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식 알라딘 사장
‘일 년만 살겠습니다’
이주요라는 설치미술가의 전시에서 본 작품 제목이다. 형편상 매년 작업실을 옮겨다니면서 이런 글귀를 작업실에 붙여놓는다고 한다. 계약 기간이 일 년이니 일 년만 살겠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실은 집주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얘기다. 이 작업실에 일 년만 살겠다는 뜻이지만, 올해가 마지막 해라는 각오로 열심히 살고 작업하겠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나도 이런 각오를 가져보려고 노력한다. 연말이 되면 한 번의 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어제까지의 나는 죽는다고 생각해본다. 미뤘던 일은 연내에 해치우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도 만나고 전하지 못한 이야기도 전화로라도 전한다. 내가 죽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 습관, 생각도 함께 사라진다. 새해가 밝으면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한 해 인생이 시작된다. 새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고, 이제까지 하지 않았던 일도 해보고 뭔가 나를 바꿔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실은 늘 잘 안 된다. 일 년만 산다는 각오는 좋지만 12월 31일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나 각오를 다질 뿐, 그런 긴장과 감수성을 일 년 내내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일 년, 일 년이 마지막 해라는 심정으로 열심히, 미루지 않고 살겠다는 각오와 감성은 일상에서 벗어나야만 발휘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리적으로 일상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한다.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거나 도시를 떠나거나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긴다. 좋은 방법이지만, 대가가 적지 않고, 이 역시 효과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원하는 과거의 특정 시간으로 이동했다가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여행 능력을 갖고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도 같은 능력을 갖고 평생을 살아 왔는데, 그는 이 능력을 원하는 책을 모두 읽어치우는 데 사용했다. 이 아버지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이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비결을 전수해준다. 그것은 일상의 하루하루가 끝난 뒤 다시 아침으로 돌아가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하루를 다시 한 번 사는 것이다. 일상의 타성에 빠져 감수성을 상실한 채 보낸 하루를 되돌려 순간순간 살아 있는 감성과 이성으로 인생을 대한다. 첫 하루에선 회의시간에 어려움에 처한 동료에게 멀뚱멀뚱 했는데 두 번째 하루에선 밝은 표정으로 힘을 주고, 첫 하루에 적당히 기뻐했던 순간을 두 번째 하루에는 한껏 기뻐하고, 첫 하루에 밝게 인사해주던 햄버거가게 종업원에게 두 번째 하루에 환한 미소를 되돌려줘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이 방법은 일상을 떠나지 않되 일상의 나를 순간순간 복기하고 그 순간에 나를 바꿔보는 방법이다. 행복은 일상 속에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일상 속에서든 밖에서든 타성에서 벗어나 적절한 긴장과 감수성으로 인생을 가꿔나간다면 멋진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