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시중은행 ‘빅4’ 글로벌화 해법은
입력 2014-10-15 17:52:37
수정 2014-10-15 17:52:37
국내 은행 중 세계 100대 은행에 속하는 곳이 6개다. 하지만 국내 은행의 글로벌 경쟁력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에 뒤처진다.
은행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총자산수익률도 아시아 꼴찌 수준이다. 왜 그런 걸까.
근시안 소탐대실, 크고 쓴 대가
외환보유고가 바닥나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상황상 본질은 내팽개친 채 정부당국이 해외 점포 철수 독려에 나섰던 게 1998년 무렵이다. 철수 실적을 일일이 챙기는 당국의 압박에 A은행 또한 철수할 곳과 남길 곳을 골라야 했고 1992년 사무소를 냈다가 지점으로 전환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곳까지 포함시켰다. 현지 당국의 간절했던 잔류 요청을 뿌리쳤던 탓에 2003년부터 백방으로 재진출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지 ‘정서법’에 걸려 사무소를 다시 낸 것은 철수한 지 정확히 15년 만이었다. 외환위기 와중에 외화 경비 지출이 많다는 이유로 해외 점포를 줄이는 것은 다양한 통화의 수신고와 자금 조달 교두보를 파괴하는 짓이지만 당시의 근시안적 소탐대실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 한 곳에 얼씬대기조차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낯선 정글 엄혹한 통과의례
홍콩에 투자은행(IB) 업무를 펴는 현지 법인 설립 경쟁에 불을 당겼던 B은행. 지금까지도 이자이익 의존적 경영 행태가 비판의 대상인데, IB 영업으로 수익 기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2006년 진출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한국 금융의 대표적 새 아이콘 중 하나로 조명받기에 충분했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IB 시장에 상업은행 DNA가 충만했던 국내 시중은행이 발을 들였다가 치른 통과의례는 엄혹할 수밖에.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눈덩이 불어나듯 늘고 부도로 인한 여파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초국적 IB를 비롯해 유수의 IB가 문을 닫거나 사업 축소 또는 철수에 이르게 되는 대재앙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2011년 대규모 적자를 반영한 뒤 절치부심 비상한 노력으로 반등을 꾀하는 데 보약이 되긴 했다.
시세(時勢) 오판 길고 긴 고생
지난 6월 말 현재 지분평가 손실 규모 약 9202억 원을 낸 은행. 2008년 신흥국 현지 은행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로 올라설 때 취득가가 환율차를 반영해 9541억 원으로 평가된 반면 장부가는 고작 339억 원 정도에 그쳤다. 약 5년 동안 우환덩어리 신세. 석유자원을 등에 업은 현지 경제지표는 온통 장밋빛인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볼 줄 아는 사람 눈에는 최대 도시 아파트 값 상승세가 폭주하는 거품이 만연했던 때였다. 현지 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미온적인 사외이사들을 장기간 설득해 마침내 뜻을 이뤘지만 현지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거품이 빠지는 혼란이 찾아오는 흉탄을 맞는다.
대한민국 대형 은행들의 해외 진출 소사를 엮으면서 ‘고생’ 편을 만든다면 가장 전형적 사례여서 앞자리에 꼽힐 만한 경우를 추려봤다. 비슷한 사례들이 알게 모르게 설왕설래하다 보니 대한민국 금융 산업이 펼친 글로벌 사업만큼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유가 잘 어울리는 분야가 또 있겠느냐는 지탄이 만연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새 은행권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하는 자성과 각오로 진정한 개척시대를 열면서 의미 있는 도전을 이어 차근차근 성과를 쌓고 있다. 국내 은행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 노선은 한창 의미 있는 변화가 꽃망울을 맺고, 내실이 영글어 현지 토착화에 진전을 잇기 시작했다.
사실 통계란 지난 시간의 궤적이며 미래 진로를 예측할 참고사항으로만 봐야 하는데도 과거 감독당국의 평가를 근거로 우리 은행 산업의 국제화 수준이 형편없다고 몰아세울 단계는 지난 것이 확실해보인다. 더욱이 제조업과 단순 비교하는 태도는 금융 산업과 금융시장 물정을 너무나 모르는 ‘무식한’ 태도이기에 금융 산업 속성 그대로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만한 현지 진출 거점 중 대표적 사례를 조명해볼 만하다.
