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MESSAGE] 놀아라, 그게 일하는 것이다!

디폴트 신경망의 활성화

새해 당신은 어떤 꿈, 어떤 소망을 갖고 있는가. 모르긴 해도 ‘새롭고 창의적이고 게다가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창출은 업무 유형을 떠나, 직장인과 경영자를 막론하고 모두의 바람 중 하나일 게다. 그러나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으니 업무와 관계없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디폴트 신경망이 바로 창의의 원천이라는 것. 자, 이제 열심히 일한 뒤 떠날 계획 세우지 말고, 열심히 노는 것, 그게 곧 일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이제 뇌 과학(neuroscience) 전문가가 돼야 한다.’ 의학이나 생명공학 영역에서 나온 말이라면 색다를 것이 없으나, 인사관리와 관련된 경영 전문 저널의 내용이기에 새롭다. 뇌 과학의 발달로 사람 뇌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면서 경영과 접목되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뇌 연구는 동물 뇌에 직접 전극을 삽입해 뇌의 영역에 따른 기능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러나 최근은 기능성 뇌 자기공명 영상촬영(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을 활용해 외부에서 뇌의 활동도를 측정할 수 있다. 뇌는 특정 영역이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우리 현대사회가 네트워크 사회인 것처럼 뇌의 여러 영역이 네트워크, 즉 신경망을 이루어 특정 기능을 수행함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업무를 할 때 주로 활용하는 신경망이 조정 신경망, 즉 ‘컨트롤 네트워크(control network)’다. 업무 수행 시 작동되기에 ‘태스크 포지티브 네트워크(task-positive network)’라고도 부른다. 현재 회사 차원의 인력 관리나 개인 차원의 일정 관리는 어떻게 조정 신경망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하느냐에 집중돼 있었다. 경영에 있어 경쟁과 성과 관리 시스템은 조정 신경망의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들이다.

명확한 목표를 향한 집중과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은 조정 신경망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이며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속경영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새로운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창출’에 있어서는 조정 신경망만으로한계가 있다. 다른 뇌의 신경망을 활성화해야 한다.

한 팀장이 걱정을 토로한다. 마케팅 기획 업무를 하고 있어 팀원들과 아이디어 기획 회의를 자주 하는데 팀장이 된 이후로 좋은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팀원들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때면 팀장으로서 고맙기도 하지만 자기만 도태되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자기도 팀원일 때는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었다며 한숨을 쉰다.


일상에서 벗어나면 뇌 안의 숨은 파워가 켜진다
뇌 과학 연구 결과는 ‘일한 자여, 놀아라’가 아니라 ‘놀아라, 그게 일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조정 신경망에 대칭되는 신경망으로 디폴트 신경망(default network)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기본 신경망,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기본적으로 활성화되는 ‘태스크 네거티브 네트워크(task-negative network)’다. 소위 ‘멍’ 때릴 때 작동하는 뇌 안의 신경망이라 할 수 있다. 이 한심해 보이는 멍 때릴 때 작동하는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될 때 창조적 아이디어 창출이 잘 일어난다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회의 시간에 골몰할 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잠시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험,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된 결과다.


기차 창문 너머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초월성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내 뇌 안의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개인 성취를 위해서도 그렇고 기업 같은 조직의 발전에 있어서 생존과 성취를 이루게 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너무나 소중한 보물이다. 기울어가던 회사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터져 나와 기사회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은 우리 손의 생활필수품이 돼버린 스마트폰,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로 애플은 최고의 기업이 됐다.

조정 신경망을 통한 업무 수행이 외부의 새로운 정보나 자극을 처리하는 것이라면 디폴트 신경망은 기존에 내재돼 있는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는 과정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이 디폴트 신경망이 잘 작동할 때 쑥 튀어나오는 것으로 돼 있다. 디폴트 신경망은 지시형 업무 수행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한다. 따라서 죽어라 일만 하는 것보다는 뇌를 놀게 해주어야 오히려 문제 해결의 답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지시형 업무 수행에서 가끔씩은 떨어져 뇌를 자유롭게 할 때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된다. 디폴트 신경망이 잘 활성화되면 마치 내가 다른 장소, 다른 시간, 그리고 다른 사람의 뇌 안에 있는 느낌이 들고 더 나아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느낌마저 든다. 물끄러미 창밖 경치를 보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 자주 오던 곳인데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디폴트 신경망이 활성화된 현상이다. 이것을 초월성 경험(transcendence)이라 하는데 옛말로 도 닦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 검색 사이트회사는 ‘20% 타임(time)’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일주일에 하루는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한다. 기존 업무(task)와 상관없는 자유 시간을 뇌에 주는 것이다. 한 유명 마케팅회사는 1년에 100~200시간은 무엇이든 자기가 흥미를 가지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또 자신을 돌아보고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your day’, 즉 ‘너의 날’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컨설팅회사도 있다. 실제 그 프로그램을 경험한 직원들은 자기 만족감, 행복감, 그리고 동기부여 정도가 향상됐다고 한다.

업무지향적 사고에서 잠시라도 유격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잠깐이라도 이메일이나 일정관리 캘린더에서 벗어나 보는 거다. 훌쩍 짧은 기차 여행을 떠나볼 수도 있다. 서울역에 가 무작정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산책을 한 후 다시 돌아오는, 이 내용 없는 여행이 복잡한 계획을 가진 긴 여행보다 우리 뇌의 잠재력을 더 키워줄 수 있다.

명상 활동도 도움이 된다. 명상이라는 것이 바쁜 내 일상과 유격을 두는 마음 훈련이다. 꼭 명상을 배우지 않더라도 기차 밖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상 효과는 일어난다. 점심시간에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혼자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를 하는 것, 우리 뇌 안의 숨은 파워, 디폴트 신경망을 활성화한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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