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중년의 강인함과 나약함에 대하여

아주 오래전 일이다. 어느 작은 항구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은 내일이면 배에 오른다. 소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설사 돌아온다고 해도 그곳은 이미 소년의 항구가 아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 모두 그렇게 세상으로 떠났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이름의 바다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래서 수많은 글과 책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중장년이 됐다. 자, 이제 무엇을 읽을 것인가?

50세, 더 빛나는 내일을 꿈꾸다

먼저 에릭 뒤당의 ‘50세 빛나는 삶을 살다’(에코의서재)의 일독을 권한다. 대단한 석학이 쓴 글도 아니고, 한국어판 출간 당시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온 지 7년이 넘도록 매해 일정한 시기에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는 좀 희한한 판매 경향을 가진 책이기도 하다. 연말연시가 되면 방송이나 칼럼들을 통해 이 책의 내용이 재차 소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50세 이후에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30인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인생 전반을 훑지는 않는다. 그 대신 50세 이후 중년을 넘어 노년에 이르는 시기에 그야말로 자신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하며 이 세상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장면들을 포착해 보여준다. 55세에 코카콜라를 만든 존 펨버턴은 이 책에서 가장 어린(?) 출연자 중 한 사람이다. 60세에 ‘레미제라블’을 발표한 빅토르 위고, 65세에 단독 세계 일주를 마친 프랜시스 치체스터 경, 67세에 뉴욕 카네기홀 컴백 무대에 선 조세핀 베이커, 71세에 프랑스 패션계를 다시 평정한 코코 샤넬, 83세에 일생일대의 작품 ‘청색 누드’를 제작한 앙리 마티스. 80대들의 이야기에 놀랄 틈이 없다. 90세에 이르러 재즈 거장으로 이름을 얻게 된 쿠바의 콤파이 세군도와 93세에 티베스티 산맥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프랑스의 인류학자 테오도르 모노의 이야기까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50세 빛나는 삶을 살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렇다. 오늘날 스무 살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아니, 심지어 어느 때보다도 힘들다. 예순 살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고, 여든 살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까 나이는 잊어 버리자. 아니면 나잇값을 위한 나이 이야기는 한 번으로 족하다 여기고 현재만을 생각하자. 스쳐 지나가는 순간순간만을 생각하자. 내일도 모든 꿈은 여전히 실현 가능하다.”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인생의 고난에 맞서, 강인한 사유를 시작하라
나이가 들면 완고해진다. 지금껏 살아왔던 익숙한 삶의 태도가 마치 매뉴얼처럼 기능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순간 새로운 것을 만나는 일이 시큰둥해지고, 선택이라는 인생의 모험이 두려워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우리가 완고해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완고함은 나약함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생각해보자. 대양을 항해하는 동안 거친 파도와 한 번도 싸워보지 못한 뱃사람이 있을까? 아니다. 큰 태풍을 이겨낸 뱃사람만이 더 많은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안전과 편안함만이 좋은 인생의 조건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인생도 오히려 고난과 고통을 이겨냈을 때만 위대한 삶으로의 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은 인생의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완고함 다시 말하자면, 인생의 항해를 그만두겠다는 포기 선언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마치 뭍으로 기어 나와 작부 집에서 술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는 늙은 뱃놈처럼 비루해 보인다. 어쨌든 그렇게 처량해진 이가 아니라, 수없는 풍랑을 이겨낸 진짜 뱃사람 같은 강인한 사람들만 읽을 자격이 있는 바로 그런 책도 있다. 바로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다.

이 책은 김훈 특유의 끝 간 데 없이 유려한 문장처럼, 교묘하다. 읽는 자의 인생 경험과 수준에 따라 매우 다양한 층위로 그 의미가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문장을 보자.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이미 체념한 자에겐 그저 그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문장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야망을 품은 자에겐 그 삶의 격렬함 뒤에 감춰 둔 장렬한 심정을 추앙하는 글로도 읽히는 것이다.

