼니와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있다.
5 아르데코(1914~1935년)
개요 아르누보에 이어 지속된 혁신적인 장식 양식을 말한다. 아르누보가 자연과 곡선, 화려함을 기본으로 한다면, 아르데코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세련미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주로 가구, 보석, 직물, 인테리어 등에 이와 같은 패턴이 적용됐다. 아르데코의 스타일은 지금까지 현대적 감각을 추구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
스타일 특징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아르누보와 달리 기계적, 산업적인 형태의 디자인이 유행했다. 미국 크라이슬러 빌딩, 독일 바우하우스 제품 등이 아르데코 스타일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들이다. 아르데코라는 이름은 1925년 파리 박람회인 ‘장식미술과 현대 산업박람회’에서 처음 유래됐다.
주요 장인들
프랑스의 자크 에밀 룰만이 대표적인 아르데코 디자이너다. 18세기의 원형을 단순화, 추상화시킨 디자인을 고급스러운 소재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아르데코의 패션을 이끈 예술가는 여성 의류 디자이너였던 폴 푸아레가 있고, 유리 분야에선 르네 랄리크의 작품이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랄리크는 보석 세공으로도 유명세를 떨쳤는데, 화병과 식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