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OBLIGE] “나눔과 비즈니스는 내 삶의 양대 축”

정미혜 체뚜코리아 대표

“나눔도 자식을 키우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돈을 나누고 내 시간을 나누는 게 봉사라고 생각하지만,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하는 것만큼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인 체뚜코리아 정미혜 대표의 나눔 철학은 그렇듯 명확했다.



호탕한 말투에 시원시원한 스타일. 정미혜 체뚜(CETTU)코리아 대표는 전형적인 여장부였다. 첫인상만으로도 그가 왜 성공한 사업가인지 알 수 있었던 건, 보는 것만으로 철철 흘러넘치는 열의와 에너지 때문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사업가 기질’이란 바로 그런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정 대표가 말을 쏟아냈다. 오랫동안 나눔 활동을 해왔지만 그간 한 번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던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나눔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뼛속 깊이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DNA로 가득한 정 대표는 물질과 시간,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일 하나도 ‘그냥’ 하는 법이 없다. 얼마간의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더는 일이 어쩌면 가장 쉽고 빠른 길이겠지만, 정 대표는 어떤 식으로 나누어야 더 많은 이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를 먼저 고민했고, 아주 구체적인 실행을 했다. 그렇게 나누는 일이 비즈니스와 더불어 또 다른 삶의 축이 돼버린 지 벌써 10여 년. 그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페기 청의 웨스트 사이드·이스트 사이드 스토리
영어 이름 페기 청(Peggy Chung). ‘일한 만큼 돌려준다’는 철학을 가진 정 대표는 지금으로부터 오래전 ‘페기 청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와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를 각각 좌우로 구분하고 그 하단에 구체적인 목록을 적어 넣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한 마디로 ‘인컴(income)’에 해당했고,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채러티(charity)’로 귀결됐다. 즉, 서양에서 돈을 벌어 동양에서 베풀겠노라는 삶의 큰 그림이었던 것. 핸드백을 수출하는 회사에 다니다 나인웨스트 아시아총괄 지사장을 지낸 후 패션 수출 관련 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던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쎄도르(Cedor)를 설립하고 핸드백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 대표의 ‘웨스트 사이드·이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동 장애우 생활시설인 ‘로뎀의 집’ 후원이 그 출발이었다. 인연은 아주 가까운 데서 비롯됐다.

“회사를 세운 후 개발실에서 일하던 직원 한 명이 몇 개월 만에 그만둔다고 하는 겁니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장애가 있어 아내가 도망을 갔다는 거예요. 아이를 직접 키울 상황이 안 돼 시설에 보냈다는데, 알고 보니 거기가 로뎀의 집이었죠. 직원에게는 계속 회사에 다니라고 하고, 우리가 아이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그렇게 로뎀의 집과 인연이 돼 지금까지 후원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후원이라는 게 단순히 기부만 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란 것, 우리 사회에는 법으로부터도 소외된 약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 넘치도록 도와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등 또 다른 인생 공부가 됐다.

“처음 로뎀의 집 원장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부모가 버리고 간 장애 아동들을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게 8세까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지체장애아들은 사실 그 이후가 더 어려운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크게 작게 뭔가 잘못돼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많이 얻었어요. 그 즈음 지인을 통해 어떤 단체의 나눔 행사에 간 적도 있는데 포토월에 서라고 하더니 사진을 찍어서 놀랐습니다. 제가 알던 나눔과는 좀 다른 모습들이었죠.”

회사의 나눔 활동을 마케팅에 활용할 생각은커녕 남들 모르게 조용히 후원 활동을 해왔던 그가 2011년 체뚜코리아를 론칭한 이후 로뎀의 집 후원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로 한 건 선의를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많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특히 로뎀의 집 후원을 결정하면서 운영자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았던 정 대표는 다 받으면 게을러질 것 같으니 나머지는 자신들이 일을 해서 충당하겠다며 처음부터 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70%만을 요청했던 원장 부부에 대한 신뢰가 컸다.

“사람이 왜 돈의 맛을 알고 나면 달라질 수 있잖아요. 다행히 젊은 원장 부부는 그런 면에서 우리와 코드가 잘 맞았죠. 나눔의 확장을 위해 로뎀의 집을 알리기는 했는데, 사실 연말에만 도와주는 경우가 많고 또 그다지 필요하지 않는 장난감 같은 걸 잔뜩 보내줘서 어쨌거나 창고에 물건이 쌓여는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때도 많거든요.”


나눔도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사업 시작과 함께해온 터라 로뎀의 집 후원은 마치 회사 일의 일부가 돼버렸다. 정 대표는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적인 나눔을 실천해왔다. 10년 전 회사 사옥을 올린 뒤, 임대료가 가장 비싼 1층에 임대 수익을 포기하고 자체 운영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오픈,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홀몸노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대접하고 있는 것도 나눔의 일환이다.



