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에서 덩샤오핑까지,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그들’
하카(客家, 객가)는 글자 그대로 ‘손님’이라는 뜻으로 본래 중국 한족의 한 갈래였다. 고향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외지인으로 멸시와 핍박을 받았던 하카 민족이 중국 근현대사의 주역이 되고 화교의 선구자가 돼 전 세계 상권을 장악한 근간은 어디에 있을까. 하카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생사가 아니라 희망이 없다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한낱 ‘동양의 집시’로 뿌리 없이 떠돌던 이들이 이토록 번영할 수 있던 하카의 정신과 문화를 들여다본다.지난 3월 23일 별세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장(國葬)이 싱가포르국립대에서 거행됐다. 마실 물조차 부족했던 섬나라를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킨 데다 서방과 아시아를 아우르며 통찰력을 발휘해 격변의 현대사를 이끌어 온 리 전 총리 인생 여정의 마지막 길이 되는 순간이었다. 외신들은 각국 정상의 추도 인사를 바삐 실어 날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를 ‘역사의 진정한 거인’이라고 칭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그를 중국의 ‘라오펑유(老朋友, 오랜 친구)’라고 추모했다. 독재자나 소수를 희생시키는 데 개의치 않는 ‘골수 마키아벨리즘 신봉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리 전 총리이지만 뛰어난 전략가와 사상가로 그의 업적을 높이 사 각국 정상들은 그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하면서 싱가포르의 국부로 칭송받기까지 그가 이루어 온 업적의 이면에 하카인이라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가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를 한결같이 중요시 여기면서도 타 문화와의 융합, 개방에도 적극적이었다는 점, 이념보다는 실리를 최우선으로 하고 부정부패를 죄악시 여겨 온 점도 바로 하카 민족의 대표적인 덕목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하카족의 후예는 굵직한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국 경제 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 전 중국 국가주석, 중국의 국부 쑨원, 리덩후이 전 대만 총통,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등 아시아를 주름잡았던 정치인들 모두 하카인의 자손이다.
하카 민족이 남다른 교육열, 뛰어난 경제 감각, 진취적인 성격을 가진 데 이어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상인 정신이다. 광둥, 푸젠, 창저우, 하카 등 화교 사회 4대 파벌 중 하카 민족이 가장 진취적이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아 화교 중 화교라 꼽히기도 한다. 리카싱 홍콩 장강실업 회장 등 현재 동남아 경제를 주무르는 손도 대부분 하카인이다. 대만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하카인이 차 산업이 활발한 중부 지역에 거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이들은 17세기에 중국 본토에서 떠돌다 이 지역으로 내려와 척박한 산악 지역인 중부 지방에서 차를 재배해 대만 차 산업의 중심지로 이끄는 주역이 된다. 중국 대륙에만 약 7000만 명, 홍콩·타이완·마카오 등지에 2000만 명,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80여 개국에 4000만 명 등 총 1억 명이 넘는 하카인들이 살고 있다.
뜨거운 교육열·뛰어난 경제 감각·진취적 성격에 상인 정신까지
하카인의 형성은 오랜 시기에 걸쳐 이뤄져서 특정 형성 시기를 단정하기 힘들지만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넘어가던 17세기에 중국 화북, 중원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각종 전쟁과 민란, 가뭄 등 재난을 피해 푸젠성과 광둥성 등 남부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본다. 춥고 척박한 북방 지역에서 따뜻한 기후와 기름진 토양이 펼쳐진 남방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하카인들은 특유의 끈질긴 민족성으로 그들만의 삶을 개척하는 동시에 고유의 하카 문화 정신을 이어나간다.
가장 눈에 띄는 문화는 하카인의 전통 가옥이다. 적게는 몇백 명, 많게는 1천여 명이 살 수 있는 대규모 건축물로 구조와 규모가 매우 독특해 중국의 국가문화재,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투러우(土樓)라 불리는 이 전통 가옥은 잠실 올림픽경기장이 떠오르는 독특한 외형을 갖고 있다. 하늘을 향해 건물 윗부분은 뻥 뚫려 있고 외벽은 목재나 황토를 위주로 한 천연 재료를 사용해 두꺼운 벽체를 이루고 있다. 내부의 방이라 할 수 있는 각 집은 계단, 복도로 연결돼 있어 거주민들이 드나들기 편하게 돼 있는 한편, 적들이 침입할 경우를 대비해 완벽한 성벽의 역할도 가능하도록 지어졌다. 투러우의 구조를 통해 하카인의 인문학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데, 이처럼 규모가 큰 가옥에 많은 사람이 함께 거주하기 위해서는 질서와 규율이 필요하고 그것은 철저히 유가사상을 기반으로 한 하카인 전통에 근거해 족장의 관리에 맡겨진다. 당연히 방 안에 딸려 있지 않은 주방, 화장실, 창고, 우물, 축사 등은 규율에 따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다.
