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IN DRAMA] 드라마 속 화제의 명작들

베스트셀러로 가는 지름길

언젠가부터 TV 드라마 속에 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은밀하게. 고전 명작에서부터 동화에 이르기까지 그 장르도 다양하다. 불편한 간접광고(PPL)냐 또 다른 즐거움이냐를 두고 시선은 엇갈리지만, 읽어서 좋을 책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건 분명 장점이 있다.



‘희소성의 법칙’은 어디에나 통한다. 2011년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일약 화제가 됐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만 해도 딱히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없었다. 물론 남녀가 바뀌는 드라마 속 판타지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2013년에 들어서면서는 웬만한 드라마에 책 한두 권 등장하는 게 보편적이 돼버렸다. 물론 그 대상이 책인 덕분에 여전히 다른 PPL을 바라보는 시선보다는 훨씬 관대하지만, 독서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지적도 나오는 게 사실. 논란을 뒤로하고 어쨌거나 책 안 읽는 시대에 새로운 독자층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읽은 독자는 드문 고전 명작이라면 더더욱.

드라마 속 책들은 때로는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등장하거나, 때로는 드라마의 전개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하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인기와 운명을 같이 하는 건 당연지사.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서 언급된 책들은 이후 여지없이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니 아무리 명작이라도 드라마를 잘 만나야 운명이 바뀐다. 최근 방영됐던 드라마를 중심으로 화제의 ‘명작’들을 모아봤다.


# 드라마 ‘비밀’ 속
‘폭풍의 언덕’‘자기 앞의 생’
정통 멜로드라마를 표방했던 ‘비밀’에는 두 권의 책이 등장했다. 조민혁(지성 분)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신세연(이다희 분)은 강유정(황정음 분)에게 집착하는 민혁에게 ‘폭풍의 언덕’을 내밀며 “읽어봐. 사랑으로 시작한 복수가 어떻게 끝나는지”라고 말했다. 이후 민혁이 유정을 잡아두기 위한 수단으로 또 한 번 등장한 이 책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비밀’의 새드엔딩을 암시하는 장치로 해석되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자기 앞의 생’은 민혁과 유정이 함께 밤을 보낸 후 침대에 기대앉아 책을 읽는 장면에서 등장했다. 유정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는 소설 속 한 대목을 읽어준 후 책을 덮어버림으로써 소설의 내용과 결말을 둘러싼 분분한 해석을 낳았다.

‘폭풍의 언덕’은…영국의 여류작가 에미리 브론테의 소설로 1847년 작. 서른 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 브론테의 첫 소설이자 유일한 소설로 발표 당시에는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후대로 오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라는 격찬을 받고 있다. 영국 요크셔의 황량한 들판 ‘폭풍의 언덕’이라는 저택을 배경으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격정적 사랑과 증오, 처절한 복수를 제삼자의 입을 통한 회상체 형식으로 그리고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힌다.

‘자기 앞의 생’은…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로 그가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다. 1956년 그의 작인 ‘하늘의 뿌리’에 이어 두 번째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프랑스 집창촌에서 태어난 어린 소년 모모가 창녀 출신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면서 성장해가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노인,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성전환자,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창녀들같이 이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 그리고 사랑을 순수한 모모를 통해 그린 작품.


# 드라마 ‘주군의 태양’ 속
‘폭풍우 치는 밤에’‘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주군의 태양’에서 언급된 두 권의 책은 드라마 내용과 긴밀한 연관성으로 드라마만큼이나 주목을 받았다. 일본 동화이자 후에 만화영화로도 나왔던 ‘폭풍우 치는 밤에’는 두 주인공의 관계와 책 속 늑대와 염소의 관계가 비유적으로 거론되며 결말을 궁금케 했던 작품. 태공실(공효진 분)은 주중원(소지섭 분)에게 “언젠간 잘 끝내야죠. 벼락 치는 날 만난 늑대와 염소처럼 되지는 말아요”라며 필요에 의해 만남을 시작한 둘의 불안한 관계를 얘기했다. ‘폭풍우 치는 밤에’가 결말을 예상케 했다면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숨겨진 열쇠 역할을 했다. 극 중 주중원이 어린 시절 납치범에 의해 읽게 된 책으로, 극도의 긴장감 속에 책을 읽은 주인공은 난독증을 앓게 됐던 것.

‘폭풍우 치는 밤에’는…일본 작가 기무라 유이치의 동화. ‘가부와 메이 이야기’ 시리즈의 제1권으로,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가 나누는 기묘한 우정 이야기를 다룬다. 폭풍우 치는 밤에 만나 서로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시리즈에 담겨 있으며, 제1권 ‘폭풍우 치는 밤에’에서는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가 폭풍우 치는 밤에 폭풍우를 피해 빈 오두막에 숨은 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된 이야기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으로 크리스티의 작품 중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걸작이다. 영국에서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The Ten Little Indians)’으로 발표됐다. 초면의 남녀 8명이 정체불명의 사람에 의해 인디언 섬으로 초대받고, 섬에 있는 하인 부부를 포함한 10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죽어나간다. 인디언 동요의 가사에 맞춰 무인도에 갇힌 10명은 모두 죽고 10개의 시체만 남았을 뿐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내용.


# 드라마 ‘황금의 제국’ 속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꼭 읽어. 표도르라는 아버지가 죽었어. 누가 표도르를 죽였는지 찾아가는 내용이야. 꼭 읽어라, 성재야.”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성진그룹 부회장 최서윤(이요원 분)이 회장인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이복동생 최성재(이현진 분)에게 서늘하게 던진 대사다. ‘황금의 제국’에 등장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드라마 속에서 대결하는 인물 구도와 소설 속 인물 구도를 연상케 해 더욱 화제를 모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3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고민한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에 대한 고민이 녹아 있으며 문학과 철학, 심리학, 종교까지 아우른 작품으로 출간 100년이 넘은 지금껏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1860년대 러시아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카라마조프 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그 지방의 지주인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그가 두 명의 아내에게서 낳은 세 아들과 사생아인 아들 등 네 아들 간의 재산 다툼, 한 여자를 둘러싼 갈등, 그로 인한 친부 살해와 범인이 누군지 찾아가는 과정을 추리소설 혹은 범죄소설 기법으로 전개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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