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MONITOR] ‘아세안 잡아라!’ 한·중·일의 히든카드

2015년 말 아세안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 인구 6억4000만 명에 국내총생산(GDP)이 3조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 탄생한다. 이 시장을 놓고 한·중·일 3국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아세안을 잡기 위한 한·중·일의 히든카드는 뭘까.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내년 말 아세안경제공동체를 출범시킬 예정인 가운데 한·중·일 3국이 아세안과의 협력 강화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지난 2007년 아세안을 하나의 통합 경제권으로 만들자는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이후 아세안은 2009년 로드맵을 작성하고 지금까지 단계별로 관세 철폐 등을 추진해왔다. 현재 아세안 회원국들 중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브루나이 등 6개국은 모든 관세를 대부분 철폐했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 나머지 4개국도 2015년까지 관세 장벽을 없애기로 했다. 지난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25번째 정상회의가 열렸는데,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 준비의 80%가 완료됐다”면서 “회원국들은 나머지 20% 과제도 철저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말 아세안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 아세안 10개국이 유럽연합(EU)처럼 단일 경제권이 된다. 인구 6억4000만 명에 국내총생산(GDP)이 3조 달러, 총면적 450만 ㎢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 탄생한다. 아세안은 제품, 서비스, 투자, 자본 및 고급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5대 원칙을 토대로 총 12개 분야를 완전히 개방한다. 지난 1967년 8월 8일 창설된 아세안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계 3위 인구 대국이 되는 것이다. 또 아세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 앞으로 10년간 7%를 웃돌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각국은 아세안경제공동체 출범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이유는 아세안 회원국들은 대부분 풍부한 자원과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비교적 인프라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세안은 지역적 접근성, 문화적 동질성 등으로 여타의 지역공동체보다 결속력이 단단하다. 특히 최근 들어 아세안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일본이 지난 1970~1980년대 아세안 회원국들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중국이 아세안 회원국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현재는 중·일 양국이 아세안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국익 차원에서 사활을 건 싸움을 하고 있다.


인구 6억4000만 명의 거대 시장
중국은 아세안을 포섭해 ‘대중화(大中華)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이를 위해 ‘당근과 채찍’이라는 두 개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당근 전략은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11월 13일 ‘아세안·중국’ 정상회의에서 이 지역의 기간산업 건설을 위해 200억 달러(21조9200억 원)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또 현재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실크로드 기금도 상당 부분을 아세안의 인프라 건설에 투입할 방침이다. AIIB의 자본금은 1000억 달러, 실크로드 기금은 400억 달러다. 또한 해상실크로드 은행 설립을 위해 최소 50억 위안(8940억 원)의 자본금을 출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아세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 그대로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는 셈이다. 리 총리는 또 아세안 정상들과의 회의에서 ‘선린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고 싶다면서 내년 아세안 10개국 국방장관의 회동을 제안했다. 리 총리는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은 직접 당사국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아세안 진출이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 이유는 동남아 지역 경제를 사실상 화교자본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화교 수는 130여 개국에 7000만 명 정도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아세안에 거주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도네시아 720만 명, 태국과 말레이시아 각 580만 명, 싱가포르 270만 명, 필리핀 90만 명, 베트남 70만 명 등이다. 화교는 아세안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역내자본의 70% 이상을 주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상위 10대 재벌을 화교계가 휩쓸고 있고, 200대 기업의 70%도 화교계다. 태국도 25대 재벌 중 23개가 화교계 소유이며 금융업은 80%를 화교가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제조업의 3분의 1을 화교가 쥐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림그룹의 소도노 사림 회장, 필리핀의 호텔 재벌인 탄유 회장 등 화교계 경제 거물들은 세계적인 거부 대열에서도 당당히 상위 랭킹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화교들은 중국 정부의 아세안 진출 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또 매년 아세안 지역 청소년 1000명을 초청, 교육까지 시키고 있으며, 아세안 회원국들의 주요 대학에 공자학원을 개설하는 등 ‘소프트 파워’ 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아세안 진출에 걸림돌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80%를 9개의 유(U)자 모양 점선으로 감싼 이른바 ‘남중국해 9단선’을 긋고 이 선의 안쪽 바다는 모두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해왔다. 남중국해에는 엄청난 자원이 묻혀 있다. 석유는 현재 2220억 배럴이 매장(세계 4위 규모)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천연가스, 망간, 주석, 알루미늄도 대량 매장됐다. 이 지역은 풍부한 해산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전 세계 대형 유조선의 절반 이상이 통과하는 해상 교통의 요지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남중국해는 정치·외교 및 군사, 경제적으로 전략적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대립하는 아세안 일부 회원국들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채찍’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남중국해에서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사력을 대폭 강화해왔다. 중국은 올 들어 남중국해 일대에서 해군력을 투입한 기동 훈련과 해병대 상륙 훈련,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동원한 사격 훈련 등을 계속하면서 영유권 수호 의지를 과시해왔다. 특히 베트남과 필리핀에 대해선 사실상 전방위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군사력으로 볼 때 중국과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전력이 약한 데도 불구하고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베트남과 필리핀에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이 지난해 11월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한 것처럼 남중국해에서도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 막대한 자금 지원 약속
일본도 아세안 회원국들에 대해 막대한 자금 제공을 약속하면서 협력을 강화해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1월 12일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 회담하고 미얀마에 대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한다는 명목 등으로 260억 엔(2471억 원)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또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200억 엔(1900억 원)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아세안 10개 회원국을 모두 방문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2월엔 도쿄에서 ‘아세안·일본’ 특별정상회의를 주최하기도 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아세안 회원국들의 인프라 정비 등을 위해 5년간 2조 엔(20조3200억 원) 규모의 개발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중국은 국제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그동안 철저하게 아세안 편을 들어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 11월 13일 ‘아세안·일본’ 정상회의에서 자위대의 역할과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이른바 적극적 평화주의를 설명하고 아세안 회원국들의 해상 보안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본이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은 이미 순시선 10척을 필리핀에 제공할 계획이다. 일본의 순시선 제공은 필리핀의 해상 경비를 지원함으로써 남중국해 진출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은 베트남에도 경비정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일본은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해 이른바 ‘대동아(大東亞)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세안 지역을 대부분 점령해 통치한 경험이 있다.

중국의 대중화경제권과 일본의 대동아경제권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아세안과의 협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에 훨씬 우호적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의 국민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TV 드라마와 케이팝에도 열광하고 있다. 현재 아세안에는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고, 우리나라엔 아세안 출신 이주노동자들도 많이 건너와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아세안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한국과 아세안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1353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양측의 교역 규모는 2015년까지 1500억 달러, 2025년까지 3000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은 우리나라의 제2위 교역 시장이자 제1위 투자 대상지이고 제2위 건설수주 시장이다. 아세안에 투자한 규모는 43억 달러, 건설수주액은 110억 달러다. 실제로 ‘포스트 차이나’의 대안으로 베트남이나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꼽히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은 아세안 회원국들에 대한 투자를 갈수록 늘리고 있다. 한국은 아세안과 지난 1991년 대화관계를 수립했고, 2004년 포괄적 동반자관계를 맺었으며, 2010년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발전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올해 한국과 아세안이 수교한 지 25주년을 맞아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12월 11~12일 부산)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중·일 간의 다툼을 이용해 아세안과의 경제 협력과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앞으로 중장기 전략을 통해 아세안에 적극 진출할 필요가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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