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MESSAGE]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탐사를 즐기라

일기를 쓰고, 추억의 장소를 찾고…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가 미래를 위한 출발선의 역할만 한다면 삶은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는 나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시공간이다. 과거의 섬세한 기억은 오늘과 연결돼 마음에 촉촉한 희열을 가져다준다.

12월, 내년 계획은 잠시 미루고 나의 과거 찾기를 하는 시간으로 삼아보시길.



‘아니 벌써, 12월이라니! 새로운 한 해 내년의 계획을 알차게 짜보자’ 하기 전에, 올 한 해를 꼼꼼하게 회상해보자.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우리가 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처럼 과거의 디테일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의 디테일이 없는 현재와 미래는 허전하고 불안하다.

‘어두운 상점의 거리’란 문장에 대한 느낌이 어떤가. 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패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제목이다. 자신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모디아노의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됐다. 그는 “앞으로도 젊은 세대와 이전 세대를 연결해주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는데 ‘어두운 상점의 거리’도 현재가 과거를 찾아가 만나는 스토리다.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은 탐정. 그러나 그는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해 들어간다. 어두운 상점의 거리는 자신이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거리 이름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혹시나 나의 과거일지 모르는 어떤 여인, 그 여인과 함께 보냈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섬세한 촉감으로 만져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설의 결말은 불친절하다. 찾아낸 과거 자신의 모습이 정말 나였는지도 불확실하게 끝맺음한다.


일주일에 한 번 행복일기 쓰기
‘자신의 과거도 기억하지 못하고 참 딱하네’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들도 우리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대충 기억한다 하더라도 섬세한 부분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더 나아가 과거는 재구성까지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약간의 진실에 새로운 환상들이 뒤섞여 버린다. 나의 기억은 새롭게 각색된 새로운 버전의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현재의 정체성은 과거의 우리 기억에 의존하는데 그 기억이 불완전하기에 우리의 정체성도 불완전해지기 쉽다.

미래를 위한 현재, 행복일기를 쓰자. 일상의 활동을 적는 것, 사소한 일 같지만 내 미래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연구 결과를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서 발표했다. 오늘을 적어 놓는다는 것이 미래를 재발견하게 하는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임캡슐처럼 오늘 적어 놓은 내 느낌과 일상의 행동들이 미래에 내가 다시 보았을 때 그 미래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자신의 삶을 다 기억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오늘을 적어 놓는 것은 미래에 단조롭게 느껴지는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다.

일주일에 한 번 행복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왠지 고리타분하게 보이고 실천하기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단순한 작업이 앞의 연구 결과처럼 미래를 재조명하는 자료로도 사용되고 오늘의 행복감도 증폭시킨다.

행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당연하게 여기던 사항들에 대해 과학적 연구가 진행됐다. 혹시 일기를 쓰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내용으로 쓰고 있는지? 혹시 자아비판 성격의, 자신의 문제점을 나열하고 반성하는 내용은 아닌지?

행복일기는 매우 단순하다. 일주일에 한 번, 예를 들면 주말에 5분 정도 시간을 내 일주일을 돌아보고 행복하고 감사했던 순간을 세 가지만 단순하게 적는 것이다. 이런 일기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행복감이 커지고 스트레스에 저항력도 커지는 것으로 정교한 연구에서 결과로 나타났다.

일기 쓰기가 답답하다면, 나무들이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쓸쓸한 겨울날 주말을 이용해 앞에 소개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내 과거를 직접 섬세하게 만져보는 경험을 하면 어떨까. 과거 내가 즐겁게 뛰놀던 장소, 나의 뜨거운 열정과 연결된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세세히 되밟아보는 것이다. 과거 로맨스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과거가 오늘과 연결돼 마음에 촉촉한 희열을 가져다줄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가 미래를 위한 출발선 역할만 한다면 삶은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는 나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시공간이다. 1초 후의 미래가 순간 현재가 되고 곧 1초 후 과거로 바뀌어 버린다. 그 과거를 그대로 날려 버리면 내 정체성은 미래의 새로운 모습에만 의존하게 되고 그 미래의 나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기에 계속 공허만 마음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12월, 나의 과거 찾기를 하는 달이 됐으면 한다. 흥겹고 즐거운 송년회도 실컷 즐기자. 그러나 하루 이틀은 나의 사라져 가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탐사를 즐기자. 일기를 통해서건 실제 과거의 내 기억 속 장소를 방문하건 각자의 방식으로 말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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