조금씩 드러나고 꽃망울이 맺히고 있다는 것은 아직 주식(主食) 가운데 하나로 삼기에는 부족하단 얘기.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해외 현지화 지표 평가를 개선하면서 평가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올해 현지화 수준은 그래도 2012년과 지난해 수준에서 조금 나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객관적 지표를 놓고 보면 은행의 해외 진출 성과가 더디긴 하지만 2011년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은행 해외 점포의 총자산은 2009년 538억3000만 달러에서 2011년 639억7000만 달러, 2012년 690억2000만 달러에 이어 지난해 말 778억4000만 달러로 불어났다. 추세대로라면 올 상반기 800억 달러는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익 창출 수준은 주춤했다. 은행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자이익 기준으로 2009년 9억7000만 달러에 비해 2010년과 2011년이 11조 원대를 기록했고 2012년과 2013년 12억 달러를 조금 웃도는 데 그치고 있어서다. 금감원이 평가한 국내 은행 초국적화지수(TNI)는 2010년 말과 2011년 말 각각 3.6%와 3.2%에서 2012년 상반기 5.0%로 올라섰다가 같은 해 말 4.8%를 찍은 뒤 2013년 상반기까지 유지됐다.
TNI는 총자산, 총수익, 총인원 가운데 해외 점포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한 결과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실적을 반영한 현지화 지표는 개선된 기준에 따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역시 TNI가 크게 점핑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5%대를 올라설 것이 확실시되고 은행권 관계자들은 도리어 TNI를 단기간 급등시키려 한다면 그것이 위험한 경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문화적 여건과 경제 상황이 천차만별인 해외에서 신뢰와 브랜드 호감도를 높이는 지난한 과정을 착실히 밟아서 토착화 전술에 집중하는 지역도 될성부른 곳으로 한정하고 있다. 과거의 실패와 고생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놓치지는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하나 노무현 정부 말기 열렸던 한 해외 진출 활성화 세미나에서 모범 사례라며 제시된 현지 인력 중심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은 현지 법인 대부분, 일부 영업점에서마저 채택한 기본 전술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국내 대형 은행 현지화 수준이 진일보한 것만은 틀림없다.
카자흐·도쿄 아픔 딛고 KB 재건
카자흐스탄 뱅크센터크레디트(BCC) 지분을 인수했다가 현지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면서 대규모 평가손을 보고 있으며 일본 도쿄지점 대출 리베이트를 낀 대규모 부당 대출 등으로 은행 전체 이미지마저 손상됐던 KB국민은행 역시 해외 진출과 현지화의 새판 짜기를 모색해왔다. 비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모두 새로 선임해야 할 상황이긴 하지만 큰 뼈대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측이다.
KB국민은행은 현지 경제 회복과 맞물려 BCC 경영 정상화를 꾀하면서 신흥시장 신규 진출 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9년 캄보디아 진출과 지난해 미얀마 양곤사무소 진출은 가장 개발이 더딘 곳을 겨냥한 것이고, 일본을 도쿄와 오사카, 베트남을 호찌민과 하노이의 듀얼 전략으로 사업 기회 확대를 노린 곳도 있다, 여기다 국내 은행 간 최대 격전지인 중국에 2012년 현지 법인 출범을 마친 상태다. 큰 규모의 투자에서 평가손이 났고 2011년 이후 새로 진출한 점포 비중이 가장 높은 탓에 적자 상태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외 점포 손익분기점 돌파까지 3~5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정설에 비춰보면 내년 이후 본격적인 실적 시현을 기대할 만하다. 결국 KB국민은행은 9월 중순까지도 오리무중인 최고경영자(CEO)와 지배구조 리스크에서 빨리 벗어나 새롭게 수립한 전략 방향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새로운 경영진 출범이 절실한 형편이다.
일단 글로벌 토착화의 기수는 신한은행으로 꼽을 만하다. 미주대륙 소형 은행 인수를 통해 현지 밀착을 추구하면서도 일본, 중국, 동남아에 이어 유럽까지 한국 금융계에서 핵심 시장으로 삼고 있는 전역에 걸쳐 전략 집중적 차별화에 성공적 행보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해외부문은 지난 상반기 말 현재 총자산 171억 달러에 순익 6300만 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일본 주요 도시 거점망을 완성한 SBJ은행과 통합 신한베트남은행이 순익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각각 10.3%와 27.7%에 이른다. 지점 한두 곳 운영에 그친 다른 은행과 달리 SBJ은행은 일본 현지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한 수신영업 등 틈새 수요를 파고들었고, 신한베트남은행은 모두 10개 점포에 걸쳐 토착화 영업에 적극적이다. 다른 은행이 선진국 핵심 시장 점포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신한베트남은행이 높은 실적을 거둔 배경에는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는 적금 상품과 더불어 현지 기업카드 시장 1위에 오르며 월 카드 사용액 100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신한금융그룹 강점을 잘 살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진출하는 시장마다 강점에 바탕을 둔 토착화를 꾀하는 차별화에 따라 북미 현지 법인 순익 비중이 뉴욕지점을 웃돌고 중국법인 순익 비중이 15.6%에 이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6월 취임과 함께 5% 수준에 불과한 해외 비중을 15%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현지화와 세계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선포한 바 있다. 올해 들어 인도네시아 사우다라은행 지분 33% 인수 승인 요청이 현지 당국으로부터 받아들여졌고, 1992년 진출했던 인도네시아우리은행과 올해 합병을 완료할 예정이다.
