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BALANCE] “인생엔 ‘행복총량 법칙’이 존재하더군요”

‘노래하는 CEO’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대표

글 쓰고 노래하는 경영인.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대표는 인생을 이렇게 삼등분했다. 전후 세대로 태어나 스무 해가 되도록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고, 30대 중반에 건설사 사장 자리에 올랐으며 회사 부도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았다가 호텔 대표로 멋지게 재기한 남자. 누구보다 혹독하게 파고를 넘어 온 그는 환갑에 이르러, 비로소 작가와 합창단원, 최고경영자(CEO)로 균형 잡힌 삶에 안착했다.


권대욱 대표는… 1951년생. 1973년 서울대 농업토목과. 1991년 연세대 경영학 석사. 2000년 동국대 경영학 박사. 1973~1976년 농림수산부 근무. 1976~1997년 한보그룹 근무. 1997~1998년 극동건설 사장. 2005~2006년 호텔 서교·하얏트 리젠시 제주 사장. 2008년~현재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대표.

권대욱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 대표는 ‘스타 CEO’다. 2011년 KBS2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이하 청춘합창단)’에 합창단원으로 출연해 인기를 누렸고, 그 해 방송대상에서 수상까지 할 정도로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어떻게 방송 출연을 결심했을까. 방송사 측의 섭외나 주변의 권유가 있었을 것이란 예측은 빗나갔다. “숨 가쁘게 살아온 내 인생에 물을 주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노래는 어린 시절부터 곧잘 불렀다. 홀어머니가 서울 안암동에서 하숙을 쳤는데 당시 그는 고려대 하숙생들 사이에서 ‘꼬마 가수’로 통했다. 마당 평상에 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 있으면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구성지게 불러 귀여움을 받았다. 늘 가슴에 신명이 넘쳤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여유가 없었다. 극동건설 사장으로 재직할 때는 접대가 많았는데, 수주를 따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고 마이크를 잡았던 터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남자의 자격’에서 박칼린 감독이 이끄는 합창단이 ‘넬라판타지’를 멋지게 부르는 모습을 보고 빠져들었다. ‘나도 합창을 해보고 싶다. 저기에 서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한 소망은 현실이 됐다. ‘남자의 자격’ 시즌 2에서 청춘합창단을 모집한 것이다.

“50대 이상 합창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해 직접 신청서를 작성했어요. 서류를 통과하고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통보에 어찌나 심장이 떨리던지…. 큰 계약을 앞두고도 그렇게 긴장해본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웃음)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도전한 청춘합창단은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40여 명 또래 합창단원들과 노래에 몰입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일상의 피로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도 모두 아름다운 선율 안에서 치유됐다. 합창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과의 유대는 그 어떤 모임보다도 끈끈했다. 청춘합창단은 해단했지만 그들은 지금도 희망을 노래한다.

“의미 있는 사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홍보대사로 발탁돼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재능기부를 합니다. 올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애국가를 불렀고요. 우리의 바람은 유엔으로 가는 거예요. 소통과 화합의 아이콘으로서 분단국가의 아픔을 노래하고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뉴욕 카네기홀에도 서고자 합니다. 설령 이뤄지지 않는다 한들 어떻습니까. 이 나이에도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 아름답지요. 그러니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방송 때 인연을 맺은 윤학원 감독의 가르침에 따라 합창단은 요즘에도 일주일에 두 번 하루 4시간씩 연습을 한다. 오는 10월 8일에는 경기도 고양아람누리에서 정기공연이 열린다. 그는 “‘남자의 자격’에 출연할 때보다 훨씬 실력들이 늘었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아침에 양재천을 걸으면서도 큰소리로 노래해요. 배에 힘 꽉 주고 가곡도 부르고 흘러간 옛 노래들도 불러요. 그러면서 건강도 무척 좋아졌어요. 스트레스도 떨치고 폐활량도 눈에 띄게 늘었지요. 합창은 노년에 건강해지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는 취미입니다.”


