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ARCHTECTURE] ‘힘든 길’자청한 젊은 건축가 “수고스러움의 가치를 믿는다”
입력 2014-02-25 10:58:00
수정 2014-02-25 10:58:00
‘선’의 미학, 이정훈 조호건축 소장
고백컨대, 이정훈 조호건축 소장을 인터뷰이로 정한 건 ‘선’에 반해서였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커빙 하우스’의 유려한 곡선이 하늘빛과 맞닿으며 날아오를 듯 비상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마음을 흔들었다. 국내에 그의 이름을 알린 헤르마 주차 빌딩의 섬세한 곡선도 마찬가지. 아름다운 디자인의 탄생이 건축의 현실적 문제 해결과 미래 가치, 그리고 윤리적 측면까지 고려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감동은 더했다. 과연 그는 생각 많고, 수고를 자청하는 건축가다.
서울 양재동 주택가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조호건축 사무실의 첫인상은 씁쓸했다. 이미 여러 경험을 통해 건축가 사무실이 TV 드라마 속 그것과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 중 한 명이 아니던가. 프랑스 유학파인 이정훈 조호건축 소장의 국내외 화려한 이력도 어쩌면 기대감에 한 몫 했는지 모르겠다. 유학 후 파리의 시게루 반과 영국의 자하 하디드 등 유명 건축설계사무소 등에서 일했고, 국내로 돌아와 처음으로 선보인 헤르마 주차 빌딩으로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으며, 지난해 말에는 세계적 건축 잡지인 아키텍처럴 레코드가 선정한 ‘2013년 차세대 건축을 이끌 10명의 건축가’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다.
그러나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에 벌써 많은 일을 ‘낸’ 이 젊은 건축가의 여정은 혹독함으로 시작됐다. 지금이야 따뜻한 사무실 안에서 일하지만 귀국 후 1년 반 정도를 공사현장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지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선택이었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국내 건축현장 경험이 전무한 그에게 현장은 일종의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실무나 법규 등을 몰랐으니 필요한 과정이었던 거죠. 대부분의 유학파들이 그래요. 큰 사무소에서 디자인만 하니까 현장감은 떨어지는 겁니다. 한번은 반드시 넘어야 할 수고라고 생각하고 주차 빌딩을 건축하는 동안에는 거기에만 전념했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과 동고동락하며 거의 독학으로 배운 거죠.”
현실적 문제의 해결에서 시작된 디자인 전략
결과적으로 좋은 수업이자 기회였던 헤르마 주차 빌딩은 여러 모로 ‘운명적’이었다.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자하 하디드를 그만뒀을 무렵, 지인의 소개로 의뢰를 받았는데 모든 조건이 좋지 않았다. 어느 건축가가 인허가까지 진행한 뒤 다른 일로 구속이 되면서 누군가가 떠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오로지 현장 실무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주차장용 땅으로 매입한 대지가 건축하기에 좋지 않은 땅이라 건축을 해봐야 공사비와 땅값도 안 나온다는 계산이 섰고, 같은 이유로 이미 6년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이 건축의 일차적 목표였다.
“주차장 빌딩의 20%를 상업시설로 쓸 수 있으니, 임대소득을 높이는 것만이 방법이었어요. 나머지 80%의 주차장에서는 버는 돈이 한계가 있으니까요. 생각한 게 건물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임대료를 올리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주차 출입구를 노출시키지 않고 마치 주차장이 아니라 디자인된 건물처럼 전략을 짰죠. 물론 그로 인한 공사비용은 올라갔지만,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건축주를 설득하며 밀어붙였어요.”
결과만 두고 보면 더없이 좋았다. 마치 갤러리 같은 이 주차 건물로 이 소장은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뽑은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건물의 가치는 훌쩍 뛰었으며, 주변 환경에 끼치는 영향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과정의 ‘수고로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적은 공사비를 해결하느라 직접 자재를 떼러 다녔고, 도면을 보고 “우리나라에선 할 수 없다”고 하는 시공업자들에게 사정사정하며 직접 공사해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도 그럴 것이 빌딩 외벽을 이루는 800개의 패널을 그것도 형태와 패턴, 접합 각도를 모두 다르게 용접으로 이어붙이는 과정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휘장막을 뜯는 순간 통쾌하더군요. 그 전까지 쇄도하던 민원도 싹 사라졌고요. 더 큰 보람은 현장에서 힘들게 작업해준 분들도 자랑스러워했다는 점이었어요. 현장을 담당한 반장님과 친해졌는데 어느 날 술을 마시면서 그러더라고요. 당신 아이들에게 이 건물을 보여주면서 아버지가 참여했노라고 자랑했다고, 이렇게 자랑스러운 작업은 처음이라고. 뭉클했죠.”
진행 과정만 두고 보면 ‘헤르마 주차 빌딩’과 ‘커빙 하우스’는 상당히 닮은꼴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 디자인 접근 방식이었고, 건축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으며 결과물이 불러온 파장이 컸다는 것까지.
동양화의 ‘선’과 전통의 재해석
‘커빙 하우스’의 시작은 설계가 아닌 컨설팅 의뢰였다.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후 맡았던 남해의 농가 주택 리노베이션 작업이 끝나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건축주는 세 아들 중 둘째 아들과 함께 사무실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동행한 아들이 덴마크의 건축과 교수였다. 첫 만남에 너무나 말이 잘 통했던 이 소장과 건축주는 그 자리에서 집을 짓기로 했고 그렇게 공사가 시작됐다.
