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부산정거장’이 구슬피 불리고 서울 거리에 무작정 상경한 소년들로 넘쳐나던 시절. ‘폭풍의 언덕’에서 가난을 이유로 핍박받고 상처받은 자의 사랑과 복수는 머나먼 영국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영국 요크셔 지방의 황량한 벌판, 아이 둘은 도시로 외출한 아버지를 기다린다. 도시에서 외떨어진 이곳에서 흔하디흔한 것은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뿐. 오빠 힌들리와 여동생 캐서린은 흔치 않은 도회의 선물을 기대하고 있었다.
며칠을 손꼽아 기다리니 거친 바람소리와 함께 아버지 언쇼가 들어온다. 그런데 아버지가 가지고 온 것 중에 기대하지 않은 선물이 딸려 있었다. ‘악마에게 물려받은 것처럼 얼굴색이 까만’ 아이, ‘천한 티’와 ‘미개인과 같은 사나움’이 묻어나는 이름 모를 집시 아이가 바로 그것, 영국 리버풀에서 ‘주워 온 것’ 중에 가장 반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소년은 19세기 영국 사회에 흔하디흔한, 거리로 내몰린 ‘올리버 트위스트’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는 한낱 ‘침입자’이자 ‘이방인’일 뿐이었다. 천하디천한 검은 얼굴의 ‘격이 떨어지는’ 이 소년을 반갑게 맞이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버지 언쇼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영국 사회는 히스클리프처럼 가난에 몰려 거리에 내버려진 소년소녀들이 많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드높았다. 당시 교양계급의 미덕에 걸맞게 가난한 소년에 대한 동정으로 잘 길러내고자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아들 힌들리는 아버지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번은 말 두 마리를 사 오신 후 히스클리프와 자신에게 각각 한 마리씩 나누어주신 것, 하인과 다를 바 없는 히스클리프에게 자신의 몫과 똑같이 분배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 동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마을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그 존재가 불편했다. 하지만 캐서린은 달랐다. 처음부터 히스클리프와 잘 어울려 지냈다. 또 그렇게 어울려 지내면서 우정 이상의 감정이 싹트기도 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했고, 히스클리프 또한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린튼가(家)의 에드거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가문 좋고 경제력도 탄탄한 집안,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히스클리프와 결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결혼 소식을 듣고 좌절한다. 유일한 마음의 벗, 사랑하는 캐서린이 다른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그가 더 이상 워더링하이츠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히스클리프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말끔한 신사가 돼 돌아왔다. 금의환향까지는 아니었지만 동리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히 신사 같아졌어요”라는 말로 그의 변화를 꼭 짚어내었다.
캐서린의 놀라움은 그런 말로 표현될 수 없었다. 캐서린의 마음을 눈치 챈 남편 에드거는 히스클리프의 등장이 마땅치 않았고, 힌들러는 히스클리프라는 입안의 가시 같은 존재가 다시 등장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히스클리프의 등장 이후, 힌들러는 도박에 미쳐 재산을 탕진했고,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와 결혼했지만 고독감에 휩싸여 멀리 달아났다.
그리고 힌들러의 아들 헤어턴은 히스클리프 집에서 하인 노릇을 하며 지내게 됐으니 이 집안의 사정을 조금이라고 알고 있는 이라면 누구든지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한국인 자극한 ‘비연의 눈보라 고개’
히스클리프를 보고 있었던 캐서린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정신착란이 생길 정도로 몸이 쇠약해진 채로 죽어 가는데,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만나게 된다.
캐서린은 으스러질 정도로 히스클리프를 안은 채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히스클리프의 머리카락 한 줌이 그대로 뽑혀질 정도로 증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뜨거운 정념이 맞닿은 곳에서 그들은 서로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놓는다.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 속에 있는 거야.”
“아, 캐시. 아, 나의 생명이여.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어…. 무슨 권리로 나를 버리고 간 거지?…왜 당신 마음을 배반했어, 캐시?”
1959년 대한민국의 집집마다 라디오가 있는 집이라면 ‘폭풍의 언덕’ 이야기가 방송됐다. 이미 전란을 거치며 ‘폭풍’이 무엇인지 경험한 이들에게 ‘폭풍의 언덕’이 전하는 그 거센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는 머나먼 영국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국의 이야기와 달랐던 점은 히스클리프를 좀 더 애잔하게 쳐다볼 수 있는 시선이었다. 소설 원작에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연은 넬리라고 하는 하인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그런데 넬리는 히스클리프를 ‘침입자’로 전달할 만큼 좋아하지 않았다. 캐서린이 등잔 밑이 어두웠다며 넬리가 방해꾼이었다고 말할 만큼 넬리는 히스클리프를 ‘침입자’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핍박받고 학대받았던 히스클리프의 이야기는 오히려 한국의 관객들을 더 자극했다. 리버풀 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당시 서울 거리에는 무작정 상경한 소년들로 넘쳐났고 전쟁고아도 적지 않았다. 또 그런 사정이 아니더라도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구슬프게 불리던 그 시절, 뜨겁게 사무친 정념이 ‘워더링 하이츠’의 거센 바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였을까. 바로 다음 해 1960년 명보극장에는 한국판 ‘폭풍의 언덕’이 나붙게 된다.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은 넋이 되어 찾아 헤매이는 비연(悲戀)의 눈보라 고개’로 소개됐고, 연일 신문광고에서 로렌스 올리비에의 얼굴이 아니라 김지미의 얼굴을 만나게 됐다.
1973년에는 TV 연속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만큼 ‘폭풍의 언덕’은 해방 이후 학생들이 즐겨 읽었던 필독서였고, 그렇게 손에 잡지 않더라도 TV와 라디오, 그리고 영화관에서 접하기 쉬웠던 한국의 이야기였다. 대한민국에서 ‘폭풍의 언덕’이란 거센 바람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사랑,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이들에게 심금을 울렸던 그런 뜨거운 이야기였다.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일러스트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