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ORY OF ARCHITECTURE] ‘세월호’ 사고 현장에 ‘부재의 반추’가 세워지기를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건축 기행 그리고 인생’(8)

9·11 추모 광장, 메모리얼 파크(The 9·11 Memorial)
미국 뉴욕 맨해튼의 9·11 메모리얼 파크(The 9·11 Memorial)는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 조성된 추모공원이다. 3만2368㎡(8에이커)의 녹색 공간에 박물관과 인공폭포 등을 세워 2001년 세계무역센터(WTC) 폭탄 테러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필자는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두 달 뒤인 2001년 11월 뉴욕 맨해튼을 찾아 테러로 황폐해진 현장을 봤으며, 지난해 3월 다시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해 변화된 9·11 메모리얼 파크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땅인 뉴욕 맨해튼에 건물 대신 추모공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박수를 쳐줄 만했다. 그것은 두 번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굳은 의지였다.


쌍둥이 빌딩인 월드트레이트센터 자리에 새롭게 건설된 거대한 인공 폭포와 최근 개장한 추모 박물관과 참나무 공원.

9·11 메모리얼 파크는 9·11 테러 10주년을 맞이한 지난 2011년 9월 개장했다. 2006년 3월부터 공사를 시작했으니, 완공까지 5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일의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을 지은 건축가 다니엘 리벤스킨트(Daniel Libeskind)가 마스터 플래너로 참여해 전체 단지 6만4736㎡ (16에이커)에 원 월드트레이드센터(One World Trade Center:일명 프리덤 타워)등 초고층 건물 7개와 전체 면적의 절반인 8에이커에 추모공원을 배치했다. 이스라엘 출신의 젊은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Michael Arad)와 저명한 조경디자이너 피터 워커(Peter Walker)가 추모공원의 설계를 담당했다. 이 추모공원의 설계 개념(concept)은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영원토록 기억하겠노라는 살아남은 자들의 약속에 다름 아니다.

9·11 메모리얼 파크는 하루 평균 2만 명이 찾고 개장 후 1400만 명이 다녀간 뉴욕 맨해튼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3월 방문한 메모리얼 파크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원은 여느 공원과 비슷하지만 9.11 테러 시 희생된 3000여 명의 희생자를 기리고 끔찍했던 테러 사건을 극복한 뉴욕 시민들의 `자랑스러운 상처` 때문에 분위기가 숙연했다.



쌍둥이빌딩 있던 자리에 초대형 인공폭포
9·11 메모리얼 파크의 중심축은 세계무역센터 즉, 쌍둥이빌딩이 있었던 자리에 만들어진 두 개의 초대형 사각형 인공폭포(pool)다. 누군가 이곳이 당초 두 동의 세계무역센터가 서있던 자리라는 사실을 안다면, 마치 두 빌딩을 무 뽑듯 뽑아낸 것 같다는 느낌도 받을 것이다. 9.14m(30피트) 깊이에 4046㎡(약 1220평) 면적의 이 인공폭포는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분당 약 1만1400리터의 물이 각각 빈 공간의 중심부 속으로 쏟아지는데, 벽의 골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그날’의 눈물인 양 보이기도 한다. 이는 테러 공격으로 사라져간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미 최대 인공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 소리는 아픔 속에서도 뉴욕이 여전히 생동감을 잃지 않았음을 선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폭포는 365일 쉬지 않고 가동되는데, 약품 처리를 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다. 또 리사이클 워터로 한 번 흘러내린 물을 회수해 다시 사용한다고 한다.

거대한 인공폭포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난간 띠에 둘러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북측, 남측 두 개의 인공폭포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76개의 동판에는 2001년 9·11 테러로 쌍둥이빌딩에서 목숨을 잃은 2753명, 펜타곤(미 국방부)에서 사망한 184명, 1993년 세계무역센터 지하주차장 차량폭탄 테러에서 죽은 6명을 포함해 2983명의 희생자 이름이 적혀 있다. 이들은 93개국의 사람들인데, 동판에는 한국계 희생자 이름도 21명이나 있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9·11 테러 당시 둘째 아들 앤드루 김(당시 26세) 씨를 잃은 김평겸 9·11 한인유족회 회장이 9월 11일 추모공원을 찾아 아들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에 입을 맞추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벌써 13년이 지난 일이지만, 테러 앞에 스러져간 무고한 생명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건축가 아라드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의미 있는 이웃들’이라는 개념으로 배치했다. 알파벳순이나 임의로 이름을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일일이 물어 희생자의 이름을 생전에 알던 동료, 친구, 가족의 이름과 나란히 새겨주었다. 이렇게 그루핑을 해서 2983명의 희생자들이 하나하나의 섬을 형성하도록 한 것이다. 희생자들의 이름은 원래 폭포 아래 새겨질 예정이었지만, 꼭 무덤에 묻는 것 같다는 유족들의 반발로 햇빛을 받을 수 있는 밝은 공간으로 위치를 조정했다.

