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ODYSSEY] 음악을 들으면 ‘사람’이 보인다

김준의 ‘The Classic’ 2nd

지휘자가 ‘절대 권력’이라면 그 절대 권력자의 내면은 어떠했을까. 감히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는 줄 세울 수 없을지 몰라도, 인격적 혹은 인간다운 면모를 파악하는 건 가능하다. 그들의 음악이 말해주고 있으므로.



클래식 이야기는 참으로 방대하다. 그 첫 매듭을 지휘자로부터 풀어나갔으나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 이번에도 시작은 지휘자 얘기다. 이미 말했듯 수십 명의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의 색깔 자체가 달라질 만큼 지휘자 한 사람이 갖는 힘이 막강하니 짧은 서술로는 부족할 수밖에. 이쯤에서 지난 시간 복습 들어간다. 꼭 기억해야 할 세 사람의 지휘자를 기억하는지. 그렇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다. 그리고 그 대를 잇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까지는 언급했고,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카를 뵘이다.


고수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진짜 고수’
카를 뵘은 개인적으로도 특히 좋아하는 지휘자이고,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지휘자의 색이 아주 분명한, 해서 음악을 들으면 그가 지휘한 곡임을 알 수 있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실력적인 면에서라면 필자가 감히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대가들이니 논할 바가 못 되겠지만, 다만 카를 뵘이 ‘한 수 위’라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평하고 싶은 게 있으니 바로 인격적인 부분이다. 카를 뵘의 음악은 참으로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엄격하다. 필자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를 뵘에게서 필자는 리더십을 배운다. 엄격함이 무서움 그 자체가 아니라 철저함 속에 숨겨진 따뜻함이라고나 할까. 일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지만 사람에 대해선 무한한 애정을 가진 그였다. 스스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 앞에서 단원들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더 나눠주고 가르쳐주기 위해 뒤에서 밀어올린 그였다. 엄격함이란 바로 그 가르침의 과정이었다.

카를 뵘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하자면 오스트리아 남부 그라츠에서 태어나 원래 법학도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지휘에 입문했다.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브루노 발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전음악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많은 곡을 남겼는데, 음악도 음악이지만 무엇보다 당시 그는 엄청난 존경을 받는 지휘자였다. 심지어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카를 뵘보다 한참 연장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그를 위해 음악을 만들고 헌정할 정도였다. 실력과 인격, 두 가지 면을 모두 갖춘 지휘자에 대한 어쩌면 당연한 존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지휘자의 성격이 음악에도 투영되는 면이 없지 않다. 카를 뵘이 영향을 받은 브루노 발터의 곡도 정확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데다 그 역시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음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음악이 다이내믹하고 음 하나하나가 분명한 토스카니니는 엄격하다 못해 무서운 독재자였고, 마치 음악이 물 흐르듯 하는 푸르트벵글러는 모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 굉장히 엄격했다.

카를 뵘은 종종 카라얀의 라이벌로도 지목되는데 재밌는 건 좋은 관계일 수 없는 사이였음에도 돈독했다는 사실이다.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뮤직 디렉터로 활동하던 카를 뵘이 계약을 완료하지 못하고 나온 후, 카라얀이 후임을 맡게 됐던 것.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둘 사이가 좋았던 건 카라얀이 카를 뵘을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대중에게 더 어필한 건 카라얀이었을지 몰라도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존경받는 지휘자, 카를 뵘은 그런 지휘자였다. 기업가 중에도 카를 뵘 같은 이들이 분명 있다.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기업가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어디나 ‘숨은 고수’들이 진짜인 법이다.


지휘자 카를 뵘.

민족성과 음악의 상관관계
카를 뵘과 동시대 사람으로 또 한 사람 중요한 인물이 바로 조지 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오케스트라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지휘자들 중 하나인 그는 별 볼 일 없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뉴욕 필하모니에 버금가는 미국 중부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헝가리 태생으로 헝가리에는 이탈리아 지휘자 못지않게 유명 지휘자들이 많지만 대표적인 이가 바로 조지 셀이다.

지휘자의 태생을 살펴보면 또 재밌는 사실과 마주한다. 토스카니니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들을 많이 배출한 이탈리아는,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케스트라는 상대적으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다른 나라에 많이 밀린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비엔나의 빈 국립 오페라와 함께 3대 오페라단으로 불리는 밀라노스칼라가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는 정도다. 그러고 보면 민족 성향이라는 게 음악에도 드러나는 건 아닐까 짐작해본다. 패션에서 과학까지 세계 최초, 세계 최고를 만들어내는 데는 탁월하지만 함께 모여서 하는 일에는 조금 떨어진다고나 할까.

반대로 영국은 런던 심포니, 런던 필하모니, BBC 오케스트라에서부터 로열 오페라, 로열 발레단에 이르기까지 유명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이 많은데도 어쩐지 지휘자들의 무게감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던 존 바비롤리 정도가 대가라고 할 만한 지휘자들과 견줄 만하지만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푸르트벵글러 등 동시대 인물과 비교했을 때 존재감이 확연히 다른 게 사실이다.

미국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지휘자 중에는 유태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흥미롭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대표적이다. 짐작컨대 유태인들의 남다른 교육 방식이 그 바탕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 역시 자연과학(화학)을 전공했는데 주변에 보면 순수예술, 문학, 철학, 자연과학 등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이 되는 순수한 학문 분야에 대한 유태인들의 관심은 늘 눈에 띄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거론된 김에 지휘자들의 재밌는 ‘약점’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그는 오페라 지휘를 거의 하지 않았다. 지휘자에게 오페라는 극복해야 할 장르 중 하나다. 카를 뵘,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 브루노 발터 등이 지휘자로 설 때 그 시작은 모두 오페라였고, 이는 거의 모든 유럽의 지휘자들에게 예외 사항이 아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고, 무대 규모가 오케스트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 많은 걸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페라의 뮤직 디렉터를 거쳐야만 지휘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관례처럼 돼 있다. 그런데도 레너드 번스타인은 오페라 경험이 거의 없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은 대가에게도 이런 약점이 하나 있다는 게 얼마나 인간적으로 느껴지는지. 몰라서 그렇지 아마 다른 지휘자들에게도 분명 약점 하나씩은 있지 않았을까. 다만 자신이 그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 못 받아들이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카를 뵘과 브루노 발터가 더 매력적인 건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음악 속에 드러냈다는 사실 말이다. 아마도 브루노 발터의 ‘전원교향곡’을 베토벤이 들었다면 그 따듯함에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카를 뵘의 모차르트 교향곡은 또 어떻고. 이 대목에서 베토벤의 위대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으나,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베토벤 전집을 꼭 들어보라는 것으로 다음 회 예고편을 대신한다.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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