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양혜규를 사유(思惟)하다

안과 밖, 그 경계와 이면, 그리고 확장

어른이 돼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진짜’ 어른이 된 후 접한 ‘이방인’은 놀라울 만큼 낯설었고 경이로울 만큼 감동적이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던 그 ‘태양’도 이해가 됐다. 양혜규 작가의 작품 앞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양혜규 작품의 첫 소감으로 ‘어렵다’고 말할 테지만, 그건 양 작가의 작품 안에 ‘삶’이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안과 밖, 물질과 개념, 지역성과 보편성, 익숙함과 낯섦 등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담론들은 결국 삶으로 귀결되니까.

무수한 언어와 사유, 혹은 그 경계까지 포괄하는 우리의 삶 속으로 ‘양혜규’라는 세계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 할 거야.”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친구가 되는 법’을 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뜬금없이 무슨 얘기인가 싶겠지만, 이번 양혜규 작가의 전시를 기다리는 마음이 딱 그랬다. 지난 2010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이후 5년 만에 열리는 국내 전시라, 이번을 놓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같은 맥락을 갖고 끊임없이 진보된 이야기를 해온 양 작가의 지난 작품 세계가 결집(혹은 그 이상)된, 좀처럼 보기 드문 기회였기 때문이다.


‘중간 유형-중국 신부’, 인조 짚·강철 스탠드·분체 도장·바퀴·인도 방울·조롱박·황마실·삼색 띠, 190×125×130cm, 2015년
코끼리의 부재가 주는 많은 이야기들·상상들
전시 오픈을 이틀 앞두고 찾은 리움미술관에서 양 작가의 전시를 먼저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초입에서 관람객을 맞아주는 블라인드 신작 ‘솔 르윗 뒤집기-23배로 확장된, 세 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은 전시의 서막이다. 인조 짚을 엮어 만든 ‘중간 유형’ 시리즈와 짐 더미에서 화제작으로 신분이 바뀐 ‘창고피스’ 등이 전시된 그라운드갤러리를 지나, 대형 블라인드 구조물 ‘성채’와 ‘소리 나는 인물들(Sonic Figures)’이 오감을 자극하는 블랙박스 전시장을 도는 동안, 그의 작품들은 끊임없이 몸 안의 세포를 깨우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미술관 건물 밖 주차장으로 통하는 경사로 아래 살림살이들을 모아놓은, ‘사동 30번지’를 작은 규모로 재연한 ‘바람에는 팔이 없다’ 앞에서 상상력은 극에 달했다. 그가 하고 싶었을 이야기들, 머릿속을 오가는 단어들의 끊임없는 연상 작용, 그 안의 나…. ‘감동-분석-철학적 고찰’의 의지를 불태우니, 적어도 이번 전시만큼은 양혜규는 예술가였고 인류학자였고 철학자였다.

마주앉은 양 작가에게 그래서 더 확인하고 싶은 게 많았다.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의 표현대로라면 인터뷰는 ‘부차적’인 것이라던 그는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선택해 ‘적확한’ 답변으로 자신의 세계를 들려주었다. 그 어디에도 코끼리가 등장하지 않지만,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라는 제목이 이번 전시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이후 5년 만의 국내 전시입니다.
“제가 워낙 한 나라에서 자주 전시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한국만 예외적이었던 건 절대 아닙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품으로 전시를 하기도 했었고요. 다만, 저는 ‘진도 나간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떤 작가가 진도를 나가면 그 과정을 엿보는 전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가 그 진도를 확인하는 셈이군요.
“저도 그 필요성을 느꼈고, 미술관이 원하는 바이기도 했습니다. 전시를 결정하게 된 건, ‘사동 30번지’ 전시처럼 일부러 잦아들어야 할 때가 있고 이번처럼 펼쳐야 할 때가 있는데, 지금은 작품을 풍부하게 펼치고 싶다는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입니다. 그 규모는 대중성과도 연결이 될 것 같고, 또 하나는 미술관의 안정성 때문이었어요. 한 사람의 개인전을 ‘부차적’ 이슈나 조건 없이 개최해주면 작가는 더 집중할 수 있고, 그 전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죠. 이번 전시를 위해 2014년은 쉬는 기간이었어요. 출품을 여기저기 했지만 신작 발표가 필요한 전시는 받지 않았어요. 그 시간은 영양분을 공급받고 채우는 시간으로 삼았죠. 작가적 성장이 순간적, 찰나적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축적되지 않으면 그 찰나도 오지 않는 거니까요.”


준비를 위해 지난 시간들, 작품들을 펼쳐놓고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로맨틱한 사람은 아니에요. 튀어나와서 어쩔 수 없는 건 있지만, 기본적 감상이 항상 충만한 스타일은 아니죠. 오히려 아줌마같이 성실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범생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억척스럽다고 할 수도 있고. 그 대신 구작을 고를 때는 로맨틱 없이 선택을 했어야 하는데 ‘눈으로 확인했을 때 커다란 목격자로서의 의의를 가질 수 있는 작품’이라야 했죠. 그게 ‘창고피스’였던 것 같아요. 눈으로 그 노출된 모습과 초라함을 확인했을 때 스펙터클에서 오는 ‘아하’가 아니라 다른 지점에서의 감탄사가 나오는….”


