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과외’ 통해 자산관리 수업 국제학교·유학으로 글로벌 경험

PART 1 교육 플랜 경제 및 투자, 글로벌화 교육 현주소

현장 경험이 거의 전부였던 1세대와 달리 2세대, 3세대 자산가들은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경제 교육과 글로벌 경험을 쌓고 있다. 자산이나 기업을 물려주는 것보다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진화하는 경제·투자 교육과 글로벌화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1년 전 쯤 우연히 알게 된, 바로 그 얼마 전까지 100억 원대 자산가였던 한 중년의 남성이 그런 말을 했다. “아버지가 원망스럽습니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안 돼 있는데, 갑자기 자산만 물려받아서,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고 고스란히 돈만 날렸습니다.” 사업도 모르는 그가 사업을 벌이고, 투자의 ‘투’자도 모른 채 투자를 했으니, 100억 원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버지의 재산만 믿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은 건 정작 본인의 과오이건만, 그는 부모 탓을 했다. 차라리 아버지가 재산이라도 없었더라면 공부라도 열심히 했을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사실, 자산관리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 없이 물려받은 재산은 복권 당첨금처럼 없어지기 십상이다. 벌기는 어려워도 날리는 건 아주 쉽다. 다행히 예전과 달리 요즘 자산가들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다양한 방식으로 행동에 옮기고 있다. 신동일 KB국민은행 대치PB센터 팀장은 “과거에는 자산관리도 부모님이 다 해줬기 때문에 따로 경제 교육이랄 게 없었지만, 지금은 자산관리 수업을 적극적으로 시키는 추세”라고 말했다.


‘개인교사’ 붙이고 ‘실전’ 통해 경제 감각 쌓아
한동안 ‘명문대 진학’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자산가들의 2세 교육은 이제 부의 승계와 유지, 자산을 굴리고 키우는 방법을 배우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 시기도 점점 빨라져, 대학 진학 후 성인이 되면서 시작하던 것을 지금은 중·고등학교 시기, 빠르면 초등학생 시절부터 관련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투자에 대한 ‘감’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린 시절 이뤄지는 교육은 경제나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이라기보다는 돈에 대한 개념을 가르치는 것,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습관, 저축 등을 통해 금융과 친해지는 법 등으로 일반론이다. 이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은행, 증권사 등 금융사들이다. VIP 고객을 위한 서비스의 일환으로 ‘2세 교육’을 확대하고 있는 일부 금융사들은 전반적인 경제 상식과 투자에 대한 기본, 나아가 금융 관련 직업에 대한 가이드까지 커리큘럼을 운영 중이다.

실질적인 교육은 중학생 이상부터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5세 자녀는 5000원으로 무엇을 살 수 있는지 판단할 능력이 있고, 7~8세 자녀는 저축과 투자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으며, 13~14세가 되면 조그마한 투자 계좌를 개설해 주식을 고르고 거래할 수 있다”는 기사에 비춰보더라도 중학생 이후가 현실적인 투자 교육에 적합한 시기다. 금융권의 ‘2세 교육’도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활발하다.


미래에셋증권이 VIP 고객 자녀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금융 캠퍼스’ 현장.

경제 및 투자 교육이 본격화되는 것은 대학 진학 이후로, 기업 운영을 하지 않는 자산가들과 기업을 운영하는 자산가들의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재테크 및 투자를 비롯해 자산을 ‘지키는’ 쪽의 커리큘럼을 원하는 반면, 후자는 실질적인 경영 수업과 경제 및 투자 교육이 맞물린다. 한 은행 프라이빗뱅커(PB)의 말에 따르면 기업을 물려주고자 하는 자산가들이 경제 교육에 대한 수요가 훨씬 강하고 적극적인 편이라고.

재벌가를 비롯해 자산 규모가 큰 기업들의 경우에는 주거래 은행 또는 증권사에서 ‘개인과외’를 맡는 일이 태반이다.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금융사 입장에서는 잠재적 고객인 2세에 대한 ‘금융 교육’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 ‘부자학’을 강의하고 있는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인교사를 붙이는 게 전반적인 추세”라며 “은행이나 증권사는 물론 기업의 재무를 총괄하는 부서에서 ‘과외’를 담당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2세들의 교육 수준은 상당하다. 유학은 ‘필수’이고 최근에는 국제학교도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 제주국제학교인 브랭섬홀 아시아 캠퍼스 전경.

이 시기의 자녀를 둔 자산가들은 직접 ‘투자 수업’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대부분 ‘실전’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신동일 팀장은 “한 여성 자산가는 20대 중반의 자녀들에게 5억 원씩을 미리 증여한 뒤 그 상한에서 주식, 펀드 등을 운영하게 했는데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말했고, 한동철 교수도 “어떤 부자는 100억 원대 빌딩을 사는 데 고등학생인 딸을 데리고 다니며 부동산 ‘물건’ 보는 법과 계약서 쓰는 과정까지 경험하게 하는 식으로 직접 자녀를 교육하기도 한다”며 현장 수업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2세들이 일선에 나서기 전에 이미 경제 및 투자 교육을 받다 보니 막상 경영 현장에 뛰어든 후에는 보다 심층적인 경제 및 투자 포럼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이광헌 미래에셋증권 WM센터원 센터장은 “2세 모임에 나오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해외에서 경영학 수업을 들었거나 경영학 석사 학위(MBA) 과정을 이수하는 식으로 경제에 대한 공부가 잘 돼 있다”며 “수준 높은 투자 교육을 할 때도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2개국 유학은 기본, 일부는 국제학교 선호
이광헌 센터장의 전언처럼 2세들의 교육 수준은 상당하다. 해외에서의 교육 경험이 없는 경우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 지난 2011년 재벌닷컴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당시 조사에서도 20대 나이의 재벌가 자녀 23명 중 87%인 20명이 외국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2000년 이후 재벌가 자녀 10명 중 9명이 외국 대학으로 진학한 것으로 조사되는 등 유학이 보편화됐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그 사이 유학은 ‘필수’가 됐고 그 시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현재 중학생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장남이 외국에서 공부 중이다.