기업금융에 강한 우리은행의 강점에 110개 점포를 지닌 사우다라은행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유니버설뱅킹을 추구할 계획이다. 18개국 70개 네트워크에서 순식간에 180개로 늘어난 것을 계기로 추가 지출과 영업 확장을 통해 해외 영업점포망 200개 이상, 장기적으로는 300개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고도성장 신흥국에 적극 진출하겠다고 선포했다. 또한 2012년 인도 첸나이지점과 브라질 현지 법인 설립으로 브릭스 영업벨트를 국내 처음으로 완성, 고성장국 사업 기회 선점에 공을 들였으며 지난 6월에는 국내 금융회사 중 처음으로 두바이에 진출하는 등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글로벌 핵심 시장 통합 잰걸음, 하나·외환
하나은행이 미얀마에 사무소를 내며 추임새를 넣으니 외환은행이 아부다비지점과 이스탄불 사무소로 흥을 돋우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선 이미 원뱅크를 구현한 하나·외환은행 또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통합법인 1호인 KEB Hana 인도네시아은행이 출범한 이후 각종 경영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는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점망만 39개이고 외환은행의 기업금융 강점과 하나은행의 개인금융 강점이 시너지를 제대로 높이면 머잖아 현지 톱20 반열에 진입할 것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올해 안 중국 통합법인 출범이 성사되면 중국 진출 외국계 은행 가운데 당당히 5걸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8월 말 현재 두 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24개국에 걸쳐 총 128개로 늘어났다. 하나·외환은행의 글로벌 토착화 공세는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통화와 수익 기반을 지렛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금융계에 새로운 모델로 기대를 모은다.
정회윤 한국금융신문 기자
은행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총자산수익률도 아시아 꼴찌 수준이다. 왜 그런 걸까.
근시안 소탐대실, 크고 쓴 대가
외환보유고가 바닥나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상황상 본질은 내팽개친 채 정부당국이 해외 점포 철수 독려에 나섰던 게 1998년 무렵이다. 철수 실적을 일일이 챙기는 당국의 압박에 A은행 또한 철수할 곳과 남길 곳을 골라야 했고 1992년 사무소를 냈다가 지점으로 전환한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은 곳까지 포함시켰다. 현지 당국의 간절했던 잔류 요청을 뿌리쳤던 탓에 2003년부터 백방으로 재진출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지 ‘정서법’에 걸려 사무소를 다시 낸 것은 철수한 지 정확히 15년 만이었다. 외환위기 와중에 외화 경비 지출이 많다는 이유로 해외 점포를 줄이는 것은 다양한 통화의 수신고와 자금 조달 교두보를 파괴하는 짓이지만 당시의 근시안적 소탐대실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 한 곳에 얼씬대기조차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낯선 정글 엄혹한 통과의례
홍콩에 투자은행(IB) 업무를 펴는 현지 법인 설립 경쟁에 불을 당겼던 B은행. 지금까지도 이자이익 의존적 경영 행태가 비판의 대상인데, IB 영업으로 수익 기반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2006년 진출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한국 금융의 대표적 새 아이콘 중 하나로 조명받기에 충분했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IB 시장에 상업은행 DNA가 충만했던 국내 시중은행이 발을 들였다가 치른 통과의례는 엄혹할 수밖에.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눈덩이 불어나듯 늘고 부도로 인한 여파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초국적 IB를 비롯해 유수의 IB가 문을 닫거나 사업 축소 또는 철수에 이르게 되는 대재앙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2011년 대규모 적자를 반영한 뒤 절치부심 비상한 노력으로 반등을 꾀하는 데 보약이 되긴 했다.