‘상자에 가둔 발레’, 2013·2015년

말씀대로 ‘창고피스’를 실물로 보니 여러 가지로 ‘감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작품에) 시각적 아름다움을 기대하는데 그걸 거부하는 작품입니다. 관객 여러분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에게 이 안목을 적용해야 비로소 느낄 수 있겠구나 하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물질적 자산을 투입할 수 없는 작가들이 많아요. 그들에게는 도전정신, 기지 등 보는 ‘관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VIP 학생회’도 같은 맥락에 있죠. 제가 판을 짜는 작업이지만 결국은 서울 시민들이 만들어준 작업이란 점에서 실천적인 의미가 있어요. 양혜규 전시를 기대하고 왔는데, 다른 사람들이 골라서 만든 짝짝이 라운지 풍경이 있는 거죠.”


작품 제목들이 다 예사롭지 않지만 ‘VIP 학생회’는 작품명만 봐서는 절대 예측 불허였습니다.
“‘학생회’를 들여온 게 왜 학생회나 동아리에 가 보면 길에서 주워온 의자들이 있잖아요. 그 안에 짝짝이 에스테틱(미학)이 있었는데 우리가 잊어버렸던 미학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 미학은 시각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해방돼 있죠.”


설명을 덧붙이자면, 그러니까 ‘VIP 학생회’는 작품이자 관람객의 휴식처다. 2001년 베를린 아트페어의 VIP 라운지 디자인을 의뢰받아 시작된 작품으로, 당시 양 작가는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배타적 공간을 미술품으로 장식하기보다 수혜자인 주요 인사들로부터 가구를 빌려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채웠다. 이후 여러 도시에서 이 작품을 실현할 때마다 그 지역 인사들에게 빌린 가구로 관람객들의 쉼터를 만들어왔다. 즉 ‘VIP’란 지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작품의 취지에 공감해 가구를 빌려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 셈. 서울 전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36명의 대여자들이 창작에 기여했다.


리움미술관 그라운드갤러리 전경. 중간에 ‘창고피스(2004년)’를 두고 양쪽으로 ‘중간 유형’ 시리즈가 보이는 가운데, 오른쪽 뒤편으로 괴목에 바둑판을 박아넣은 ‘정지(2015년)’와 ‘그 위에서 내려다본 사자춤-신용양호자 #240(2015년)’가 전시돼 있다.

작품의 재료로 쓰인 ‘소닉 웨어스’를 두르고 전시를 관람하는 방식은 참여 유도인가요.
“나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감상을 통해 작품이 완성되는 건 보편적인 문제고. 저는 ‘참여’란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값싼 인터랙션 같기도 하고, 엔터테인먼트한 요소가 강해지는 것도 같아서. ‘VIP 학생회’를 다시 이야기하면, 거기엔 엔터테인먼트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사용하고 접근해볼 수 있는 것들도 그리 대단한 게 아니고요. 막상 착용을 해보면 엄청 무거울 겁니다. 제가 양가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요. 반짝반짝하고 무겁고 편하지 않는 의류죠. 미술이 어찌 보면 그것과 닮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미술이 대중에 다가서고는 싶지만 단점도 있어요. 쉽지 않아야 정상인데, 너무 쉽게 만들려는 드라이브가 강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개인적으로 갖고 있어요.”


‘참여’가 아니면 작가님이 잘 쓰는 말처럼 ‘임파워먼트’를 위한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힘을 받는다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는 진지함이 결여된다거나 결코 유희적일 수 없으니까요. 더 세게 말하면 고생해야 하는 겁니다.”


‘성채’, 알루미늄 블라인드·알루미늄 천장 구조물·분체 도장·강선·무빙라이트·향 분사기 (모닥불, 산안개, 침향나무, 우림, 삼나무, 바다, 베인 풀, 탐부티나무 향), 가변 크기, 2011년

‘코끼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유의 배경이 된 조지 오웰의 자전 수필 ‘코끼리를 쏘다’의 코끼리,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 속 주인공 모렐의 코끼리 말입니다.
“코끼리는 자연일 수도 있고 창작일 수도 있고 미술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들이 느끼는 약함과 강함의 공존일 수도 있고요. 이 모든 양가적인 것을 한마디로 할 수 없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2가지를 다 가진 존재가 바로 코끼리 아닌가 싶습니다. 코끼리가 정말 예측 불허의 동물이에요. 순하디 순해 보이지만 한순간 ‘픽’ 도는 게 코끼리 특성 중 하나죠. 영민한 동물이고, 몸집은 크지만 센서티브한 동물이기도 해요. 인간 세계의 무심함, 혹은 자연과도 닮았고, 성스러우면서도 창작과 닮아 있죠. 감히 범접할 수 없지만, 어린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동물이고요. 코끼리를 뜻하는 상형문자 ‘상(象)’만 해도 중국이라는, 코끼리가 살지 않는 나라에서 그려진 것이라는 게 놀라운 일이죠.”


