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家 분쟁, 남의 일 아니다]상속 분쟁 막으려면 유언장 제대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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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첫 단추는 유언이다. 문제는 제대로 유언장을 남기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언대용신탁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선택은 다를 수 있지만 최종 목표는 분쟁 없는 상속이다.


상속의 시작은 유언, 인식 전환 시급
유산 상속에 있어 가장 우선적인 부분이 유언이다. 그다음이 협의이고 이게 안 될 경우 상속재산분할 소송으로 이어진다. 피상속인이 유언장만 꼼꼼하게 써 놔도 불필요한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언장을 제대로 쓸까? 유언장이라는 것이 워낙 사적인 영역이라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2009년 씨티은행 아시아태평양 지역 금융지수 연구 자료를 보면 한국의 유언장 작성 비율은 대략 1%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흥국생명연구소에서는 유언장 작성 비율을 이보다 높은 5%로 추정했다. 이는 역으로 우리나라 국민 100명 중 95명 이상이 유언장을 남기지 않고 있을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유언장은 민법에 의해 상세한 규정을 정하고 있다. 법 규정을 벗어난 유언은 ‘일기’나 ‘가훈’에 불과하다. 유언은 법에 정해진 5가지(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방법이 있으며, 자필증서의 경우 유언장의 작성 연·월·일과 유언자의 주소 또는 생활 근거지, 유언자의 이름, 도장 또는 지장이 꼭 포함돼야 한다. 주소는 유언자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일 필요는 없으며 생활 근거지도 가능하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녹음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있는데 녹음을 한 날짜, 유언자의 이름, 증인의 녹음이 필요하다. 공정증서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며 유언자가 직접 공증인 앞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유언서의 존재는 명확히 해 두되 유언의 내용을 비밀로 하고 싶은 경우 유언 내용을 작성해 봉투에 밀봉하는 방식으로 비밀증서를 남길 수 있다. 급박한 사정에 의해 다른 방식으로 유언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 예외적으로 구수증서를 남길 수 있다. 단, 구수증서에는 2명 이상의 증인이 필요하고 급박한 사유가 종료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법원에 검인신청을 해야 한다.

덧붙여 유언집행자나 임의후견 계약을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유언집행자는 향후 유언장의 진위 논란이나 유산 분배에 있어 상속인 간의 갈등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고, 임의후견 계약은 피상속인이 임종 무렵에 치매 등으로 판단력이 흐려질 것에 대비해 자신의 재산 관리 및 신상 보호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후견인에게 위탁하는 것으로 모두 상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족 간 불화를 방지하는 안전망이다.

한 시중은행의 자산관리 담당 임원은 “유언장만 제대로 작성해도 가족 간 불화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화를 겪었던 일본의 경우도 1990년대 고령층의 사망으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자 유언장 쓰기 운동을 전개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도 사회적으로 유언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확산돼야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신탁, 상속 집행·세대 연속상속 강점
최근 상속 플랜에서 유언장과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신탁’의 활용이다. 2012년 7월 신탁법이 개정되며 신탁도 유언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는데 상속 설계에 있어 유언장에 비해 훨씬 유연한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신탁이 유언장과 확실히 대비되는 부분은 세대 연속상속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유언장은 최초 상속인 지정만 가능하지만 신탁의 경우 할아버지가 자식세대를 거쳐 손자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연속상속이 가능하다. 또 여러 가지 옵션을 설정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인 상속인이 어느 정도 자산관리 능력이 생기는 나이에 유산을 상속하도록 별도의 계약을 할 수도 있다.

이미 신탁이 대중화된 미국의 경우 휘트니 휴스턴이 딸을 낳기 한 달 전에 유언신탁을 통해 ‘자녀가 재산 관리 능력이 있을 때까지 신탁으로 유산을 관리하다가 재산을 물려주라’고 계약을 했고, 이에 따라 상속 재산은 1차(21세), 2차(25세), 3차(30세)로 나눠 지급되도록 했다.
더불어 신탁의 경우 금융기관에서 상속집행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피상속인이 사망한 경우 신탁(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상속인들에게 부모의 뜻을 전달하고 상속 집행 절차를 안내하기도 하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게 하고 은행에서 직권으로 상속인들에게 자산을 이전해 주는 역할을 해 줄 수도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신탁부 팀장은 “현금 상속의 경우에는 유언장보다는 신탁을 추천한다”며 “유언장과 달리 신탁은 바로 상속집행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약 대로 자산 승계를 처리하고 필요한 경우 해외에 있는 자녀들에게는 직접적인 송금까지도 가능한 편리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탁은 부동산 관리와 가업승계 영역에 있어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옵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문제에 있어 건물 및 임차인 관리, 해외 거주자와 국내 건물 관리, 건물의 리모델링 및 신축 등에 이르는 서비스도 신탁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다.

일부에서는 가업승계의 해법으로 신탁을 제시하기도 한다. 가업승계 과정에서 다수의 상속인 사이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유류분(遺留分, 상속인에게 보장된 최소한도의 상속 지분)’으로 인해 경영권이 흔들리는 문제를 신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아예 경영권 지분을 신탁으로 묶어 놓고, 상속인들이 해당 주식에서 나오는 수익이나 배당만을 가져가도록 하면 기업의 영속성은 담보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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