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RADAR] 재닛 옐런 美 Fed 새 의장 내정자

버냉키가 풀어 놓은 막대한 유동성 어떻게 회수할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이하 연준) 새 의장에 재닛 옐런(Janet Yellen·67) 현 부의장이 확정되면서 미국의 ‘첫 여성 경제 대통령’ 시대가 열리게 됐다. 세계 돈줄을 쥐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칠 정도로 연준 의장의 위상은 막강하다. ‘포스트 버냉키’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비둘기파’로 알려진 옐런은

어떤 인물이고, 어떤 정책을 펴나갈 것인가. 버냉키가 풀어놓은 막대한 유동성을 회수하는 시점과 속도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재닛 옐런 의장은… 1978~1980년 LSE 조교수.1980~1982년 UC버클리 Haas School 조교수. UC버클리 Haas School 부교수.1985년~ UC버클리 Haas School 정교수. 1994~1997년 연준 이사회. 1997~1999년 클린턴 대통령 경제자문회 의장. 2004~2010년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 2010년~ 연준 부의장.

왜 재닛 옐런이었나?
세계 돈줄을 쥐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에 따라서 세계 금융시장 변동은 심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지난 5월 이후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이 통화정책의 후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세계 경제 및 금융시장은 극심한 혼란을 겪은 바 있다. 직접적인 당사국인 미국은 물론, 미국의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의 영향으로 유동성 유입이 컸던 신흥국가에서는 자본 이탈 우려가 제기됐다. 그 결과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는 물론 자금 유입이 많았던 다른 아세안 국가들로도 그 영향이 일파만파 번졌다.

미국 연준의 정책 후퇴가 예고되면서, 또 하나의 걱정은 누가 다음 연준 의장에 오르는가였다. 버냉키 현 연준 의장은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처럼 위기에 처한 미국에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그런데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연준 의장에 오른다면 어쩌면 미국 연준의 유동성 회수가 매우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연준의 통화정책 후퇴 가능성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세계 금융시장 충격은 극심했다. 그런데 연준 의장이 교체된다면, 그리고 정책 후퇴 속도를 더 빠르게 가져간다면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는 너무 당연한 전망이다. 그래서 세계는 누가 새로운 연준 의장에 오를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여러 후보자가 거론됐지만 압축된 두 명의 후보는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전 하버드대 총장으로도 유명)과 현재 연준 부의장직을 맡고 있는 재닛 옐런이었다.

서머스는 막대한 유동성을 풀어 놓은 정책의 부작용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세계의 불안감을 더 키웠다.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입장에 따라서 물가 상승을 더 강하게 통제하려고 할 경우(금리 인상을 더 선호) 매파로 분류하고, 경제성장(혹은 실업률)에 주안점을 둘 경우 비둘기파로 분류하곤 한다. 서머스가 사나운 매처럼 인식됐다면, 옐런 부의장은 매우 순한 비둘기로 인식됐다. 금융시장의 지지는 당연히 옐런 부의장에게 몰렸다.

서머스는 옐런 부의장이 하버드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할 때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이 두 사제지간의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결론이 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드러나는 지지에도 불구하고 서머스가 후보를 사퇴함에 따라 결국 새 연준 의장에는 옐런 부의장이 낙점됐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장관 재직 시절 금융 규제 완화로 미국 금융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지적과 함께 강한 인상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했다. 동료 경제학자 350명은 그가 연준 의장이 되면 안 된다는 서한을 백악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공화당과 민주당 등 양당이 모두 서머스를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지명해도 의회의 인준을 통과할 가능성이 낮았다. 한때 베팅 사이트에서는 그의 연준 의장 지명 가능성을 80%까지 높게 보기도 했었다. 그의 사퇴 이후 미국 S&P500 지수는 1720(당시 사상 최고치)을 넘어서는 오름세였는데, 이를 서머스 상승장(Summers rally)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재닛 옐런은 어떤 사람?
다른 미 연준 의장과 달리 옐런 연준 부의장은 투자은행(IB)이나 국제기구 경험이 없다. 학계와 연준이 주요 경력의 대다수다. ‘경제학 가족’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그의 남편은 정보의 비대칭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대 교수다. 그들이 만난 장소 역시 연준이었다. 또한 아들인 로버트 애컬로프 역시 현 영국 워릭대 경제학 부교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역대 다른 연준 의장에 비해 더 청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반면 다소 고집스럽게 원칙만을 주장할 것 같다는 이미지 역시 강하다. 이런 점들이 그에 대한 다소 엇갈리는 평가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는 1946년생으로 현재 연준 의장인 버냉키보다 여덟 살 연상이다. 그 역시 이전 연준 의장처럼 유대인이다. 옐런은 1971년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학창 시절에 대한 평가는 매우 똑똑한 학생으로 귀결된다. 이런 이미지는 연준에서도 이어졌다. 옐런 부의장은 경제예측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이 금융 위기에 직면하기 직전인 2007년 12월 연준 의사록에는 다른 의원들과 달리 매우 비관적인 경제 전망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연준 의원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용경색 심화와 경기 후퇴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그다음 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리먼브더더스 파산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 경제를 극심한 침체로 몰아갔다.