공동생활과 더불어 ‘품앗이’ 육아와 교육 철학은 걸출한 명망가를 배출해 온 하카인의 자랑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통 가옥 투러우 안에 그들만의 학당과 서재를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이 늘 책을 가까이 하도록 했다. 당연히 교육비도 공동으로 부담하고 육아도 서로 도왔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공동으로 추렴한 돈이나 식량을 모아 장학금 형식으로 도와 뒤처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했으니 무상교육의 토대도 닦은 셈이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전통도 강해서 ‘한 번 선생님이면 평생 어버이’라고 가르치고 가정마다 돌아가며 선생님 집에 채소 등 식료품을 대주거나 명절이 되면 선생님을 모셔 극진히 대접하기도 했다.
광둥성에 사는 차오산(潮汕)인은 중국인들 내부에서 하카인과 더불어 ‘중국의 유태인’이라 불리는 민족이기도 한데 하카인에 비해 자녀 교육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하루 빨리 학교를 마치고 장사를 해 돈을 버는 것이 낫다는 사고방식이다. 반면 유교적이고 전통적인 교육을 중시하는 하카인이 엘리트 관료나 학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도 뜨거운 교육열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변란을 피해 북에서 남쪽 지역으로 내려와서도 ‘뜨내기’ 신세였던 이들은 전 재산을 자식 교육에 투자했다. 이렇듯 각별한 교육 환경에서 자란 세대들이 훗날 화교 상류층이 되거나 중국으로 돌아가 부유층으로 거듭나는 사례가 흔하다. 하카인들이 요즘 말로 자식 교육에 ‘올인’한 덕분이다.
하카인의 ‘하카어’ 자부심도 대단하다. 전통적으로 ‘조상 논을 팔 수는 있어도 조상의 말은 팔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를 쓰면서도 자신들의 고유 방언인 ‘하카어’를 지키는 정체성 덕분에 하카 민족의 단결성, 연합체적인 면모가 더욱 공고해졌을 것이다.
굴러온 돌이 새 역사 쓰기까지, 고유문화 지키며 개방성·포용력 특징
학계에서 하카인을 정의하는 특징 중 하나가 하카 민족은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부지런하고 고난을 잘 이겨낸다는 점이다. 학문과 교육을 중시하고 단결력과 협동심이 강한 것이 하카인의 정신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민족성은 오늘날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경제와 정계를 호령하는 하카 민족 후예의 근간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세계 도처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1억이 넘는 독자적인 ‘하카 커뮤니티’를 이룬 것이 단순히 민족 고유의 전통만 고수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들은 풀뿌리처럼 흔들리며 이곳저곳 이주하면서도 타 민족에 대한 포용력, 현지인과의 융화에 적극적이었다. 리콴유 전 총리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듯이 세계 각국에 흩어진 하카인들의 현지 언어 구사 능력은 원어민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하다. 민족의 정체성은 지켜나가되 외지에서 뿌리를 내렸다면 공동의 이익이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참여해 온 덕에 하카인들은 지구촌 어디서든 일가를 일으키고 사회 지도층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하카 정신을 대표하는 ‘진취적인 성격’도 주목받고 있다. 요즘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쓰인다는 ‘비행기’는 ‘비전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면 기적이 생긴다’는 줄임말로 리콴유 전 총리를 빗댄 말이기도 하다. 하카인들이 조상 숭배 분위기 속에서 개척 성과가 뛰어난 조상을 가장 존경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취적인 정신이 해외로 나가 생계를 도모해야 하는 민족적 특수성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그래서 하카 속담에 ‘외지에 나가 구걸을 할지언정 집 안에서 시시콜콜한 일에 신경 쓰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외지에 나갈 기회가 생겼는데도 차마 집을 못 떠나는 사람을 ‘아궁이에 숨은 닭’라고 욕하며 장래성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해 버리기도 하는 이들이 하카인이다.
이처럼 자식 교육에 힘 쏟고 혈혈단신 낯선 땅에 정착해 끝내 성공을 이루는 기상, 뛰어난 두뇌와 비상한 경제 감각에 더불어 청렴결백을 지향하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버는 상인 정신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동양의 유대인’이라 불리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기획 박진영 기자 | 글 이지혜 객원기자 | 참고 서적 및 사진 제공 ‘현대 중국의 객가인’, ‘객가 문화(학고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