유학에 대한 절대적 필요성은 ‘글로벌화’와 맞물린다. 특히 훗날 기업을 운영해야 하는 2세, 3세들이라면 더더욱 해외 경험의 필요성이 절박한 상황. 신동일 팀장은 “국내 시장이 정체되면서 시장 파이를 찾아 해외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며 “다만 사업의 종류가 내수보다 해외 비중이 높은 경우에 조기 유학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각각 글로벌파이낸스 리더십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해외 유학이 아니더라도 일찌감치 ‘글로벌화’ 교육이 시작되는 건 자산가들의 2세 교육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그 시작은 사립초등학교다. 영어 몰입식 교육이 특징인 사립초등학교는 학비 수준이 만만치 않아 ‘혜택 받은’ 교육임에 틀림없다. 2014년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전국 사립초등학교 1인당 평균 교육비 현황’을 보면 평균 교육비가 716만 원으로, 서울 소재 일부 초등학교는 무려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등 대학 학비와 맞먹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아예 유치원 과정부터 대학 입학 전 교육 과정까지 아우르는 국제학교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조기 유학에 대해 반대 입장인 일부 보수적인 자산가들도 국제학교에 대해서는 선호도가 높을 정도.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글로벌 수준의 교육과 환경을 갖추고 있는 데다 유학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송영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프라이어리티고객사업부 과장은 “조기 유학 시 자아 형성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자산가들은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보낸 뒤 대학이나 대학원을 외국으로 보내는 추세”라며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2세들을 보면 국제학교 학생들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국제학교나 유학 등 교육 과정에서도 ‘그들만의 리그’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인맥이 쌓인다는 것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특히나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2·3세들의 경우는 국내를 넘어 국제적인 인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험에 대한 니즈가 더욱 강하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유학 시 학교를 선택하는 데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어느 집안의 누가 졸업한 학교, 현재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에 따라 선택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재계의 학벌을 보면, 특정 대학에 동문들이 몰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일부 재벌가는 아예 가족들이 같은 학교의 동문으로 학벌을 대물림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명문’이라 불리는 학교들을 여전히 선호하는 건 그래서다. 다만, 요즘 새로운 추세가 있다면, 여러 나라를 돌며 다양한 교육을 경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 신동일 팀장은 “여전히 미국이나 영국 등을 선호하지만, 그와 더불어 중국, 일본 등에서의 유학 경험을 쌓는 등 2개 국가 이상은 기본으로 생각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학맥뿐만 아니라 인맥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한 자산가들은 재계 모임 등에 자녀들을 동반하는 식으로 직접 필요한 네트워크를 쌓아주기도 한다. 조찬 모임에 함께 나가 미리 눈도장을 찍는가 하면, 고급 경제 지식과 투자 정보까지 얻게 하는 식이다. 이미 일선에 진출한 2세들은 자신들 스스로 프라이빗한 모임을 만들어 네트워킹을 쌓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도 은행, 증권 등 금융권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미래에셋증권의 ‘글로벌 리더스’와 삼성증권의 ‘넥스트 CEO포럼’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재벌가의 글로벌 학맥 보니…


(왼쪽부터)브라운대 동문인김준 경방 사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세훈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대표, 최재원 SK부회장.

재벌가 대다수가 유학파이지만, 세대별로 다소 인기 있는 학교는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먼저 미국 조지워싱턴대와 서던캘리포니아대(USC)는 국내 오너가 일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들이다.

1821년 세워진 전통 깊은 명문 조지워싱턴대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KCC그룹의 정몽진·정몽익 형제와 GS그룹의 허진수·허태수 형제 등이 동문이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도 이 학교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USC 출신에는 정몽원 한라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 더불어 한진그룹의 가족들이 동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그의 세 자녀인 조현아·조원태·조현민 남매가 모두 USC 출신들이다. 조양호 회장의 동생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과 고(故)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아이비리그의 대표격인 하버드대와 브라운대도 출신 인사들이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윤석민 태영건설 부회장도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담당실장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은 법학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고,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아시아경제학 석사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최고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브라운대 동문 중에는 유독 2~3세 경영인들이 포진해 있다. 대표적으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최재원 SK 부회장, 김준 경방 사장, 조현상 효성 부사장, 박세훈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대표 등도 브라운대 동문들이다.

중국도 재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떠오르는 지역이다. 특히 SK그룹이 두드러지는데, 최태원 SK 회장의 장녀 윤정 씨는 베이징에서 국제고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대로 진학했고, 해군 장교 임관으로 화제가 된 차녀 민정 씨는 중국 베이징에서 고등학교와 대학(베이징대)을 졸업했다. 최신원 SKC 회장의 장남 최성환 SKC 상무는 상하이의 명문 푸단대를 나왔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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