이런 금융 위기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다. 지나친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과열이 부른 금융 위기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정책이 아니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이런 격동의 과정을 연준에서 경험했다는 것은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10년부터는 연준 부의장으로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초유의 유동성 공급 정책을 결정한 핵심 구성원이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금융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극단적인 정책을 직접 구상하고 집행한 경험은 이제 현 정책을 후퇴시키는 데 있어서도 어느 누구보다 더 상황을 잘 판단하고 적절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정책 성향은 비둘기파다. 연준 내에서도 가장 비둘기 성향에 가깝다. 찰스 에반스와 함께 시장이 판단할 수 있는 정책 목표(2%의 물가상승률과 6.5%의 실업률)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이기도 하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시장이 정책 예측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달렸다”고도 말한 바 있다. 현재 실업률을 목표로 삼는 데서 한 발 더 나가서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그의 연준 의장 지명에 환호했던 것은 이런 경기 우호적인 정책 성향 때문이다.

옐런 부의장이 경기우호적인 정책을 선호하는 비둘기파라는 것이 시장친화적이라는 것과는 그 의미가 다소 다르다. 경기우호적이라는 것은 높은 실업률이 높은 물가보다 더 경제에 부작용이 크고, 경제주체들의 고통이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더 강한 규제를 주장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다. 과거 금융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과도한 금융 회사들에 대한 규제 완화를 들고 있으며, 그때문에 금융 규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준은 금융 위기 이후 3조 달러 가까운 돈을 시중에 풀었다. 이렇게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 공급은 돈을 빌리는 비용(이자)을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낮출 수밖에 없다. 이미 연준이 공표한 것처럼 2015년까지는 0%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공언해 놓은 바 있다. 이렇게 싸게 빌릴 수 있는 자금을 이용해 금융 회사들이 과도한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한 규제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아무리 중앙은행이 돈을 많이 풀어도 그 돈을 이용해 투자할 수 없다면 금융 회사들의 이익 기회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런 유동성이 금융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업 및 가계로 흘러 들어가 실물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헤지펀드처럼 차입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경우 규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의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향후 정책의 방향은?
미국 연준은 물가 안정이라는 단일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한국은행과는 달리 물가와 실업 두 개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의장의 성향에 따라서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연준 내에서 의결권이 있는 의원은 의장 및 부의장을 포함해서 총 12명이다. 짝수로 돼 있는 의결권은 자연스럽게 의장의 권한을 더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에서는 대부분 의결권은 홀수다. 가부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날 수 있도록 배분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색다르게 짝수의 의결권이 있다. 그래서 연준 의장이 결정적인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금리 인상과 유지 간 6대6의 팽팽한 대결이라면 의사결정이 될 때까지 계속 토론과 합의과정을 통해 의사 결정을 도출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의장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실질적으로는 의장이 다른 위원들과 같이 동일한 한 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파(α)의 의결권을 더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국가의 경우 의장의 한 표도 다른 의원과 동일한 한 표에 불과하다.

내년부터 새롭게 꾸며지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구성원은 이전에 비해 물가 안정을 선호(매파)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새롭게 참여가 결정돼 있는 4명 중 3명이 물가 안정을 위한 긴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이 이끌던 시절에는 비둘기파의 비중이 높아서 연준 내에서 경기부양적인 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 그가 이끌 FOMC 회의는 이미 벌려놓은 대규모의 통화 공급이 후퇴해야 하는 입장에서 매파들과의 의견 조율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지금까지 금융시장 정책은 여전히 비둘기파가 우위를 지키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의장인 옐런 역시 비둘기파이기 때문에 미국의 통화정책 후퇴는 매우 느리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더 많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물가와 실업률에 대한 명확한 목표치 제시를 강조하는 옐런 의장의 성향은 비둘기파에서 매파로의 변화가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 물가상승률은 1%대에 머물고 있어 연준이 제시하고 있는 2%의 물가상승률을 지속적으로 하회하고 있다. 따라서 물가 관리에 대한 필요성은 낮다. 반면 실업률 목표는 6.5%인데 실업률은 여전히 7% 수준에서 등락하고 있다. 여전히 고용은 더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목표에 미달하고 있는 실업률을 개선시키기 위한 정책이 더 우위에 있어야 한다.

상황이 변해 경기 회복이 진행되며 실업률이 6.5%에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이 2%를 넘어서기 시작한다면, 옐런 의장의 정책은 경기보다는 물가 관리로 변할 수 있다. 실제로 1996년 9월 FOMC 회의 전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에게 “물가 상승이 현실화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회의 때까지 금리 인상을 미룬다면 당신의 의사 결정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 1월부터 새로운 연준 의장으로 취임하게 될 옐런 의장은 금융 위기 이전보다 4.2배나 많은 3조7000억 달러의 막대한 유동성을 회수하는 시점과 속도를 결정해야 하는 막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 유동성을 늘리고, 유지하는 동안 그에게 중요한 지표는 실업률(경기)이었지만 정책의 후퇴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는 물가로 바뀔 가능성이 더 높다.


김승현 대신증권 글로벌마켓 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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