4m가량의 높은 경사 끝에 위치한 대지는 광교산 자락 밑 남향을 바라본 보기 드문 택지였지만, 두 대의 차가 들어가자 돌려 나오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차 문제의 해결이 디자인의 1차 목표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아가 주차와 정원을 동시에 해결한다는 가든 계획이 설계의 시작이었다. 건물 자체를 둥글게 곡면지게 하면서 대지를 감싸 안은 형태로 했고, 주차의 효율성을 위해 2m 정도 높이의 필로티로 띄워 설계한 것. 그렇게 곡면의 건물이 드러낸 ‘선’은 아름다운 뒷산 배경과 어우러지며 마치 하늘과 자연을 담아내는 동양화의 그것처럼 자태를 뽐낸다.
그런데 바로 이 ‘선’이 공사 과정 내내 말썽이었다. 보통 일반적 벽돌 시공은 옥상에서 추를 단 실을 내려 수평, 수직만 맞추면 되니 한 줄당 2개의 실만 내리면 되는데, 곡선으로 쌓아야 하는 데다 각이 다르게 쌓아야 하니 200개에 달하는 실을 내려 쌓는 일종의 ‘실험’을 해야 했다.
“도면을 주고 해달라고 하니 원하는 게 안 나오는 거예요. 세 번 정도를 허물고 내가 직접 하나씩 쌓았어요. 그야말로 장인정신으로 말이에요.(웃음) 첫 단을 제가 쌓은 후 다음 단부터 벽돌 시공하시는 분들이 쌓았는데, 점점 완성돼가는 걸 보면서 그분들도 희열을 느끼시더라고요.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스터디를 할 정도로 열성이었죠. 함께 발전해간 거예요. 지금도 벽돌 작업할 때는 그분들과 함께 하는데, 제가 나타나면 ‘이번엔 또 뭘 할 거냐’고 궁금해하세요. 고생하는 만큼 그분들에게는 꼭 정확한 보상을 해드립니다. 그게 제 철칙이에요.”
전통에 대한 이 소장의 관심은 단순히 외형뿐 아니라 내부 설계에서도 ‘효율성’을 통해 드러난다. 대청마루가 그렇듯 필로티로 띄워 겨울철 단열효과를 높였고, 내부 천장에 창을 내 여름에는 더운 공기가 위로 잘 빠지도록 했다. 남향인 데다 공기 순환이 잘 되니 주택 규모가 큼에도 불구하고 겨울철 난방비가 최소 수준. 여기에는 건물 외벽과 달리 1층 발코니 마감재를 스테인리스로 한 것도 한 몫 했다. 서향을 바라보는 발코니가 나무가 많은 여름엔 그늘이 지고, 겨울엔 스테인리스가 빛을 받아들여 데워지는 효과까지 계산된 것이었다.
‘연구’하는 건축가의 네버엔딩 건축 실험
이 소장이 건축물마다 ‘힘든 길’을 자청하는 데는 ‘수고스러움의 가치’를 믿는 철학 때문이다. 건축가가 공들인 건물이라야 건축주도 애착이 생길 것이라는 게 이 소장의 지론. 각 건축마다 재료를 다르게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자기복제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편하자고 복제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재들을 검토하는 기간이기도 해요. 사무실 입구에도 자재들이 쌓여 있는데 시공 전 반드시 테스트해보고 검토해본 뒤에 설계를 하죠. 공사를 어렵게 하는 건 그 자체로 정성과 수고를 들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그 재료가 가진 본성과 대지의 적합성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해요. 만일 헤르마 주차 빌딩을 벽돌로 지었으면 무거웠을 거예요. 경쾌하고 댄디하면서도 변하는 물성이라야 했고, 그래서 폴리카보네이트를 사용했죠. 서울 역삼동 성당 앞에 건축한 오피스 건물인 ‘마블링 오피스’도 성당이 가진 초월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건 몰라도 대리석 마감재만큼은 고집했고요. 대리석, 벽돌, 콘크리트 등 재료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표현 방법적인 부분에서도 유별나게 스터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 스터디의 또 다른 결과물이 바로 판교에 지은 ‘스케일링 하우스’다. ‘비늘로 만든 집’이란 뜻을 지닌 이 주택은 흥미롭게도 ‘커빙 하우스’ 벽돌 시공업자들의 기대(?)대로 수위를 높이는 차원에서 설계됐다. 안타깝게도 건축주의 요구 때문에 이 소장이 좋아하는 ‘라인’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노출된 사면에서 각각 다른 표면이 읽히도록 디자인했다. 북향은 아름다운 전망을 살리고 남향 쪽은 채광을 살리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무암 벽돌과 일반 벽돌을 각각 각도를 달리해 2만 장을 자르고 쌓는 대규모 ‘실험’이 이어졌고, 결국 또 하나의 특별한 건축이 태어났다.
이 소장은 이런 ‘실험’들을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조성됐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건축 환경의 미래를 기대해볼 만하다고 했다. 이는 세대 변화와 함께 더욱 가속화될 터. 건축을 부동산으로 바라보던 세대를 지나 삶에 대한 생각이 다른 요즘 세대들은 주택에 대한 기호도 분명할뿐더러 집이 곧 자신의 취향이고 문화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 중에는 30대 초반이 70%예요. 제가 젊은 것도 있고 디자인 성향도 있겠지만, 그건 그만큼 주거 공간에 대한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걸 뜻하죠. 지금 30대 초반이 그렇다면 몇십 년 후에는 더 큰 변화가 있겠죠. 부동산이 양적으로 팽창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질적 변화로 턴하는 게 당연하고, 문화적 가치로 봐도 건축이 가진 힘은 이미 증명되고 있어요. 프랑스를 보더라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문화정책을 잘 해서 남겨놓은 것들이 지금을 지탱하는 유산이 되고 있잖아요. 지금 1조 원을 투자하면 훗날 100조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인물)·남궁 선(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