시세(時勢) 오판 길고 긴 고생
지난 6월 말 현재 지분평가 손실 규모 약 9202억 원을 낸 은행. 2008년 신흥국 현지 은행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로 올라설 때 취득가가 환율차를 반영해 9541억 원으로 평가된 반면 장부가는 고작 339억 원 정도에 그쳤다. 약 5년 동안 우환덩어리 신세. 석유자원을 등에 업은 현지 경제지표는 온통 장밋빛인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볼 줄 아는 사람 눈에는 최대 도시 아파트 값 상승세가 폭주하는 거품이 만연했던 때였다. 현지 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는 데 미온적인 사외이사들을 장기간 설득해 마침내 뜻을 이뤘지만 현지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거품이 빠지는 혼란이 찾아오는 흉탄을 맞는다.
대한민국 대형 은행들의 해외 진출 소사를 엮으면서 ‘고생’ 편을 만든다면 가장 전형적 사례여서 앞자리에 꼽힐 만한 경우를 추려봤다. 비슷한 사례들이 알게 모르게 설왕설래하다 보니 대한민국 금융 산업이 펼친 글로벌 사업만큼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유가 잘 어울리는 분야가 또 있겠느냐는 지탄이 만연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새 은행권은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하는 자성과 각오로 진정한 개척시대를 열면서 의미 있는 도전을 이어 차근차근 성과를 쌓고 있다. 국내 은행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 노선은 한창 의미 있는 변화가 꽃망울을 맺고, 내실이 영글어 현지 토착화에 진전을 잇기 시작했다.
사실 통계란 지난 시간의 궤적이며 미래 진로를 예측할 참고사항으로만 봐야 하는데도 과거 감독당국의 평가를 근거로 우리 은행 산업의 국제화 수준이 형편없다고 몰아세울 단계는 지난 것이 확실해보인다. 더욱이 제조업과 단순 비교하는 태도는 금융 산업과 금융시장 물정을 너무나 모르는 ‘무식한’ 태도이기에 금융 산업 속성 그대로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만한 현지 진출 거점 중 대표적 사례를 조명해볼 만하다.
조금씩 드러나고 꽃망울이 맺히고 있다는 것은 아직 주식(主食) 가운데 하나로 삼기에는 부족하단 얘기.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해외 현지화 지표 평가를 개선하면서 평가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올해 현지화 수준은 그래도 2012년과 지난해 수준에서 조금 나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객관적 지표를 놓고 보면 은행의 해외 진출 성과가 더디긴 하지만 2011년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은행 해외 점포의 총자산은 2009년 538억3000만 달러에서 2011년 639억7000만 달러, 2012년 690억2000만 달러에 이어 지난해 말 778억4000만 달러로 불어났다. 추세대로라면 올 상반기 800억 달러는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익 창출 수준은 주춤했다. 은행 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자이익 기준으로 2009년 9억7000만 달러에 비해 2010년과 2011년이 11조 원대를 기록했고 2012년과 2013년 12억 달러를 조금 웃도는 데 그치고 있어서다. 금감원이 평가한 국내 은행 초국적화지수(TNI)는 2010년 말과 2011년 말 각각 3.6%와 3.2%에서 2012년 상반기 5.0%로 올라섰다가 같은 해 말 4.8%를 찍은 뒤 2013년 상반기까지 유지됐다.
TNI는 총자산, 총수익, 총인원 가운데 해외 점포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한 결과다. 금감원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실적을 반영한 현지화 지표는 개선된 기준에 따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역시 TNI가 크게 점핑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5%대를 올라설 것이 확실시되고 은행권 관계자들은 도리어 TNI를 단기간 급등시키려 한다면 그것이 위험한 경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치·문화적 여건과 경제 상황이 천차만별인 해외에서 신뢰와 브랜드 호감도를 높이는 지난한 과정을 착실히 밟아서 토착화 전술에 집중하는 지역도 될성부른 곳으로 한정하고 있다. 과거의 실패와 고생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놓치지는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하나 노무현 정부 말기 열렸던 한 해외 진출 활성화 세미나에서 모범 사례라며 제시된 현지 인력 중심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은 현지 법인 대부분, 일부 영업점에서마저 채택한 기본 전술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국내 대형 은행 현지화 수준이 진일보한 것만은 틀림없다.
카자흐·도쿄 아픔 딛고 KB 재건
카자흐스탄 뱅크센터크레디트(BCC) 지분을 인수했다가 현지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면서 대규모 평가손을 보고 있으며 일본 도쿄지점 대출 리베이트를 낀 대규모 부당 대출 등으로 은행 전체 이미지마저 손상됐던 KB국민은행 역시 해외 진출과 현지화의 새판 짜기를 모색해왔다. 비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모두 새로 선임해야 할 상황이긴 하지만 큰 뼈대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측이다.