9·11 메모리얼 파크의 조경은 400그루의 참나무로 채워졌다. 건축가들은 초봄의 화사한 연둣빛이 여름에 짙은 녹음을 이루고 가을엔 붉게 물드는 잎의 변화무쌍함 때문에 참나무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은 마치 주판처럼 배열돼 있다. 대충 심어진 듯 보이는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덧 나무가 일렬로 늘어서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9·11 테러의 희생자들 대부분이 사고 지역의 500마일 이내인 5개 주에서 거주했기 때문에 공원의 참나무들 역시 해당 5개 주에서만 가지고 왔다. 그러나 여러 지역에서 나무를 가져오다 보니 높이와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가식장에서 큰 나무는 영양분을 적게 주고, 작은 나무는 영양분을 많이 주는 방식으로 3년 동안 관리해 크기와 높이를 비슷하게 맞출 수 있었다고 한다. ‘부재의 반추’에서 유일한 다른 나무인 배나무가 눈에 띈다. 1970년대에 월드트레이드센터 광장에 심겨진 것으로, 9·11 테러 당시 폐허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생존 나무다. 당시 손상된 이 나무는 뉴욕시의 한 공원으로 옮겨져 건강하게 보양된 후 9.14m까지 자라서 돌아왔다. 2010년 3월에 이 나무는 심한 폭풍우로 인해 뿌리째 뽑혔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았다. 9·11 메모리얼 파크의 이 배나무는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미국민의 강력한 회복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5월 15일에는 두 개의 인공폭포 사이에 9·11 추모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유리와 스틸로 만들어진 이 박물관에는 전체 희생자들의 사진을 비롯해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그에 따른 국내외 반응을 연대순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들이 있다. 사고 당시 소방·재난 담당자들이 교신한 음성 기록 1945건과 테러범들이 공항에 들어가는 장면들을 포함한 영상기록물 등 1만2500점이 전시돼 있다.

9·11 메모리얼 파크는 설계자 마이클 아라드의 인생도 180도 바꾸어 놓았다. 2003년 열린 추모공원 공모전에서 5201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되기 전까지 아라드는 비자가 만료돼 이스라엘로 쫓겨날 신세에 놓인 뉴욕의 실업자였다. 돈이 궁하던 그는 잡화점에서 산 싸구려 분수와 플라스틱 조각으로 모형을 만들어 공모전에 제출했다. 아라드는 전 세계 63개국에서 공모한 5201개의 작품 중 1등에 당선돼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 설계를 뽑은 13인의 심사위원들은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9·11 테러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 나무.

“이 작품은 파괴에 의해 남겨진 상실의 빈 공간에 대한 것을 표현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삶의 손실에 대해, 또한 위로 받을 수 있는 재생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까지 기억될 수 있는 장소를 표현하고 있다.”


9·11 메모리얼 파크와 세월호 침몰 사고
미국의 9·11 메모리얼 파크를 생각하면 얼마 전 우리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오버랩 된다. 우리 회사는 200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0주기를 맞아 ‘삼풍백화점 사고 10년 교훈과 과제’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고 당시의 사고를 재조명한 바 있다. 발주자, 시공자, 설계자, 유관기관의 총체적인 부실과 부패로 인한 사고였음을 잊지 말자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201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주기를 맞아 다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올 초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안전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20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삼풍 사고의 위험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필자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곳에 뉴욕 맨해튼의 ‘부재의 반추’와 같은 추념 시설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과오를 똑똑히 기억하고 이 땅에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난 여름휴가 때 찾은 스웨덴 ‘바사호 박물관’ 역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스톡홀름의 스칸센 서쪽에 위치한 바사호 박물관은 1628년 첫 항해 때 사고로 침몰해 50여 명이 사망한 전함 ‘바사(Basa)호’를 추념하는 공간이다. 노르웨이는 바사호를 통째로 건져 박물관에 보존하고 각종 유물을 전시함으로써 후손들에게 슬픈 역사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삼풍사고터에 아파트를 짓는 우를 범했는데 세월호 사고의 무고한 어린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시설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반추하고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


정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종훈 회장 제공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