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S FASHION CODE] 봄·여름을 위한 슈트

김창규의 패션 코드

나폴리 슈트의 원조인 ‘루비나치’의 2대손인 현재의 오너, 마리아노 루비나치(왼쪽)와 3대손 루카 루비나치.

비즈니스맨에겐 재킷이 필수다. 아무리 무더운 여름일지라도 말이다.

벗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겠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셔츠만 입고 있는 것은 실례다. 이유는 드레스 셔츠가 겉옷보다 속옷의 범주에 가까운 옷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름 재킷 문화는 실용성과 거리가 멀다. 더운 날 옷을 한 겹 더 입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식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재킷을 착용하는 것이 언제나 옳다. 피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봄·여름 슈트, 그 핵심은 ‘소재의 기능성’이다.


계절의 특수성, 시즌 원단
봄·여름 시즌 슈트 옷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야드당 무게 270g이 넘는 가을·겨울 시즌의 울 원단과 달리 220g 남짓한 무게의 서머 울 원단이 대표적이며, 모헤어와 실크 같은 동물성 소재, 리넨과 코튼 같은 식물성 소재도 잘 알려져 있다. 코튼은 이집트산이, 실크는 중국과 한국산을 최고급으로 치지만, 양모를 비롯한 모든 원료를 가지고 옷감으로 생산하는 기술력은 영국과 이탈리아가 최고다. 특히 이탈리아는 가을·겨울 시즌 원단 제작에 강세를 보이는 영국과 반대로 봄·여름 시즌 원단 제작에 더 뛰어난 면모를 보인다. 겨울이 온화하고 햇살이 강렬한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권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봄·여름 시즌 원단은 가볍고, 통기성이 우수하며, 다채로운 색감을 표현한다. 색감이 우수한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선호도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염색을 하기에 알맞은 물을 가진 나라라는 이유가 더 크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원단 중에는 빛이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오묘한 빛을 내는 ‘솔라로(solaro)’나 ‘가먼트 다잉(garment dying)’ 기법으로 빈티지한 멋을 살린 코튼 슈트 등이 유명하다.


이탈리아 원단 브랜드 드라고의 180수 여름 슈트 원단. 울 100%이며 야드당 무게는 220g 정도다.

아날로그적 손맛, 나폴리탄 슈트
나폴리는 이탈리아 슈트의 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세계적인 슈트 브랜드가 많이 탄생했으며, 최고의 사르토(Sarto, 재단사)가 수십 명씩 상주하고 있다. 물론 브랜드마다 옷을 만드는 성향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존재한다. 입체적인 재단으로 곡선미를 강조하며, 기계를 방불케 하는 완벽한 바느질보다 손바느질의 맛을 살리는 걸 추구한다는 점이다.


드라고의 원단으로 만든 ‘비앤테일러’의 스리피스 슈트.

특히, 우리나라 사람의 기준에서는 다소 ‘아마추어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아날로그적’ 손맛을 살린 바느질은 비교적 짜임이 성근 봄·여름용 원단과 찰떡 궁합을 보여준다. 이런 걸 ‘원단의 느낌을 표현하는 바느질’이라고 하는데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사르토리아 나폴레타나 인 서울’, ‘비앤테일러’ 등의 숍은 이탈리아에서 수학한 사르토가 상주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폴리 슈트의 원조로 불리는 ‘루비나치’의 옷을 취급하는 ‘143.E 나폴리’나 이탈리안 사르토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해 트렁크쇼를 갖는 ‘빌라 델 꼬레아’, ‘파더투선’, ‘라 피네스트라’ 등의 숍도 유명하다. 이러한 숍을 통해 발색이 뛰어나고 통기성이 우수하며 가벼운, 제대로 된 여름 슈트를 주문할 수 있다.



기획 양정원 기자│글·사진 김창규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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