KB국민은행은 현지 경제 회복과 맞물려 BCC 경영 정상화를 꾀하면서 신흥시장 신규 진출 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9년 캄보디아 진출과 지난해 미얀마 양곤사무소 진출은 가장 개발이 더딘 곳을 겨냥한 것이고, 일본을 도쿄와 오사카, 베트남을 호찌민과 하노이의 듀얼 전략으로 사업 기회 확대를 노린 곳도 있다, 여기다 국내 은행 간 최대 격전지인 중국에 2012년 현지 법인 출범을 마친 상태다. 큰 규모의 투자에서 평가손이 났고 2011년 이후 새로 진출한 점포 비중이 가장 높은 탓에 적자 상태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해외 점포 손익분기점 돌파까지 3~5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정설에 비춰보면 내년 이후 본격적인 실적 시현을 기대할 만하다. 결국 KB국민은행은 9월 중순까지도 오리무중인 최고경영자(CEO)와 지배구조 리스크에서 빨리 벗어나 새롭게 수립한 전략 방향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새로운 경영진 출범이 절실한 형편이다.
일단 글로벌 토착화의 기수는 신한은행으로 꼽을 만하다. 미주대륙 소형 은행 인수를 통해 현지 밀착을 추구하면서도 일본, 중국, 동남아에 이어 유럽까지 한국 금융계에서 핵심 시장으로 삼고 있는 전역에 걸쳐 전략 집중적 차별화에 성공적 행보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해외부문은 지난 상반기 말 현재 총자산 171억 달러에 순익 6300만 달러에 이른다. 그리고 일본 주요 도시 거점망을 완성한 SBJ은행과 통합 신한베트남은행이 순익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각각 10.3%와 27.7%에 이른다. 지점 한두 곳 운영에 그친 다른 은행과 달리 SBJ은행은 일본 현지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한 수신영업 등 틈새 수요를 파고들었고, 신한베트남은행은 모두 10개 점포에 걸쳐 토착화 영업에 적극적이다. 다른 은행이 선진국 핵심 시장 점포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신한베트남은행이 높은 실적을 거둔 배경에는 선풍적 인기몰이를 하는 적금 상품과 더불어 현지 기업카드 시장 1위에 오르며 월 카드 사용액 100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신한금융그룹 강점을 잘 살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진출하는 시장마다 강점에 바탕을 둔 토착화를 꾀하는 차별화에 따라 북미 현지 법인 순익 비중이 뉴욕지점을 웃돌고 중국법인 순익 비중이 15.6%에 이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6월 취임과 함께 5% 수준에 불과한 해외 비중을 15%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현지화와 세계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을 선포한 바 있다. 올해 들어 인도네시아 사우다라은행 지분 33% 인수 승인 요청이 현지 당국으로부터 받아들여졌고, 1992년 진출했던 인도네시아우리은행과 올해 합병을 완료할 예정이다.
기업금융에 강한 우리은행의 강점에 110개 점포를 지닌 사우다라은행과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유니버설뱅킹을 추구할 계획이다. 18개국 70개 네트워크에서 순식간에 180개로 늘어난 것을 계기로 추가 지출과 영업 확장을 통해 해외 영업점포망 200개 이상, 장기적으로는 300개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고도성장 신흥국에 적극 진출하겠다고 선포했다. 또한 2012년 인도 첸나이지점과 브라질 현지 법인 설립으로 브릭스 영업벨트를 국내 처음으로 완성, 고성장국 사업 기회 선점에 공을 들였으며 지난 6월에는 국내 금융회사 중 처음으로 두바이에 진출하는 등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글로벌 핵심 시장 통합 잰걸음, 하나·외환
하나은행이 미얀마에 사무소를 내며 추임새를 넣으니 외환은행이 아부다비지점과 이스탄불 사무소로 흥을 돋우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선 이미 원뱅크를 구현한 하나·외환은행 또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통합법인 1호인 KEB Hana 인도네시아은행이 출범한 이후 각종 경영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는 급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점망만 39개이고 외환은행의 기업금융 강점과 하나은행의 개인금융 강점이 시너지를 제대로 높이면 머잖아 현지 톱20 반열에 진입할 것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울러 올해 안 중국 통합법인 출범이 성사되면 중국 진출 외국계 은행 가운데 당당히 5걸 안에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8월 말 현재 두 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24개국에 걸쳐 총 128개로 늘어났다. 하나·외환은행의 글로벌 토착화 공세는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광범위한 통화와 수익 기반을 지렛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금융계에 새로운 모델로 기대를 모은다.
정회윤 한국금융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