지금은 국내에서의 활동에 집중하는 편이지만, 사실 정 대표의 나눔 활동은 글로벌하게 이뤄져 왔다. 오랫동안 미국 내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지원해왔고, 위안부 문제의 국제적 해결을 위한 후원도 계속해왔으며, 뉴욕 지역의 극빈 여성과 소외 아동을 위한 후원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아무래도 미국에 기반을 두고 사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해당 지역에서 많은 후원을 하게 된 것이다. 진심은 통할 수밖에 없는 것.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은 결코 아니었지만, 올해 그는 뉴욕 시의원, 재외한인 사회연구소, 위안부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는 연방 하원의원 마이크 혼다 등으로부터 감사패를 수여받는 등 진심 어린 후원에 치하를 받기도 했다.

오랫동안 패션 사업에 몸담으며 쌓은 노하우와 타고난 열정, 그리고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들어내는 추진력과 사업적 감각으로 쎄도르를 매년 두 배 이상씩 성장시켜온 정 대표는, 사업과 함께 나눔의 영역도 계속 확장시키고 있다. 2년 전부터 움직임이 시작돼 올해 본격적으로 준비에 나선 ‘오퍼레이션 스마일 코리아’ 일이 그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오퍼레이션 스마일 재단은 저명한 안면복원 성형외과 의사인 윌리엄 매기와 그의 아내이자 정식 간호사인 캐스린 매기에 의해 창립된 재단으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구순구개열 등 안면기형을 수술해주는 국제 의료 비정부기구(NGO)다.

“친분이 있는 캐스린 매기의 부탁으로 지난 11월 중순에 열린 베트남 재단의 25주년 행사를 도와주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베트남이 현재 오퍼레이션 스마일 재단의 아시아 헤드쿼터이고, 코리아 재단은 몇 해 전 설립됐죠. 국내 활동은 아직 미미해요. 본사 재단에서 이번 베트남 행사 지원을 우리에게 부탁했는데, 처음은 그냥 돈을 기부할까, 아는 기업들을 소개해줄까 하다가 체뚜코리아에서 백팩(backpack) 1000개를 특별 제작해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죠. 저는 오퍼레이션 스마일 코리아에서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눈치 챘겠지만 정 대표의 나눔이 다른 건 이처럼 철저히 기획하고 고민한 끝에 가장 현명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10년 넘게 나누고 봉사를 하면서 깨달은 건 지식과 경험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돈이 들어가도 제대로 쓰이지가 않는 거죠. 100을 가지고 1000의 효과를 내려면 봉사도 일하는 것만큼 전문성을 갖고 해야 해요.”


채우는 것과 나누는 것의 밸런스
무조건적인 ‘열심’도 정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그 배경에는 정 대표가 살아온 방식이 투영돼 있다. 부모님과 5남매가 평범한 여건에서도 열심히 살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도 3년 연속 베스트 사원으로 뽑혀 결국 형평성을 이유로 그 상이 폐지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일했으며, 그 결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패션회사였던 나인웨스트그룹 아시아총괄 지사장으로 떡하니 지목을 받아 월급 받는 것보다 두세 배로 일하며 인정을 받았다. 쎄도르를 세운 후에도 가파른 성장을 해왔고, 미국 브랜드 ‘체뚜’를 들여와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제품 라인업으로 체뚜코리아를 성공리에 안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컨드 라인인 레드 체뚜까지 론칭하는 등 능력 있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소문이 자자한 그다. 그런 정 대표가 막상 돈을 벌어들이는 일에 눈뜬 건 고작 1, 2년밖에 되지 않았노라 고백했다.

“열심히 했더니 잘됐을 뿐이지 돈이 목적은 아니었어요. 사실 열심히 일한 것으로 치면 정주영 회장만큼 했다고 자부합니다. 결국 제가 나중에 할 일은 이재를 벌어들이는 일이 아니고 공동체의 삶을 위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잔 다르크를 보면 눈물이 나고 선구자를 들으면 눈물이 나곤 했었는데 제 안에 그런 DNA가 있나 봐요. 하지만 그 나중을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돈을 벌어 곳간을 채우는 일도 열심히 할 겁니다. 채우는 일과 나누는 일이 균형을 이룰 때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정 대표는 궁극적으로 사업을 통해서 또 나눔을 통해서 민간 외교를 하고, 그 활동들은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까지 올리는 작고도 힘 있는 일이 될 것이란 강한 믿음이 있다. 그런 면에서 브랜드를 키우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그에겐 결국 같은 맥락이다. ‘페기 청’의 리스트대로 사업과 나눔은 정 대표를 지탱하는 양 날개니까.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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