‘뼛속에 사무치는 인!’ 우리가 흔히 ‘인이 박혔다’고 말할 때 활용되는 저 ‘인’이라는 단어는 한자가 아니다. 사전적으로는 ‘버릇’이나 ‘습관’이며, 여기선 ‘굳은살 같은 감각’을 뜻한다. 김훈의 저 문장 속에서 ‘인’이라는 글자는 그저 신물 나는 ‘밥벌이의 고단함과 그 결과’일 수도 있지만, 단단하게 밧줄을 부여잡은 뱃사람의 손에 박힌 ‘든든한 굳은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라면을 끓이며’는 읽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그러니 요즘 최고로 잘나가는 이 베스트셀러 산문집을 나도 한번 읽어보겠노라 결심했다면 이 점을 유념하자. 이 책은 독자에게 인생의 수준과 자격을 묻는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위로를 얻기보단 꽤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김훈은 또 이렇게도 쓰고 있다.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만이 이런 문장을 견뎌낼 수 있다. 나약한 사람이라면 그저 눈물이나 찔끔거리다 말 것이다. 반면 강인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손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리고 사유를 시작할 것이다.

내면적 단련을 위한 걷기 예찬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동정하는 야생동물을 본 적이 없다/ 얼어 죽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작은 새조차도/ 결코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D. H. 로렌스의 시 ‘self-pity(자기연민)’다. 진정으로 강인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시를 읽으며 가슴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강인한 사람들은 타인의 격려나 위로나 동정 따위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런 감정적인 것들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어찌 인간 본연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놓고 그걸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그런 것들을 하염없이 바라고나 있다면, 그리고 그런 것 없이는 도무지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가 없어졌다면, 그건 아니다. 그 역시 나약함일 뿐이다.

그런데 나약함과 강인함은 도대체 어떻게 나누어질까. 돈과 권력이 많아도 나약한 인간이 있는 반면 그런 것 없이도 강인한 인간이 있다. 또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 앞에선 꼭 갑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비겁이야말로 나약한 인간의 전유물이다. 진정으로 강인한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매사에 훨씬 유연하고 부드럽다. 비겁은 스스로를 쳐다보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면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 강인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스스로 만들고 새롭게 규정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곤 독립적 주체로서의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인생의 그 어떤 사소한 선택에 있어서도 말이다. 그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강인한 사람들은 대개 혼자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걷기’란 단순한 육체적 행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삶의 속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걷기, 자기 착취의 악순환을 끊어 버리기 위한 걷기, 육체가 정신에 베푸는 혜택으로서의 걷기. 걷기를 통해 내면적 단련을 하고 싶은 독자들에겐 다비드 르 브르통의 에세이 ‘걷기 예찬’(현대문학)을 권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인간은 걷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찾는다”고 말한다. 브르통에게 걷기란 곧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도저한 인간 사유에 대한 예찬이다.

홀로 걷고자 하는 중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한 권 더 있다. 바로 정수복의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문학동네)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학자이자 저술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가 한 달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걷고 나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여름의 메마른 대지와 건조한 대기 속에 그야말로 부서져 터지는 햇살 속에서 인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햇빛은 프로방스의 그 맑고 건조한 대기 속에서 밝음과 따뜻함을 글자 그대로 부스러뜨리고 터뜨려서 흩뿌려 놓는다.”

아름답고 섬세하며, 동시에 장렬함이 솟구치는 문장이다. 책 속엔 이런 빛나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품위를 잃어가는 것 경계하기

나이가 들어가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품위를 잃어가는 것이다. 품위를 잃으면 그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한다. 그래서 흔히 나이가 들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물질적 욕심에 한해서만 그렇다. 우리가 무엇인가 더 갖고 싶다는 열망을 스스로 없앤다면, 이는 관 속에 들어가 미리 누운 것과 다르지 않다. 그 대신 훨씬 더 높고 아름다운 것들을 욕심내보면 어떨까. ‘가치’말이다. 먹고 사느라 바빴던 세월 동안 우리가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것들 말이다.

사실 중년을 넘어서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취하는 방법은 오직 책만이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그 점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두 권의 신작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황석영의 ‘해질 무렵’(문학동네), 그리고 박범신의 ‘당신: 꽃잎보다 붉던’(문학동네).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며칠 전 독서광이기도 한 나의 친구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외롭다는 것은, 슬픈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너는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강인한 사람이다.”

김성신 출판평론가│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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