다시, 큐레이터의 설명을 빌리자면 “양 작가는 두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원초적 본성을 인류 공동체가 지켜야 할 본질적인 가치로 상정하고 그것의 상실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다시 수용함으로써 상실된 여러 인간적 가치들을 재고하고 나아가 회복시키고자” 코끼리를 그 상상의 매개로 삼은 셈이다.


‘VIP 학생회’, 대여한 의자와 탁자, 가변 크기, 2001·2015년

기대했던 ‘사동 30번지’는 이번에 ‘바람에는 팔이 없다’로 재연됐더군요.
“안과 밖, 자아와 타자, 단일 문화와 혼성 문화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던 저로서는 미술관이라고 하는 인테리어 공간 옥외에 어떤 한 점이 찍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 아이템이 무엇이 될지 ‘유보’해 둔 채 전시 준비를 해왔는데, 그건 스폰테이니어스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정처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스산하게 말입니다. ‘사동 30번지’ 같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만 생각해오다 필 받은 게 바로 세제와 저장식품이었어요. 그것들을 모아 ‘바람에는 팔이 없다’가 재연됐죠. 예전에 했던 통조림 작업을 보면 타임캡슐 같기도 하고 근심과 염려이기도 하고, 어려울 때를 대비하고 준비하는 구세대의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외국에서도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꼭 그렇게 물건을 쌓아두더군요.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감성이죠. 근데 또 그런 근심과 염려는 밖으로 꺼내놓지 않죠. 심리 안에서도 음지에 있는 거예요.”


전시의 메인이 인조 짚을 엮은 ‘중간 유형’ 시리즈입니다.
“‘중간 유형’이라든지 블랙박스 전시장에 있는 작업들이 없었다면 ‘바람에는 팔이 없다’ 같은 작업도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선 긋기가 있어야 나머지가 생기니까요. ‘중간’이란 말은 참 어려운 말입니다. 풀이도 다양하죠. 중간이 있다는 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있다는 거고 음양도 있다는 거죠. ‘어중간하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하고요. 유교적 덕목으로는 중용이나 치우치지 않음을 말하고, 어느 정도 의지도 담보해야 하죠. 매개자의 뜻도 있습니다. 나아가 ‘중간’이라는 말을 통해 틈, 간격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이 증거하는 바가 생기는데, 바로 다양성이에요. 그래서 ‘중간’이 중요한 거죠. 사실, 짚 작업을 하면서 제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입에 딱 붙지 않는 이름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붙인 건, 짚이 민속적이고 친근한 우리 것이기도 한 반면, 작품들은 이국적이고 외계인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축축 늘어지면서 기괴하기도 하고 주술적이기도 한 부분들, 그런 여러 가지를 표현하고 있는 게 ‘중간 유형’입니다.”


(왼쪽) ‘중간 유형-외발사자춤’, 인조 짚·강철 스탠드·분체 도장·바퀴·인도 방울·바인더 끈·털실·끈·족두리, 215×160×94cm, 2015년(오른쪽) ‘중간 유형-보로부두르에 부쳐’, 인조 짚·알루미늄 프로파일·분체 도장·바인더 끈, 275×489×585cm, 2015년

인조 짚도 등장했지만, 워낙에도 다양한 미디어와 재료를 쓰시죠.
“지금은 풍부함이라고 인정해주지만, 초창기에는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전문가들조차 더 기다려보라고만 했죠. 이것저것 다양하다 보니 빨리 캐치되지 않는 거죠. 제가 들어온 평가들은 늘 2~3등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저는 늦둥이 비슷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미술을 소비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경력이 좌지우지된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몸소 그걸 겪은 사람이니까요.”


양 작가님의 작품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으신가요.
“고통 받으세요. 그래야 더 많이 상상하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절대 제 몫이 아니고 덜어드릴 수도 없어요. 저는 당나귀라는 동물을 좋아하는데 짐을 들어주는 이로운 동물이죠. ‘소닉 웨어스’를 통해 짐을 지운다고 했는데, 사실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감히 타인에게 짐을 지운다는 생각을 못 할 겁니다. 미술을 하니까 그런 말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또한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회의도 드는데, 창작하는 사람들이 겸손하다 갑자가 오만불손한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어찌 보면 문화가 사회의 잉여물처럼 보일 수 있는데, 사회가 그걸 남겨두는 이유는 ‘삑사리’를 치라는 거 아닐까요. 효율이라든가 교훈, 그런 걸 넘을 수 있는 분야가 인간세계에 필요한데, 그것들이 다시 너무 손쉬운 이해로 들어온다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거기서 코끼리도 나오는 거고요.”


몇 달 전, 세계적인 컬렉터인 피에르 스택스는 본지와 인터뷰 당시 양 작가에 대해 “대단한 작가”라며 “한국인으로서 양혜규라는 아티스트를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토록 다양하고 깊고 오묘하고 풍부한 사유를 가능케 하다니, 그는 진정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오는 5월 10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양혜규의 전시를 찾아 그 ‘사유의 세계’를 경험해보시길.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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