‘청춘합창단’서 노래하며 치유, 유엔서 합창하고파
권 대표가 노래 못지않게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바로 글쓰기다. 애초에 ‘노래하는 CEO’로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글 쓰는 CEO’는 어떻겠느냐고 역제안할 정도였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젊은 층과 소통을 즐기는 그는 최근에 산문집 ‘청산은 내게 나 되어 살라하고’를 펴냈다. 건설인, 호텔 경영인, 대학 교수로 지내온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철학, 성공과 실패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행간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변에서 ‘그렇게 바쁜데 책 쓸 겨를이 있었느냐’며 놀랍니다. 하지만 이 책은 ‘뚝딱’ 써내려간 게 아니에요. 10년 전부터 꾸준히 기록해 오던 삶의 조각들이죠. SNS를 하다 보니 요즘 젊은 친구들로부터 고민 상담을 많이 받거든요. 험난한 인생사 가운데 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냈어요.”



권 대표의 인생이 순탄하지 않았음은 예견했다. 그는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해 지금에 이르렀다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세월을 기록하는 일은 그에게 하나의 카타르시스리라.

1951년생. 한국전쟁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20대에 홀로 되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권 대표는 어려서부터 혼자 많은 것을 해결해야 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뒷바라지하는 어머니를 위해 그는 이를 악물고 공부해 서울대 농대에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까지 공부방이 없어 친구의 집과 친척집을 전전해야 했지만 4년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건설사에서도 일밖에 모르며 몸 바쳐 회사생활을 했다.

“한보건설에 입사해 죽기 살기로 일해 능력을 인정받았어요. 당시 회사의 중동 쪽 건설 현장들이 고전하고 있었는데 제가 2년 반 만에 기울어 가던 사업들을 기사회생시켰지요. 그 덕분에 서른다섯 살에 사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스스로 담금질했던 시간들인데 지금도 중동 현장은 저에게 시련의 장으로 기억됩니다. 너무나 혹독했지요.”



IMF 때 시련이 닥쳤다. 당시 CEO로 있던 극동건설이 계열사 부도와 함께 법정관리를 받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됐다. 이후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잘 풀리지 않았고 2000년에는 급기야 강원도 산간에 조그만 집을 짓고 칩거해 살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독을 즐기며 처절하게 자신과 부딪혔습니다. 그땐 원망도 많이 했죠. 하지만 이제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요. 글을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치열하게 살아 참 다행이라고. 시련이 있어 감사하다고. 돌이켜보니 인생엔 ‘행복총량의 법칙’이 존재하더군요. 그러니 후배나 멘티들에게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 말고, 좋은 일이 있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늘 강조합니다.”


삶과 일이 조화로운 인생, 자존감이 행복 선물
글을 쓰면서 그는 차분해졌다. 또 유연해졌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끝없이 내면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벽에 부딪힐 때면 주먹으로 깨든 발로 차든 부수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참고 기다릴 줄도 알게 됐다. 그리고 주문처럼 외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호텔 경영 외에도 합창 연습과 각종 강연 및 집필 활동으로 분주하지만 그는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나 동네를 걸으며 사색하거나 책을 읽는다. 주말에는 강원도 산막으로 떠나 ‘오늘은 멘티들에게 또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주말마다 은퇴하는 남자’다.

권 대표는 삶과 일이 조화를 이루는 지금 자신의 인생이 아주 만족스럽다고 했다.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으로, 그리고 인간으로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젊은 시절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면 이제 그것 말고도 많은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경영이야 늘 쉬운 게 아니지만 터프한 건설업에 비하면 호텔 업계의 분위기는 부드러운 편이죠. 아코르 앰배서더 호텔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선두 브랜드로 잘 자리 잡았고, 실적도 좋아요. 노래하고 글을 쓰며 강단에서 청춘들과 만나는 인생도 제법 행복해요. 얼마 전, 30년 만에 중동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출판기념회에서 만났는데 얼굴이 평온해졌다고 하더군요. 결국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을 사니까 즐거운 거예요.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인가 봅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상단 바로가기